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43
#2042.
격렬하다 (2)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창과 주먹이 짧은 순간에도 수도 없이 맞닿았다 다시 떨어진다.
쾅! 콰앙! 콰앙!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광경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오오오오오!”
신창이 필사의 공격을 감행하면 홍왕이 굳건한 방어로 그의 공격을 무위로 돌려낸다. 틈을 잡은 홍왕이 가공할 내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짓누르려 하면 신창은 더없이 단단하고 유연하게 그의 공격을 흘려냈다.
무학에 딱히 조예가 없는 이라고 해도, 이 승부를 그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이라고 해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등하다.’
‘누가 이기는 거야?’
승부를 지켜보는 이사들의 두 눈에도 다급함과 혼란스러움이 어려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까지의 승부는 하나같이 일방적인 승부였다. 비록 그 승패는 팽팽했지만, 그 내용마저 팽팽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격돌하고 있는 둘은 정말 우위를 가를 수 없을 정도로 호각의 승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 홍왕이…….”
“으음.”
총회는 총회 나름대로 이 결과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먼저 벌어진 승부에서는 운이 좋아 한 번의 승리라도 거둘 수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적어도 이 승부에서만큼은 홍왕이 확연한 우위를 점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만용도 아니고, 오만도 아니다.
이유는 두 가지. 한 번은 홍왕이 저 신창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는 점.
그리고 좀 더 결정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홍왕이 패해서는 안 돼.’
지금 그들이 가진 카드 중에서 강진호를 제외한다면 홍왕이 가장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바토르, 장민, 위긴스.
셋 모두 확연히 초인의 위치에 오른 강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경지에 오른 뒤 자신과 대등한 이들과 목숨 건 승부를 펼쳐 본 경험이 없다.
아니, 경험을 떠나서라도 이제 갓 벽을 넘었다 해서 저 홍왕과 대등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경험과 실력을 통틀어 지금의 홍왕은 그들 진영의 확연한 이인자였다. 그런 홍왕이 패하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희박하던 승산이 바닥에 처박혀 버린다.
“……저 괴물 같은 놈들.”
이 상황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바토르였다.
그에게 있어서 한때 홍왕은 하늘이고, 어떻게든 무너뜨리고 싶은 목표였다. 그런 그이니만큼 홍왕이 얼마나 강한지 이 중 가장 잘 알고 있다.
지금의 홍왕?
그가 평생을 둔 목표로 여기던 과거의 홍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그런 홍왕이 흑왕도 아닌 십이비도 중 하나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토르의 거대한 몸이 부르르 떨린다.
전율.
그래, 이건 전율이라 해야 한다.
비록 저들과 뜻을 같이하지는 못하지만, 이 전쟁의 결과가 어찌 되든, 저 십이비도가 고금에 유례없는 정예집단이라는 사실은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홍왕과 비견되는 자가 열둘이나.’
따지고 보면 이 승부가 가능한 이유도 강진호가 미리 십이비도의 수를 줄여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강진호가 저들을 미리 처리하지 못했더라면 승부는 성립조차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대하지 않던 승리로 흥분한 가슴에 얼음물을 끼얹는 느낌이었다.
콰아아앙!
그 순간, 홍왕이 제 목을 찔러 들어오는 신창의 섬전과도 같은 창을 막아내며 뒤로 또 뒤로 물러난다.
그 광경을 보며 전율하는 것은 비단 총회 쪽만은 아니었다.
“……머저리 같은 놈이.”
백연홍이 입술을 뒤튼다.
지금 그의 눈으로도 홍왕과 신창은 우열을 가르기가 힘들어 보인다. 서로 더 낫고 모자랄 게 없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더 과격한 욕을 해댔을 백연홍이지만, 지금 그의 입에서는 쉽사리 거친 말이 나오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창이 약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찔러 들어가는 창끝에 더없이 날이 서 있다.
얼마전까지의 신창이 아니다. 자신을 다시 한번 벼려낸 신창은 백연홍조차 순간순간 감탄할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대단한 건 홍왕 쪽이라는 건가?’
누군가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귀환자도 아닌 이가 어떻게 저런…….”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십이비도라 불리고 한 시대를 제패한 이들이라지만, 그들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도 절대자는 당연하게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도 당연히 그들과 같은 수준에 오를 이들이 적어도 하나는 있을 터. 그게 홍왕이라면 이상할 것도 없고, 놀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연홍을 비롯한 십이비도의 얼굴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 시대는 결코 그들이 살던 시대에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무인들에게 있어서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그들과 대등한 무인이 탄생한다는 건 무척 많은 것을 의미했다.
“저 병신 놈이…….”
백연홍이 이를 뿌득 갈아붙였다.
“이겨라! 이 멍청한 놈아!”
백연홍의 입에서 고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신창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신창이 맞서고 있는 상대가 홍왕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백연홍은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신창이 아닌 그의 상대를 응원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내심은 분명히 신창의 패배를 바랐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이 승부만은 그럴 수 없다.
