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26
#2025.
경탄하다 (5)
지옥에 강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검게 소용돌이치는 검은 액체들이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다.
콰콰콰콰콰콰!
“저…….”
그 가공할 광경에 방진훈도, 위긴스도 그저 입을 벌릴 뿐이었다.
위력이 얼마나 강한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이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잖은가.
‘어쩌자고?’
위긴스가 입술을 깨문다.
저 물길은 환사뿐 아니라 마스터도 휩쓸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스터가 제 발로 저 소용돌이 안으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해는 한다.
환사는 강하다. 마스터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상처 입지 않고 그를 이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 상대를 끌어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버릴 줄이야.
다른 사람도 아닌 저 마스터가.
검게, 또 검게 휘몰아치던 액체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환상처럼 사라진다.
위긴스가 입술을 깨문다.
물길이 사라진 곳에 처참하게 파인 바닥이 드러난다. 마치 진흙 바닥을 짐승이 후벼 판 것처럼 거칠게 파인 바닥에 마스터와 환사가 쓰러져 있었다.
그래, 둘 모두.
“…….”
마스터의 눈이 흔들린다.
‘무승부?’
아니면?
그때였다.
“끄……으윽.”
시체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환사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턱.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은 환사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바닥에서 밀어낸다.
투두둑.
고여 있던 피가 바닥으로 비처럼 쏟아진다. 그가 입은 백색의 도포는 이미 그가 흘린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끄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환사가 휘청이다가 다시 바닥에 엎어진다.
“흐…….”
피에 젖은 얼굴의 환사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그가 이토록 큰 상처를 입은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쿨럭!”
그 순간, 쓰러져 있던 마스터도 잔기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 번 기침을 할 때마다 마스터의 몸이 들썩인다.
“후욱…….”
그와 동시에 마스터도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커걱!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마스터가 룬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한다. 그 모습을 본 환사도 힘겹게, 힘겹게 몸을 일으켜 마스터를 마주 보고 섰다.
“…….”
“…….”
두 사람이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 짧은 침묵을 깬 것은 마스터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였다.
“……앝았나?”
“아니…… 정확했지. 그저 약했을 뿐이다.”
“닿을 줄 알았는데.”
그의 검은 분명 환사를 갈랐다. 하지만 그의 심장을 갈라내지는 못했다. 그저 살을 끊고 뼈를 잘라내느 데 그쳤을 뿐이다.
그걸로는 환사를 죽일 수 없다.
환사의 몰골은 처참했다.
그를 뒤덮은 압력은 그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뒤틀려 으스러진 팔은 팔꿈치 아래부터는 뼈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은지 덜렁댔고, 바닥을 짚은 다리 중 하나는 정강이가 꺾여 허연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아마 갈비뼈는 모조리 으스러졌을 것이고, 숨을 헐떡이는 걸 보면 부러진 뼈가 한쪽 폐를 찔러 숨을 쉬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사는 살아남았다.
“압력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었군. 나를 그곳에 묶어두기 위해서였어.”
마스터가 고소를 머금었다.
“네가 네 방어를 완전히 믿고 있었으니까.”
“…….”
“틈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했지.”
환사의 방어는 절대적이다. 마스터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도 그 방어를 뚫지 못했을 것이다.
불을 내뿜고, 눈보라를 내리치고, 뇌전을 날려 대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결국에는 저 결계가 그의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켰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환사의 약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무인은 그 결계를 깨뜨려야 한다. 깨지 않고서는 환사의 육체에 닿을 수 없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저 결계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되니까.
스스로의 무학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 그리고 자신이 믿어온 법칙에 대한 안일한 의존.
마스터는 그 인식의 틈을 파고든 것이다.
마스터가 아니면 찌를 수 없는, 그 실낱같은 틈. 중력으로 발을 묶고 결계를 뒤덮은 것은 그저 환사의 위치와 결계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환사에게 있어서 자신의 결계로 보호받는 영역 안에서 칼이 날아든 것은 배 속에서 칼이 배를 뚫고 나온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당할 수밖에.
“큭…….”
환사의 몸이 잘게 떨렸다.
알고 보면 너무도 빤한 수작이다. 저자가 저 괴이한 이동을 보여주었을 때부터 이 가능성을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생사가 오가는 전장이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목이 달아나는 전투다. 그 긴장되는 전투의 와중에 상대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허점을 노리기 위해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간다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그가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대단하군, 정말.”
마스터가 빙긋 웃는다.
상대는 그가 닿지 못한 경지를 이룩한 무인. 그런 이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게 기분 나쁠 리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의 마지막 칼날이 원하는 곳에 닿지 못했다는 것.
“……정말 아쉽군.”
그건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였다. 그의 삶이 조금만 더 충실했더라면, 어쩌면 그의 검이 환사를 베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워해서는 안 될 일이지.’
스스로를 무인이 아니라 원탁의 수장으로 규정한 것은 바로 마스터 자신이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후회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그가 바란 것은 중요한 것은 가장 위대한 무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환사가 경의감이 담긴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우스운 일이다.
