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39
#2038.
계승하다 (3)
“어으…….”
숨이 넘어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분명하다.
총회의 회원들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친 숨소리와 침묵이 공존하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상황.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누군가가 내지른, 터질 듯한 함성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아악!”
“이겼다! 이 씨바아아아아아! 이겼다고오오오오오오오!”
책상이 천장에 처박혀 폭죽처럼 터지고, 의자가 벽면으로 날아든다.
앞에 잡히는 놈을 잡아 던져 버리고, 바닥에 엎드린 이가 바닥을 마구 두드렸다.
쾅! 쾅! 쾅! 쾅!
바닥이 순식간에 부서져 거미줄처럼 줄이 간다.
평소 같으면 기겁을 하며 말리려 들 이들도 지금만큼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
커다란 강당이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으아아아아아! 이사니이이이임!”
“으하하하핫! 으핫! 저 양반이 해냈다고! 봤냐, 이 새끼들아아아아아!”
유리창이 깨지고 천장이 들썩이지만, 이들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에…… 세상에, 이사님이!”
“뭐가 세상에야, 이 새끼야! 당연한 거지!”
“조금 전까지 오줌 쌀 것 같은 얼굴 하고 있던 새끼가 말은 잘 하네!”
“사실 조금 지리긴 했어.”
“뭐? 진짜?”
발악을 하던 이들이 쩔뚝이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방진훈의 모습에 시선을 집중했다.
“사부님…….”
“팔이…….”
지켜보던 이들이 입술을 꽉 깨문다.
단 한 번의 승리다.
무인의 인생에서 수도 없이 겪는 승리 중 한 번이라 치부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한 번의 승리를 손에 넣기 위해서 방진훈이 얼마나 큰 각오를 해야 했고, 얼마나 큰 고난을 뛰어넘었는지를 이해하는 이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이씨, 눈물 나게.”
“통한다고. 봐! 내 말 맞잖아! 방 이사님이 창안한 무학은 최고라니까!”
“중국이고, 마교고,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다고! 우리도 뒤지지 않는다, 이 말이야!”
가슴이 찡한 동시에 벅차오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의 가슴에 패배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터.
강진호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총회의 중심이 되는 이사들의 제자도 되지 못한 이들. 방진훈이 창안한 무학은 그런 이들에게 주어지는, 수준이 떨어지는 무학이라 생각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 강한 무학을 배울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방진훈이 그 두 주먹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들이 익힌 무학이 결코 수준 낮은 무학이 아니라는 것을, 노력하고 정진하여 익혀내면 세상 누구와도 맞설 수 있는 무학이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무인계가 결코 나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 위대한 장소.
세상 모든 무인들 중 가장 강한 이들이 모여 무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저 위대한 곳에 한국의 무인을 대표하는 방진훈이 당당히 선 것은 물론이고, 승리마저 따낸 것이다.
그런데 어찌 벅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태훈이 입을 가리고 낮게 웃었다.
‘못 말리겠다니까, 저 양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은 물론이고, 총회의 그 누구도 방진훈이 실력이 아닌 연공 서열로 이사가 되었다는 소리를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방진훈은 충분히 자신을 증명했으니까.
그리고…….
방진훈의 제자인 그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너무도 극명하다.
“그저 보고 감동하며 끝나지 마, 이 새끼들아.”
앞쪽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서 천태훈을 바라본다.
“설마 이사님이 이기고 자랑하려고 저리 악을 쓰셨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너희 보라고 싸우신 거야, 너희.”
“압니다.”
“저희도 사람인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너희 차례야. 그리고 내 차례지.”
천태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우리가 제대로 못하면 결국 우리가 병신이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아. 너희도 그런 취급은 받고 싶지 않잖아. 익힌 무공의 수준이 달라서 못 이긴다는 변명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아.”
총회 회원들의 눈이 단호해진다.
“마교에 악감정은 없어. 다른 나라에서 오신 이사님들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그 이사님들에게 배우겠다고 간 놈들도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태훈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솔직히 지고 싶지는 않다.”
“…….”
“수로 몰아붙여 이기는 건 의미가 없어. 너희도 알지? 이사님들이 영원히 이사님들이 아니고, 회주님이 영원히 저 자리에 있는 건 아니야. 언젠가는 그 자리를 두고 아랫사람들이 경쟁하는 날이 온다. 나는 절대로 저 새끼들한테 그 자리를 내줄 생각은 없어. 여긴 한국이고, 총회는 한국 무인 총회다.”
회원들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니…….”
천태훈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우리 차례다.”
딱히 대단히 인상적인 말은 아니었다.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과 누군가의 입에서 듣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마음속에 담아둔다는 것은 아직 거리낌이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말이 천태훈의 입에서 흘러나와 버린 순간, 더는 물러설 수 없게 되어버렸다.
조용히 전의를 다지는 이들을 보며 천태훈이 미소를 지었다.
‘제자 된 도리는 했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스승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은 스승의 뜻을 널리 퍼뜨리고 이어가는 것일 테니까.
