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42
#2041.
격렬하다 (1)
카각! 카가가가각!
홍왕의 권강이 벽의 틈을 뚫고 들어오는 신창의 창을 조여들었다.
카가가가각!
그 힘은 바위를 으스러뜨리고, 압력만으로 물을 기화시키기에 충분할 만한 위력.
하지만 신창의 창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지면서도 홍왕을 향해 조금씩 전진했다.
“타아아아앗!”
그 순간, 신창의 입에서 거대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파아아아아앗!
그리고 이내 충천(衝天)하는 섬광과 함께 창끝이 빛으로 화해 홍왕의 몸을 꿰뚫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일순 폭음이 터지며 그들의 주변을 휩쓸고 있던 기의 폭풍이 단숨에 사방으로 몰아친다.
“아아아아아악!”
방진훈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절대고수의 승부는 반드시 주변에 가공할 압력을 만들어낸다. 무학이 높지 않은 이는 그 여파에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방진훈의 무학은 당연히 낮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깊은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이만한 여파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던 것이다.
“아오, 씨!”
그 순간, 위긴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방진훈의 앞에 실드를 쳐주었다.
날아드는 기운이 실드에 막혀 튕겨 나가자, 방진훈의 입에서 앓는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쯧, 손이 많이 가는군.”
“아니, 그게 할 소립니까? 진즉에 치료만 해줬어도 제가 지금 이 꼴은 아닐 것 아닙니까?”
“그러니 손이 많이 간다는 걸세.”
“에이, 진짜!”
짧게 불만을 내뱉은 방진훈의 시선이 전방으로 고정되었다. 지금은 위긴스와 투닥거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지?’
홍왕은 당연히 홍왕이다.
총회의 이사들이 절대의 영역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감히 자신이 홍왕과 같은 영역에 올랐다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저 신창의 창은 그런 홍왕의 방어를 뚫고 들어갔다.
‘강하다.’
방진훈이 알기로 홍왕과 신창은 이미 한 번 맞붙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승부에서 홍왕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는데, 신창이 보여준 신위는 그런 안도감을 단번에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됐지?’
방진훈이 안력을 돋웠다.
몰아치는 기의 폭풍이 사라지자, 서로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딱히 변한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 하나뿐. 하지만 그 작은 변화 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붉은 피.
뻥 뚫린 홍왕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저…….”
방진훈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정중앙에서 살짝 왼쪽으로 치우친 위치. 그러니까…… 심장이 있는 위치다.
“서, 설…….”
“얕아.”
바토르가 살짝 높아진 목소리로 씹어뱉듯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역시 홍왕의 가슴이 꿰뚫린 모습을 보는 게 꽤나 충격인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대체 십이비도 놈들은…….’
이제 슬슬 상대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확연한 격차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그들이 승리를 거둘 수 있던 이유는 그저 운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사들이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때, 홍왕이 천천히 손을 들려 제 가슴에 난 구멍을 꾸욱 눌렀다.
“흐음…….”
한 치만 더 깊었다면 치명적인 상처가 될 뻔했다. 마지막 순간에 기운을 집중하여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시체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시하는 마음?
그럴 리가.
확신은 있었다.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하지만 그렇다 해서 상대를 쉽게 본 것은 아니다. 이미 과거에 그가 오른 경지를 뛰어넘은 이를 경시하는 것은 홍왕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데도 이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내게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지. 무척이나.”
홍왕의 침중한 눈동자가 신창의 모습을 담았다.
그의 몸에 강렬한 상처를 남겼지만, 신창에게는 조금도 들뜬 기색이 없다. 확연히 가라앉은 기운을 갈무리하며 냉정한 눈으로 그를 겨누고 있을 뿐이다.
저건 무인 본연의 자세.
오만함으로 가득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한 번의 패배가 신창을 바닥부터 재정립하게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지난 승부는 잊어야 하겠군.”
신창이 창을 꽉 움켜쥐었다.
홍왕의 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느끼는 압박감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꿰뚫어야 했다.’
완벽한 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미세하기 짝이 없는 틈일지 모르겠지만, 홍왕과 그처럼 절대지경에 올라 있는 이들에게는 그 미세한 틈이 승부를 가르는 거대한 차이가 되는 법 아니던가.
완벽한 틈을 만들어내고 혼신의 힘을 다해 찔러냈다. 하지만 그의 창은 홍왕에게 닿았을지언정 그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여전히 저자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사이 홍왕이 더 강해졌다는 의미일 터.
어느 쪽이든 황당한 일이다. 아니, 당혹스러운 일이라는 게 조금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미 한 번 목숨을 걸고 겨루었음에도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고, 그 짧은 시간 만에 상대가 더 강해졌다는 것은 더욱 어이없는 일이다.
