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36
#2135.
돌아오다 (5)
강진호가 천천히 눈을 뜬다.
한참 동안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방 한 켠에 나 있는 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밝아진 아침. 네모난 창에서 비쳐 온 햇살이 그를 감싸듯 침대에 드리워져 있었다.
천천히 이불을 걷은 강진호가 침대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켰다.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호가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빤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침이네.”
별다를 것 없는 하루.
별다를 것 없는 아침의 시작이었다.
“어서 앉아라.”
“…….”
방에서 나온 강진호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미묘하게 눈을 찌푸렸다.
“뭘 그런 눈으로 보고 있어? 내가 아침 준비하는 날도 있어야지.”
“아뇨. 그게 아니라…….”
“응?”
“아침 생각이 없는데. 그냥 나가도 되는…….”
“영원히 굶기 싫으면 그냥 먹어라.”
“……예.”
강진호가 시무룩한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때맞춰 벌컥 문을 열고 나온 강은영이 식탁과 강진호, 그리고 강유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나 그냥 출근…….”
“앉아.”
“……네.”
강은영도 시무룩한 얼굴로 강진호의 옆에 와 앉았다.
“아빠, 엄마는?”
“네 엄마는 준비로 바쁘시다.”
“아, 맞다. 오늘 엄마랑 아빠 제주도 여행 간다 그랬지?”
접시에 토스트를 담아 들고 오던 강유환이 눈을 확 찌푸렸다.
“그래 봐야 제주돈데, 뭐 저리 준비할 게 많다고 꼭두새벽부터…….”
“아빠, 쉿!”
“하지 마세요, 아버지.”
“……그래.”
강유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근 이런저런 사건이 많아 기분 전환차 여행이나 다녀오자고 한 건데, 이렇게 급격하게 일이 진행될 줄은 그도 몰랐다.
“여하튼 다녀올 테니, 우리 없는 동안 집 잘 지켜.”
“집을 내가 지키나, 동동이가 지키지?”
그때, 안방 문이 열리더니 백현정이 꽃단장을 하고 걸어 나왔다.
“우와, 우리 엄마 예쁜 거 봐.”
“얘는.”
백현정이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둘이서 가는 여행이야?”
“글쎄? 한 십 년쯤 됐나?”
“진짜 오래됐네. 아빠가 가자고 한 거야?”
그 순간, 백현정의 눈이 쫙 찢어졌다.
“네 아빠가 잘도 그러겠다! 진호가 예약해 준 거야!”
“헐…… 오라비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이 실장님이 시킨 거지?”
하지만 강진호는 태연한 얼굴로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시킨 건 나니까, 내가 한 게 맞지.”
“……다른 사람이면 내가 반박을 해보겠는데, 오라비가 생각해서 한 거면 인정해 줘야지. 그런데 왜 나는 안 해줘! 나는!”
“네 오빠 괴롭히지 마!”
“엄마는 나만 미워해!”
투닥대는 세 사람을 지켜보며 강진호가 빙긋 웃었다.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한, 하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 이 아침을 얻고 싶었다.
“먼저 일어날게요.”
“응? 벌써?”
“사실 오라비가 출근할 시간은 좀 지나긴 했지. 오늘 무슨 일 있어?”
“들러야 할 데가 있어서.”
강진호가 현관으로 향하다가 고개를 돌려 식탁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오라비,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
“늦으면 뒈진다.”
“……저 썩을 인간.”
강진호가 빙긋 웃고는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주차된 차까지 걸어간 강진호가 키를 꺼내려 할 때였다.
빠아아앙!
갑자기 울리는 커다란 경적 소리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옆쪽에 주차되어 있던 익숙한 사륜 구동이 그의 앞으로 와 멈춰 섰다.
“아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아침부터 여긴 왜?”
“간만에 사람이 고운 마음으로 출근시켜 주려고 왔더니!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네!”
“전화를 하지.”
“그러면 맛이 안 살잖아! 영화는 연출이 생명인 것 몰라요?”
“과연 대배우.”
“시끄럽고! 타요!”
