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32
#2131.
돌아오다 (1)
미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닌 척해도 무인의 육성에 가장 관심이 많은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으니까. 사실 냉정히 따져 보면 국가의 주도로 무인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유일하게 실행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 아니던가.
그 계획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들의 무인에 대한 관심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서 총회의 무학과 강진호의 지도는 군침이 흐르는 미끼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강진호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으로 넘어가 무인이 될 이들을 지도하는 건 꽤 귀찮은 문제가 되겠지만, 이미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웬만큼은 책임을 지기로 각오한 강진호가 아니던가.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이건 무조건 남는 장사다.
하지만 문제는…….
“창왕의 마공이라니.”
강진호가 쓴웃음을 짓자, 고한봉이 슬쩍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미국이 진심으로 탐을 내는 건 그쪽인 것 같습니다.”
“…….”
“총회의 무학은 이미 회주님의 선언으로 전 세계에 풀리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물론 총회의 무학이라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더 좋은 무학을 얻어낸다고 해도 크게 차이를 만들어내기가 어렵겠죠.”
강진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창왕의 무학은 다릅니다. 창왕의 무학은 이미 그 위력에 대한 검증이 끝난 무학. 회주님의 무학과 더불어 현재 존재하는 무학 중 가장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된 무학입니다.”
“…….”
“그 창왕의 무학을 바탕으로 무인을 육성하는 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훗날 벌어질 군사력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흠.”
강진호가 담배를 길게 빨았다.
그러지 않으면 대놓고 웃음을 터뜨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짚었나?
그래,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정보력을 감안한다면, 강진호의 무학과 총회의 무학이 다르다는 것도 이미 파악했을 터. 그렇다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무학을 손에 넣고 싶었겠지.
미국의 요구도, 고한봉의 반응도 따져 보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강진호가 웃음을 참기 어려운 이유는 이현수가 부린 수작질 때문이었다.
‘미친놈 같으니.’
아무래도 미국은 창왕의 무학이 어떤 수준인지 파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공이 가진 특성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상한 일도 아니지.
총회 내에서는 워낙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 마공이지만, 사실 마공이라는 무학은 마교도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이현수가 먼저 제안을 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원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니 이 실장이 눈치 좋게 먼저 제안하는 방식을 취한 거겠죠.”
고한봉이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그가 한 말 떄문에 이현수에게 피해가 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현수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신 나간 놈.’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이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래였다. 어차피 지금의 흐름은 미국 단독으로는 막아내기 어렵다. 이미 트여버린 물꼬는 한 국가가 틀어막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중요한 것은 강진호가 총회의 무학을 세상에 풀어버리는 게 아니다. 평범한 이들에게 무학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 버렸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가지려 하지 않는가. 국가가 나서서 사람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세상에 범죄나 마약 같은 것은 이미 예전에 근절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억지로 틀어막아 봐야 무학이 음지화될 뿐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무학은 음지에서 돌고 있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음지화된 무인들은 지금까지의 무인들과는 달리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각국이 우려하던, 무인들에 대한 범죄와 테러가 미국에서만 벌어지게 되는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때, 미국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이제부터 펼쳐질 세상을 선도해 버리는 것이 낫다. 무학이라는 부문에서마저 확고하게 치고 나갈 수 있다면, 적어도 백 년간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이어질 테니까.
그리고 이현수는 이런 미국의 욕망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아마 강진호가 창왕의 무학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 측에 넌지시 흘린 것도 그 마귀 같은 놈이겠지. 저들이 욕심을 내 대놓고 강진호에게 그걸 요구하도록 말이다.
창왕의 무학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 세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테니까.
하지만…….
‘그게 독이라는 걸 알고 나면 이미 늦은 거지.’
마공이 가진 불안정성은 사실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역시 그 사실에 대해서는 웬만큼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미국은 총이 가진 문제 때문에 총기 사용을 두려워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강진호 역시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마공이 가진 또 다른 특성.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이가 그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미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어처구니가 없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현수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게 그가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끼를 내밈과 동시에 그들이 육성할 무인들에게 강진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덫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 미끼를 생각 없이 덥썩 물어버린 것이고.
미친놈이지 않은가.
대체 세상 어떤 놈이 미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평시도 아닌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도박을 걸 생각을 할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이현수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강진호는 가만히 앉아서 미국의 인력과 자본을 통해 자신의 사병과도 다름없는 이들을 육성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사병은 쓰이지 않는 쪽이 최선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회주님?”
“아!”
한 번 웃어버리고 만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총회도 돌아가면 이현수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받아들이겠다고 해주십시오.”
“정말이십니까?”
“받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창왕의 무학이 제게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고.”
창왕이 익힌 고위 마공들이 일반적인 마공에 비해서 우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만한 마공은 강진호에게도 썩어난다. 원한다면 며칠 걸리지 않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에게는 더없이 간절한 것이지만, 강진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기에는 최고의 패다. 그런데 뭘 망설이겠는가.
“다행입니다.”
고한봉이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말씀은 못 드렸습니다만…… 지금 몇몇 국가에서는 회주님의 행보를 무척 의심하고 있습니다.”
“의심이요?”
“예.”
고한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헤게모니를 선점하는 몇 개의 국가는 지금 회주님이 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초국가적인 무인 단체를 만들어내려는 의도에서 시행되는 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참…….”
“회주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실 줄은 압니다. 하지만 이건 저들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 국가 안에서 만들어진 군사력이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히나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다.
특히나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강진호가 벌이고 있는 모든 일들이 의심스럽고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회주님께서 손해를 감수하며 미국의 손을 잡기로 해주셨으니, 그런 우려는 불식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분명 강진호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고한봉의 말과는 다르게 강진호가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덕분에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리고 강진호가 아닌 이현수라면…….
‘아닌 척 시도하겠지.’
은근슬쩍 다른 나라들이 미국이 앞서 나가는 것을 경계하게 만들고, 그들 역시 마공을 탐내게 만들겠지.
민간에는 안정적인 총회의 무학을 배포하고, 국가에서 육성하는 전투원들에게는 좀 더 파괴적인 마공을 익히도록 유도할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합리적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강진호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이건 그조차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수많은 국가에서 경쟁적으로 육성한 마인들이 모조리 강진호의 통제하에 들어오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것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안전장치로는 이 이상의 것이 없군.’
토사구팽을 피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스스로 여전히 다른 사냥감을 잡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을 물어 죽이는 것.’
강진호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주인을 물어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를 솥에 넣으려면 그들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들어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강진호가 다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거면 되는 겁니까?”
“예, 회주님.”
“그럼…….”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잘 알아서 해주시리라 믿지만…… 이 대화는 며칠 기다렸다 전달해 주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강진호 역시 고민 끝에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을 내놨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자신들이 얻은 것에 대한 가치를 더 크게 매길 테니까.
“그리고 적당히 다른 것도 받아낼 것이 있다면 받아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혹시 모를까 봐 미리 협상 목록에 대한 리스트도 작성 중입니다. 그리고 음…….”
고한봉이 살짝 머뭇거리자 강진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주님!”
강진호의 협상을 빌미로 정부 역시 적당히 발을 끼워 넣어도 괜찮겠냐는 의미다. 강진호는 고한봉에게 그 정도 호의는 베풀 생각이 있었다.
애초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득을 보면 강진호 역시 이득을 보는 것이니까.
고한봉이 기꺼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회주님의 입장은 잘 포장해서 전달할 것입니다. 미국 역시 회주님의 의도의 선의를 이해할 것입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고한봉의 손을 마주 잡은 강진호의 손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