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6
#215.
분노하다 (5)
이성휘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한국 무인 총회 회장의 둘째 제자다.
젊은이들 중에서는 감히 그와 대등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제압당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비벼지는 굴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방심했어.’
스승의 말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설령 너보다 강한 자가 아닐지라도 무인은 다들 칼을 품고 사는 존재다. 한 번의 방심이 네 목을 날릴 수도 있다.”
그 말이 이처럼 뼈저리게 다가올 줄이야.
“으으…….”
몸을 뒤틀어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그의 머리를 잡고 있는 손에서 밀려들어오는 기운 때문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뭐지?’
물론 자신을 이렇게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만 해도 열은 넘는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을 제압한 뒤에 이렇게 꼼짝도 할 수 없게 기운으로 짓누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강함을 뛰어넘는 다름이 있었다.
이 왜소해 보이는 청년은 그가 지금까지 알던 무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강진호가 남은 손으로 이성휘의 뒷목을 잡고는 그를 쭉 끌어 올렸다. 강제로 일어서게 된 이성휘가 당황과 억울함, 분노 같은 온갖 감정으로 뒤범벅된 눈으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어쩔 셈이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는 지금 강진호에게 완전히 제압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금 강진호가 그의 목을 분지른다고 해도 그는 조금도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한 억울함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온다.
하지만 강진호의 대응은 예상 밖이었다. 강진호가 그의 머리를 잡은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
얼떨떨함.
미처 예상도 하지 못한 반응에 이성휘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나가시죠.”
“…….”
“경찰을 부르기 전에 나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영업을 하는 곳이거든요. 다른 손님들께 폐가 됩니다.”
으득.
이성휘는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하지만 함부로 경거망동하지는 못했다. 순간적으로 그를 제압한 강진호의 수법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노만으로 달려들 정도로 이성휘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 버린다면 상처받은 그의 자존심은 어쩌란 말인가.
그때, 등 뒤에서 이현주가 그의 옷을 잡고 잡아당겼다.
“……나가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돌아서는 순간, 귓가에 그에게만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어. 문 닫고 나면 상대해 줄 테니까.”
이성휘가 죽일 듯한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다가 몸을 휙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현주가 떨떠름한 시선으로 강진호를 보더니, 다급한 걸음으로 이성휘의 뒤를 따랐다.
짤랑.
문에 달아놓은 종이 울리며 이성휘가 밖으로 나가자 갑자기 박수가 쏟아졌다.
“와아! 멋져요!”
“그렇게 안 봤는데, 상남자네!”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난동을 부리는 양아치를 제압한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강진호는 박수를 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몸을 돌려 조규민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탕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탕비실 문을 닫고 들어오자 조규민이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무 쉽게 보내주신 것 아닙니까?”
“가게니까.”
“예?”
“가게에서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아요.”
강진호의 목소리는 밖에서 보인 모습과는 다르게 살짝 굳어 있었다.
“기다리라고 했으니, 기다리겠죠.”
‘빡 쳤네.’
조규민은 강진호의 반응을 보며 조금 전 난동을 부린 덩치 큰 놈을 애도했다.
‘모르면 안 되지.’
강진호가 가장 화가 난 이유는 이현주가 그를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현주가 난데없이 카페로 난입을 했기 때문이다.
강진호는 이중인격이라고 생각될 만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하고 있었다.
소위 무인이라는 인종이 가게로 찾아와 강진호를 만나려 했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불청객이 진흙발로 집 안에 걸어 들어온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저놈은 그 정도가 아니라 집 안에서 난동까지 부렸다.
‘죽이진 않겠지.’
조규민은 진심으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 * *
“안 되겠어요.”
“왜요?”
강은영의 말에 최연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은 해본다는 입장이었는데, 왜 갑자기 저런 식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말인가.
“뭐가 마음에 안 들어요? 입장 변화가 있을 만큼?”
“그게 아니라…….”
강은영이 한숨을 쉬었다.
최연하는 선뜻 말을 잇지 못하는 강은영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은 변덕스럽다. 그러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고 해서 이상하지는 않다.
오빠에게 접근하는 최연하가 마음에 들지 않아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 그냥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었다.
“오라비가 기분이 안 좋아요.”
“…….”
최연하는 조금 당황했다.
“이, 이건 일적인 문젠데.”
“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강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오라비는 남들이 보면 매우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인데, 실제로는 엄청 다혈질이거든요.”
“네?”
그렇게는 안 보이던데?
“거 봐요. 안 그렇게 생각했겠죠.”
강은영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오빠는 정말 다혈질이에요. 특히나 열이 받았을 때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요.”
“……그래요?”
강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일이 있어서 역대급으로 열이 받은 것 같더라구요. 지금 어설프게 오빠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덤터기를 다 뒤집어쓸 거예요. 그러니 괜히 지금 말을 꺼내서 자극하지 말자구요.”