홍왕은 귀환자가 아니다. 그리고 귀환자에게 영향을 받은 이도 아니다. 만약 귀환자들이 이 세상을 뒤엎지 않았더라면 분명 홍왕과 창왕 중 한 사람이 시대의 절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에게 패배한다는 건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과거의 그들과 같은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의미. 어쩌면 그 사실은 지금 그들이 하려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흑왕의 뜻에 크게 동감하지 못하는 백연홍조차 그 사실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십이비도들이 열기를 뿜어낸다. 그리고 그 뒤에 앉은 흑왕마저 굳은 얼굴로 이 승부를 지켜본다.
콰아아앙!
모든 힘을 실어 날린 회심의 일격이 교차된 주먹에 막혀 튕겨 나온다.
신창이 이를 악물었다.
창을 잡은 손에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력은 물론이고, 체력까지 모조리 소진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신창은 앞으로 한 발을 더 나서며 창을 찔러냈다.
창을 잡은 양손의 피부는 이미 시커멓게 죽어 있고, 손톱은 진작에 뽑혀 나갔다.
대의?
아니면 미래?
그런 게 아니다.
삐걱대는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육체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수도 없이 반복한 동작을 제 스스로 행하고, 의지가 일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쿨럭.”
입과 코에서 피가 연신 터져 나왔다.
홍왕이 일권 일권을 내뻗을 때마다 가공할 압력이 그의 몸을 짓눌러 온다.
으드득.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부여잡은 손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창을 부여잡은 신창이 전신을 으스러뜨릴 것 같은 압력에 맞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위이이잉!
귀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터진다 싶더니, 이내 소리가 사라진다.
고막이 터져 버린 모양이다.
눈가도 흐릿하기 짝이 없다. 과도하게 피가 몰린 눈이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몰려 있다.
쿵!
그럼에도 신창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다가가지 않으면 이길 수 없으니까.
이 창을 찔러 넣지 않으면 패배할 뿐이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가 패배한다고 해서 흑왕계가 패하는 건 아니다.
그의 손끝에 그들이 준비해 온 계획의 성패가 걸려 있다고 믿는 것은 주제넘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쯤 해도 된다. 그가 패배를 선언한다고 해도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저 백연홍 정도야 싫은 소리를 지껄여 대겠지만, 그렇다 해서 그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득.
발가락의 뼈가 으스러진다. 가공할 압력이 원활히 기운을 돌리지 못한 그의 육체를 침범하고 부수고 있었다.
“오! 오오오오오오오!”
하나 남은 귀로 홍왕의 거대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그의 세상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홍왕이 내뿜은 황금빛 권력이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천신 같군.’
확연히 알 수 있다.
과거, 그가 흑왕에게 느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가 홍왕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아마 그는 이제 다시는 홍왕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던 약점을 깨닫고 보완해 냈다. 과거의 자신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무학은 비약적인 상승을 이루었다. 하지만 홍왕은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그 짧은 시간 만에 더 강해졌다.
이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니. 잘 모르겠다.
이게 홍왕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한들, 그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세상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라 한들 그가 목숨을 내던져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명성도 아니고,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가 정말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겠군.’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다.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도, 자신이 왜 이 고통을 참아내는지도, 그리고 자신이 왜 싸우고 있는지도.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몸이 움직일 뿐.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는 낙엽처럼 그는 밀려오는 압력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화악!
반쪽 세상이 검게 물든다.
과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눈이 터져 나간 모양이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세상이 점점 붉게 변하며 조금씩 더 흐려져 간다.
“모……르겠……어…….”
눈이 부시다.
무학에 임하는 그 마음가짐은 존경스러울 정도고,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 의지에는 찬탄할 수밖에 없다.
홍왕에 대한 원한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되레 지금은 그를 더없이 경외하고 있다. 나약했기에 강해질 수 있었던 그와는 달리 나약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던 남자에게 말이다.
그러니…….
그러니 충분하지 않은가.
그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그의 지독하던 삶을 완성시켜 줄 상대로 이보다 더 훌륭한 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제…….
우드드득!
창을 잡고 있던 한쪽 손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린다. 손등의 살이 모조리 뜯겨 나가며 새하얀 뼈가 드러났다.
쿵!
내디딘 발도 더는 감각이 없다. 어떤 몰골이 되어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그의 눈은 더는 보이지 않으니까.
육체의 감각이 모두 사라진다. 이제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끝이 도달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래. 이건 이미 두 번이나 겪은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 순간.
검게 죽어버린 신창의 얼굴이 비틀린 미소를 만들어낸다.
‘아아…… 그래.’
나는 그저…….
지고 싶지 않은 것뿐이구나.
그래.
그저 그것뿐이야.
신창의 창이 그의 혼을 담고 휘둘러진다.
딱히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은, 투박한 휘두름.
하지만 그 투박하기 짝이 없는 창의 궤적은 공간을 가르고, 날아드는 장력을 가르고…….
더없는 눈부심으로 그의 눈을 멀게 만든 초인의 육체마저 갈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