“옙!”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보조석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앉은 최연하가 툴툴대듯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출근 안 해요?”
“아뇨. 들를 데가 있어서.”
“어딜?”
“음, 말로 설명하긴 그렇고…… 출발하죠. 가까우니까.”
“그럼 네비 찍어요.”
최연하가 휴대폰을 내밀자, 강진호가 말없이 최연하가 내민 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이 걸려도 강진호가 휴대폰을 받지 않자 최연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네비 못 찍어?”
“…….”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 영감탱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강진호가 시무룩한 얼굴을 하자, 최연하가 강진호의 볼을 꼬집어 당기고는 깔깔 웃어댄다.
“뭐, 어때.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러고 보니 주름 생겼던데.”
“뒈진다, 진짜.”
“…….”
이를 갈아붙인 최연하가 휴대폰을 들고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된다고요?”
“으…… 위장 아파.”
조미혜가 종이컵에 따라진 커피를 홀짝였다.
보온병의 뚜껑을 닫은 박유민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너무 기, 긴장하지 말고.”
“응, 오빠. 걱정하지 마.”
“치, 침착하게…… 침착하게 잘하면……. 그래, 침착만 하면…….”
“오빠가 시험 쳐? 왜 오빠가 더 떨어?”
“기, 긴장되니까 그렇지!”
“걱정도 팔자다.”
조미혜가 그런 박유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문젠가, 한진성, 그 인간이 걱정이지.”
“걱정도 팔자다. 나야 내가 알아서 하지.”
“그래, 니 인생 니가 알…… 뭐야? 니가 왜 여기 있어, 미친놈아!”
태연하게 대답을 하려던 조미혜가 격하게 고개를 돌려 뚱하게 서 있는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야, 이 미친놈아! 수능 포기했어? 삼수할 거야?”
“아, 나도 칠 거라고!”
“그런데 왜 여기 있어! 미쳤어?”
“아, 내 시험장은 바로 옆 학교라고. 저기잖아!”
“그, 그래?”
한진성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 나는 시험장 앞에서 응원 안 해주냐고, 나는! 사람 차별하는 거야? 이러다 삼수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삼수하면 쫓아낼 거야.”
“에이 씨.”
한진성이 툴툴거리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응원을 하기 위해 시험장 앞에 나와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준 한진성이 피식 웃고는 진지한 얼굴로 조미혜를 바라보았다.
“심호흡 좀 해.”
“누가 누굴 걱정해? 오빠나…….”
“알았으니까 심호흡 좀 해. 너 지금 긴장 너무 했어.”
“내가?”
“너 긴장하면 귀 만지거든. 아까부터 손이 귀에서 안 떨어져.”
조미혜가 어색한 얼굴로 제 귀에 닿아 있던 손을 슬며시 아래로 내렸다.
“여하튼 센 척은.”
“센 척은 누가 센 척이야! 처, 처음이라 그러지! 그러는 오빠야 말로 아까부터 자꾸 눈 깜빡거리잖아. 조금 있으면 입으로 심장 뱉겠는데?”
“……솔직히 죽을 것 같긴 하다.”
한진성의 하얗게 질린 얼굴로 초조하게 다리를 떨어 댔다. 이번에는 반드시 잘 쳐야 한다는 중압감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끙, 어쩔 수 없지. 여하튼 얼른 들어가. 시험장 분위기에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그럼 나는 간…….”
“잠깐만. 둘 다 여기 있어.”
“으응? 형, 왜?”
“잠깐만.”
박유민이 제 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고는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부우우우우웅!
시험장 앞쪽 도로로 낯익은 사륜 구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언니다!”
“……헐, 누나가 오네?”
끼이이익!
과격하게 브레이크를 잡은 차의 보조석이 열리더니, 최연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형!”
“오빠!”
예상치 못한 강진호의 방문에 한진성과 조미혜가 놀란 얼굴로 강진호를 향해 다가갔다.
강진호가 싱긋 웃으며 그런 두 사람을 마주했다.
“컨디션은?”
“모, 모르겠어. 정신이 없어서.”
