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8
#207.
창업하다 (2)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조규민, 박유민, 주영기.
현재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의 세 사람이 모두 모여서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상 대책 회의.
도무지 업종이 결론이 나지 않자, 모든 이들이 모여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강진호는 딱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뭔가 죄를 저지른 듯한 느낌에 떨떠름한 시선으로 그들을 마주 보았다.
“……그냥 닭 집이나 하자니까.”
주영기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듯이 한탄을 했다.
“어차피 망할 건데!”
“뭔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해?”
주영기는 박유민의 타박에 딱히 변명을 하지 않고는 피식 웃었다.
강진호와 함께 군 생활을 해보지 않은 이들이 뭘 알 리가 없었다.
강진호의 성격에 점원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주영기의 생각에 이번 일의 관건은 어떤 업종을 해서 어떻게 팔아먹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진호가 과연 매장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니 일단은 이 상황에 동조해 줄 수밖에.
“쉬운 걸로 합시다. 조리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거나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직종은 할 수가 없어요. 주방장 하나가 바뀔 때마다 평가가 롤러코스터를 탈 겁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강진호 씨가 직접 주방을 봐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는 잘 팔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조규민은 매우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이런 뜬구름 잡는 분석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리고 박유민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진호야.”
“응?”
“네가 하고 싶은 건 없어?”
“내가 하고 싶은 것?”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 네가 따로 업종에 대해서 생각을 해뒀다면 여기까지는 안 왔겠지만, 그런 식으로 말고 네가 정말 좋아하던 음식이거나 ‘이건 나에게 있어서 좀 특별했다’라고 생각하는 음식을 해보는 건 어떨까?”
“……특별했던 음식?”
박유민의 말에 주영기가 한숨을 쉬었다.
“야, 감수성이라고는 고양이 눈물만큼도 없는 놈한테 무슨 특별한 음식이 있겠냐.”
“에이, 그래도 하나쯤은 있을지 모르잖아.”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본 조규민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고 할 찰나, 강진호가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
“있다.”
“응?”
사람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몰렸다.
“좋아하는 음식이야, 아니면 특별한 음식이야?”
“굳이 따지자면 사연이 있는 음식이니까, 특별한 음식이라고 해야지.”
“오, 뭔데?”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피자.”
“……응?”
사람들의 얼굴이 멍해졌다.
피자?
“내 살다 살다 추억의 음식에 피자가 나오는 케이스는 처음 봤네. 우리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던 콜라 맛이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야. 여하튼 특이한 놈이야, 진짜.”
주영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박유민도 뭔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안타깝게도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사연을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얇게 편 밀전에 뭐? 치즈? 치즈가 뭐냐? 우유를 굳힌 것이라고? 시큼해? 그 몽골 놈들이 먹는 양젖 굳힌 것을 말하는 거냐? 소젖으로 만든다고? 거기에 뭐? 뭐가 올라가? 햄? 너는 대체 어디서 온 놈이냐?”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추운 겨울 쓰레기통을 뒤지다 동사할 뻔했던 스승이 그를 구해냈다. 삼 일 밤낮을 앓다가 깨어났을 때,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묻는 스승의 질문에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스승은 대체 피자가 뭐냐고 물었고, 평소였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앓다 일어난 탓에 정신이 혼미하던 강진호는 피자에 대해서 스승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다.
어린놈이 반쯤 정신이 나가서 하는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음에도 그의 스승은 그가 말하는 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피자를 구워냈고, 스승이 만든 피자의 맛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최악이었지.”
강진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결코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었다.
너무 맛이 없어서 토기가 올라올 정도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피자 한 판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배가 고파서?
아니다.
그건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 만에 누군가가 강진호를 위해 만들어준 음식이었다. 그 추운 겨울에 어린아이의 헛소리를 듣고 마트도 없는 그 시대에 모양이라도 비슷하게 음식을 만들어 오기까지 얼마나 수고스러웠을지를 생각하면 맛 같은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강진호는 여전히 그때 먹은 그 피자가 인생에서 가장 맛이 없는 피자인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피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결정한 것 같아.”
조규민이 크게 손을 가로저었다.
“자, 잠시만요. 우리 배달 안 하기로 했잖습니까! 배달도 안 하는데 피자집이라니요! 이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조규민은 결사반대를 했지만, 박유민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진호가 하고 싶다잖아요. 그리고 저도 생각을 해봤는데, 피자라면 조리법이 그리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다고 해도 진호가 직접 만들 수 없는 음식이라면 이게 문제가 될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만…….”
피자는 결국 도우를 만들 줄 알고, 잘 깔고, 오븐에 넣을 줄만 알면 되는 음식이다. 그 배합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다른 음식들에 비해 초보자가 만들기에 무척이나 무난한 음식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 그래도 피자집이 배달을 안 한다는 건…….”
“번화가 쪽에는 배달 안 하는 피자집도 많잖아요.”
“으음…….”
조규민이 고민을 했지만, 강진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걸로 할게요.”
“정말입니까?”
