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85
#2084.
격돌하다 (4)
쾅!
내디딘 발이 바닥을 부순다.
기이이잉!
허공을 헤치듯 휘저은 손끝이 대기를 찢어내고 공간을 으스러뜨린다.
그저 한 걸음.
그 내딛는 광경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건 그들이 바라던 무학의 극치 같은 것이 아니다.
이건 그저 폭력.
세상을 통째로 짓밟고, 유린하고, 부수는 폭력의 향연이다.
지독하리만큼 노골적인.
그렇기에 참을 수 없는 위화감이 전신을 휩쓴다.
이곳, 바로 이곳에서 살아남은 자 모두는 무학이 이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꿈에도 그리던 그 경지를, 아득하고 황홀하며, 또한 찬란한.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이 짓밟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질러낸 손끝에서 뻗어나간 마기가 강화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벽면을 두부처럼 으스러뜨린다.
콰아아아아아앙!
튕겨나간 마기의 파편이 천정을 조각조각 부수어 파편의 비를 쏟아낸다.
그건 숫제 짐승의 싸움.
상처 입은 짐승들이 발톱과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서로를 물어뜯어,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이게…….’
이현수의 눈에 핏발이 선다.
이 무시무시한 마기는 바토르와 장민의 기운마저 뚫어내고 그의 몸을 잡아 뒤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 선 핏발의 이유는 그 고통 때문만은 아닐 터.
말하는 것만 같다.
마치.
그들이 보아온 것 모두는 그거 가식일 뿐이라고. 결국 무학이란 상대를 부수고 죽이는 살인의 방식에 불과하다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길고 긴 시간의 흐름 동안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곳에 오직 둘만이, 우뚝 선 저 마인(魔人)들이 피 끓는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카아아아아아악!
흑왕의 손끝에서 자라난 검은 마기의 칼날이 강진호의 육체로 맹렬하게 날아든다.
콰아아아앙!
마기에 뒤덮인 강진호의 주먹이 날아드는 칼날을 정면으로 후려친다. 마기와 마기가 충돌하는 순간, 가공할 폭발이 일어나며 지하 전체가 통째로 뒤흔들렸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첫 번째 폭음이 채 번지기도 전에 두 번째 폭음이 먼저의 폭음을 집어 삼킨다. 그 두 번째 폭음이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또 다른 폭음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연이은 충돌.
그전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에 불과할 찰나의 시간. 그 1초라는 시간을 수십으로 쪼개낸 짧은 시간 동안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고 간다.
‘이게…….’
바토르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게 마인의 싸움.’
악마와 악마가 맞붙는 것만 같다.
구분조차 불가능한 두 마리의 악마.
짙은 타르처럼 검은 마기로 제 몸을 두른 마귀들이, 두 눈에 혈광을 내뿜으며 전력을 다해 상대를 물어뜯고 있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집채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지다가 두 사람이 내뿜은 마기에 말 그대로 으스러진다. 공명하듯 충돌하는 두 사람의 마기는 그들이 마주 선 공간 사이에 그들 두 사람 외의 어떤 존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에게 주먹을 내뻗는다.
그 주먹이 허공에서 충돌하는 순간, 터져 나온 충격이 깊은 지하의 공동을 파멸적으로 휩쓸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바토르가 뒤로, 또 뒤로 폭풍을 맞이한 가랑잎처럼 밀려난다.
“끄윽!”
바닥에 발을 박아 넣어 보지만, 이 충격 앞에서는 이 단단한 강화 콘크리트조차도 무른 진흙에 지나지 않는다.
“으아아아아아아!”
바토르가 전력을 다해 내력을 뿜어낸다. 그가 지금 휩쓸리면, 그의 뒤에 있는 이들도 모조리 박살이 난다.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터져 나왔지만, 바토르는 결국 벽의 끝에 이르기 진적에 충격을 이겨냈다.
“쿨럭!”
바토르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울컥 토해져 나온다. 하지만 그의 두 눈만은 오히려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건너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이 승부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간 십이비도들이 벽면까지 밀려나 휘청이고 있었다.
바토르의 입에서 뒤틀린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저 미친 새끼들…….”
피를 쏟아내는 그의 눈에 짐승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두 사람의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콰아아아아아!
머리 위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쏟아진다.
위긴스라면 분명 이 자리에서 이동해 저 공격을 피해냈을 것이다. 방진훈이라면 어떻게든 저 공격을 흘려내려 했을 것이다. 바토르라면 그 육체를 믿고 받아내려 했을 것이고, 장민이라면 공격이 닿기 전에 자신이 먼저 적의 목을 베어버리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다르다.
검디 검은 마기를 휘감은 강진호의 주먹이 쏟아지는 마기를 그대로 올려친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마기의 폭발이 육체로 쏟아진다. 마기와 마기가 맞부딪혀 폭발하는 충격이 살을 모조리 터뜨리고, 뼈를 으스러뜨릴 것만 같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이것뿐이니까.
상대가 강한 힘으로 짓눌러 오면 더 강한 힘으로 맞부딪힌다. 그 두 다리를 바닥에 박아 넣고 내 몸이 부서지기 전에 상대를 부순다.
그게 강진호라는 이가 싸워온 방식이다.
그리고 그건 흑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진호의 주먹이 흑왕의 턱으로 날아드는 순간, 흑왕의 주먹이 강진호의 턱을 향해 날아든다.
자신의 턱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
그 주먹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흑왕과 강진호, 누구 하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에 작렬한다. 그 가공할 충격력을 버티기에 그들의 육체는 너무도 가벼웠다.
