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3
#212.
분노하다 (2)
“뭐 좀 나왔어?”
차인철의 말에 구영돈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깨끗해요.”
“……깨끗?”
“예.”
구영돈이 한숨을 쉬었다.
“CCTV부터 시작해서 현장을 핥듯이 뒤졌는데, 지문 하나, 머리카락 한 올 안 나왔어요. 흔적 자체가 없어요.”
“그 산책로 CCTV에 아무도 찍히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돼? 뭔 귀신이 왔다 갔어, 인마?”
“실제로 안 찍힌 걸 어쩌겠습니까? 피해자가 딱 사각으로 들어가는 시점 이후로 화면에서 사라졌다구요. 그전에 미리 들어간 사람도 없어요.”
“썩을.”
차인철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한 것이 아니다. 이 일이 더 큰일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저번이랑 완전히 동일합니다. 연쇄살인 맞는 것 같아요.”
“……이제 죽어라고 깨질 일만 남았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동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났으니, 언론이고 상층부고 할 것 없이 그들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은 콩처럼 볶아댈 것이 빤했다.
살인범은 당연히 잡아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테지만, 마음이 다급해진 윗선에서 직접 컨트롤을 하겠답시고 설쳐 대면 일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현장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도 못한 윗대가리들이 말도 안 되는 조사를 지시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게 됐어.”
차인철이 한숨을 쉬었다.
“특수팀 생기겠죠?”
“아마 그렇겠지.”
차인철이 넌지시 물어왔다.
“걔는 어떻든?”
“걔요?”
“그 있잖아, 최초 발견자.”
“……선배님, 그만 좀 하십시오. 가게하고 그 앞쪽 CCTV까지 다 회수해서 확인했습니다. 사건 발생 시간에 강진호는 매장에 있었다구요.”
“확실해?”
“안 확실합니다. 모르죠. 강진호가 가게 CCTV와 가게 앞 CCTV를 모조리 조작했을지두요!”
“많이 컸다? 비꼴 줄도 알고?”
“걔는 진짜 아니라구요.”
구영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배님이 그리 의심하시면 보통은 제가 하늘이 노랗다고 해도 한 번쯤은 찔러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아니에요. 얘는 깨끗하다구요.”
“알았어, 새끼야.”
차인철이 역정을 내자 구영돈이 목을 움츠렸다. 저 더러운 성격에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 구영돈이 욕을 먹기 전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범인이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저지르는 놈은 처음 봤습니다.”
“……둘 중 하나지.”
“예?”
“완벽한 계획하에 범행을 저지르는 지능범이거나…….”
구영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진짜 개싸이코인 거다.”
“처음은 이해가 가는데, 두 번째는 이해가 안 가는데요?”
“말해줘도 너는 몰라.”
“매번 그렇게 말을 안 해주시니까 제가 계속 모르는 거 아닙니까. 부사수 키우는 게 사수의 임무 중 하나 아닙니까?”
“지랄한다.”
차인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뒤편에 마련된 흡연 구역으로 간 차인철이 담배 한 대를 빼 물었다.
찰칵.
불을 붙인 차인철이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뿜었다.
‘뭔가 있을 건데…….’
강진호가 뭔가를 숨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제 의심의 영역을 넘어 확신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차인철은 자신의 입장 역시 확실히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경찰이 증거 하나 없이 심증만으로 사람을 몰아붙일 수는 없다.
그리고 강진호의 알리바이는 그가 봐도 확실했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관해서는 강진호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큰일일지도 모르지.’
맹수가 가장 잔인하고 흉포해질 때는 굶주렸을 때가 아니다. 다른 맹수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다.
차인철은 고개를 저어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불안한 생각들을 애써 떨쳐 내려 했다. 너무 앞서갈 필요는 없다. 지금은 증거와 증인을 확보하여 범인에 대한 수사망을 좁히는 것에 주력할 때였다.
* * *
“진호야, 밥은?”
“오늘은 괜찮아요.”
“그게 뭔 소리야! 이럴 때일수록 밥 먹고 힘을 내야지!”
“……네.”
상황을 알게 된 어머니가 강진호를 걱정해 주었다. 문제는 그 걱정의 방식이 조금 엇나가 있다는 것이었다.
밥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는 강진호의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더 많아 보이는데요?”
“원래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먹어야 해. 아니면 살이 쪽 빠진다. 지금도 말라서 볼품없는데, 거기서 살이 더 빠져 봐.”
“말라요?”
제가?
강진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군살이 없는 몸이라 어찌 보면 살짝 여리여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옷 안에서 밀도 높게 촘촘히 들어찬 근육들이 지금이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듯 약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르다니.
어머니가 자식을 보는 눈은 대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단 말인가.
“얼른 먹어라. 출근해야지.”
