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2
#21.
둘러보다 (2)
점심시간.
급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쉬고 있는 강진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야. 미쳤냐?”
“아니.”
“그럼 왜 어깨를 치고 가냐?”
“아니, 나는 그냥…….”
“그냥 지나가는 사람 어깨를 치냐? 와, 나, 이 새끼 때문에 돌겠네.”
“…….”
“너 이사장한테 최영수한테 괴롭힘 같은 거 당한 적 없다고 했다며?”
“…….”
“그럼 이건 괴롭히는 게 아니겠네? 그렇지?”
박유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대답해, 이 새끼야. 이게 괴롭히는 거냐? 어? 아니잖아. 노는 거지. 최영수랑도 잘 놀았는데, 나도 좀 놀자, 이 새끼야!”
‘정인규?’
박유민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는 정인규였다.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던 정인규가 제 분에 못 이겨 박유민의 다리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호가 뒤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박유민에게 소리를 치고 있는 정인규를 만류했다.
“그만해.”
정인규가 답답하다는 듯 강진호를 보았다.
“아니, 넌 화도 안 나? 이 새끼가 최영수 편 들었다면서?”
“그만하라고 했다.”
“아, 진짜.”
정인규가 박유민과 강진호를 번갈아 보더니, 짜증이 한껏 담긴 눈으로 비꼬았다.
“성격도 좋다. 도와주고 싶냐? 나는 그냥…….”
강진호는 가만히 정인규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도 기분 내보고 싶어?”
“…….”
정인규의 입이 몇 번 달싹대더니, 끝내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 말없이 바라보던 정인규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박유민을 한 번 노려봐 주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어휴.”
자리에 앉은 정인규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최영수를 꺾으면서 교내의 축이 강진호에게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강진호와 친하던 정인규도 자연히 어깨에 힘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강진호와 친한 정인규를 은근히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인규는 은근히 그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강진호의 말이 정인규의 그런 점을 정확하게 찌른 것이다.
자신도 잘 모르던 속내를 찔러낸 강진호의 말에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 정인규가 아무 말 없이 물러난 것이다.
강진호는 그런 정인규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람의 행동이란 다들 비슷하니까.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었다면 정인규와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강진호는 그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제지했을 뿐이다.
박유민은 슬쩍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박유민은 깊게 한숨을 쉬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흠…….”
뭔가 이상하게 갑갑해진 강진호도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걷던 강진호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를 보고 수군대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찍힌 건가?’
폭력을 썼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현대는 그가 살던 중원과는 다르다. 이제 이곳도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래도 현대는 폭력보다는 권력과 재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폭력을 휘둘렀으니 따가운 시선 정도야 감수해야겠지.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적의나 악의는 귀신같이 찾아내는 강진호가 그들의 시선에서 딱히 적의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뭐지?’
“야, 강진호!”
강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세연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너 학교 왔네?”
“음…….”
“최영수 때렸다며?”
강진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니까. 굳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됐다.”
“입원했다던데? 사람을 얼마나 팬 거야? 야만인!”
“꾀병이야.”
한세연은 다시 봤다는 듯 강진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싸움 잘할 것같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최영수가 약골인 거지.”
“흠, 그냥 착한 줄 알았는데, 성깔 있네. 그런데 나는 폭력 쓰는 남자 별로야. 너 감점이야.”
“……어쩌라고?”
한세연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반가워서 인사하기는 했는데, 느낌이 뭔가 달랐다.
한동안 강진호를 위아래로 훑은 한세연이 놀랐다는 듯 말했다.
“너, 키 컸어?”
“글쎄?”
“어깨도 조금 넓어진 것 같고.”
“……기분 탓이겠지.”
“그런가? 인상이 조금 변한 것 같은데?”
한세연의 눈은 의외로 날카로웠다.
단전을 만들기로 결심한 날, 강진호는 바로 탈태환골을 시도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탈태환골로 외형이 변하게 되면 문제가 될 소지가 워낙에 다분한 것이 지금의 세상이기에 탈태환골을 보류하고 육체를 조금씩 바꿔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탈태환골보다 더 험난한 과정이지만, 적천마존으로 강호에 정점에 올랐던 강진호에게는 시도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강진호는 내부부터 시작하여 외형까지 신체 모든 부분을 미세하게 바꿔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미미한 변화를 한세연은 눈치챈 것이다.
‘아니면 사흘간의 변화를 한 번에 봤기에 더 알기 쉬웠던 거겠지.’
어느 쪽이든 한세연의 눈썰미가 보통 이상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훨씬 듬직해 보이는데? 얼굴도 잘생겨 보이고.”
“기분 탓이야.”
“기분 탓이면 큰일이지.”
“왜?”
“기분 탓으로 사람이 잘생겨 보인다는 건 좋아한다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럼 그냥 내가 잘생겨진 걸로 하지.”
“너 웃긴다?”
한세연은 입을 가리고 웃더니, 갑자기 조금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강진호에게 슬쩍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내가 너무 오버했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왜?”
