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50
#2049.
맹렬하다 (4)
카가각!
날카로운 도가 피부를 가른다. 마치 강철처럼 굳건한 피부를 종잇장처럼 가르고 들어간 날이 이내 그 피부에 가려져 있던 붉은 근육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드득!
한 올, 한 올이 제련된 강철보다 더 질기고 단단한 근육을 도에서 뿜어져 나온 시린 기운이 과격하게 갈라낸다.
그건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하지만 그 찰나의 시간이 당사자들에게는 영겁과도 같았다.
날이 제 목을 점점 더 파고드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는 이나, 성공하지 못한다면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단 한 번의 도전에 뛰어든 이나.
모든 것을 이 한순간에 건 것만은 마찬가지!
‘더!’
도귀가 남아 있는 내력의 한 점까지 모조리 끌어내 도에 쑤셔 박는다. 단전에 있는 내력은 물론, 최후의 최후까지 지켜야 할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이 한 번의 공격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그 결과가 죽음이라 해도 상관치 않겠다는 듯!
그리고 그건 바토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드드득!
제 목을 뒤튼 바토르가 남은 내력을 모조리 제 목에 밀어 넣는다. 막아내기만 하면 그의 승리다. 서로 내력을 모조리 소진한 뒤라면 도귀는 절대 그를 당해낼 수 없으니까.
으드드득!
이가 부러진다.
과하게 높아진 압력을 이기지 못한 두 눈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나간다. 두 눈으로 흘러나온 피가 그들의 눈에 붉은 피눈물을 만들어냈다. 마치 서로의 죽음을 통렬히 슬퍼하는 것처럼.
생과 사.
그 극단을 가르는 한순간의 승부!
푸우우웃!
갈라진 바토르의 목에서 붉은 피가 솟구친다. 베인 곳보다 베이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워 보일 만큼 넝마 같은 몸에 아직 저만큼이나 피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맹렬하게!
갈라낸다.
도귀의 모든 것, 그의 모든 삶과 무학, 그리고 심혼마저 머금은 칼은 바토르의 살을 가르고 마침내 그 뼈에 틀어박혔다.
카가가각!
뼈와 쇠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몸 안을 울려 고막을 파고든다.
죽음.
지금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바토르의 목과 맞닿아 있었다.
카각! 카가가각!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순간, 육체가 버티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신이 버티지 못해 누군가 먼저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영겁과도 같은 찰나.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찬란히 빛나던 순간이 결국 필연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정적.
세상이 멈춘다.
누구 하나 숨을 내뱉지 못하고, 누구 하나 숨을 들이쉬지 못했다. 모든 것이 멈춘 세상이 완전한 정적에 빠져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길고 또 길게 느껴지던, 숨 막히는 정적을 부순 것은 작은 물소리였다.
또옥.
흘러내린다.
바토르의 목에 박혀든 도를 타고 흐른 피가, 도를 잡고 있는 손마저 붉게 물들이며 방울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또옥.
한 방울, 또 한 방울.
“…….”
도를 잡고 있는 도귀의 입이 파르르 경련한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입가의 근육을 몇 번이고 실룩인 도귀가 억지로 입을 떼어냈다.
주르륵.
그저 입을 벌린 것뿐이건만, 수분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입술을 쩌억 갈라지며 젤리처럼 진득해진 피가 뭉글뭉글 배어 나온다.
“하…….”
쇠를 긁어 대는 듯한 목소리.
그 짧은 시간 동안 십 년은 늙어버린 듯한 얼굴을 한 도귀가 힘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하려 애쓴다.
“……하……핫.”
목소리를 내보려 조금 더 애쓰던 도귀가 이내 더는 어렵다는 듯이 미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말을 하는 대신 움직이지 않는 입가를 뒤틀어 어떻게든 미소를 지어낸다.
‘종이 한 장 차이라…… .’
아니. 그것마저도 과하게 두껍다.
단 한 방울의 내력만 더 있었다면, 그의 근육에 남아 있는 힘이 종잇장을 들어 올릴 정도만 남아 있었더라면, 그래서 저 바토르의 목을 마이크로미터만이라도 더 밀고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는 바토르의 목을 잘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가정일 뿐.
그의 도는 결국 바토르의 육체를 가르지 못했다. 이제 그에게는 목뼈에 틀어박힌 도를 뽑아낼 힘마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전신이 모래로 화해 버린 것 같다. 수분 하나 남지 않은 몸이 버석이며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이만큼이나 모든 것을 다했건만, 무슨 수로 후회를 한단 말인가. 그저 모든 것을 걸어 도전했고, 결국은 이루지 못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그저 그게 전부다.
이제는 세상의 색마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귀의 눈에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바토르의 손이 보인다.
떨린다.
수많은 것을 부수어 온 강인함의 상징과도 같은 바토르의 손이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겹다는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건 더는 생각이라는 것을 이어가기 힘들어진 도귀에게도 무척이나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힘겹게, 너무도 힘겹게 올려진 바토르의 손이 그의 도에 닿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가 촉감으로 물건을 더듬듯 느릿하게.
주르륵.
도날에 닿은 바토르의 손이 쩍 갈라지며 핏물을 흘려냈다.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다.
생채기 하나를 내기 위해 남은 모든 기력을 짜내야만 했던 저 강철 같은 육체는 이제는 평범한 칼로도 벨 수 있을 만큼 나약해져 있다.
