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35
#2034.
대립하다 (4)
‘내가 미쳤지.’
물론 알고는 있다.
저 일격의 위력이 지금까지 나온 다른 십이비도들에 비해서 딱히 대단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누적된 대미지가 물이 넘치듯 벽을 무너뜨린 것이겠지.
아는데…….
알긴 아는데.
“아니, 씨발! 머리로 아는 거랑 다르다고!”
방진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단숨에 날아온 장력이 그가 있던 자리에 틀어박히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콰아아아아아앙!
강화 콘크리트가 조각조각 부서지며 마치 폭죽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저 위력에 직격당한다면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건 자명한 일.
방진훈의 이마에 식은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미친! 아니, 미친!’
어쩌자고 여기에 나서서 저런 인간을 상대한단 말인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부우우웅!
수백 마리 벌 떼가 동시에 날아드는 듯한 굉음과 함께 장왕이 발출한 장력이 방진훈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든다.
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공격.
하지만 그만큼 말도 안 되게 빠른 장력이었다.
방진훈이 몸을 뒤틀며 날아드는 장력을 피해낸다. 하지만 뒤튼 몸을 채 펴기도 전에 또 하나의 장력이 날아들고, 또 하나의 장력이 추가로 날아든다.
눈 깜짝할 새에 수십 개의 장력이 방진훈의 전신을 뒤덮으며 날아들었다.
“으아아아아! 씨바아아아알!”
방진훈이 제 몸을 바닥에 숫제 집어 던졌다.
들이받듯 바닥에 엎어진 방진훈이 가공할 속도로 몸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가 벗어난 바닥으로 장력들이 틀어박히며 파편들이 불꽃놀이하듯 연이어 솟아오른다.
“후욱!”
방진훈이 바닥을 박차며 몸을 일으켰다.
땅바닥을 구르며 적의 공격을 피하는 한 수는 무인들이 나려타곤(懶驢打滾)이라 부르며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회피법이다.
하지만 방진훈에게 수치심이란 감정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쪽 팔리긴 얼어 뒈질!’
일단 살아야지.
못 피하고 처 맞아 죽으면 그게 쪽팔린 거지, 살 수만 있으면 바닥을 구르든 팬티만 입고 물구나무를 서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뻗어낸 손을 회수한 장왕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기본은 탄탄하신 듯하오만…….”
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그 기본만으로 승리를 쟁취하기는 어렵지 않으시겠소?”
“…….”
방진훈이 뭐라 반박도 하지 못하고 숨을 골랐다.
‘돌겠네.’
무시무시하다.
어마어마한 힘을 실은 장력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날아든다. 그것도 한 번에 수십 개가.
어째서 저자가 장왕이라고 불렸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방진훈더러 저자에게 별호를 붙이라고 했어도 장왕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빠르고, 강하고, 다양하다.
무학에 있어서 이 이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내게는 없는 거라고.’
바토르라면 그 육체로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긴스라면 상대의 공격 자체를 회피하고 상대의 등 뒤를 노릴 수 있었겠지.
그리고 장민이라면 정면에서 상대의 공격을 찢어발기고 급소에 손톱을 박아 넣으려 들었을 것이다.
강진호?
강진호는 말할 필요도 없다. 뭐든 가능했겠지.
하지만 방진훈은 아니다.
그는 바토르처럼 버틸 수도 없고, 위긴스처럼 피해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장민처럼 뚫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보고 뭘 어쩌라고.’
뼈저리게 실감이 난다, 그에게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마스터든 혈마든, 심지어 이명환까지도 자신만의 확고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강한 자들과도 싸우면서 상대를 한 방 먹일 수 있던 것이다.
그들이 분명 상대보다 앞선 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방진훈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장왕에 비해 앞서 있는 부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완벽한 상위 호환과 승부를 벌인다면 결과야 빤한 노릇 아닌가. 강호의 법칙이 그러하다. 서로 다른 무학을 익힌 타 문파와 승부를 벌인다면 때때로 실력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서로 같은 무학을 익힌 사형제와 비무를 벌이면 실력 그대로의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만큼 잘 아니까.
큰 의미에서 장왕의 무학과 방진훈의 무학은 그리 결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일발역전의 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부우우웅!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장왕의 장력이 날아든다.
“히익!”
방진훈이 몸을 뒤틀며 날아드는 장력을 피해냈다. 하지만 몸을 피한 곳에 장왕이 연이어 발출한 장력이 마치 그를 미리 환영하기라도 하듯 미리 도착해 있었다.
콰아아앙!
날아든 장력이 방진훈의 어깨에 틀어박힌다.
“끄윽!”
방진훈의 두 눈에서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기를 두르고 몸을 비틀어 직격은 피했지만, 그저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 내장이 모조리 끊어지는 듯한 충격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 충격에 신음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얻어맞아 몸이 굳은 그 순간 백색의 장력이 시야를 새하얗게 뒤덮어온다.
마치 눈사태가 밀려오는 것과도 같은 광경.
이번에는 몸을 굴러 피할 틈조차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듯이 어마어마한 수의 장력들이 일거에 날아들었다.