“예. 이걸로 할게요.”
강진호는 빙긋 웃었다.
요식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아연했지만, 이리되고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때 그가 느낀 그 맛을 누군가가 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즐거울 것 같다.
하지만 조규민은 뭔가 멍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배달을 안 하는 피자집이라니……. 이거, 매장 내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
조규민은 한숨을 쉬었지만, 강진호는 이제야 한시름을 덜었다는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움직이죠.”
“……이상한 데서 활동력 발휘하시지 마시라구요.”
조규민은 울상이 되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강은영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그녀가 연예계에 데뷔한 지도 이제 이 년이 지났다. 다른 직종에서 이 년이라면 아직 신인이라고 봐야겠지만 일 년에도 수백 명이 데뷔했다 사라지는 연예계에서 이 년 정도 꾸준한 활동을 했다면 나름 중견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은영은 결코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강은영이 착하기 때문에?
결코 아니다.
건방지다는 소문이 나서 그 말이 그녀의 오빠의 귀까지 들어간다면, 강진호는 강은영의 정신 상태를 뜯어고치겠다고 지옥 같은 잔소리를 시전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강은영의 생각으로는 보나마나 연예계 생활을 해서 애가 망가졌다며 은퇴를 시키고 대학에 보내려 할 게 빤했다.
‘내가 미쳤다고 공부를 다시 해?’
오라비의 마수에서 벗어나 연예계 생활을 유지하려는 노력 덕분에 강은영은 나름 인기가 있음에도 스타병에 걸리지 않은, 겸손한 아이로 인망이 높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요즘은 아버지의 가게도 돕고, 드라마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속사에서 열애설도 덮을 겸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기까지는 가수 활동을 잠시 쉬기로 한 것이다.
싱글 앨범 활동도 슬슬 끝 무렵이기에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강은영이 여기저기 인사를 하는 동안 누군가가 다가와 그녀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아?”
강은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붙잡은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이제 가요?”
“아, 아, 예! 선배님! 저 이제 끝나서 가요!”
“네, 그렇군요. 그럼 저랑 같이 갈래요?”
“제, 제가 선배님이랑요?”
“왜요? 같이 가기 싫어요?”
최연하가 웃으면서 말하자 강은영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영광이죠!”
최연하가 빙긋 웃더니, 손을 뻗어 강은영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안 그래도 세아 씨랑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아! 정말요?”
“네. 할 말도 많고, 같은 드라마 출연하는 동료인데, 따로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아서요.”
“저는 언제든 좋아요, 선배님.”
“음, 선배님은 너무 딱딱하다. 언니라고 불러요.”
“제가 어떻게 감히…….”
“우리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내가 잘 아는 카페가 있는데, 그쪽으로 갈래요?”
“네! 갈래요! 갈래요!”
강은영은 로드 매니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최연하의 차에 올랐다. 로드 매니저는 자기가 가게 앞에서 기다리는 조건으로 용인을 해주었다.
‘에이, 융통성 없어.’
무려 최연하와 카페를 가는 길인데 혹을 달고 가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로드 매니저에게 떼를 썼다가는 빨간 람보르기니가 카페 앞으로 미친 듯이 질주해 오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색도 얼마나 눈에 잘 띄는지.’
예전에는 쪽팔리다며 흰색을 고수하더니,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뻔뻔함이 증가해 랩핑까지 해서 돌아다니는 강진호였다.
물론 랩핑을 한 사람은 조규민이지만, 과거였다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빨간색 랩핑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강진호가 많이 변했다는 증거였다.
“선배님은 매니저님 차 안 타고 자차 타고 다니세요?”
“응? 아냐, 아냐. 나도 평소에는 밴 타고 다니지. 그런데 오늘은 촬영하는 데가 우리 집 근처라서 그냥 매니저 오빠더러 쉬라고 한 거야.”
“와, 그래도 돼요?”
“원래는 안 되지.”
최연하가 빙긋 웃었다.
그 미소가 마치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나 정도 급이 되면 이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단다’라는 뜻으로 보였다. 강은영은 동경의 눈으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최연하는 정말 예뻤다. 국민여신이라 불리던 시기가 있던 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껴질 만큼 말이다.
방송 활동을 줄이고 작품을 골라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그렇게 불리고 있을 것이다.
‘너무 멋져.’
이렇게 홀로 스케줄을 소화하는 모습도 멋지고, 이 험난한 연예계에서 그 흔한 구설수 하나 없이 완벽한 자기 관리를 하는 것도 너무 배우고 싶은 모습 중 하나였다.
“여기야.”
카페 앞에 차를 주차시킨 최연하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강은영도 얼른 차에서 내려 최연하를 따라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너무 예뻐요.”
“분위기 좋지? 내가 남들에게 안 알려주는 곳이야. 조용할 때 한 번씩 분위기 전환하러 오거든.”
“그런 데를 저랑 오셔도 돼요?”
최연하가 입을 가리고 웃더니, 강은영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서 들어가자.”
“네.”
두 사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