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8
#217.
추적하다 (2)
이현주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강진호는 말 그대로 이성휘를 짓밟고 있었다.
영역을 침범한 먹이를 바로 죽이지 않고 차근차근 상처를 입히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맹수처럼,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고 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이성휘의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으드득.
“끄으으으으…….”
뼈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성휘는 힘껏 저항하려 했지만, 그의 몸짓은 미약하기만 했다.
휘두른 손이 강진호의 손에 잡힌다. 그러고는…….
우둑.
선명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성휘의 손목이 꺾여 나간다.
“우으으…….”
이성휘의 눈은 고통과 공포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심각하게 떨어 댔다.
“그, 그만!”
“그만?”
강진호는 빙긋 웃으며 이성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이성휘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왜 그걸 네가 결정하지?”
강진호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의문이 어려 있었다. 아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듯 말이다.
“너는 내게 허락을 구하고 나를 찾아왔던가?”
“나, 나는…….”
“그러지 않았지. 그렇지?”
강진호가 웃었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웃음이지만, 이성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 잔인하게 보이는 미소였다.
“그러니 괜찮아.”
우드드득.
강진호가 짓밟은 이성휘의 발목이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아아아아아아악!”
고통.
평소의 이성휘라면 아무리 끔찍한 고통이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꼴사납게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정신적인 두려움이 더 컸다.
이놈은 지금 그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놈이 대체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모른다.
어떠한 조건이나 원하는 것도 없이 그저 자신을 벌레처럼 찢어발기기를 원하는 자의 손아래서,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고통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이성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못 들은 모양이군.”
강진호가 덜덜 떨고 있는 이성휘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말했잖아, 죽이지는 않아.”
나직한 강진호의 목소리가 이성휘의 심혼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네가 중간에 제멋대로 죽어버리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는 없지. 그러니 잘 버텨봐. 알아들어?”
이성휘의 얼굴을 움켜쥔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이성휘는 자신의 얼굴을 조여오는 강진호의 손힘에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이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으면 그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이 날 것이다.
그럼 이성휘라는 인간은 곧 이성휘라고 불리던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릴 것이 빤했다.
양손을 들어 올려 강진호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한 팔은 뒤틀려 등 뒤로 돌아가 있고, 다른 한 팔은 팔목부터 부러져 덜렁대고 있을 뿐이다.
밀려오는 고통과 공포 앞에 이성휘가 반쯤 이성을 잃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윽……. 사, 살려……. 흐윽.”
강진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벌써부터 그러는 거지? 이제 시작인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군대에서 만난 놈들이 좀 더 버텼다. 무인이라고 해서 나름 기대했는데, 이건 무인의 탈을 쓴 쓰레기였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현대의 무인들을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진짜 목숨을 건 격전을 벌여볼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전장에 투입되지 않는 무인이라는 존재는 일반인보다 우월한 신체 능력과 내공을 바탕으로 편히 살아가는 초월종에 가깝다.
그런 이들이 어디에서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익히겠는가.
스승이 알려주는 무인으로서의 자세 같은 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다.
무인은 전장에서 길러진다. 눈앞에서 칼이 쏟아지고, 바로 옆에서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하던 이가 목에 칼을 박고 쓰러지는 전장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무인이 완성된다고 믿는 강진호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휘는 힘이 센 어린아이일 뿐, 무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되레 지금까지 다른 이들과 남다른 지위를 누려왔기에 어설픈 껍질 안에는 단련되지 않은 속살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중국 놈들은 죽어가는 순간에서도 나름 의연했는데, 너 정도가 이곳에서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모양이지? 그럼 이 곳에는 쓰레기밖에 없는 건가?”
강진호가 이성휘의 볼을 톡톡, 쳤다.
쓰레기.
이런 쓰레기가 살아 있을 가치가 있을까? 차라리…….
“그만하세요!”
이현주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다 죽겠어요! 제가 사과드릴 테니까! 제발…… 제발 그만해요.”
“착각하고 있군.”
하지만 강진호의 대답은 더없이 차가웠다. 감정 한 점 없이 가라앉은 눈으로 강진호가 이현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는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 모양이지?”
“……네?”
강진호의 우수가 이성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강진호가 무엇을 할지 너무도 확실하게 알 수 있던 이성휘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물렁한 세계로군.”
으드드득.
“으아아아아아아!”
