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1
#210.
창업하다 (5)
“커피보다 사진 한 장 더 찍어주시면 안 돼요?”
“……안 됩니다.”
“그러지 마시구요.”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대체 사진이 왜 그리 많이 필요한 겁니까?”
“팬심?”
“……연예인도 아니고.”
“그리고 필요해서요.”
“네?”
여자가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가방 안으로 손을 넣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저, 이런 일 하는 사람이거든요.”
강진호는 명함을 받아 들고는 가만히 읽었다.
명함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재인’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일러스트?”
“네. 정확하게 말하면, 돈 되는 그림은 다 그리는 사람이에요. 요즘은 웹소설 쪽 표지 그리고 있어요.”
강진호가 보기에는 색다른 직업이었다.
“그런데 그거랑 제 사진이 무슨 관계인가요?”
“보실래요?”
이재인이 노트북을 강진호 쪽으로 돌리더니, 그림 파일을 열었다.
“…….”
강진호는 아연한 얼굴로 그림을 바라보았다.
비를 맞으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남자의 얼굴이 강진호와 꼭 닮아 있었다.
“초, 초상권.”
“커피 팔아드리잖아요! 하루에 세 잔씩! 하루에 만 오천 원! 한 달이면 사십오만 원! 일 년이면 오백사십만 원! 어디서 일반인에게 이만한 초상권을 지불하겠어요!”
“아버지! 아까 서비스 커피 취소요!”
“다 뽑았어, 인마!”
강유환이 빙그레 웃으며 커피를 가져와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니 일 년이면 정말 큰돈이네요.”
“사장님! 쿠폰이라도 좀 만들어주세요. 열 잔 중에 한 잔은 공짜로 먹게요.”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이재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요즘 돈을 좀 벌어서 커피 값은 댈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덕분에요?”
“네. 사실 표지를 하다 보면 남자를 얼마나 멋지게 그리는가가 중요하거든요. 제가 로맨스 쪽 표지를 주로 하다 보니까요, 그동안 그림은 잘 그리는데 남주가 매력 없게 생겼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쪽 얼굴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좀 세게 불러도 다들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단점도 생겼지만요.”
“단점?”
이재인이 시무룩한 얼굴로 웹 사이트를 켜서 댓글을 보여주었다.
= 와, 표지 대박! 금손님이 이번에도 일 저지르셨다.
= 남주 퀄리티 봐! 진짜 팬 될 기세. 내가 살다 살다 표지 덕질을 하게 될 줄이야.
= 그런데 이분은 여기도 출연하시네?
= 희대의 바람둥이 납셨다. 최근 잘나가는 로맨스 세 작품에 모조리 출현 중이심.
= 과로사할 기세.
“남주가 다 똑같이 생겼대요.”
“…….”
그야 똑같이 그렸으니까.
강진호가 한참 동안 댓글을 읽고 나자 이재인이 사정을 설명했다.
“그래서 사진이 필요한 거예요. 좀 다양한 각도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저번에 DSLR로 찍으려니까 거부하셔서 이렇게 폰카라도 여러 개 찍으려구요.”
“그러시군요.”
어느새 자리까지 잡고 앉아서 이재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유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남주가 똑같이 생겼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단순히 그림이 같아서가 아니라 표정이 다 똑같아서 그런 것 같은데요?”
“그게…… 어쩔 수가 없어요.”
이재인이 시무룩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갤러리를 열었다. 거기에 ‘울 모델님’이라고 써져 있는 폴더를 열자 강진호와 함께 찍은 이재인의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사진을 클릭하고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강유환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하, 합성인가?”
이재인의 옷과 포즈는 매번 달라지는데, 강진호는 마치 빈 칸에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동일한 표정과 동일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필 입은 옷도 유니폼이다 보니 정말 복붙을 한 듯 똑같았다.
“이럼 사진을 찍는 의미가…….”
“그러니까요!”
이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진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제가 사람 얼굴 똑같이 그린다고 비난받는 이유는 다 강진호 씨 때문이에요!”
“그렇다! 이건 너무 심했다!”
“아니…….”
강진호는 매우 억울했다.
“그냥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같이 찍어드린 것뿐인데…….”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그리 무표정해요?”
“그래, 인마! 내가 애비지만, 한 번씩 너 얼굴 볼 때마다 섬뜩해, 인마!”
“…….”
“사과하세요!”
“미, 미안합니다.”
얼떨결에 강진호가 사과를 하자 이재인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농담이에요. 덕분에 잘 먹고살고 있어요. 제가 감사를 백번 드려도 모자라죠.”
“에이, 그건 아니죠.”
강유환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 본인이 잘 그리셔서 그러신 거죠’ 정도의 공치사를 기대하던 이재인이지만, 그녀는 강유환을 너무 몰랐다.
“솔직히 쟤가 지 얼굴에 대해 한 게 뭐가 있습니까? 다 제가 잘 낳아준 덕이죠.”
“……인정합니다.”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재인을 보며 강유환이 빙그레 웃었다. 강진호를 돌아본 강유환이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호야.”
“예.”
“이분은 우리 가게의 VIP 단골손님이시다!”
“……네?”
강유환의 얼굴은 단호했다.
“계속 같은 얼굴을 그려서 그림 못 그린다는 말이 나오면 수입이 줄어들겠지!”
“맞아요!”
“그럼 커피 사 먹을 돈이 없어지는 거다!”
“맞아요!”
“그럼 우리 가게 매출이 줄어든다! 나는 그 꼴을 절대 두고 볼 수 없어!”
“지당하십니다, 사장님!”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너, 저쪽에서 좀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어보거라!”