그 역시 자신처럼 모든 것을 쏟아냈다는 뜻이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제 목에 틀어박힌 도를 잡아당긴다.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몇 번이고 힘을 준 끝에야 바토르의 목에 틀어박힌 도가 뽑혀 나왔다.
“쿨럭!”
바토르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진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그리고 핏기 하나 보이지 않는 얼굴.
어쩌면 이 광경은 다시는 볼 수 없을 모습일지도 몰랐다.
우득.
바토르의 손이 그의 도를 움켜잡는다. 분명 그도 한계에 몰렸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내력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아도 그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도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이라는 것이다.
그의 도가 저 목을 가르지 못한 순간, 승부는 났다. 남은 것은 그저 그 결과를 확인하는 것일 뿐.
우드드득.
한 손으로 도를 움켜잡은 바토르가 다른 손을 천천히 말아 쥔다. 그리고 도귀는 그 모든 광경을 확연하게 자신의 두 눈에 담았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새삼 궁금하다.
의연한 얼굴일까, 아니면 공포에 질려 있을까?
그게 아니면 무표정으로 끓어오르는 내심을 가장하고 있을까?
표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의 내부를 채운 감정은 오직 아쉬움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냈지만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하지만 미련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뿌드드득.
완전히 쥐어진 바토르의 주먹이 살짝 당겨지더니, 그의 얼굴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도귀는 눈을 감지 않았다.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선택을 할 생각은 없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항할 것이고, 그의 최후를 그의 두 눈에 똑똑히 담을 것이다!
부릅뜬 두 눈을 향해 커다란 주먹이 날아든다. 그 주먹에 세상이 모두 가려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
짙은 어둠.
“…….”
순간, 자신이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지 못한 도귀의 귀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쯧.”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춰 선 주먹이 천천히 거두어진다.
“…….”
도귀의 두 눈이 의문을 머금었다.
‘왜?’
이건 멍청한 짓거리다.
그와 바토르의 승부는 완벽했다. 누구 하나 변명할 수 없이 모든 것을 짜낸 승부. 그 승부의 끝을 왜 완전히 마무리하지 않는단 말인가.
동정? 아니면 싸운 이에 대한 경의?
개 같은 소리.
그 어떤 감정도 이 승부의 결착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건 그에 대한 모독이다.
“…….”
하지만 완전히 맛이 가버린 목은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기껏해야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만 만들어낼 뿐이었다.
그 소리나마 닿았음일까?
몸을 돌리려던 바토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도귀를 바라본다. 도귀의 얼굴에 떠오른 처절한 표정을 본 바토르가 이를 드러냈다.
“착각……하지 마라, 멍청아. 이건 동정도 아니고, 자비도 아니야.”
“…….”
“재밌었지?”
“…….”
도귀가 멍한 얼굴로 바토르를 바라본다.
재밌다?
“큭큭큭.”
낮게 웃은 바토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보다 강한 이와도 싸워봤다. 하지만…… 너만큼 상대하는 게 즐거운 이는 지금껏 없었어.”
“…….”
“나는 세상의 미래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만족스럽게 싸울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
바토르가 손을 들어 제 목을 꾹 눌렀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는 듯이.
“아마 다음에는 더 즐겁겠지. 그렇지?”
도귀의 두 눈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 눈이 의미하는 말이 뭔지 바토르는 이해한 듯했다.
“얼마든지 죽이러 와라. 언제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
도귀의 몸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도귀를 일별한 바토르가 제 목에 난 상처를 힘주어 꾹 눌렀다.
승부를 가른 것은 그저 한 발이었다. 오기에 차 내민 한 발.
그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면 분명 목이 잘렸을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도의 회전력이 그의 목에 완전히 실리지 못한 것뿐이니까.
겨우 한 뼘으로 갈린 승부.
하지만 바토르는 이 승부의 결과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오기에 차 뻗은 한 발 때문에 얻어걸린 승리 따위를 누가 기뻐하겠는가.
“다음에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쓰러진 도귀를 바라보던 바토르가 몸을 홱 돌렸다.
하지만 그의 다리에는 이미 그의 육중한 몸을 지탱할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무릎이 꺾이며 그의 몸이 바닥으로 쏠린다.
덥석.
그순간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부여잡아 당긴다. 그러고는 바토르의 두껍고 긴 팔을 제 어깨에 걸쳐 메고 그를 부축했다.
“……주인.”
강진호가 쓰러지는 바토르를 메고는 옅게 웃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제길.”
바토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꼴사나운 몰골이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어때?”
“음?”
뜬금없는 말에 강진호가 의문 어린 눈으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나는…… 증명했는가?”
강진호가 작은 목소리로 웃어 댄다.
“그래. 충분히.”
“그거…… 다행이로군.”
모르겠다.
그의 고민도, 그가 가야 할 길도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이 승부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면 무언가 잡힐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쉽사리 편안함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지.’
이건 그의 마지막이 아니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얻게 될 것이다.
이 걸음을 내딛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그러니까…….
바토르의 고개가 축 늘어진다.
의식을 잃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강진호가 손을 뻗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초원의 전사는 끊임없이 별 가득한 하늘 아래를 유랑하는 이들.
그 끊임없는 여정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그 손안에 바라던 것이 주어지리라.
그러니…….
지금은 잠시 쉬어도 괜찮다.
“수고했다.”
의식을 잃은 바토르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한없이 부드럽고 편안해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