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5
#214.
분노하다 (4)
이현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강진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좀비같이 그의 뒤를 따라야 하는 건지 그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진호가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하는 순간, 마치 그 말이 절대명령이 된 것처럼 거부할 수가 없었다.
강진호는 그녀와 조규민을 데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왔냐?”
아버지가 ‘잠깐이면 된다더니, 참으로 오래도 있었구나. 네가 없어서 놓친 손님이 그사이 열 팀을 될 것 같다’라는 눈으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안쪽 방 비었죠?”
“음…….”
강유환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알바 시간에 일 안 하고 논다고 한 소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강유환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거라. 넌 아메리카노지?”
“……예.”
“조 실장님은요?”
“아메리카노 먹겠습니다, 아버님.”
“그쪽은?”
이현주가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라떼 좋아하세요? 우리 집 라떼가 또 한 인기 하거든요.”
“예, 예. 그걸로…….”
이현주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호가 앞장서서 카페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스텝실로 들어갔다. 보통은 환복을 하거나 밥을 먹기 위해서 마련된 장소지만, 꽤나 넓기에 여럿이 대화를 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테이블도 하나 놓여 있고.
“앉으시죠.”
강진호가 자리를 가리키자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현주도 불안한 얼굴로 조규민의 옆에 앉았다.
보통 이런 식의 만남인 경우에는 지금 처음 본 조규민의 옆쪽에 앉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이현주는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고 싶은지 강진호의 옆자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강진호가 팔짱을 끼었다.
살짝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무슨 일입니까?”
“……커피 오면 이야기하죠.”
“예.”
조금 지나자 아버지가 쟁반에 커피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말없이 커피를 내려놓은 강유환이 강진호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어차피 손님 별로 없으니까, 천천히 이야기하거라.”
“예.”
“그럼.”
강유환이 문을 닫고 나가자 강진호가 이현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설명해 봐, 네가 아는 것 전부.”
이곳에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토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현주는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전에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나요?”
“화장실?”
“……쌀 것 같아요.”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현주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규민이 이현주가 나간 문 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대로 두어도 됩니까?”
“문제라도 있습니까?”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저 아가씨는 이 자리가 매우 불편해 보이던데…… 저대로 도망이라도 가면 어떻게 합니까?”
“도망은 가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죠?”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조규민의 눈에는 그 웃음이 어쩐지 매우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예전부터 제가 생각한 것 중의 하난데, 인간은 자신의 힘을 좀 광범위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민망하기는 한데, 저는 강진호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풀어서 말씀해 주시면 잘 알아들어 보도록 노력은 해볼게요.”
“간단한 거죠. 실장님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어쩌시겠습니까?”
“포기하거나…… 사업적 일이라면 윗선에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배경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 착각하는 경향이 있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조직의 힘을 끌어들이려 합니다. 그게 일반적인 대응이죠.”
“그럼?”
강진호는 태연히 대답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다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불러들이겠죠.”
“……왜 전화를 안 받아!”
이현주는 초조한 얼굴로 변기에 앉아서 폰을 누르고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힘이 되어줄 그의 할아버지는 폰을 던져 놓고 연공실에라도 들어갔는지 아까부터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아…….”
답답함에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괜히 소리라도 질러서 강진호가 이상을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끝은 결코 좋지 못할 것이다.
‘내가 미쳤지.’
그렇게 당당하게 포섭해 올 수 있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항상 하던 말을 들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괴물들이 득실득실거리고, 그들에 비하면 그녀 정도는 그냥 애송이일 뿐이라는 말.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괴물의 입안에 들어와 있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그가 분노와 증오를 담아 그녀를 노려보았을 때, 바지에 지려 버리지 않은 것이 그녀가 오늘 얻어낸 유일한 수확이었다.
그녀 역시 수많은 무인들을 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저런 타입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뜬금없이 터지는 분노와 마치 이중인격자 같은 성격의 변화.
무엇보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저 인간이 대체 왜 자신에게 증오심을 품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친놈에게 무슨 이유가 있겠냐마는 저 미친놈은 그냥 미친놈도 아니고, 반쯤 미쳐서 정상인인 척하는 미친놈이라 혼란스러웠다.
“제발! 제발 전화 좀 받아요!”
벌써 열 통은 넘게 한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전화기를 놓고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기를 집어 던질 기세로 들어 올린 그녀의 손에 타이밍 좋게도 진동이 느껴졌다.
서둘러 액정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여보세요.”
[오, 웬일이야? 바로 전화도 받아주고?]이현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지금 통화를 하는 이 녀석도 충분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였다.
아니.
미친개 하나 때려잡는 데는 과분한 인력이다.