“잘 찍겠습니다.”
“……이게 무슨.”
강진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혼이 빠진 얼굴로 강진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강유환이 빙그레 웃으며 시원한 탄산음료를 얼음 잔에 채워 내밀었다.
“수고했다.”
“……왜 CF 하나 찍고 그 많은 돈을 받는지 알 것 같아요.”
포즈를 취하고 표정을 바꾸는 것이 이리 힘든 일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재인은 자신의 DSLR을 들여다보며 배부른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했을 강진호의 다양한 표정이 담긴 사진들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 이건 표지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물 같은 물건이죠. 제가 모델료를 드려야 하는데…….”
“커피만 드셔주셔도 충분합니다.”
아버지.
고생은 제가 하고 생색은 아버지가 내시는 듯한 건…… 제 기분 탓이죠? 그렇죠?
“정말 감사드려요.”
이재인이 쪼르르 달려와 강진호의 손을 꼭 잡았다.
“제가 이번에 돈 받으면 꼭 보답할게요!”
“괜찮습니다.”
“아뇨. 사람이 은혜를 알아야죠.”
강진호는 이재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말았다. 이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일을 향한 열정이 느껴진다. 그것도 아주 순수한.
그래서 보고 있기만 해도 힘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 시간 봐. 오늘 처리할 거 마치고 해 지기 전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한밤 되어야 들어가겠네.”
이재인이 다급한 손길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뭔가 손이 조금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보기가 좋았다.
가방 안에 DSLR과 노트북 등을 때려 박다시피 하고 가방을 멘 이재인은 마치 아이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책가방을 짊어진 것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꼭 멋지게 그려 드릴게요.”
“별말씀을요.”
“그럼!”
이재인이 종종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가자 강유환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참 보기 좋네.”
“그러게요.”
“저런 딸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은영이는요?”
“……그건 내 딸이기는 한데, 영 귀여운 맛이…….”
“은영이한테 이를 겁니다.”
“케이크 먹을래? 닭 시켜줄까?”
치느님은 언제나 진리인 법이다.
* * *
“아버지는 친구들 좀 보고 갈 테니까, 너는 알아서 집에 들어가라. 차 안 타고 왔지? 바래다주고 싶은데, 시간이 좀 빠듯해서.”
“요 앞인데요 뭐. 걸어가죠.”
“살인 사건 났다잖아. 택시 타고 가!”
“살인범이 절 노릴까요?”
“…….”
그렇지는 않겠지.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강진호가 카페에 출입하고 나서부터 진상 손님이 극도로 줄었다. 여자 손님은 강진호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착하게 굴었고, 남자 손님들은 강제로 분노 조절 장애가 치료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야.”
“조심할게요.”
“여튼 알았다. 그럼 나는 간다.”
아버지가 가게 문을 닫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술 먹고 운전하지 마세요. 음주 걸리시면 차 팔아버릴 거예요.”
“……뭔 놈의 집에 경찰관이 있어?”
아버지가 너스레를 떨고는 손을 흔들며 차를 몰아 나갔다.
강진호는 아버지의 차가 저 멀리 가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살인 사건이라…….’
확실히 길가에 사람이 줄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과거 그가 중원에 있을 때는 사람이 죽는다는 일이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사건이었다. 웬만큼 연쇄살인이 터지지 않고서야 여느 집이 도둑을 맞았다는 것과 딱히 다르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만큼 쉽게 쉽게 사람이 죽어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살인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강진호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금 유별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잘못된 건 이 사람들이 아니라 강진호 자신이라는 것 역시도 인지하고 있었다.
강진호가 그들에게 맞춰야 하는 것이다.
아파트 사이로 나 있는 산책로에 접어든 강진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산책로에 진입하기 전에 흡연하는 곳이 있던것 같…….
그 순간, 강진호의 움직임이 멈췄다.
‘피 냄새?’
아주 미약하다. 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진다. 저 산책로의 안쪽에서 피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강진호가 꺼냈던 담배를 주머니 안으로 쑤셔 박으며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쪽인가?’
피 냄새가 난다고 해서 꼭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피 냄새가 풍겨온다면 출혈이 엄청나다는 뜻이다.
강진호는 지체 없이 길가에 있는 수풀 안으로 몸을 띄웠다.
저 안쪽에서 피 냄새가 풍겨오고 이었다.
하지만 수풀 안쪽의 쉼터에 당도했음에도 흔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공원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후, 강진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아니다.
눈.
풀려 버린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듯 멍하게 말이다.
이 눈은…….
조금 전까지 생기를, 그리고 열정을 담고 있던 눈이었다.
그 눈이 이제는 아무것도 담지 못한 채 멍하니 풀려 있었다.
목에 걸려 있는 DSLR은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었다.
강진호는 멍하니 손을 뻗어서 DSLR의 스위치를 켰다.
카메라 뒷면의 액정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는 사람이다.
알 수밖에 없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자는 강진호 자신이었으니까.
강진호는 이 사람이 변을 당하기 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즐거웠겠지.
어서 집으로 돌아가 이 사진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카메라를 보고 또 봤을 것이다. 거의 닳아버린 배터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핏기 없는 얼굴로 공원 정자의 지붕에 거꾸로 걸쳐져 있었다.
하늘하늘 뻗은 손은 너무도 창백하다.
한 점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재인.
조금 전까지 그의 카페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이재인이 창백하게 바래져 버린 시체가 되어 지금 이곳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제가 이번에 돈 받으면 꼭 보답할게요!”
“으…….”
천천히 떨리던 강진호의 몸이 마치 칼바람을 만난 사시나무처럼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분노한 짐승처럼…….
강진호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