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13
#2112.
바라보다 (2)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날카로운 맹수(?)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왈! 왈!
강진호의 기척을 들은 동동이가 가공할 속도로 돌진해 온다.
“다친다.”
강진호가 재빨리 손을 뻗어 무릎을 향해 달려드는 동동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동동이가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들며 강진호의 얼굴을 핥아 대었다.
살짝 동동이를 떼어네 엄근진한 표정을 지은 강진호이지만, 그래도 좋다고 헥헥대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그래, 오랜만이다.”
새삼스레 이런 맛 때문에 개를 키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왔어?”
“네.”
강진호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가자 백현정이 나와 강진호의 등을 두드려 댄다.
“퇴원을 했으면 집에 와야지, 또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들어와! 병원에서는 어제 퇴원했다고 하던데!”
“……잠깐 들를 데가 있었어요.”
“최연하 씨 집에 있었니?”
“아니요. 그, 회사에 잠깐…….”
순간, 백현정의 눈이 극도로 가늘어진다.
“……넌 무슨 회사에 꿀 발라놨어? 아직 젊은 애가 왜 그렇게 회사를 못 가서 안달이야?”
“바쁘게 할 일이 좀 있었어요.”
“항상 바쁘지, 항상! 퇴원을 해도 다 나은 게 아닌데, 우선 몸부터 관리해야지!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조심할게요…….”
백현정이 도끼눈을 뜬 채 강진호를 흘겨보다가 피식 웃었다.
“밥부터 먹자.”
“우선 씻고요.”
“반찬 식는다. 밥부터 먹어.”
“……네.”
강진호가 더는 군말을 하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그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버지랑 은영이는요?”
“네 아버지는 오늘 좀 늦으실 거야. 가게에 수리할 게 좀 있다고 하시더라.”
“제가 가봐야…….”
“앉아.”
“넵.”
백현정이 가스레인지를 켜 국을 데우며 말했다.
“은영이는 오늘 연습이 있는 모양이더라.”
“연습이요?”
“그래. 곧 다시 활동한다고, 준비 막바지라 바쁘다고 하더라. 누구 덕분에 한참 연습해야 할 기간에 연습을 제대로 못 했다고.”
강진호의 얼굴에 어색함이 피어났다.
그 누구가 누구겠는가. 당연히 자신이지. 그가 깨어났을 때, 강은영이 최연하와 함께 소파에서 자고 있던 모습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강진호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은 제가 풀게요.”
“앉아.”
“……네.”
강진호가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백현정이 들고 온 밥과 국을 강진호 앞에 내려놓았다. 미리 차려놓은 반찬들이 꽤 거창하다.
“엄마가 밥하는데 자식 놈이 앉아서 기다리는 건 버르장머리가 없지?”
“조금…….”
“괜찮아.”
백현정이 의자를 빼 강진호의 건너편에 앉으면서 빙긋 웃었다.
“우리 아들내미는 버릇 좀 없어도 돼.”
“네?”
“잘나서 그런 게 아니야. 내 아들이니까 그래도 돼.”
“…….”
백현정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다른 어른들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 그런데 엄마한테는 좀 그래도 돼. 그게 엄마잖아.”
“그래도 좀…….”
“어허.”
백현정이 다시 눈을 가늘게 뜬다.
“내가 불편해. 효도라는 게 별게 아냐. 부모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게 효도지. 안 그래?”
강진호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네 밥 차려줄 날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장가가면 네 밥은 네가 차려 먹어야지. 이제 곧 갈 것 같던데.”
“예?”
“아냐?”
“…….”
강진호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맞고 그르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에 그가 저지른 일 덕분에 이런 일련의 결정에 대한 권한은 모조리 최연하에게 넘어갔다. 강진호는 목줄 잡힌 강아지처럼 최연하가 하는 대로 끌려가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대답하기 어려울 수밖에.
“……진호야.”
“네.”
“우리 아들 참 똑똑하고 다 좋은데…….”
백현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면으로는 어쩜 이리 한심할까.”
“아, 아니…….”
“물론 좋은 거지. 가정적인 것도 좋고, 애처가인 것도 좋고, 여자 친구 기 살려주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백현정의 얼굴이 조금 뚱해졌다.
“엄마 입장에서는 좀 복잡하달까? 기껏 키워놓은 내 자식이 남의 자식한테 구박받으며 사는 걸 잘한다고 해줘야 하니.”
“구박 안 받아요…….”
“퍽이나 그러겠다.”
백현정이 세상 한심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여하튼 엄마는 그래요. 곧 남의 남편 될 자식 놈, 지금이라도 내가 밥이라도 떠 주고 싶고 그런 거지.”
“…….”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던 강진호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은영이는 그럼 지금 엄청 바쁘겠네요.”
“응? 그렇지. 바쁜데…… 걔도 나름 걱정이 많은 모양이더라.”
“왜요?”
“요즘 분위기가 워낙에 흉흉…….”