두 사람이 동시에 쏘아낸 미사일처럼 뒤로 날아간다. 아니, 주먹이 닿는 순간 그들의 몸은 이미 벽면을 꿰뚫으며 깊게, 더 깊게 틀어박히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지하 자체가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대한 흔들림. 이곳이 벙커 버스터를 막아내기 위한 구조가 아니었다면 벌써 붕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콰앙!
그리고 어디랄 것 없이 동시에 폭음이 터져 나온다.
그들의 육체로 만들어 낸 깊디 깊은 동굴.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 검은 마기로 둘러싸인 마인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쏘아져 나온다.
콰앙!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에게 뒤틀린 분노를 토해낸다.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일변도.
무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무학에 모독이 될, 그저 후려치고 부수는 것에 불과한 공격. 가장 원초적이고 노골적인 공격이 서로를 향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콰앙!
강진호의 주먹이 흑왕의 늑골에 틀어박힌다.
콰앙!
흑왕의 주먹이 강진호의 관자놀이를 부술 듯 후려쳤다.
순간순간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은 두 사람이 상대의 눈을 마주한 순간, 생각하는 것을 잊고 주먹을 날린다.
수십의 연타가 순간적으로 오가고, 산을 부술 듯한 주먹질이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강타한다. 역류해 입으로 뿜어져 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휘몰아친 마기에 기화해 자취를 감춘다.
그 지독하기 짝이 없는 전투 속에서 두 사람의 눈빛은 더욱 더 붉게 물들어 갔다.
“교주우우!”
강진호를 쳐 날린 흑왕이 강진호를 덮치듯 날아들어 그를 짓누르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몸을 돌리며 바닥을 찬 강진호의 주먹이 흑왕의 턱을 그대로 올려친다.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흑왕의 몸이 쏘아낸 미사일처럼 솟구쳐 올라 천정에 틀어박힌다.
천정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들썩이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천정 전체가 깨진 유리처럼 갈라지며 콘크리트의 비를 쏟아낸다.
“흐앗!”
흑왕이 천정을 바닥처럼 밟으며 아래로 강하했다. 한줄기 검은 유성처럼 내리꽂힌 그가 강진호를 그대로 덮쳐누른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바닥에 정말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폭발을 일으킨다. 공간 전체를 뒤트는 거대한 크레이터의 한 중간에서 강진호의 목을 움켜잡은 흑왕이 있는 힘을 다해 그를 짓눌렀다.
쾅!
흑왕의 주먹이 강진호의 얼굴을 후려갈긴다.
콰앙!
또 한 번!
쾅! 쾅! 쾅! 쾅!
한 손으로 강진호의 목을 움켜잡은 흑왕이 다른 한 손으로 연이어 강진호의 얼굴을 내리찍는다.
“하핫! 겨우 이 거…….”
그 순간, 강진호의 발이 그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큭!”
얼굴을 일그러뜨린 흑왕이 상관없다는 듯 다시 강진호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진호의 발이 한껏 굽혀지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흑왕을 그대로 걷어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검은 선이 되어 날아간 흑왕이 한쪽 벽면을 꿰뚫고 들어갔다.
콰가가가가가각!
마치 거대한 드릴이 바닥을 갈아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벽면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낸다. 그 표면에 확연한 소용돌이의 문양을 만들어 내며.
“…….”
강진호가 바닥을 움켜잡고는 몸을 일으킨다. 유령처럼 몸을 세운 그가 좌우로 목을 꺾어 댄다.
우득. 우드득.
단순한 뼈 소리에 불과하건만,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퉷!”
입에 잔뜩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낸 강진호가 혈광이 쏟아져 나오는 눈으로 흑왕이 파고들어 간 벽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호응하듯 벽면 너머로 작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점점 커져간다.
뚜벅. 뚜벅. 뚜벅.
급할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뻥 뚫린 구멍 사이에서 걸어 나온 흑왕이 마기를 걷어내며 강진호를 바라본다.
흐트러짐 하나 없는 얼굴.
그 새하얀 얼굴로 강진호를 직시하며 흑왕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군요.”
강진호와 흑왕이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당신이…… 과거보다 너무 약해진 건지.”
“…….”
“아니면…….”
흑왕의 입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는다.
“내가 너무 강해진 건지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새하얗게 웃었다.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모양이군.”
“…….”
“다 지껄였으면 다시 덤벼. 말은 충분히 했으니까.”
“큭큭큭큭.”
흑왕이 한껏 웃어 댔다.
저 말을 언젠가 들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아니, 어쩌면 기시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백 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오직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 테니까.
그래…… 무려 백 년 동안.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흑왕의 전신에서 검은 마기가 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지금까지 그가 보인 마기와는 분명 무엇인가가 다른, 단순한 마기의 응집을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간 무언가가.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강진호도 제 몸을 마기로 뒤덮는다.
검은 타르와 같은 진득한 마기, 그 마기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진심으로 갑니다, 교주.”
흑왕의 마기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거칠게 일렁였다.
“바라건대.”
“…….”
“내 모든 것을 받아내기 전까지는…….”
쇠를 긁어 대는 듯한 목소리가 섬뜩하게 흘러나온다.
“부디 죽지 마시길!”
그 순간, 흑왕이 뿜어낸 마기가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다.
끝도 없이 흘러나온 마기가 휘몰아치고, 또 휘몰아친다. 마치 폭풍이 치는 밤의 바다처럼 공동을 뒤덮어버린 짙은 마기가 강진호를 향해 해일처럼 휘몰아쳤다.
타오르는 마기를 날개처럼 두른 강진호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마기의 해일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