* * *
“……미친 거 아니냐고.”
주영기가 떨리는 눈으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부터 화면에 나오기 시작한 저 전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람의 심장을 타들어가게 만든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광경들.
현실임을 부정하고 싶은 광경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하지만 CG라기에는 너무도 생생하고, 또 너무도 리얼하다.
그렇기에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 미친 새끼, 저거…….”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뒤쪽 의자에 앉은 친구의 모습이 때때로 화면에 잡힐 때마다 말이다.
“저거, 또라이 새끼 아니야! 저 씨!”
주영기가 이를 빠득 갈았다.
화가 난다.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강진호가 평범하지 않은 이라는 걸 그가 왜 모르겠는가. 처음 그가 강진호에게 구원받았을 때부터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걸 모를 수는 없었다.
그걸 모른다면 감히 친구를 자신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속에 불이라도 난 듯 화가 나는 것은 그가 생각한 강진호의 삶보다 지금 눈으로 보는 강진호의 삶이 너무도 처절했기 때문이리라.
사람의 목이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가는 세계.
패자는 물론이고, 승자마저도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세계.
저 뚱한 듯 무심한 놈이 저런 세상을 살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순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강진호의 무심한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이 망할 새끼!”
주영기가 고함을 질러 댄다.
“말을 했어야지, 이 새끼야! 친구면 말을 했어야지! 또라이 같은 새끼가 말 한마디 안 하고 저런 데를 처 가 있네! 그러다 뒈지면 누가 박수라도 쳐 주냐, 이 씨발 새끼야!”
주영기가 손을 뻗어 TV를 내려쳤다.
쾅!
그러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박유민이 주영기를 잡아 말렸다.
“진정 좀 해, 영기야.”
“넌 알았냐?”
“…….”
“너는 저 새끼가 저런 짓 하고 다니는 거 알고 있었냐고!”
“……네가 모르는 걸 나라고 알았겠어? 애초에 그런 거 말해주는 애 아니잖아.”
“그런데 화도 안 나냐?”
“……화나. 나도 화나지.”
주영기가 박유민이 바라보았다. 그가 살짝 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화를 내고 있는 제 모습도 우습게 느껴진다. 화가 나면 그보다 박유민이 열 배는 더 날 테니까.
“그런데 내가 화낼 자격이 있을 리 없잖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물어볼 수 있었어.”
“…….”
“너도 알았잖아, 진호가 뭔가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묻지 않은 거잖아.”
“아니, 그건…….”
“진호라면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괜히 쓸데없는 참견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러니까…….”
주영기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박유민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영기야, 기억나?”
“……뭘?”
“쟤는 한 번씩 뜬금없이 우리를 찾아와서 멍하게 우리 얼굴을 보다가 돌아갔어. 한 번씩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고.”
“…….”
“진호가 원래 그런 애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젠 나도 알겠다. 진호도 힘들었던 거야.”
“아니…….”
주영기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아니까.
“썩을,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돈 펑펑 벌어 제끼는 회사 사장님이 연예인 여자 친구까지 두고 사는데, 힘들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냐고!”
저놈이 저런 세상을 살고 있는 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주둥아리에 총구를 쑤셔 박는 한이 있더라도 말리려 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그리 굴 줄 알기에 말할 수 없던 건지도 모른다.
“그냥. 그래서…… 그래서 좀 슬프다, 영기야. 내가 진호한테 모르는 게 있었다는 게 슬픈 게 아니라, 알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던 걸 몰랐다는 게 화가 난다. 내가 너무 나쁜 놈 같아서.”
“지랄한다. 그게 왜 네 잘못이냐?”
“한 번씩 진호가 연락 끊고 사라졌다 돌아왔을 때마다 조금 느낌이 이상하긴 했잖아.”
“…….”
“그때마다 진호는 저런 곳에 있던 거겠지.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앞에 나타나서 웃었을 거 아냐.”
“씨발…….”
“원망스럽기도 한데…… 나는 진호가 너무 안쓰럽다, 영기야.”
“작작해, 인마!”
씩씩대는 주영기를 바라보던 박유민이 낮게 한숨을 쉬며 강진호가 나온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강진호를 지켜보는 것밖에는 없다.
‘진호야.’
저곳은 너무도 위험하다.
저곳에 강진호가 없었다면, 지금쯤 박유민과 주영기도 신기한 마음으로 저 화면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곳에 선 강진호를 봐버린 순간부터는 더는 눈을 뜨고 지켜볼 수가 없다.
저 날카로운 칼날이, 저 커다란 폭발이 강진호를 덮칠까 봐.
그의 친구가 피를 흘리고 쓰러질까 봐.
‘아무것도 안 바란다, 진호야.’
저들이 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박유민은 알 수 없다.
연신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무인계로 인한 세상의 변화도 관심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
‘제발 무사히 돌아와라, 제발. 화는 그때 낼 테니까.’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이 양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원장 수녀님.’
간절한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뿐이니까.
‘제발 진호를 지켜주세요.’
꽉 맞잡은 손이 애처롭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