이성휘의 피맺힌 비명 소리가 온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근처에 민가는 없고, 이성휘를 구해주러 올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은 너희가 한 거야. 그럼 끝을 낼 기회는 내게 있어야 공평하겠지. 안 그래?”
이성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혼절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대답은 물론이고,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밀려오는 고통에 저항하고 버텨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요?”
강진호의 미간이 움찔했다.
“무사?”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강진호와 시선이 마주친 이현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틸 수가 없었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저런 눈을 할 수 없다.
눈가에 검은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어둠 속에서 무언가 뻗어 나와 그녀의 목을 잡아채고 피를 빨아 제낄 것 같은, 확증적인 예감.
공포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조악하기만 한, 끔직한 감정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툭!
강진호가 이성휘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성휘가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그런 이성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이현주를 향해 다가갔다.
“말하지 않았던가?”
강진호가 천천히 이현주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먼저 건드린 건 너희들이라고 말이야.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뿐이었어.”
“…….”
“제멋대로 남의 삶에 끼어 들어와서 지껄여 대고는 이제 와서 뭐라고? 무사할 수 있겠냐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강진호의 낮은 웃음소리가 이현주의 귓가를 파고든다. 듣는 것만으로 영혼이 떨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였다.
“어떨 것 같아?”
강진호가 뚜벅뚜벅 다가와 주저앉아 있는 이현주의 앞에 몸을 숙이고는 눈을 맞췄다.
“네 생각에는 내가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응?”
“……사, 살려주세요.”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몇 번이고 죽이지는 않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왜 이런 멍청한 대답이 나오는지 이현주도 알 수 없었다.
머리가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이현주는 지금 그녀가 해야 할 가장 온당한 말을 찾았을 뿐이다. 조금 어긋나 버렸지만.
강진호가 손을 뻗어 이현주의 볼을 쓰다듬었다. 마치 차가운 뱀이 휘감는 듯한 촉감에 이현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알아?”
“…….”
“나도 알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는 걸 말이야. 언젠가는 너희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언젠가는 이 일상을 버리고 너희의 일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말이야.”
이현주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그녀는 강진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녀가 이해하길 바라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비일상의 세계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식으로 나를 맞이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지. 너희는 말이야, 다른 사람의 인생은 생각하지도 않아. 너무도 쉽게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이지혁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그러니 나도 똑같이 해주는 거야. 너희의 입장은 아무래도 좋아.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어때? 당해보는 입장이 되니 즐거운가? 지금 나처럼?”
볼을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그녀의 목으로 향했다.
이현주는 강진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서 빠져나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경고했지?”
목을 조여오는 강진호의 손을 느끼며 이현주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실수다.
이자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였다.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말이야.”
강진호의 손이 천천히 목을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이현주는 눈을 감아버렸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받아야지. 안 그래?”
숨이 막혀온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떨고 있는지 아닌지도 인식할 수 없었다. 지독하게 조여오는 공포 앞에 무방비하게 얻어맞고 있을 뿐이었다.
‘틀렸어.’
스위치가 들어가 버렸다는 느낌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진호는 지금까지 자신을 있는 대로 억누르며 현대의 규격에 맞춰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강진호가 누르고 있던 것은 괴물이고, 그 괴물은 그녀가 지금까지 보아온 무엇보다 포악하고 잔인했다. 그리고 충동적이었다.
평소의 강진호와 이성휘를 부수던 강진호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달랐고, 그 강진호와 지금 이현주의 목을 조이고 있는 강진호도 달랐다.
더없이 오만하고 잔인하며, 또한 집요하다.
실수라면 강진호가 이런 사람이란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리도 대책 없이 강진호에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강진호가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이현주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때.
“안 추우십니까?”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진호가 조금 의아한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조규민이 양팔로 어깨를 감싸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아, 너무 추워서 버티기가 힘드네요. 아직 정리가 덜됐으니 차에 돌아가기는 그렇고, 음…….”
조규민이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담배를 꺼내 한 개비 강진호에게 내밀고는 씨익 웃었다.
“일단 몸도 풀 겸…… 담배 한 대 어떠십니까?”
가라앉은 눈으로 강진호가 조규민이 내민 담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간의 침묵.
강진호의 손이 천천히 뻗어진다 싶더니, 이내 조규민이 내민 담배를 받아 들었다. 받아 든 담배를 입가로 가져가 문 강진호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