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
#20.
둘러보다 (1)
“자, 이거 어떠냐!”
강유환이 들뜬 목소리로 벽에 기대져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강은영이 뾰로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뭐예요? 자전거잖아요!”
“그래, 자전거다.”
“뭘 대단한 걸 사 오셨다고 아침부터 나와보라고 그러시나 했네.”
강유환이 가리킨 곳에는 새 자전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로드레이서나 MTB 같은 비싼 모델은 아니고, 어디서나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한국형 철티비가 떡하니 보였다.
그래도 새것이라 나름 반질반질한 것이, 후광 효과가 괜찮았다.
“회사도 가까운 곳으로 바뀌었겠다, 쓸데없이 기름 낭비할 필요가 뭐 있어. 운동 삼아 회사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로 했다.”
진호의 어머니, 백현정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기름은 생각하고 자전거 때문에 늘어날 빨랫감은 생각 안 하세요? 아침저녁으로 레이싱복 입고 다니시면 빨랫감이 얼마나 느는데요.”
“늘어나 봐야 얼마나 늘어나겠어. 어차피 당신이 빠는 것도 아니고, 세탁기가 빠는 건데.”
“그럼 직접 돌리시든가!”
“당신이 고생이 많지. 내가 그걸 왜 모를까 봐.”
급비굴해진 강유환을 보고 강은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하튼 이제 자전거로 출퇴근할 테니, 그렇게 알아.”
능력도 좋게 삼 일 만에 새 회사를 알아오더니, 이제는 자전거 출퇴근까지 할 모양이었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더니, 그 하늘의 별을 아주 쉽게 따버린 강유환이었다.
예전의 일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있냐는 말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던 아버지였다.
신의를 배신한 회사에 다시 몸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시다던가.
“그런데 왜 두 대예요?”
“하나는 내 거고, 하나는 진호 거.”
“네?”
“생각해 보니 학교가 애매하게 멀어서 걸어 다니기는 멀고 차를 타기엔 가깝지. 그럴 때는 자전거만 한 게 없어.”
백현정이 정색을 했다
“무슨 소리예요! 자전거가 얼마나 위험한데! 얼마 전에 교통사고당한 애한테 자전거가 웬 말이에요. 사람이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강유환이 상처 받은 듯한 얼굴로 백현정을 바라보았다.
“당신, 내가 탄다고 했을 때는 걱정하지 않았잖아.”
“당신이랑 같아요?”
“뭐가 그리 다른데?”
상처 입은 강유환을 뒤로하고 강진호는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자전거라…….’
그러고 보면 이것도 나름 문명의 이기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하찮겠지만, 과거 중원에는 사람의 힘으로 걷는 것 외에는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의 힘으로 좀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현대인은 그걸 몰랐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너무 문명의 이기에 젖어 있어서인지 아무렇지 않게들 생각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음…….”
강진호는 가방은 멘 채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전거의 페달을 굴렸다.
휘청.
“…….”
휘청.
“…….”
털썩.
“…….”
바닥에 겨우 발을 디뎌 넘어지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낸 강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강은영은 눈치 없게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오빠, 자전거 못 타?”
“…….”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강은영을 바라보았다.
최영수는 보기만 해도 꺽꺽 넘어가는 강진호의 눈빛을 본 강은영의 평가는 아주 심플했다.
“저거, 바보 아냐?”
강진호는 힘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 나이 먹고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자전거 못 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걸 부끄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뭔가…….
이 가슴속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기이한 도전정신은!
“진호가 자전거를 못 타는구나.”
“…….”
“배우면 된다. 거, 자전거 타는 거 어려운 일 아니다. 몸을 일자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네.”
강진호는 강유환의 응원에 힘을 얻어 몸을 바로 세운 채 페달을 굴렸다. 몸을 바로 세워서인지 자전거가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그래! 핸들은 곧게 세우고!”
몇 번 페달을 굴렸지만, 휘청거리지 않고 잘 나갔다.
강유환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래, 그렇게 한 다음에 코너에서는!”
쾅!
“…….”
강유환은 멀리 코너에 피어오르는 먼지들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좀 더 일찍 말해야 했을까?”
백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요.”
강은영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바보는 구제가 안 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새 자전거를 반품 불가로 만든 강진호는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영 이상했지만, 결국에는 자전거에 적응한 강진호였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극에 달한 운동신경과 반사 신경은 그 무시무시한 사고들 속에서도 강진호의 육체를 보호해 주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주위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나쁘지는 않군.’
경공을 펼치는 것에 비하면 기어가는 듯한 속도지만, 이것도 묘미가 있었다.
나름 산책을 하는 듯한 운치가 있었다.
강진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향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히 문제가 있을 것은 없었다.
새 자전거가 생겼고, 그걸 타고 등교를 한다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 와중에 생겨난 아주 사소한 문제는 강진호가 최근에 단전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덕분에 강진호의 몸은 알아서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쇄애애애액!
자전거가 자전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질주했다.
