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02
#2101.
돌아오다 (1)
“…….”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이현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길고 긴 승부,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승부가 지금 그들의 앞에서 마침내 종착에 다다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승부의 결과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제 눈가를 훔쳤다. 그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눈물인지, 아니면 빗물인지 이현수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자꾸만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낄 뿐이다.
‘회주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지켜보는 이들조차 한계를 느끼는, 이 전투의 끝에 선 저 두 사람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저곳에 누워 있을까?
차갑다.
몸에 닿아 흘러내리는 빗물이 더없이 싸늘했다.
꾸욱.
그 순간, 그의 팔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이현수의 시선에 최연하의 얼굴이 들어왔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차가운 비를 맞으며 버티느라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을 한 최연하의 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최연하는 그저 입술을 악문 채 버텨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정신이 퍼뜩 들었다.
“회주님…….”
이현수가 홀린 듯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승부는 끝났다.
그 승부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저 둘은 더는 저 전투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가.
저 차가운 빗속에 쓰러져 있는, 자신들의 회주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현수의 발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단 한 걸음. 그게 지금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였다.
이현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알고 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 무인의 자존심이니, 승부의 신성함이니 하는 것은 적어도 이현수에게 있어서는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만 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현수가 선뜻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이 승부에 대한 경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강진호 때문에.
그가 지금 다가가는 것을 강진호가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누구보다 먼저 저곳으로 달려가야 했을 장민도, 이 승부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아야 했을 바토르도, 이 승부가 총회에 줄 영향을 걱정해야 했을 방진훈마저도.
그저 넋을 놓은 채 쓰러진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긴 침묵.
빗소리만이 세상을 채운다. 침묵이되 침묵이 아닌, 고요하되 고요하지 않은 시간의 끝에…….
“아…….”
이현수는 보았다.
쓰러져 있던 강진호가 천천히 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말이다.
이현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계속 입을 열고 있으면 오열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이미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지만, 꼴사납게 울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세상에서 비척이며 몸을 일으킨 강진호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상. 지평선까지 그저 뻗어 있기만 한 세상 속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울컥함을 불러일으켰다.
“……회주님.”
뭐라 말해야 할까?
살아줘서 고맙다?
아니면 승리해서 다행이다?
글쎄, 아니겠지.
그들이 할 수 있는 말 같은 건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니까.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진호가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는다.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흑왕을 안아 든다.
“…….”
축 늘어진 흑왕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곳의 모두는 이 승부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쁨이나 아쉬움은 내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여 검은 대지를 바라본다.
건너편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십이비도들마저도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강진호는 한동안 자신이 안아 든 흑왕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강진호를 본 이현수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서글프다.
이상하게 서글펐다.
강진호가 작아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언제다 커다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강진호가 자신보다 더 작아 보였다.
천천히 그의 앞까지 다가온 강진호를 이현수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엉망이 된 얼굴.
하지만 부어오른 두 눈 사이로 보이는 강진호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회…….”
이현수가 입을 닫아버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말을 꺼내는 것은 그가 아니라 강진호여야 한다.
그때.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강진호의 입이 열렸다. 쉬어버린 듯한, 아니, 바래 버린 듯한 강진호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와 이현수에게 전해져 왔다.
“……이현수.”
이현수의 어깨가 짧게 떨린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현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회주님. 여기 있습니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제가 안고 있는 흑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내 그 시선은 먹구름이 가득 껴 있는 하늘로 향했다.
“그럴싸하게 대답했다.”
“…….”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현수는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고개는 격하게 끄덕여졌다.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 그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니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네게 묻고 싶다.”
“……예, 회주님.”
강진호가 잠시 머뭇거린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강진호의 갈라진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의미가 있었을까?”
“…….”
이현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있던 죽음이, 우리가 한 모든 것들이…… 정말 의미가 있었을까?”
이현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말에 실린 것들이 너무도 무거워서.
이건 그저 논리만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을 얻었을까?
이 하룻밤의 기나긴 승부로 그들은 대체 무엇을 얻어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저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지어내 면피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사선을 넘어 지금 그의 앞에 선 이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가.”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죴다.
마치 이현수가 그런 대답을 할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이 조금은 어색하게.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건…….”
이현수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이제부터 찾아가야 하는 거겠죠.”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저 담담하게만 보이는 그의 눈빛이 이현수의 눈에는 그저 서글프게만 보였다.
“……그래, 그렇겠지.”
강진호가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딱히 다르지 않았어.”
“…….”
강진호가 눈을 감는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청마는 제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강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서로의 입장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가진 애증에 함몰되면서도 그들의 손끝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모독할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를 관철하는 승부. 그 승부에 있어 양보는 있을 수 없다. 그건 승리한 이가 걸어가야 할 길조차 망치는 일이니까.
“어쩌면 지금 이곳에 쓰러져 있는 건 나였을 수도 있겠지.”
“……회주님.”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쏟아붓던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승부를 가른 건…… 딱히 별게 아니야.”
먹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살아 돌아오고 싶었다.”
“…….”
“청마에게 있어서 삶이란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내게 있어서 삶이란 돌아오고 싶은 것이었다. 그저…… 그래, 그저 그 차이로 갈린 것뿐이야.”
그 작은 의지가 그의 심장을 파고들던 청마의 손을 막아냈다.
실낱같은 승부를 가른 것은 그저 그것뿐이었다.
“내게는 있지만, 청마에게는 없었을 뿐이야. 돌아갈 곳이라는 게…….”
“회주님…….”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누구도 그 목소리에 어린 감정마저 담담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강진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힌다.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네.”
조금은 처연하지만, 그저 밝은 미소. 조용하다는 말이 어울릴 듯한 미소를 지은 강진호가 그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돌아왔어.”
“…….”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차마 강진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조금만 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먼저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현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굽힌 허리를 폈다.
그에게는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조용히 웃고 있는 강진호를 마주 본 이현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잘…….”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잔기침을 뱉어낸 이현수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웃음을 지었다.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웃음을.
“잘…… 돌아오셨습니다, 회주님.”
“…….”
“정말…… 정말 잘…….”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본다.
딱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전투는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건 지금 그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의 목을 감싸 안는다.
“……어.”
덜덜 떨리는 팔.
뒷목에 닿은 뜨거운 숨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기에는 말이다.
“이…….”
강진호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망할…… 망할 인간아…….”
최연하가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는다.
“……잘 돌아왔어.”
“…….”
“정말 잘…….”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에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다. 이기고 돌아온 이에게 비춰야 할 광명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해졌을까?’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은 최연하에게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어느새 한 발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이현수에게서 전해지는 체온도 그저 따뜻했다.
‘청마.’
전해졌을까?
그가 마지막 순간에 청마에게 전하려 한 것은…… 정말 그에게 전해졌을까?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청마를 바라본다.
핏기 없이 새하얀 얼굴.
싸늘하게 식어버린 몸.
하지만 강진호는 볼 수 있었다. 끝을 맞이한 청마의 입가에 옅게 어려 있는 작은 미소를.
그 언젠가 그들 둘이 서로 술잔을 마주하던 그날, 그가 지은 것 같은 그저 따뜻한 미소를 말이다.
‘……편히 쉬어라.’
강진호의 손이 청마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가 이들에게 느낀 따뜻함이 청마에게도 전해지길 그저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