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9
#218.
추적하다 (3)
툭.
손에서 힘이 빠지고 이현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살았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이현주가 울음을 터뜨리며 몸을 웅크린다.
찰칵!
조규민이 강진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휴우.”
강진호가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천천히 내뿜었다.
“아, 무서웠습니다.”
“그러게요. 안 그러려고 했는데, 조금 흥분했네요.”
조규민이 웃으며 강진호의 말을 받았다.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지금 조규민도 필사적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고가 나도 큰 사고가 나겠다는 생각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고 나선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강진호가 그의 말에 어떻게 반응할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그 역시 강진호의 손아래 묵사발이 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럴 때 나서지 않는다면 그가 강진호의 수족을 자처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강진호는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건 뭔 폭탄도 아니고…….’
맹수 조련사라도 된 느낌이다.
물론 그 맹수는 지성적인 측면에서는 그보다 더 앞서 있지만. 담배를 몇 번 연달아 빨아들인 강진호가 아래에서 흐느끼고 있는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조규민이 한발 더 빨랐다.
“저 사람, 괜찮을까요?”
조규민이 널브러져 있는 이성휘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일단은 무공을 익혔으니까요. 생각보다 빨리 괜찮아질 겁니다.”
“……일반인이면 죽었어요.”
“일반인이 아닙니다.”
“그 무공이라는 걸 익히면 회복력도 좋아지는 겁니까?”
“예.”
“저도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음…….”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지금까지는 이 세계에 얽혀 좋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주변인들에게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 같았다.
조규민 정도면 이미 얽혀도 과도하게 얽혔으니까.
나이가 있어서 상승의 경지에 들어서기는 어렵겠지만, 호신의 영역으로는 나쁘지 않을 듯했다.
“나중에 제게 배우시면 될 것 같네요.”
“생각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조규민이 정색을 하자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의 비틀린 웃음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워 웃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이현주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무서웠다.
바로 앞에서 이성휘가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농담을 하며 웃고 있는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예?”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더 데려와. 난 여러 번 나눠서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아니면 차라리 나와 같이 총단이라는 곳으로 가지. 그게 제일 간편할 것 같은데?”
그녀의 고개가 격하게 좌우로 저어진다.
이성적으로는 아무리 강진호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총단의 많은 인원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본능은 이 미친놈을 절대로 총단에 데려가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아, 아니요. 이제 충분해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정산할 시간이군.”
“……정산요?”
“제멋대로 나를 건드린 대가를 어떻게 갚을 생각이지?”
이현주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대가?
그 대가로 지금 이성휘가 사람 아닌 몰골로 생사를 헤매고 있는데, 여기서 대가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대체 이놈의 계산법은 얼마나 가혹하단 말인가.
“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은…….”
강진호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외도’라는 놈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져와. 내일 카페 마치는 시간까지.”
“알겠어요.”
“남은 건 천천히 생각해 보지.”
강진호는 말을 끝내고는 몸을 돌렸다.
조규민 역시 강진호를 따라 차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차에 오르더니 시동을 걸고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현주는 아연한 눈으로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도망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현주가 그러지 못할 것을 안다는 듯이 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찰칵.
담배를 문 강진호가 조금은 멍한 시선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허탈감이 밀려온다. 그와 동시에 자괴감이 그를 괴롭혀 댔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마공이라…….’
강진호의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근간은 수라기다. 수라기는 마공. 그중에서도 가장 지배적인 마공이었다.
그동안 마공의 폐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강진호지만, 이번에 외도라는 놈의 이야기와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어보니…… 그저 좌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수라기만 있었다면 지금쯤 나도 살귀가 되었을까?’
과거의 강진호는 처음부터 마공을 배우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강진호는 외부에서 명성을 날려 마교로 들어갔으니까.
이미 강진호가 마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는 강호공적이었고, 살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마교에 포섭되어 적염기를 얻고, 훗날 교주가 되고 나서야 수라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라기는 강력하다.
그 어떤 마공보다 정순하고 강한 마공이 마교 교주의 독문 무공인 수라기다. 문제는 강진호는 이미 경지에 오른 다음에 수라기를 익혔다는 것이다.