“너 지금 이쪽으로 와줄 수 있어?”
[어? 오늘 무슨 날이야? 데이트라도 해주는 거야? 이제 드디어 내 마음을 받아줄 준비가 되었다…… 뭐, 이런 건가?]“헛소리하지 마! 해야 할 일이 있어.”
[일이면 별로 안 하고 싶은데.]“내가 지금 맞아 죽게 생겼는데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침묵이 전해져 왔다.
[거기 어디야?]“주소는 톡으로 보내줄게. 빨리 좀 와줘야겠어. 진짜 위험하거든?”
[전화할 시간이 아깝네. 지금 바로 간다.]“서둘러 줘.”
전화를 끊은 이현주가 톡으로 지도를 첨부하여 전송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친개를 상대하러 미친놈을 끌어들이는 격이지만, 지금 올 놈의 실력은 총회의 모두가 인정한다. 성격이 조금 종잡을 수 없다는 흠이 있지만, 웬만큼 실력이 있는 이들치고 성격 좋은 이는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시간만 조금 끌면 돼.’
이현주가 결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남회예요.”
“영남향우회?”
“영남회요.”
조규민은 솔직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무척이나 고향의 향수가 느껴지는 작명이네요. 컨트리틱하면서도 뭔가 단단한 결속력이 느껴진달까?”
“……50년 전에 지어진 이름이니까 당연하죠. 60년대에 뭘 바라세요. 이스트 코리아 오르가니제이션이라도 바라셨어요?”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만.”
조규민은 황정후에게 감사했다. 같은 60년대에 지어진 이름이건만, 영남회에 비한다면 재경은 얼마나 센스 넘치고 현대적인 이름이라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무인들은 여러 단체로 나뉘어 있어요.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제가 속한 협회인 한국 무도 총회예요. 그리고 현재 가장 영향력이 강한 곳이 영남회죠.”
강진호는 가만히 이현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강진호가 호응을 해주지 않으니 이현주는 어쩔 수 없이 조규민을 붙들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조규민은 매우 훌륭한 청취자였다. 적절한 추임새와 리액션을 넣는데, 예능에 나가도 당장 먹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 영남회가 어쨌다는 겁니까?”
“그 영남회에서 보낸 사람일 거예요.”
“……살인마가 말이에요?”
“예.”
“흐음…….”
조규민이 강진호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좀 이해가 안 되는데…….”
“네.”
“그 살인마가 강진호 씨를 노리는 이유는 접어두자구요. 영남회라는 곳이 왜 가만히 잘 살고 있는 강진호 씨를 죽이려고 하는 건지도 접어둬요. 그럼 그 살인마는 왜 강진호 씨를 직접 노리지 않고 다른 이들을 죽이고 있는 겁니까?”
“원래 그러니까요.”
“원래?”
“네.”
이현주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들은 그를 외도라고 불러요. 영남회 회주의 사냥개 같은 존재죠.”
“……그럼 당신들은 왜 그 사람들이 이런 미친 짓을 벌이도록 묵인하는 겁니까?”
“증거가 없으니까요.”
이현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암묵적으로는 알고 있어요. 영남회주가 그 사람을 부린다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회주 자체는 부인하고 있고, 그가 외도를 부린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요.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있는 단체를 업고 부인하면, 그걸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렵죠.”
조규민은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미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야 흔하니까.
권력자가 패악을 부리고 있다는 심증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누구도 권력자를 다그치지 못한다. 심증만으로 엮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 외도라는 놈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비슷하니까요.”
“비슷?”
“그자는 사냥개라기보다는 뒤처리반 같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움직이는 자리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번이고 우리가 수습을 했거든요. 이번에도 그 사건들과 비슷해요.”
“처음이 아니라는 거군.”
강진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럼…….”
그때, 문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현주야! 현주 어딨어!”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이현주가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달려가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 여기!”
조규민은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예상에서 한 번을 못 벗어나나.”
강진호의 등 뒤에 대나무라도 꽂아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강진호가 조규민의 시선을 받더니,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너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가 문밖으로 나오는 강진호를 보고는 콧김을 뿜어냈다. 190은 확실하게 넘기는 키에 일반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어깨.
맨몸으로 소도 때려잡게 생긴 사내가 다짜고짜 강진호를 향해 돌진했다.
“진호야!”
당황한 강유환의 외침이 울렸다.
강진호가 자신에게 주먹을 뻗어 오는 상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움켜잡더니 바닥에 그대로 내리찧었다.
쿵!
사람의 머리가 바닥과 부딪쳐 났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커다란 소리가 퍼졌다. 강진호가 바닥에 내리누른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영업장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