말을 하던 백현정이 입을 닫고는 슬쩍 강진호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괜찮아요.”
백현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예전에는 이렇게 말이 헛 나오는 일이 잘 없었는데.”
미안한 표정을 지은 백현정이 강진호를 재촉한다.
“엄마가 말이 너무 많았네. 얼른 밥 먹어.”
“예.”
강진호가 숟가락을 들었다.
“진호야.”
“네?”
“너무 신경 쓰지 마.”
강진호가 말없이 백현정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엄마한테는 그냥 내 아들일 뿐이야. 그렇지?”
“네, 당연하죠.”
“그래.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야.”
“…….”
백현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만약에 진호가 그…… 무인인지 뭔지 하는 그쪽 사람이 아니었다면, 엄마도 뉴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겠지. 무섭다. 겁난다. 우리 애들이 괜히 마주쳐서 다치면 어떻게 하지?”
“…….”
“그래, 분명히 그런 걱정을 했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이잖니.”
“예, 어머니.”
“그러니까 이해하게 되는 거지. 우리 애는 어디 가서 괜히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고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
“그런데 나만 엄마는 아니잖아. 그 무인이라는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아, 물론 엄마가 애쓰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래, 그렇지?”
백현정이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사람이라는 건 그렇게 딱딱 끊어져서 살지 못한단다. 나눌 수 있을 것 같아도 나눌 수 없는 게 사람이거든.”
“……예.”
“그러니 항상 생각하렴. 이건 너희만 하는 싸움이 아니라는 걸.”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예. 항상 생각할게요.”
“그래. 얼른 밥 먹어.”
“네.”
식사를 마친 강진호가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은 강진호가 가볍게 몸을 씻고는 미리 물을 받아둔 욕조 안으로 들어간다.
“후…….”
씻지 않아도 노폐물이 쌓이지 않는 몸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꼭 청결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몸이 나른하게 풀리는 감각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목까지 물 안으로 밀어 넣은 강진호가 고개를 젖혀 욕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좋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던 와중인데,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니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물을 끼얹은 강진호가 제 얼굴을 조금 거칠게 비벼 댄다.
“하던 대로 하면 된다라…….”
강진호가 작게 웃었다.
“고마운 말이네.”
그 말에 참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 그리고 강진호가 앞으로도 잘못된 길을 걷지 않을 거라는 신뢰.
그걸 느끼고 나니 강진호도 스스로에 대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자신은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 강진호이지만, 그의 주위에 있는 이들은 믿을 수 있으니까.
“우리만 하는 싸움이 아니다라…….”
그 말 역시 고마운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강진호를 조금 더 힘낼 수 있게 해준다. 가족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는, 가장 소중하고도 든든한 존재다.
그 한없는 따뜻함이 없었더라면, 강진호도 이미 수없이 지쳐 쓰러졌겠지.
다만…….
“후우.”
좋은 말이다. 그래,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좋은 말들을 듣고 있자면, 새삼스레 깨닫게 되어버린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서로 간의 조율을 해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는 그냥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능할까?’
이해라는 적은 강진호가 지금까지 싸워온 그 어떤 적보다 난해하고 거대하다.
특히나 강진호에게는 말이다.
“우습잖아, 청마.”
강진호가 작게 키득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고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극단까지 가버렸지. 우리는 이해에는 영 재능이 없는 놈들이잖아.”
청마가 웃어 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서로 이해시켜야 하다니. 이건 좀 과한 농담이지.”
강진호가 욕조에 머리를 기댄다.
“……과한 농담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금의 차이를 두고서도 서로 반복하고 의심하고 싸워 댄다. 그런데 무인과 평범한 사람이라는 그 극단적인 차이를 좁혀낼 방법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이건 그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서글픈 사실은 달아날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이제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이건 청마가 그에게 주고 간 커다란 선물인 동시에, 끔찍한 족쇄였다.
“망할 놈 같으니…….”
강진호가 눈을 감는다.
‘지배하는 데는 너 혼자면 되지만…… 다스리는 데는 내가 필요하다고 했나?’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긴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자연히 한 가지 가정이 떠오르고 만다.
“……네가 지금 옆에 있었으면 물었겠지,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너는 알았냐고.”
알았다고 한다면?
그 얼굴에 한 방 먹여줬을 것이다.
몰랐다면?
그래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래서 내가 항상 말했잖아.”
강진호가 한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덮었다.
“너는 언제나 나를 좀 과대평가한다고 말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대단한 놈이 아니라고.”
강진호에게 화합이라니.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이야긴가. 그는 눈앞에 있는 적을 쓰러뜨리고 죽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다들 너무…… 날 대단하게 본다니까.”
나직하게 웃어버린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이해라…….’
정말 그런 날이 올까?
무인과 평범한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결국 서로를 존중하게 되는, 그런 날이 정말 올까?
강진호의 머리가 천천히 물 안으로 침전해 들어간다.
깊이 또 깊이.
어지러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