반면, 이번 삶에서는 처음부터 수라기를 익혔다. 물론 그전에 익힌 무공을 베이스로 삼기는 했지만, 수라기와 동시에 성장해 나가는 것은 그도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지금 그가 겪는 이 급격한 감정 변화는 수라기에 동조한 육체 때문일까?
아니면…….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적염기를 베이스로 익힐 때는 일어나지 않던 문제다.
아니, 그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마교에 투신하기 전이나 마교에 투신했을 때나, 강진호는 굳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었다. 죽여야 하는 자가 있다면 죽였고, 싸워야 한다면 싸웠다.
덕분에 적도 많이 만들었지만, 그 적을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고 나자 자연스레 교주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럼 어쩌면 예전의 삶에서도 그는 충동적이지 않았을까?
혼란스럽다.
“뭘 그리 생각하십니까?”
“아뇨.”
조규민의 물음에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충동이 자주 찾아온다면 몰라도, 한 번씩 찾아오는 거라면 잘 활용하지 않던 마공을 끌어 올려 육체가 적응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말이다.
지금은.
* * *
이현주는 떨리는 눈으로 카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어제 강진호가 지시한 외도에 대한 자료가 잔뜩 들려 있었다.
‘괜찮을까?’
혼자서 강진호를 만나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강진호의 말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었다.
총회에는 아무것도 알리지 못했다. 괜스레 입을 열었다가 강진호와 총회 사이에서 전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영남회가 어부지리를 취할 테니까. 언제든 총회를 잡아먹겠다며 눈이 뻘게져 있는 영남회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정말?’
이현주는 자신에게 반문했다.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인가?
영남회가 어부지리를 취할 것이 두려워서 총회에 말을 하지 못한 것인가?
그녀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럴 리가.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그녀가 총회에 알리지 못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라, 혹여나 이 일을 알게 된 그녀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회장이 분노하여 강진호에게 뛰쳐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믿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녀의 할아버지를 능가할 무인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저릿하게 밀려오는 한 가닥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이길 수 있을까?
정말 강진호를 그녀의 할아버지가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고 치더라도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한다면 영남회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할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승냥이들에게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물어 뜯기게 될 것이다.
그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설사 그녀가 홀로 강진호를 상대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성휘도 할아버지께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해야 해.”
그녀가 결심을 다지고 있을 때,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카페에서 강진호가 걸어 나왔다.
강진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미칠 듯이 뛰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저 사이코 같은 인간과 이제 독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이라도 발을 돌려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뒷감당은 그녀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 어떤 일보다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그녀가 떨리는 손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강진호가 손을 든 그녀를 발견하더니, 이쪽으로 걸어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오는 강진호를 보는 것은 고문 같은 일이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강진호를 맞이했다.
제멋대로 뛰는 심장을 다독이기를 포기하자 조금은 편안해졌다. 저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다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진호는 별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은 얼굴로 그녀의 지척까지 다가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다렸어요?”
“……예?”
“저쪽으로 가죠. 24시간 하는 카페가 있으니, 거기 가서 이야기 하면 되겠네요.”
“네? 아……. 네, 네!”
이현주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이 인간?’
어제 그녀를 잡아 죽일 듯 노려보던 인간은 어디에 가고, 마치 소개팅이라도 나온 듯이 부드럽게 말하는 강진호가 이곳에 있었다.
순간, 어제 그녀가 보았던 강진호가 환상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가시죠.”
“……예.”
앞장서서 걸어가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보며 이현주는 복잡한 심사가 담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중인격자.’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끌려 들어가기 전에 강진호는 저런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바로 어제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저런 평범한 모습을 가장할 수 있을까?
그제야 이현주는 어제 강진호가 보인 이상한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한 성격을 숨기고 이리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으니까.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상대들이 일상으로 치고 들어온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꼴을 당하고도 강진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다니. 이건 미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해보자고.’
표독스럽게 얼굴을 굳힌 그녀가 강진호의 뒤를 따라 힘차게 걸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그녀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앞장서서 걷기만 했다.
카페에 들어간 두 사람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무표정한 얼굴의 강진호.
그리고 얼굴을 더없이 차갑게 굳힌 이현주가 가만히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강진호의 입에 천천히 열린다.
“뭐 드실래요?”
“……네?”
이현주의 얼음장 같은 표정이 순간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