“이해는 잘 안 가지만 납득은 했어요. 그런데 이거, 남주 캐스팅이 지금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서 오래 기다릴 수는 없어요. 언제쯤이면 화가 풀리나요?”
“보통은…….”
강은영이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기간은 좀 애매한데, 중간에 어설픈 애가 한 번 건드려 주면 빨리 풀릴 것 같기도 한데…….”
“그…… 건드린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음…….”
강은영이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자꾸 눈빛을 보니 제가 쓸데없이 오라비에 대해서 험담하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 그런 애 아니에요. 지금 말하는 건 전부 진심이에요.”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여하튼 대답을 하자면, 음…… 후회하게 되겠죠.”
“후회요?”
“네. 극심하게.”
강은영이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선배님.”
“네?”
“솔직하게 선배님이 보시기에 제 성격 나쁘죠?”
“……솔직하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최연하였다. 그냥 보는 대로라면 성격이 나쁜 정도가 아니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하기는 껄끄러우니까.
“그런 제가 왜 오라비한테는 찍소리도 못하겠어요. 나보다 성격이 더 더러우니까. 간단하죠?”
“그러네요.”
최연하는 머릿속에 있는 강진호라는 남자에 대한 이미지를 살짝 수정하기로 했다. 그녀도 눈치란 게 있다. 지금 강은영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여하튼 조금 기다리세요. 오라비가 화가 풀리거나, 생각 없는 인간이 오라비를 건드릴 때까지요.”
강은영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런 멍청한 인간이 흔치는 않으니까요.”
* * *
이성휘는 죽일 듯한 눈으로 카페를 바라보았다.
“지원 요청하는 게 어때?”
“지원?”
이성휘가 이현주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저런 애송이 하나 내 손으로 처리를 못하니까, 떼거리로 몰려와서 같이 좀 패달라고 하라는 소리야?”
“별로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야, 이현주. 너 말조심해.”
“이미 한 번 당했잖아.”
“그건 방심해서 그런 거고!”
이현주는 싸늘한 시선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정말 방심해서 그런 거야?”
“그래. 계속 긁어봐라, 어디까지 긁히나.”
이성휘를 바라보는 이현주의 시선은 불안함이 가득했다.
‘말이 안 돼.’
총회에서 이성휘가 처음 보는 청년에게 얻어맞고 왔다고 한다면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성휘는 그 성격은 몰라도 실력만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강진호가 순간적으로 이성휘를 제압해 버린 것 역시 사실이다. 그녀의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괜찮을까?’
그녀 정도의 위치가 되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다루게 된다. 훗날 총회를 이끌어갈 사람의 자존심을 깔아뭉갤 수는 없다. 그녀의 이성은 지금이라도 다른 이들을 더 불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실수하는 것 같은데…….’
그녀의 뇌리에 아직 그 지하에서 본 강진호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이성휘가 본 강진호의 모습은 반쪽짜리일 뿐이다.
“안 되겠어. 할아버지에게 전화할 거야.”
“해봐. 그럼 나랑은 다신 안 보는 거야.”
“내가 너랑 안 본다고 해서 무슨 손해라도 있어?”
“그러니 해보라고.”
이현주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왜 남자들은 이렇게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릴 때가 많을까?
“그리고 이제는 늦은 거 같은데?”
“응?”
이성휘의 시선을 쫓아 돌아보니 가게 불이 꺼지고 강진호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조규민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문단속을 마친 셋이 잠시 대화를 하더니, 강진호의 아버지가 차를 타고 먼저 빠져나갔다.
“이쪽을 찾는 것 같은데?”
이성휘가 주먹을 꽉 쥐었다 풀더니 앞쪽으로 나가 손을 흔들었다.
“어이.”
강진호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기다리라 그래서 기다렸다.”
두 사람이 뭐라고 얘기를 나누더니, 강진호가 그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오라는데?”
“…….”
“나는 간다. 너는 어쩔 거야?”
“……가야지.”
도망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다.
‘나로서는 알 수 없어.’
강진호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차이가 너무 심하니까.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는 이성휘라면 현재 강진호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강진호의 조규민이 차에 오르더니, 그들 쪽을 향해서 차를 몰아 왔다. 부드럽게 그들의 앞에 차가 멈춰 선다. 그러고는 보조석의 유리창이 아래로 내려갔다.
“타.”
“……모셔가겠다는 건가? 좋지.”
이성휘가 비릿하게 웃고는 거침없이 뒷좌석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 타?”
이현주는 열린 차 문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열려 있는 문이 마치 지옥으로 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몸을 돌려 달아나야 할 것 같은 예감. 이성이 아닌 본능이 그녀의 안에서 당장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 소리치고 있었다.
“타.”
하지만 그녀는 달아날 수 없었다.
강진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녀는 이미 차에 몸을 반쯤 밀어 넣고 있었다.
문이 닫히자 천천히 차가 출발했다.
강진호가 시트에 몸을 기대고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