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24
#2023.
경탄하다 (3)
콰아아아아아아!
용솟음친 불길이 천장을 녹여낸다. 순식간에 타들어간 콘크리트가 붉게 달아올라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가공할 화력.
지켜보고 있던 십이비도들조차 놀라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의 가공할 화력이었다.
“저…….”
“……대단하군.”
그들의 눈에 경외감이 어린다.
이곳에는 주먹으로 산을 부순다 해도 놀랄 이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저런 불꽃을 내뿜는 데는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마법이라는 게 이 정도였나?”
다른 이들이 모두 놀라움을 표하는 와중에 딱히 표정의 변화가 없는 이는 둘뿐이었다.
하나는 당연히 흑왕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백연홍이었다.
“흥.”
백연홍의 시선이 마스터를 넘어 그 뒤쪽에 있는 위긴스에게로 향했다.
이미 그는 한 번 위긴스를 상대하며 저들의 무학이 그들과 다른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다. 그러니 딱히 놀랄 것도 없다.
콰아아아아!
그 가공할 화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힘들었는지, 솟구치던 불꽃이 환상처럼 사라진다. 모두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녹은 콘크리트가 진흙처럼 흘러내리는 곳에서 환사가 몸을 웅크린 몸을 천천히 폈다.
딱히 큰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 가공할 화력의 한중간에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
하지만 십이비도는 알 수 있었다. 환사의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새하얗게 질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상을 입었군.’
마스터의 칼날은 지금 분명히 환사에게 닿았다.
환사가 우윳빛 눈으로 바닥을 바라본다. 희게 빛을 내뿜던 바닥에서 빛이 꺼지고, 그 자리를 녹아내린 콘크리트가 울퉁불퉁 뒤덮고 있었다.
“…….”
그의 눈에 차오른 것은 어쩌면 분노, 어쩌면 증오.
하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감정은 경탄이었다.
“……분신을 쓰는 와중에 인을 맺은 것인가? 그것도 바닥에?”
“우리는 캐스팅이라고 하지.”
환사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강했다.
전력을 다해 막아냈음에도 내부가 뒤틀릴 만큼 강렬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환사를 진정으로 감탄시킨 것은 그 강함이 아니다. 그 강함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계획력과 응용력이다.
이런 타입의 무인은 그도 생전 처음 겪어본다. 힘으로 짓눌러 오는 상대를 기술과 전략으로 되받아치는 건 언제나 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마스터란 이가 분명 그보다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나를 상대한 이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군.’
평소라면 꽤 감흥을 느낄 만한 일이겠지만, 전신에서 느껴지는 격통은 그의 감흥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환사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 어느새 세 장의 부적이 잡혀 있었다.
“이대로 당하기만 해서는 체면이 살지 않겠지.”
“체면 같은 걸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렇소만.”
환사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관객이 이리 많으면 속한 곳의 위상을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말이오.”
“서로 곤란한 몸이로군.”
환사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인다.
마스터의 두 눈이 그 손끝을 강렬하게 응시했다. 일반적인 무인들의 전투는 서로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들의 전투는 맥락을 달리한다.
서로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는지 모르는데 섣부르게 공격을 서둘렀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조금 전, 마스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핫!”
짧은 기합성과 함께 환사의 손끝에서 부적이 발출된다. 허공으로 솟아오른 부적인 빙글빙글 회전한다 싶더니, 이내 맹렬한 돌풍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이미 본 수를.”
마스터의 몸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 사라지더니, 이내 다른 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날아든 돌풍이 마스터가 있던 곳을 허무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저거…….’
백연홍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위긴스를 상대했을 때도 가장 곤란했던 게 바로 저거다. 무인들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가속으로 눈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일 뿐, 정말 사라졌다 나타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저 기술은 대체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인간의 몸을 순간적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아니, 이동이라기보다는 전송.
‘저건 거의 절대방어에 가깝다.’
백연홍이야 위치를 바꾼 이를 끝없이 쫓아갈 수 있는 속도와 스태미나를 갖추고 있었으니 어찌어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지만, 환사에게 그걸 바라기는 어려울 터.
그리고 한눈에 봐도 지금 저 마스터라는 자의 움직임은 위긴스보다 우월하다.
‘쫓을 수 있을까?’
그 순간, 환사가 그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사방으로 부적을 흩뿌려 댔다.
수십여 장의 부적이 허공에 솟구치는 순간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나하나가 사람만 한 크기의 화염으로 화해 쏘아지기 시작한다.
화아아아아악!
타오르는 화염의 비가 마스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유성우?’
아니다.
마법과 비슷한 형태를 띠긴 하지만, 이건 마법과는 다르다. 날아드는 화염 덩어리들이 이리저리 뒤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하나하나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듯이.
‘이게 그 도깨비불이라는 건가?’
저건 화염이라기보다는 유령들이 달려드는 것만 같다. 어떻게든 마스터를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는 원한을 가득 품은 원혼들이 말이다.
‘이해가 빠르군.’
마스터의 입술이 비틀렸다.
지금 이 공격은 전면을 거의 뒤덮으며 날아온다. 블링크로 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앞쪽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환사의 손에 잡혀 있는 저 새로운 부적들이 마음에 걸린다.
우우우웅!
마스터의 룬검이 빛을 뿜어낸다.
“막아내는 정도야.”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유백색의 기운이 마스터의 전신을 반구형으로 둘러쌌다.