“내가 너랑 있는 걸 곱게 보지 않는 눈이 생겼거든. 그것도 꽤 많이.”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이기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강진호가 이제는 질투를 유발하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는 거지.”
“…….”
강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뭘 했다고 그런 변화가 생긴다는 말인가.
“우습기는 하지만, 여자는 원래 그래. 화제성 있는 남자를 좋아하거든. 게다가 넌…….”
한세연은 싱긋 웃었다.
“이렇게 보니 마스크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강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아, 살기가 느껴진다. 나는 목숨을 잃기 전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세연은 강진호에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노래방 같이 가기로 한 약속 잊지 마.”
“그러지.”
한세연은 손을 흔들더니 종종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런 한세연은 가만히 지켜보던 강진호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강진호는 피식 웃었다.
한세연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뭘 했다고 그런 변화가 생긴다는 말인가.
강진호는 슬쩍 창 너머 교실을 바라보았다.
“야! 강진호 학교 왔대!”
“정학 끝났어?”
“그래. 솔직히 일주일 정학, 너무 심하지 않냐?”
머리를 땋은 여자아이가 흥분해 소리쳤다.
“솔직히 원래 최영수 걔가 박유민인가 걔 괴롭힌 거 맞잖아. 강진호가 그거 보고 나선 거고.”
“그렇긴 하지.”
“그런데 무슨 정학 일주일이래? 예전에 최영수가 애 때려서 병원 보냈을 때는 교내 봉사도 안 시키더니.”
“제보할까?”
“무슨 소리야?”
“이런 거 고발 프로그램에 제보하면 취재 나오지 않나? 한 번 망해보라고 하는 건 어때?”
“야, 그럼 우리 학교 이미지는 어쩌고?”
“알 게 뭐야. 우리가 학교 이미지까지 생각해 줘야 하니?”
“그건 그렇고, 강진호도 은근 멋지더라.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언제 그렇게 남자다웠데?”
“최영수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병원에 실려 갔다잖아.”
“요즘 보면 은근 잘생긴 것도 같고.”
“에이, 그건 오버다. 강진호가 잘생기지는 않았지.”
“아니라니까. 아, 저기 가네. 한 번 봐.”
“어?”
“괜찮지?”
“정말 그러네? 훈훈하다, 얘.”
예민해진 청각으로 모든 대화를 다 들은 강진호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현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피시방 가자!”
정인규는 금세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잠시 시무룩하기는 했지만, 감정 변화가 빠른 나이답게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은 됐어.”
“그냥 자신 없다고 해라, 인마. 내기 안 걸게. 형이 설마 하수 돈 뺏어 먹겠다고 게임하자 그러겠냐?”
강진호가 코웃음을 쳤다.
“내일 붙어주지.”
“오오, 연습 좀 했나 본데?”
강진호는 가볍게 웃어주고는 자전거에 올랐다.
“그럼 간다.”
강진호는 자전거를 타고 교문 밖을 빠져나갔다.
쇄애애액.
그런데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강진호의 자전거 뒤로 흙먼지가 말아 올려지고 있었다.
정인규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뭔 놈의 자전거가 저렇게 빨라?”
이태호도 정인규의 말에 동조했다.
“저 정도면 바이크라고 해도 믿겠다.”
“저 인간…… 요즘 좀 이상하네, 진짜.”
정인규는 멀어지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진호는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이대로 곧장 집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자전거를 탄 김에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쌔애애앵!
가볍게 동네를 돈다기에는 과도한 속도지만, 강진호는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느긋하게 지나가는 풍경을 즐기는 중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자전거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강진호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었다.
‘재미있군.’
생각 같아서는 멀리까지 나가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길을 잃으면 큰일이기에 일단은 알고 있는 곳 위주로 돌았다.
그때, 강진호가 달리던 자전거 바로 앞으로 작은 아이가 튀어나왔다.
“꺄악!”
그 광경을 본 아이의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웃차!”
강진호는 자전거를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자전거가 아이의 머리 위로 1미터 정도 튀어 오르더니, 아이를 뛰어넘어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미안합니다.”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지만 먼저 사과를 했다.
아이 엄마는 강진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부터 살피더니, 아이가 멀쩡하자 그제야 강진호를 보며 마주 사과를 했다.
“그럼.”
강진호가 자전거를 몰고 멀어지자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묘기 자전거인가?”
“아무리 묘기 자전거라도 경사대도 없는데?”
그렇게 강진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전거를 몰았다.
“시원하군.”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바람이 조금 시원하게 느껴졌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이곳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바람이었다.
그때, 강진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멀리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절뚝이며 걷고 있는,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
“흠…….”
한 바퀴 돌아 학교 주변으로 온 모양이다.
강진호는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학생의 앞에서 멈춰 섰다.
“……어?”
강진호를 본 아이가 살짝 놀란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안……녕.”
강진호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집에 가냐?”
“응.”
아이는 박유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