차도로 들어선 자전거는 차들과 나란히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별생각 없이 페달을 굴리고 있지만, 강진호의 힘을 이기지 못한 자전거가 전신으로 끼익끼익대는 소음을 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기색을 일절 느끼지 못한 채 편안하게 페달을 밟아댔다.
쐐애애애액!
“오빠.”
“응?”
“빨리 좀 달려.”
“무슨 소리야? 잘 가고 있구만.”
“옆에 자전거가 같이 가는데?”
“뭐?”
자동차를 운전하던 사내는 기겁을 하여 계기판을 바라보았다.
“지금 시속 70㎞야!”
“빠른 거야?”
“암스트롱도 그 속도로는 못 달려! 그 새끼는 약 빨고도 그 속도로 못 달렸다고! 여기가 무슨 경륜장도 아니고, 도로에서 70이 말이나 되냐?”
“저기 가고 있잖아. 어? 자전거가 앞서간다.”
“뭐?”
고개를 돌려 차를 추월하는 자전거를 본 남자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저, 저게 대체 뭐야!”
꿈인가?
아니, 그가 자전거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된 것인가?
“원래 자전거는 저렇게 못 달려?”
“하하…… 하하하.”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답을 찾았다.
“그래, 프로 선수가 신제품 테스트하는 중이겠지.”
“그래? 암스트롱도 그렇게는 못 달린다며?”
“그건 일반 자전거고, 전기 자전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전동 모터가 속도를 내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
사내의 말을 들은 여자는 이해한 듯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저 자전거 탄 사람. 교복 입고 있던 것 같은데?”
“니가 잘못 봤겠지.”
“그런가?”
도로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강진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향했다.
그렇게 5분도 안 되어서 학교에 도착하고 말았다.
“너무 빨리 왔나?”
기분 같아서는 좀 더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했는데 굳이 한 바퀴 더 달리는 것도 우습다 싶어 자전거를 대는 강진호였다.
자전거 주차대에 댄 강진호가 교실로 올라갔다.
일주일 만에 온 학교라 그런지 이상하게 조금 낯설어 보였다.
“낯설다고?”
강진호는 슬쩍 웃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학교를 온 것은 며칠 되지 않았으니까.
정학이 일주일이었는데, 그전 삼 일 동안 학교에 나온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에 익숙해진 것이다.
교실로 들어서자 그를 보고 놀라 소리치는 애들이 있었다.
“강진호!”
떠벌이 정인규가 그에게로 달려왔다.
“오늘부터 학교 나오는 거야?”
“그래.”
“야, 너 없는 동안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러자 이태호가 슬그머니 다가와 강진호의 어깨를 툭, 쳤다.
“갤럭시 연습은 좀 해왔냐? 공방 양민?”
“너는 이제 마우스만 움직여도 이겨.”
“야, 강진호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거 장난 같지 않은데?”
강진호에게 하나하나 다가와서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일주일 만에 본 강진호가 반가워서?
아니, 그것보다는 강진호가 억울하게 정학을 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한 자신들의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풀려는 의도가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들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책망과 배신감은 기대하는 이에게 생기는 것이다. 애초에 기대 자체가 없던 강진호가 그들에게 뭔가 실망할 거리가 있을 리 없었다.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기대가 있었다면 배신감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들은 강진호에게 딱히 의미가 되어주지 못하는 존재이니까.
최영수는 아직 학교에 나오지 못했고, 그의 똘마니들은 강진호를 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기 때문에 교실 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끼이익.
의자가 살짝 밀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 사람이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절뚝.
걸음걸이가 이상한 아이.
박유민.
박유민은 강진호가 들어오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강진호는 그런 박유민을 슬쩍 쳐다본 뒤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진호 왔냐?”
문이 열리고 김성주 선생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강진호부터 찾았다.
“예.”
“어, 그래. 등교했구나.”
“아직 수업 시간 아닙니다.”
“알아, 인마! 그냥 왔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진호는 자리에 앉았다.
‘평화롭군.’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워낙 깔끔하게 해결을 해놔서 그런지 거슬리는 것들도 없었다.
오랜만에 평화로움을 만끽한 강진호는 눈앞에 있는 교과서를 보며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공부를 했어야 하는 건데.
평화가 어쩌고저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 강진호만이 유일하게 초등학생이나 다름없는 지식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해야 해.’
이미 내공을 쓰기로 다짐한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먹고살 자신은 있었다.
아니, 오히려 뭘 해도 먹고살기 힘들기가 어려웠다. 강진호의 육체는 이제 현대의 일반인들을 아득하게 초월했으니까.
하지만 공부는 해야 한다.
일단 성적표가 집으로 날아갔을 때, 경기를 일으키실 부모님을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살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남들보다 잘할 필요는 없지만, 남들만큼은 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살려면 필수적인 것이다. 육체만 믿고 공부를 등한시하다가는 결국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게 된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는 강진호였다.
수업은 어차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강진호는 수업시간 내내 교과서 앞을 훑으며 떨어진 진도를 복구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박유민은 단 한 번도 강진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