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0
#209.
창업하다 (4)
“우리 오빠는 왜요?”
강은영의 단 한마디로 최연하는 많은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강은영의 연기는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다.
‘말투부터 다르네.’
방금 전까지 최연하에게 쓸개라도 빼줄 듯했던 착한 아이의 모습이 싹 사라지더니, 까칠하고 성격 나빠 보이는 어린애가 앞에 앉아 있다.
지금까지 그 모습이 모두 연기였다면, 강은영은 연기를 괜찮게 하는 후배가 아니라 천생 연기자였다. 이 정도 얼굴에 연기력이 더해진다면 앞으로 방송계가 좀 들썩일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얘… 브라콤이네.’
자신이 강진호에게 관심을 가지는 기색을 조금 보였을 뿐인데, 독 오른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쓰고 있던 가면이 일순 날아가 버릴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머! 날 이렇게 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뜬금없는 최연하의 말에 강은영이 눈을 찌푸렸다.
“아니면 음…… 아! 그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이야! 내 왕자님!”
“……뭐하시는 거예요?”
참다못한 강은영의 질문에 최연하가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어찌 보면 조금 경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이지만, 덕분에 강은영은 경계를 조금 풀 수 있었다.
“어느 쪽이 좀 더 진부한 스토리가 될지 생각해 보고 있었어. 만화라면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인기가 더 많을까?”
“전자죠.”
“음, 그러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긴 현실이고, 나는 만화 캐릭터가 아니지. 그리고 얼굴 한 번 봤다고 사랑에 빠질 만큼 순수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도 아니고. 안 그래?”
“…….”
강은영이 표정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빤히 보이는 모습이지만, 최연하는 같은 여자로서의 예의로 그녀가 캐릭터를 다시 잡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강은영이 가식을 섞어서 그녀를 대했다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녀 역시 선배들을 대할 때는 강은영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
“제 질문에 대답을 안 해주셨는데요?”
“아까워서.”
“네?”
“그 얼굴이 너무 아까워서.”
“…….”
최연하가 빙그레 웃자 강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저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연기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지금 충무로를 주름잡는 사람들 말고 연기 판만 뒤져도 연기를 사람 아닌 것처럼 하는 분들이 널려 있어. 거기에 비하면 나 같은 건 혀 깨물고 죽어야 할 만큼.”
“에이, 선배님. 그건 너무 가셨어요.”
“진짜야.”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무슨 연기파야. 나는 연기의 연 자도 몰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듣는 줄 알아?”
“……이뻐서라고 말하실 거면 미리 실망할게요.”
“실망시켜서 미안해. 그런데 그게 사실이야.”
최연하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연기 잘하는 여배우가 백 명은 훨씬 넘을 거야. 그런데 나보다 예쁜 여배우는 거의 없거든. 그러니 적당히 대본 정도는 읽을 줄 아는 내가 연기파 여배우가 된 거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아뇨.”
“잘생긴 건 엄청난 재능이야. 적어도 이 바닥에서는 말이야. 근데 네 오빠가 그래. 발연기라고 해도 보고 싶을 만큼 말이야.”
“흐음…….”
강은영은 한숨을 쉬고는 반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강은영이 뚱하게 말했다.
“그건 사실 기획사에서 해야 할 말 아닌가요? 선배님, 독립해서 뭐 하나 차리시려구요?”
“재능을 가진 사람이 그리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순수한 연기자의 마음이라고 하면?”
“네, 선배님! 저는 선배님이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어쩜! 제가 생각하신 그대로예요.”
“……알았어, 그만해.”
이 기집애는 이제 자신의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그만둔 것 같았다. 그럼 이쪽도 그리 나가줘야지.
“이번에 내가 영화 하나 들어갈 건데, 아직 상대방 배우가 정해지지가 않았거든. 근데 나는 네 오빠를 쓰고 싶어.”
“그 발연기를요?”
최연하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또 더빙하시게요? 그건 짧은 대사라서 가능한 거지, 전체 더빙하면 엄청 어색할 텐데요?”
“아니.”
다음 최연하의 대답을 들은 강은영은 입을 쩌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들으면 누구나 이 역할은 강진호를 위한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주가 벙어리 역할이야.”
“……미친.”
결국 강은영은 대선배의 앞에서 욕까지 내뱉고 말았다.
“말씀은 전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인간이 워낙에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라 헛수고하시는 거라는 걸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캐스팅이 쉬운 거였으면 대한민국에서 영화 찍는 사람은 다 성공하겠지?”
“그 정도가 아니니까 그러죠.”
“여하튼 그건 내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니까, 강은영 씨는 나한테 오빠 연락처만 주면 돼.”
“생각 좀 해봐도 되죠?”
최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강은영을 바라보았다.
“왜요?”
“이제 좀 편해진 것 같아서.”
“성격 나쁘다구요? 선배님 때문이에요. 그런 말씀 안 하셨으면 제가 그럴 일이 없었잖아요.”
최연하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성격이 좋네. 나는 소문 때문에 완전 성격 나쁠 줄 알았거든?”
“소문요?”
“너, 라엔이랑 트러블 생겼다며?”
“라엔요?”
“더 보이스.”
“아, 걔들요?”
강은영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라엔 방송 못 나가고 세무조사 들어갔다고 이야기가 파다해. 그전에 너, 스타위즈도 공중분해시키고 코드로 간 거 아냐? 너 가요계의 실세라고 소문이 자자해. 듣자하니 큰 기업이 뒤에 있다며? 그러니 실제 성격 장난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아, 그러셨구나.”