“하나 묻지.”
“으음?”
“……너는 이미 마존에게 한 번 패했지?”
홍왕의 눈썹이 꿈틀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저 순수한 호기심이다.”
신창의 시선이 홍왕의 등 뒤에 있는 강진호에게로 향한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는 강진호를 두 눈에 담는순간, 전신의 근육 한 올, 한 올이 모조리 긴장하며 팽팽하게 당겨지는 기분이다.
어마어마한 압박감.
신창쯤 되는 이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압박감이다. 딱히 기세를 느끼지 않아도, 그의 무위를 몸으로 실감하지 않아도 강진호라는 사람 자체가 내뿜는 존재감만으로도 아연하게 된다.
마치…….
그래, 마치 흑왕처럼.
“네가 마존에게 느낀 절망감이, 내가 흑왕께 느낀 경외와 그리 다르지 않을 터.”
“…….”
“그런데도 너는 마존을 이길 셈인가?”
그 말을 들은 홍왕이 낮게 웃었다.
“왜 웃지?”
“황당한 질문이라 대체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군.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뭘 말인가?”
“너는 마존을 이길 수 없다.”
“…….”
신창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평생을 노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차이는 오히려 벌어지기만 하겠지.”
신창의 이 말은 단순히 도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창은 알고 있다. 그 역시 똑같이 느꼈으니까.
그는 홍왕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에게 참담한 패배를 안겨준 이를 무시할 수 있을 리 없다. 어쩌면 그는 홍왕을 그 누구보다 높게 평가하는 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재라 떠받들어지고, 위대하다 칭송받는 것이 일상이었겠지.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거다. 저들 앞에 우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
누군가에게 천재로 불리는 이라 해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없는 둔재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 세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차이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다. 너도 분명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불가능한 일에 계속 도전하겠다는 건가?”
홍왕이 아무런 말 없이 신창을 바라보았다.
지금 신창이 한 이 말은 홍왕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찔러 대는 비수와도 같다.
어쩌면 꽤 아픈. 아니, 치명적으로 아픈 소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왕의 표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가 담담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뭐가 이상하기라도 한가?”
“……이상하지 않다고?”
“그렇지.”
신창이 눈을 찌푸렸다.
“불가능한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자여, 가능한 일에 누가 도전을 하겠나.”
“…….”
신청이 멍한 얼굴로 홍왕을 바라보았다.
“명백히 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것은 도전이라 불릴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
“그건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대단한 일이랍시고 으스댈 일도 아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있다. 누군가는 불치병을 정복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론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홍왕의 두 눈이 정광을 머금는다.
“그런 것에 비한다면,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를 따라잡으려 하는 건 오히려 현실성이 있는 일이지.”
“너는 알고 있지 않은가.”
“…….”
신창이 입술을 깨물고 묻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언젠가는 정당한 대가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너는 알고 있을 텐데? 너의 노력을 보상받지 못한다. 네 평생을 바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멍청한 소리로군.”
홍왕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네가 보는 나는 약해졌는가?”
“…….”
신창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보상? 정당한 대가? 그런 건 바라본 적도 없다. 애초에 무학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올 만큼 속편한 것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오를 수 있는 이들은 모자란 재능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의심하지 않고, 스스로 나아가지 못함을 한탄하지 않는 이들뿐!”
홍왕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신창을 때린다.
“나는 나의 길을 의심하지 않는다. 결코 닿지 못한다고 해도 죽는 그날까지 단 한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르고 또 오르고 악착같이 기어가다 보면…….”
홍왕이 빙긋 미소를 짓는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가까워질 것이라 그저 믿을 뿐이다.”
“…….”
신창이 말없이 홍왕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시군.’
홍왕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홍왕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흑왕의 존재를 알고는 그를 뛰어넘는 것을 포기했다. 남은 생을 모조리 다 바치고, 또 한 번의 생이 주어진다고 해도 흑왕만큼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홍왕은 그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흑왕을 알고 마왕을 알았음에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 부시다.
어쩌면 지금 그를 눈부시게 만드는 저 찬란한 빛은, 한때 그에게서도 흘러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지금 그에게는 더는 저런 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질투가 나는군.”
신창이 창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아직 내가 진 건 아니지. 네 말대로 훗날이 어떻게 되든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지금의 실력이니까.”
“옳은 소리다.”
우드득.
홍왕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치열하게 맞부딪혔다.
그리고…….
“타아아아압!”
창을 앞으로 겨눈 신창이 바닥을 박차며 홍왕에게 달려들었다. 홍왕 역시 망설임 없이 신창을 향해 달려든다.
물러섬은 없다. 누군가가 물러서는 순간이 이 승부의 결착이다.
그 사실을 서로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있는 모든 힘을 다 끌어내 자신의 길을 증명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