그리고 그 막이 완성됨과 동시에 날아든 불꽃들이 연이어 마스터의 실드와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킨다.
콰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한 방, 한 방의 위력은 마스터가 보여준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화염 덩어리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폭격처럼 화염이 연이어 쏟아진다. 한 번의 폭발이 터질 때마다 마스터를 둘러싼 실드가 강풍을 맞은 비눗방울처럼 출렁인다.
“흠!”
하지만 환사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던 모양이다.
그가 움켜잡은 수십여 장의 부적을 허공으로 다시 흩뿌린다. 허공으로 솟아오른 부적이 마스터의 머리 위로 맹렬하게 날아가 마치 허공에 글귀를 쓰듯 휘돌았다.
그러자 날아들던 불꽃들이 부적이 있는 위쪽으로 빨려들 듯 휘돌며 승천하더니, 이내 한 곳으로 뭉쳐들기 시작했다.
그런 후!
우우우우우우우우!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귀신의 귀곡성 같기도 한 울림이 터져 나오더니, 허공이 거대한 귀면상이 나타난다.
불꽃으로 만든 귀면상.
마치 악귀의 형상 같기도 하고, 울부짖는 범의 형상 같기도 한 귀면상이 아래로 가공할 속도로 하강하며 마스터를 물어뜯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가공할 화염의 폭풍이 격납고 안에 휘몰아친다.
“아아악!”
방진훈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진다.
‘뭐야, 이거?’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공격이다.
불꽃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전 마스터가 보여준 공격처럼 열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운이 그를 후려치는 것만 같다.
‘이런 무학이 있다고?’
그는 이제 나름 마법에 익숙하다. 그렇기에 저 망할 마법사 놈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 공격은 별개다. 이건 마법이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 술사라 불리는 놈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봐야 부적 몇 장을 날려 대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여겼거늘, 설마 이런 수준에 오른 술사가 존재할 줄이야.
“큭!”
바닥을 움켜잡은 방진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스터는?’
그 살날 얼마 남지도 않은 영감이 이만한 공격을 얻어맞았는데 무사할 리가 없다.
방진훈의 눈에 몰아치는 화염의 폭풍이 잦아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를 이어 그가 본 것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 실드와 움푹 파인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마스터의 모습이었다.
“마, 마스…….”
방진훈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기도 전에 위긴스의 입에서 먼저 신음이 흘러나온다.
일격의 교환.
하지만 쉽사리 털고 일어난 환사와 달리 마스터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아 보였다.
“쿨럭!”
마스터의 입에서 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마스터의 몸이 짧게 경련한다.
‘뭔 위력이…….’
전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까딱했으면 일격에 죽었겠군.’
마지막에 실드를 역류시켜 위력을 반감시키지 않았다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뼈저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실력은 자신보다 한참 위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흐…….”
마스터가 쓴웃음을 머금었군.
‘생각해 보면 기구하군.’
평생 적수라 할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물론 경쟁을 한 이들은 있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앞을 막아내리란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말년에 이르러 자신보다 강한 이들을 줄줄이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웃기지 않은가.
“격차는 명백하오.”
마스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환사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애초에 그대는 이 싸움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을 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소?”
“이유라…….”
마스터가 몸을 일으킨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관절이 덜컥댔지만, 일어서지 않을 수 없다. 적을 앞에 두고 주저앉아 있는다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었으니까.
지팡이 삼아 내리누른 룬검이 바닥을 파고든다.
“……이유는 있지.”
그극.
룬검을 뽑아 든 마스터가 한쪽 눈을 감은 채 이죽거렸다.
“그거 아시는가?”
“뭐가 말이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무서울 게 없지.”
“…….”
“그 우물 밖으로 나가고서야 자신이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이오. 이건 동양의 속담이었던가?”
“정저지와(井底之蛙)라고 하지.”
“그랬지. 그래.”
마스터가 룬검을 고쳐 잡고 허리를 편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어리석소. 그렇지 않소?”
“……무슨 말이 하고픈 거요?”
“묻고 싶은 거요.”
마스터가 이를 드러냈다.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안다면, 그때부터는 어쩔 것인지.”
“…….”
환사가 굳은 얼굴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겁을 집어먹고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갈 건지!”
쿵!
마스터가 바닥을 내리밟는다. 그의 몸에서 새파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왔다.
“아니면 독수리가 날아들고, 살쾡이가 달려드는 우물 밖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볼 건지!”
“…….”
“쿡쿡쿡쿡.”
마스터의 눈이 슬쩍 카메라로 향했다. 아마 지금 그의 모습을 모두가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이들을 우물 안에 가둬왔소. 그 덕에 그들은 우물 안으로 뛰어든 뱀에 농락당하고 있을 뿐이지. 그건 모두 내 죄요. 하지만 그렇기에…….”
마스터가 씹어뱉듯 말했다.
“개구리라 한들 뱀과 맞서 싸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려줄 의무도 있는 거요.”
마스터의 두 눈에 광기가 차오른다.
“이 목숨을 대가로 치른다 해도!”
“…….”
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의지는 이해할 수 있겠군.”
그의 손에 다시 세 장의 부적이 잡혔다.
“오시오. 그 의지에 걸맞은 마지막을 선사해 드리지.”
마스터가 낮게 웃으며 검을 움켜잡았다.
“결말을 정하는 건 나요. 그대가 아니라.”
마스터의 검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