“예.”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식탁에 앉았다.
별다를 것 없는, 예전 같은 아침이었다.
“어서 오세요.”
강진호는 드물게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살인 사건이 연쇄살인 사건으로 번진 것은 단순히 단어가 바뀌는 정도 이상의 파급력을 가져왔다. 대낮임에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극히 줄어든 것이 느껴진다.
특히나 여성 손님의 비율이 높은 카페 같은 경우는 그 한산함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처럼 강은영이 출근했다면 남자 손님들이라도 자리를 채웠겠지만, 지금 강은영은 드라마에 집중하기 위해 더 이상 카페에 나오고 있지 않았다.
“진짜 연쇄살인일까?”
“방식이 비슷하다잖아.”
“그런데 이렇게 큰일인데, 언론에서는 왜 이리 잠잠하지?”
“보도는 했다는데, 쉬쉬하는 것 같아. 이 동네가 극성이잖아. 괜히 소문 크게 퍼져서 땅값이라도 떨어진다면 들고일어날 사람이 한둘이 아닐걸?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렇긴 하겠다.”
강진호가 자리에 앉은 두 여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아메리카노하구요……. 너는 뭐?”
“나는 라떼.”
“카페라떼 한 잔 주세요.”
“둘 다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아뇨. 시원하게요.”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주문을 받고 돌아서려고 하자 가까운 쪽에 앉은 여자가 강진호를 불렀다.
“저기요.”
“네?”
“이번에 그 살인 사건 피해자가 그날 여기에 왔다는 게 사실이에요?”
“…….”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여기 단골이었다던데요?”
“글쎄요.”
두루뭉술하게 둘러댄 강진호가 몸을 돌려 카운터로 향했다.
‘가십인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저들에게 있어서 그런 일은 그저 흘러가는 가십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강진호 역시 TV 속에 나오는 살인 사건 하나하나에 동조해서 슬퍼해 주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와 엮이지 않은 일이었다면 그 역시 저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짤랑.
그때,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몰렸다.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만큼 고풍스러운 복장과 땋아 올린 머리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에 익숙한지 여럿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그녀가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걸어 들어와 강진호 앞에 섰다.
“자리에 앉으시면 주문을 받으러 가겠습니다.”
“강진호 씨.”
“…….”
강진호는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인을 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저는 강진호 씨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온 사람이에요.”
가만히 여인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일하는 중입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지 않겠어요?”
“일하는 중이라고 했을 텐데요.”
“그래요?”
단호히 거절을 했음에도 여인은 배시시 웃더니, 강진호의 바로 앞으로 슬쩍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고 싶지 않으세요?”
“…….”
“이번 사건, 범인이 누군지.”
“…….”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인은 강진호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한국 무도 총회에서 나온 이현주라고 해요. 이번 사건과 다른 사건들 때문에 강진호 씨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그녀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한 이상 강진호가 더는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
“일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강진호의 반응은 변화가 없었다.
“……이보세요, 강진호 씨.”
강진호의 손이 들리더니, 문 쪽을 가리켰다.
“음료를 드시러 온 것이 아니시라면, 죄송하지만 나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곳은 영업장이지, 개인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아니니까요.”
“…….”
이현주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제가 드릴 정보는 제가 아니면 얻으실 수 없는 정보예요. 이건 강진호 씨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제게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으시다면, 영업 끝난 뒤에 오세요.”
“이봐요! 강진호 씨!”
강진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제가 도와드리러 온 거라구요! 무슨 소린지 모르시겠어요?”
강진호가 천천히 손을 올려 앞치마를 벗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
“응?”
“저 잠시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오냐. 너무 늦지 마라. 아버지가 서빙하면 손님 줄어든다.”
“……예.”
강진호는 앞치마를 카운터 안으로 던져 놓고는 앞장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말 한마디 없이 밖으로 나가 버리는 강진호를 보며 황당한 얼굴을 한 이현주가 서둘러 따라 나갔다.
“이봐요!”
하지만 강진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옆쪽으로 가더니,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어두운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뭐하자는 거지?”
이현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무시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오기가 발동한 그녀가 지하 주차장으로 강진호를 따라 내려갔다.
‘여기 왜 이리 어두워?’
아무리 지하라고는 하지만, 대낮인데도 이 안은 과하게 어두운 느낌이었다. 이현주가 가볍게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찰칵.
어둠 사이로 불빛이 피어올랐다.
주차장의 한쪽 구석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대화를 하고 싶다고?”
이현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을 하려 했지만, 그녀의 입은 아교라도 칠한 것처럼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입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지?’
어둠 속에서 타들어 가는 담뱃불과 강진호의 눈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르다.
조금 전에 본 사람이다.
방금 전까지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건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조금 전까지 그녀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치…….
“대화?”
어둠 속에서 그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