강호에서 술사는 좌도방문(左道傍門)이라 폄하되며 천대받는 이일 뿐이다. 환사는 지금까지 이 지독한 무인들의 세계에서 육체의 강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강해지는 데는 다른 길이 있음을, 그리고 모두가 걷는 길을 걷지 않아도 끝까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또 증명하는 것, 그게 환사가 걸어온 길이다.
하지만 저자는 무학의 강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수준으로 따지자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이. 그런 이가 지금 환사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부족한 실력을 완벽한 전략과 과감하기 짝이 없는 도박으로 메우며 그와 대등한 위치에 섰다.
어찌 경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어찌 그곳에 서 있소?”
“…….”
“이미 승부는 났을 텐데.”
마스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승부는 났다. 그는 패배했다.
그는 더 이상 환사를 어찌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육체의 손상은 환사가 더 커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의 내부는 이미 박살이 날 대로 박살이 난 상태.
그리고 그의 마나는 예전에 고갈되었다. 과도하게 끌어 쓴 마나가 역류하며 그의 심장을 파괴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는 곧 죽는다. 지금은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밀어내고 있을 뿐이다.
‘아니. 그건 변명이지.’
설사 부상이 깊지 않다고 해도 마나를 모두 소모한 순간, 그에게 남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쉽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깔끔하지 않은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오.”
“…….”
“승부는 확실한 것이 좋지 않겠소?”
환사가 눈을 감는다.
‘무인이구나.’
파란 눈, 그리고 하얀 피부.
저 이국의 사내에게 무인의 혼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술사를 무시하던 이들이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그가 저 사내에게 똑같이 가졌던 것이다.
촤락.
결심을 굳힌 환사의 손 위로 피에 젖은 부적 한 장이 잡혔다.
“한 가지는 말해두겠소.”
“…….”
“그대는 지금껏 내가 만난 이들 중 가장 위대한 무인이오.”
마스터가 빙그레 웃는다.
“어쩌면 그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군. 고맙소.”
눈을 감아버린 환사가 손을 떨쳐 낸다. 그의 손에 들린 부적이 맹렬히 날아가 마스터의 심장에 틀어박힌다.
털썩.
마스터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다.
차마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던 환사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돌린다.
결착.
승부가 난 순간, 위긴스가 바닥을 박차며 쓰러진 마스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으……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른 위긴스가 쓰러진 마스터를 움켜잡는다.
“마스터! 마스터어어!”
위긴스의 품에 안긴 마스터가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눈으로 바라본다.
“나이트 위긴스…….”
“마스터.”
위긴스의 손이 마스터의 어깨를 꽉 잡았다.
“대……답해 보게.”
“…….”
“나는…… 나는 교……훈이 되었는가? 내 의지가…… 지켜보는 이들에게 전해졌을……까?”
위긴스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알 겁니다! 알 겁니다, 마스터! 다들 보고 느꼈을 겁니다. 그들도…… 똑똑히 봤을 겁니다!”
“흐…….”
마스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다행……이군.”
“예…… 마스터. 훌륭하셨습니다.”
위긴스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그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마스터의 마지막을 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논리와는 관계없는 일. 이 애통함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럼…….”
마스터의 눈이 위긴스를 똑바로 응시한다.
“……자네는?”
“…….”
복잡미묘하게 변한 위긴스의 얼굴을 본 마스터가 옅게 웃었다.
“그거면 됐네. 자네는…… 자네는 항상 훌륭한 학생이었……지.”
“마스터…….”
“느낀 대로…… 그저 느낀 대로 행하게. 그저…….”
마스터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자신도 모르게 마스터의 몸에 치료 마법을 쏟아부으려던 위긴스가 입술을 물어뜯는다.
아니. 그건 마스터를 모욕하는 짓이다.
그때, 그들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스터의 초점 없는 두 눈이 그들 앞에 선 이에게로 향했다.
“……주님.”
“그래.”
“갚…… 갚았…….”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빚은 다 갚았다. 훌륭했다.”
“원……탁을…… 부탁…… 그들을…….”
강진호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제야 마스터의 얼굴이 편안해진다.
그의 눈이 허공의 무언가를 쫓는다 싶더니…… 이내 두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으읍…….”
위긴스가 마스터를 움켜잡았다.
“일어나.”
“……로드.”
“그건 전사를 보내는 방법이 아니야. 원하는 걸 이루고 간 이의 마지막은 축하받아야 하는 법이지.”
“……예.”
위긴스가 마스터를 안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 진영까지 걸어간 위긴스가 한구석에 마스터를 조심스레 눕혔다.
“여기 잠깐 계십시오. 당신이 잠들 땅은 이곳이 아니니까. 곧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원탁의 마스터가 잠들어야 할 곳으로.”
위긴스가 가만히 마스터를 내려다본다.
굳어진 그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차마 따라지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근사한 미소를.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전해주기도 하는 법.
그의 삶은, 그가 보여준 의지는 분명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을 것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