“이익!”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방진훈의 발이 바닥을 박찬다. 뒤쪽으로 정신없이 물러나며 양팔을 폭풍처럼 휘저어 날아드는 장력을 후려쳐 밀어낸다.
콰앙! 콰아아앙! 콰아앙!
장력과 장력이 맞닿을 때마다 방진훈의 몸이 뒤쪽으로 훅훅 밀려나고,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용케도 쓰러지지 않는다.
아니, 쓰러지지 않는 게 아니라, 쓰러지는 순간 저 장력들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쓰러질 수 없는 것이다. 백척간두에 내몰린 방진훈이 이를 부러지도록 갈아대며 장력을 후려쳐 냈다.
“괘, 괜찮은 겁니까?”
이현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물론 이현수의 수준으로 저 말도 안 되는 수준에서 벌어지는 공방을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방진훈의 확연하게 밀리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그냥 확연하게 밀린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방진훈은 장왕에게 반격을 해보기는커녕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
방진훈이 아닌 다른 누군가라면 뭔가 이현수가 생각하지도 못한 한 수로 반격해 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진훈에게는 도무지 그런 기대감이 들지 않는다.
“마,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거, 항복할 틈도 없을 것 같은데, 저러다가…….”
이현수가 다급하게 돌아봤지만, 이사들은 그런 이현수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저들끼리 느긋하게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슬슬 되어가는 것 같은데요?”
“세 대는 더 맞아야 돼.”
“크크크, 생각이 없어지기 시작한 모양인데.”
태연하기 짝이 없는 이사들의 모습을 보며 이현수가 눈을 크게 떴다.
“괘, 괜찮은 겁니까?”
이사들이 딱히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이현수는 결국 비빌 언덕을 찾았다.
“회, 회주님.”
“…….”
담배를 물고 있던 강진호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왜?”
“방 이사님…… 저거, 괜찮은 겁니까? 저러다 죽기라도 하면?”
“그런 자리잖아.”
“아, 아니, 저 양반이 그리 대단한 각오로 나섰을 리가 없잖습니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평소에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이럴 때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냥 지켜봐.”
“아, 아니, 저걸 어떻게…….”
“방 이사는 네 생각처럼 약하지 않아.”
“…….”
강진호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방 이사의 제일 큰 단점이 뭔지 알아?”
“꼰대요.”
“…….”
순간, 반박을 하지 못한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그것도 있지만…….”
강진호의 시선이 장왕의 장력을 막아내고 있는 방진훈에게로 향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
“……예? 저 양반이요? 생각이 너무 없어서 문제인 것 아닙니까?”
“둘 다 별로 틀린 말은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 이사는 잡생각이 너무 많아.”
“…….”
“그리고 자신감이 너무 없지. 자신을 못 믿어.”
“아니, 다 주변에 괴물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 자신감을 갖습니까?”
이현수가 저 입장이라도 자신감은커녕 자기혐오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방 이사는 이 중에서 제일 뛰어난 편이야. 환경이 받쳐 주지 않았을 뿐이지.”
“……설마요.”
“아니. 사실이지.”
위긴스가 강진호의 편을 들고 나섰다.
“나도 때때로 열등감을 느꼈을 정도니까. 총회에서 진짜 천재를 하나만 뽑으라면 나는 방 이사를 뽑겠네.”
“……농담이시죠? 저 양반이요?”
세상에서 방진훈과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나만 고르라면 천재를 고르겠다. 아무리 봐도 저 양반은 재능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학에서 말하는 천재라는 건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재와는 달라.”
“……그럼요?”
“번뜩이는 이해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하나하나 쌓아 올려갈 수 있는 굳건함, 그리고 물과 같은 적응력이지.”
강진호가 턱짓으로 방진훈을 가리킨다.
“저 봐.”
“……예?”
“이젠 막고 있잖아.”
“…….”
이현수가 의혹 어린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처음 맞붙을 때만 해도 금방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 같던 방진훈이지만, 지금은 뭔가 안정감 같은 게 보인다. 일방적으로 몰리는 건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제자리에서 굳건하게 날아드는 장력을 밀치고, 비껴내고, 또 피해내고 있었다.
“한국 무인계가 아니라 과거 중원에서 태어났으면 일가를 이루고, 하나의 문파를 만들어내고도 남았을 이다.”
“…….”
“이제 저들도 알게 되겠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쿠웅!
선명한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이현수의 두 눈이 정확하게 한 곳을 바라보았다.
발.
방진훈의 발.
밀려나고, 밀쳐지고, 또 튕겨나던 방진훈의 발이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앞으로 한 발 나아간다.
“저, 저거?”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장력 속에서 발을 내디딘다?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이해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그 순간, 방진훈이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발을 내디뎠다가 다시 두 걸음 밀려나고, 그럼 다시 세 걸음을 내딛고 다시 한 걸음 밀려나고.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방진훈은 느리긴 하지만 분명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잡념이 사라진 모양이군.”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방진훈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젠 반격…….”
퍼어어어어억!
“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방진훈이 장력에 처 맞아 튕겨 나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
이현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뚱하기 짝이 없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반격이요?”
“…….”
아, 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인간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