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7
#206.
창업하다 (1)
“홍왕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영남 무인 연합회.
줄여서 영남회라고 불리는 한국 최대의 무인 단체.
그곳의 수장인 김석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홍왕이라, 홍왕…….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무련의 그 삼왕 중 하나인 홍왕 말인가?”
“그렇습니다.”
김석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국력으로 따지자면 중국과 한국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이다. 하지만 알려져 있는 세계의 한국이 그래도 중국과 어느 정도는 대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반면, 무인들의 세계에서 중국은 한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절대강국이었다.
그런 강국을 지배하고 있는 무련에서 이쪽으로 요청을 한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뭐라던가?”
“특정인의 제거입니다.”
“특정인?”
김석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조건은?”
“그게…….”
김석일의 물음에 이현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대다가 조금은 얼떨떨해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원받은 금액을 전부 탕감한다고 합니다.”
“……뭐라고 했나?”
김석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의 내공으로 사람의 말을 잘못 들을 일은 없겠지만,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남회가 지금까지 커올 수 있던 것은 무련 쪽의 은밀한 자금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그 문제가 독이 될 줄 알고 있으면서도 총회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금의 출처였던 그 홍왕이 특정인을 제거하면 그 모든 금액을 탕감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통령이라도 암살해 달라고 하던가?”
어이없는 발언이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그만한 일이 아니라면 탕감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으니까.
“그, 그게 좀…….”
이현수의 반응을 보며 김석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 막힘이 없던 이가 저리 주저한다는 것은 일이 아주 심각하거나 아주 황당하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일까?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김석일은 가만히 이현수의 말을 기다렸다. 이어질 말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현수는 입을 꾹 다물 뿐,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단가?”
“예.”
김석일의 얼굴이 더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답답하니 아는 사실을 모조리 보고해! 당장!”
“예, 예!”
이현수가 기겁을 하여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름은 강진호! 아마도 귀환자라 의심됩니다. 현재는 재경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얼마 전 전역을 하여 복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현수는 거기까지 말을 끝내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게 전분가?”
“……아직 더는 정보가 없습니다.”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는 흔적은 없고?”
“군부 쪽에서 접촉을 시도한 모양입니다만, 그 이상의 진척을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으으음…….”
김석일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리고 하나 더.”
“하나?”
“아무래도 총회 쪽에서도 그를 수소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석일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총회가 움직이고, 무련이 제거하려 하는 인물.
그것만으로도 강진호라는 놈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홍왕이 바보가 아니라면 별것도 아닌 인물을 제거하는 것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물어서는 안 되는 미끼였다.
하지만…….
물지 않을 수 없는, 먹음직한 미끼이기도 했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할 수 있다면, 영남회는 총회를 완벽하게 압도할 수 있는 동시에 무련과의 찝찝한 관계마저 털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길이겠지만, 이만한 조건이 걸린 일이 쉽다면 더 이상했다.
“그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유는 국경 때문인가?”
“현제 세 왕의 관계가 매우 경직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과거처럼 그들이 직접 한국으로 왔을 겁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외도(外道)를 불러라.”
“……회주님.”
김석일은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선언했다.
“이번 일에 우리는 총력을 다한다.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면 모조리 써야겠지.”
이렇게 대한민국의 최대 문파 두 곳이 동시에 강진호를 향해 그 손을 뻗기 시작했다.
“창업?”
“어.”
박유민이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강진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맑은 소주가 잔에 차올랐다.
“복학을 안 하고 창업을 한다고?”
“어.”
“……복학 안 할 거냐?”
“아니, 하긴 할 거다. 원래는 반년 정도 이곳저곳 여행이나 좀 다니면서 보내려고 했는데, 일이 좀 이상해져서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다.”
“맨땅에서 시작하겠다고?”
“그런 건 아니고.”
강진호의 설명을 들은 박유민이 기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뭐 그런 조건이 다 있냐?”
“그러게.”
“그래서 적당한 창업을 알아봐야 하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다, 이거지?”
“응.”
박유민이 뭘 고민하느냐는 듯이 쉽게 대답했다.
“피시방 해, 피시방! 너 게임 좋아하잖아. 어차피 게임할 거 네 가게에서 하면 되지.”
“주인이 게임 잡으면 피시방 망한다던데?”
“어, 그런 문제가 있네.”
“그리고 그 정도면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 리스크도 크고.”
박유민도 이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창업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쉽게 생각되지만, 막상 실제로 하려다 보면 걸리는 게 워낙에 많은 일이었다.