“괜찮아.”
강진호가 담담하게 말한다.
“실력대로만 하면 돼. 준비 잘했잖아.”
“그, 그렇긴 한데…….”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준 강진호가 양손을 뻗어 둘의 이마를 살짝 짚었다.
“어?”
“아…….”
두 사람이 가볍게 몸을 떨고는 놀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잘 치고 와.”
“…….”
두근대던 심장이 진정되고, 무겁던 어깨도 가벼워졌다. 순식간에 평상시 상태로 돌아온 자신을 느낀 두 사람이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걱정 마, 형! 잘 치고 올게.”
“그래.”
강진호가 빙그레 웃어주자 두 사람이 살짝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시험장으로 향한다.
“언니! 파이팅!”
“오빠도 힘내!”
보육원의 아이들이 두 사람의 등에 대고 크게 소리칠 때, 강진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박유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고생했어, 진호야.”
“고생은 무슨. 그런데 너, 이거 계속했던 거냐?”
“계속은 아닌데…….”
박유민이 머쓱한 듯 제 코를 쓱 훔쳤다.
“아무래도 미혜랑 진성이는 좀 특별한 느낌이 들어서.”
강진호가 시험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가벼운 미소를 지어냈다.
“그렇긴 하지.”
확실히 저 두 사람은 보육원에서도 조금 특별하다.
그들과 친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 두 사람은 과거 박유민과 강진호가 보육원에서 한 일들을 이어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리고 이곳에 있는 아이들 중 누군가가 그 일들을 또다시 이을 것이다.
‘전해지는 거지.’
원장 수녀님이 그들에게 준 것은 그렇게 이 보육원에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자. 태워줄게.”
“아냐. 나 차 타고 왔어.”
“차를 샀어?”
“응.”
박유민이 헤헷, 하고 웃었다.
“이제 없으면 불편해서.”
“어머. 유민 씨, 차 뽑았구나?”
“아, 최연하 씨.”
최연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연애할 때는 없으면 불편한 면이 있지.”
“……그런 건 아니고요.”
박유민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안 그래도 차도 뽑았겠다, 오늘 저녁에 연습 끝나면 은영이랑 놀러 가기로 했…….”
그 순간, 강진호가 박유민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응? 진호야?”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
“진호야…… 그럴 때는 은영이를 일찍 보내라고 해야지.”
“아니. 네가 일찍 들어가. 내 동생이 더 위험해.”
“…….”
“다시 말하지만, 유민아, 고게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짜아악!
최연하가 강진호의 등짝을 후려치고는 뒷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여하튼 못하는 말이 없어. 유민 씨,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우린 먼저 갈게요.”
“말했다! 꼭 그래야 한다, 유민아! 지금도 안 늦었어! 다시 생각해 봐. 네가 걔를 몰라서 그래, 유민아!”
“아, 조용히 하라고! 왜 동생 혼삿길을 막아!”
“내 친구를 지켜야죠!”
강제로 보조석에 실리는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못 말린다니까.”
출발하는 최연하의 차를 보며 박유민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쩐지 늦게 들어온다고 하더라. 그 요망한 것이 누굴 홀리려고.”
“……이건 옛날에는 사람 같지도 않더니, 이제는 못하는 말이 없네.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유민아…….”
“야! 내가 헤어져 줄게. 나랑 은영이랑 빠져 줄 테니까, 그냥 니들 둘이 살아, 둘이!”
최연하가 소리를 빽! 지르며 액셀을 밟았다.
“응? 저건 뭔 차지? 일단 세…….”
“야! 이사님 차잖아, 이 미친 새끼야! 열어! 열어, 당장!”
“히익!”
경비를 서던 이들이 최연하의 차를 알아보고는 기겁하여 차단기를 올렸다. 최연하의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창을 내렸다.
“고생 많아요.”
“아닙니다, 이사님!”
“충성!”
그간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총회의 실질적인 서열 1위를 본 이들이 바짝 긴장하며 부동 자세를 취했다.
“회주님은 아직 안 오셨습니다!”