강은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구설수가 퍼지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를 신경쓰다 보면 쓸데없는 심력 낭비를 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이야?”
“뭐가요?”
“네가 재경 후원받는다는 것.”
“그게 중요해요?”
그럼 안 중요하니?
강은영은 모른다. 아무리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한 기색이 있다고는 해도 데뷔를 하고 나서도 지독하게 뜨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팔방미인급인데도 이상하게 끝까지 인지도가 붙지 않다가 사라지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배경이 중요한 것이다.
메이저 기획사에서 미친 듯이 푸시를 해도 안 뜨는 애들은 있지만, 애초에 푸시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 천배, 만 배 나았다.
“그런데 어쩌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재경이랑 아무 관계가 없거든요.”
“……아, 그래? 그렇구나.”
밝히기 싫으면 굳이 파고들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에 강은영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정말이에요. 재경이랑 관계가 있는 건 제가 아니라 우리 오빠거든요.”
“…….”
최연하의 눈이 살짝 빛났다.
* * *
강진호는 할 일이 없었다.
어떤 프렌차이즈를 선택할 것인가, 인테리어에 얼마나 투자를 할 것인가, 입지는 어디가 좋은가, 얼마나 투자를 해야 할 것인가 같은 당연한 일들은 모조리 조규민이 떠맡았다.
이것만 해도 황정후 회장의 원래 의도와는 조금 빗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규민 역시 알고 있었다. 이걸 강진호에게 맡겼다가는 운영 능력을 알아보기도 전에 가게가 폭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조규민은 최대한 가게를 만들어놓고 강진호에게 맡기겠다고 결심을 했다.
덕분에 강진호는…….
“에스프레소 나왔습니다.”
“……이, 이게 에스프레소예요?”
“예, 손님.”
“잔이 어, 엄청 작네요?”
“네, 손님.”
“여, 여기만 이런 건 아니죠?”
마치 인형놀이 세트에나 들어 있을 것 같은 작은 잔을 본 남자가 당황하여 눈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왜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구분 못하는 거지?’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메뉴판에 사진이라도 넣어야 하나 고민을 한 강진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아마 곧 에스프레소를 입에 한 모금 머금을 저 남자는…….
“악! 써! 아악!”
저리될 것이다.
강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할 일이 없는 강진호를 그냥 내버려 둘 강유환이 아니었다. 준비가 되는 동안 택배 상하차라도 다시 나갈까 고민하던 강진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카페에 출근하게 되었다.
‘비효율적이군.’
이미 카페는 셀프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서빙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오빠! 사진 한 번만 찍어주세요.”
“……아침에 찍지 않았어요?”
“해가 높이 떴잖아요! 지금 딱 조명이 좋아요!”
“……예.”
강진호는 깊이 한숨을 쉬면서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요즘 너무 안 나오시는 것 아니에요?”
“일이 있어서요.”
“그래도 오빠가 안 나오셔서 가게에 사람들이 너무 줄었잖아요. 매일 오시던 사람들도 요즘 잘 안보여서 쓸쓸해요. 자주 좀 나와주세요.”
‘그러지 말고 손님이 그만 오시면 될 것 같은데요.’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가 무슨 동물원도 아니고, 카페에 왜 사람 얼굴을 보러 온단 말인가.
그나마 최근에는 카페에 잘 안 나오다 보니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서 일할 맛이 났다.
“진호야, 잠깐만!”
“예?”
강유환이 강진호를 불렀다.
카운터로 다가가자 아버지가 조각 케이크를 내주었다.
“드려. 서비스다.”
“……예?”
어느 카페가 커피 먹는 사람한테 케이크를 서비스로 주는가.
“네가 오든 안 오든 매번 오시던 분이다. 가서 케이크 드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드려. 대화도 좀 하고!”
“예.”
독재는 나쁜 것이다.
강진호는 강유환의 독재에 시달리며, 과거 마교에서 철권통치를 펼친 자신을 반성했다.
‘미안하다, 청마.’
이게 이런 건 줄 알았으면 말을 할 때 좀 들어주고 할 것을.
수라기를 나눠 주겠다고 할 때, 피를 토하며 말리던 청마의 말을 무시하지 말 것을.
강진호는 케이크를 테이블로 날랐다.
“서비스입니다.”
“어머! 감사해요!”
“자주 오시나 봐요?”
“예. 원래는 보통 저녁 타임에 많이 왔는데, 어제부터 좀 일찍 오고 있어요.”
“저녁에 일이 있으신가 봐요?”
“아, 그런 건 아니구요.”
손님의 얼굴에 살짝 불안감이 감돌았다. 강진호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요?”
“……모르세요? 이틀 전에 여기서 여대생 피살됐잖아요.”
“피살?”
강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밤에 집으로 가다가 일을 당했대요. 엄청 끔찍했다고 말이 많더라구요. 진짜 사이코가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어요.”
“으음…….”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가게를 쭉 훑어보았다.
‘손님이 줄었다 싶더니…….’
그런 일이 있으니 유동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당연했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겠죠.”
“그래도 불안해서요. 하지만 오빠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아서 일찍 나오고 있어요. 헤헤.”
강진호는 미묘한 표정으로 손님을 보다가 몸을 돌려 카운터로 갔다.
“아버지.”
“응?”
“……서비스 커피 한 잔 추가요.”
강진호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