“그럼 물류 쪽이나 이런 쪽으로 가면 안 되냐? 내 생각이지만, 너는 물류계로 가면 대한민국 물류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
“……요식업 쪽으로 한정하자고 하더라.”
“와, 이건 차포 떼고 장기 두자는 거네. 요식업이면 힘을 못 쓰잖아.”
“…….”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힘쓰는 일을 하라는 말을 듣는 강진호의 심정은 참담했다. 물론 그가 생각해도 가장 어울리는 일이 그쪽이기는 하지만.
“흐음, 뭐 적당한 거 없을까?”
“요식업이면 중국집이나 치킨집 같은 거 말하는 건가?”
“……배달은 하지 말란다.”
“와, 이거 진짜 이해를 못하겠네. 대체 왜 이런 식으로 하자는 거지? 이거 잘하면 너한테 뭐 준대?”
“학점.”
“응?”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매출이 높을수록 학점이 올라간다!”
박유민은 아연한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럴 거면 복학을 해, 인마.’
멀쩡한 학교 놔두고 장사를 해서 학점을 따겠다니. 그것도 한두 달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고, 6개월 장기 창업으로 학점을 따겠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린가.
“진호야?”
“……무슨 말 할지 알아. 그런데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거야.”
“네가 그렇다면 뭐…….”
박유민은 이 엉뚱한 친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가 아는 강진호라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낭비할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창업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면, 창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니 돈 쓰고 크게 하면 안 돼? 원래 크게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잖아.”
“그것도 금지.”
“끙.”
이쯤 되면 차포뿐 아니라 마까지 떼고 장기를 두는 격이다.
‘공정한 경쟁이란 건 좋기는 하지만…….’
가지고 있는 무기를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다. 조건이 좋다고 다 성공한다면, 세상에 망하는 기업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재경은 강진호에게 완벽한 평등점에서 시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평가인가?’
예전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때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전체 능력이 아니라 운영 능력만을 보고 싶다면서 강제로 초반을 건너뛰고 일정한 상황을 만든 다음에 거기서부터 게임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불리한 상황에서부터 게임을 하게 만들어서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황정후가 강진호를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친분에서 끝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 평가의 결과에 따라서 황정후가 강진호를 중히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제대로 도와줘야지.’
박유민은 의욕에 불탔다.
지금이야 많이 자립했지만, 여전히 강진호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서는 신앙과도 같았다.
강진호가 무난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만 설 수 있다면, 그 뒤로는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박유민은 최선을 다해서 강진호를 돕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진호야.”
“응?”
“너, 요리는 할 줄 알아?”
“…….”
아연해하는 강진호의 표정에 박유민은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느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를 한다고?”
아버지는 ‘아들,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니?’라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예. 그러니까…….”
이게 대체 몇 번째 하는 상황 설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진호는 순순히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설명했다.
“흐음, 그냥 카페를 하면 안 되겠니? 커피 뽑는 법은 내가 가르쳐 주마.”
“안타깝게도 카페도 금지라네요.”
“그거 조건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 굳이 그런 조건을 받아들여서 네가 얻는 것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강진호는 아버지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이해했다. 주영기의 말을 듣기 전이었다면 그도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영기의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강진호는 그 스스로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일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부리고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최악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박유민을 만나고, 군대를 다녀오고, 아버지의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조금 유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어색한 사람이었다.
완벽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은 포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자신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이상,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진호의 입장이었다.
이번 일은 아마 좋은 계기가 될 것이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음, 아버지도 이 일 자체는 찬성이지만…….”
강유환은 말을 더 잇지 않고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내가 네게 여러 경험을 하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하게 나는 굳이 고생스러운 길을 걸어서까지 경험을 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바닥에서 시작한 창업주들을 무척이나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미국에서 제대로 사업을 일군 이들은 대부분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지.”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원하는 일이면 해야지. 하지만 경험이란 건 반드시 힘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겪어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야.”
“예. 명심할게요.”
“그래. 그럼 잘해봐라.”
“네?”
무슨 대화가 이렇게 뜬금없이 끝나나?
“추, 추천은 없나요? 이런 쪽이라든가?”
“내 자식이 다 알아서 하겠지.”
“…….”
강진호는 멍한 얼굴로 강유환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널 믿는다.”
이건 신뢰가 아니라 방치 같은데요?
강진호의 눈빛에 강유환이 헛기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