“오실 때, 가실 때! 즉각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그 순간,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차창 밖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 내 출결 보고하고 있었어?”
“어…… 회, 회주님.”
“계, 계셨네요?”
경비를 서던 이들이 그제야 강진호를 발견하고는 식은땀을 흘려 댔다.
강진호가 세상 허망한 얼굴을 하는 와중 최연하가 생긋 웃으며 두 사람을 치하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사님!”
“그럼.”
세상 다 잃은 얼굴을 한 강진호를 태운 채 최연하의 차가 앞으로 쭉 나아갔다.
“아니…….”
“뭐?”
“아, 아니, 왜…….”
“죽 쒀서 개 줄 일 있나! 미리미리 관리해야지! 잘 늙지도 않는 게 어디서 뭔 짓을 할 줄 알고!”
“…….”
“그러려니 해요, 그러려니.”
“…….”
“웃어.”
“예?”
“웃으라고.”
“…….”
강진호가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사님!”
본관에 들어서자 지나던 이들이 강진호를 향해 격하게 인사를 해 댄다. 강진호가 빙긋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좋은 아침.”
“다들 잘 지냈죠?”
누군가가 눈치 좋게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받아와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내가 하면 되는데……. 고마워.”
“괜찮습니다. 제 돈도 아닌데요, 뭐. 사장님이 쏘시는 겁니다.”
“고맙다는 말은 취소하지.”
강진호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회주님! 저 이번에 바깥에서 사람들 교육하는 일에 지원했는데, 이거 괜찮을까요?”
“……방 이사가 사람 안 가려 받나 보네.”
“아, 합격했다고요, 합격!”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강진호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며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느긋하게 말을 건네는 이들과 인사하며 계단을 오른다.
“아이고, 다리야. 엘리베이터 설치 좀 해요!”
“운동 부족이에요.”
“뭔 4층을 그냥 올라가!”
“안 그래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응?”
강진호가 진지한 얼굴로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내일부터 내가 가르쳐 주는 거 배워요.”
“……어떤 거요? 무학이요?”
“네.”
“굳이 그게 필요한가?”
“덜 늙어.”
“……꼼꼼하게 가르쳐요. 완벽하게.”
최연하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
회주실의 문을 열자 사방에서 인사가 쏟아졌다.
“마존이시여, 간밤에 강녕하셨습니까!”
“오, 주인. 오늘은 활기차 보이는군.”
“……늦었잖습니까. 제가 요즘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 이사님도 오셨네요?”
“인사부터 해요, 인사부터! 사람이 위아래가 없어!”
순서대로 장민, 바토르, 방진훈, 이현수, 이현주의 인사를 받은 강진호가 웃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현수가 기다렸다는 듯 강진호에게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아침부터 총리님이 전화하셨습니다.”
“왜?”
“출장을 좀 잡아야 할 것 같답니다. 미국 쪽에서 직접 보고 싶어 한다네요.”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이현수가 던진 떡밥이 잘 먹혀든 모양이다. 미국이 협조만 해준다면 그들이 진행하려는 일은 한동안은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다.
강진호가 상석에 앉아 좌우로 앉은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모두가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익숙하기만 한 광경. 그 광경을 두 눈에 담는 순간, 강진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깨닫는다.
‘여기구나.’
이곳은 그가 도착한 곳. 그리고 그가 이루어낸 곳. 그리고…… 그가 살아갈 곳이다.
‘꽤 멀리 돌아왔네. 그렇지, 청마?’
어쩌면 과거에도 이와 같은 곳을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의 실수가, 그의 실패가, 그리고 그의 삶이 지금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는 여전히 실수를 저지르고, 실패하고, 또 후회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그의 실수를 받쳐 주고, 그의 실패에 같이 힘을 내줄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까.
세상은 여전히 그에게 두렵고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이제 강진호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다. 이제 그는 혼자 걷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니…….
“자, 그럼…….”
강진호가 근사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회의 시작하지.”
“예!”
그들이 자리한 창 너머로…….
검은 하늘이 아닌 푸르디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