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25
#224.
응징하다 (4)
“한 대 피우지?”
집 앞 공원으로 나와 자리를 잡자 차인철이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금연 구역 아닙니까?”
“사람도 없는데 뭔 상관이야.”
“……경찰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걸리면 내가 벌금 내줄게. 피워요.”
강진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차인철이 내민 담배를 받아 들었다.
찰칵.
차인철이 강진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 역시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제는 담배 한 대 피우려고 해도 구석진 곳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세상이지. 많이 변했어.”
차인철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만큼이나 빨리 변하고 있었다.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시내버스에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면 지금의 아이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수사도 마찬가지야. 예전에는 감에 의존해서 하는 수사였지. 적당히 의심이 가는 놈이 있으면 잡아다가 윽박지르고 보면 결국 그놈이 범인인 경우가 많았거든. 아, 오해하지 마.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문을 했다든가 그런 건 아니니까. 다만, 지금보다는 좀 강압적이었지. 지금은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야.”
과거에는 증거가 없어도 심증만으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경찰서가 아니라 법원으로 출근해야 할 것이다. 소송을 받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차인철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왜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와서 이런 말을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출근해야 합니다.”
“용건만 간단히. 좋지. 나도 좋아하는 말이야.”
차인철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제 새벽, 그러니까 이전 새벽 세 시에 어디에 있었지?”
“잤습니다.”
“집에서?”
“예.”
차인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한가?”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차인철을 바라보았다.
“……그래. 증거 있냐, 이거지?”
차인철은 낮게 웃었다.
“증거 없어. 그러니까 긴장하지 마.”
“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만?”
“그렇겠지.”
차인철이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예전이었다면 증거고 뭐고 일단 강진호를 잡아들인 다음에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로 살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차인철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권력이나 힘이 있거나, 아니면 도무지 증거를 남기지 않는 인간들이 있어.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범인을 잡아야 하는 우리는 증거가 없으면 그런 이들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지.”
“…….”
“그래서 때로는 경찰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제대로 쏴보지도 못한 총을 턱주가리에 쑤셔 박아 갈겨 버리고 싶은 놈들을 만나게 된다, 이 말이야.”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때로는 그런 놈들을 잡아 죽여주는 놈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이번처럼.”
차인철이 품 안에서 사진을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사진을 받아 들어 들여다보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폴리스 라인 가운데에 외도의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가 찍혀 있었다.
표정 변화 없이 사진을 들여다보는 강진호를 보며 차인철이 피식 웃었다.
“역시 안 놀라는군.”
“이런 걸로 놀랄 만큼 간이 작지는 않으니까요.”
“그러시겠지.”
차인철이 낄낄대며 웃었다.
“죽었어. 사인은 어이없게도 동사라더군.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갔는데 과다출혈도 아니고 말이야. 날이 그렇게 춥지도 않았는데 피가 많이 흘러서 그런지, 동사로 죽었대.”
“…….”
“알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차인철이 가만히 강진호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차인철을 마주 보았다.
“이봐, 강진호.”
“예.”
“보통 이럴 때는 ‘왜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고. 그렇게 ‘네가 뭘 알고 있더라도 나를 잡아넣을 증거는 없을 거다’라는 표정을 짓는 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뭐, 좋아. 나도 뭘 어떻게 해보겠다고 온 건 아니니까. 다만…….”
차인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내가 왜 엿 같은 일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그 새끼들 아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지 않은 줄 알아?”
“아니요.”
“그게 법이니까.”
차인철이 담배의 필터를 잘근잘근 씹었다.
“설령 그게 정의더라도 법을 어기는 거니까. 법이란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같은 거야. 아무리 그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법이라는 안전장치를 벗어나서 움직이는 인간은 결국에는 사고를 치지. 자신이 법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결국에는 그 정의가 변질되어 간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좆같은 히어로 영화를 안 좋아해. 좆같이 히어로처럼 구는 새끼들도 안 좋아하고.”
차인철의 목소리는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잘났다고 법을 어기고 히어로질해 대는 새끼들도 범죄자라는 건 똑같아. 살인자를 죽인 놈은 살인자가 아닌 것 같아?”
차인철의 물음에 강진호는 태연히 말했다.
“그 말씀을 왜 제게 하시죠?”
둘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러게. 너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인데 말이야.”
차인철의 눈이 부드럽게 풀렸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시간을 뻿어 죄송하게 됐습니다, 강진호 씨.”
“별말씀을요.”
차인철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어이, 강진호.”
“예.”
“……오프 더 레코드다.”
“…….”
“아마 저 새끼가 살인자 새끼겠지. 그런 새끼를 잡아 죽인 건 인간으로서는 동조해 줄 수 있지만, 형사로서는 이해해 줄 수 없어. 너, 겉으로는 존나 평범하게 사는 연기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연기를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 새끼야. 수라장에 발 담근 새끼는 결국 비참하게 죽기 마련이야. 그리고…….”
차인철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이야기지. 넌 이제 이 일에서 손 떼.”
“처음부터 관여한 적도 없습니다만.”
“씨발 놈이.”
차인철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웃음기가 뒤섞여 있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옛날 같으면 너 같은 새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심문실에 처박았을 건데. 아니, 그전에 내 목이 잘렸을라나?”
차인철이 겁이 난다는 듯 목을 잡고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웬만하면 다시 보지 말자. 솔직히 나도 너 같은 새끼 앞에서 목청 높이는 게 오줌 쌀 만큼 무섭거든. 그런데 형사라는 게 좆 같은 게, 증거가 나오면 죽을 줄 알면서도 달려들어야 하는 직업이란 말이야. 네 손에 내가 안 죽게 조심 좀 해라, 씨발 새끼야.”
차인철이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비벼 껐다.
“간다.”
가만히 걸어가는 차인철을 지켜보던 강진호가 낮은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렸다.
살다 보면 만나게 된다.
감이 좋은 사람들을.
하지만 저처럼 무대포인 인간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걸까?’
조금 전, 뭔가 말을 하려던 차인철이 망설임 끝에 자신에게 전하지 않은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강진호였다.
그리고 왠지 그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오셨습니까?”
“그래.”
“뭐 나온 거 없죠?”
구영돈의 말에 차인철이 짜증을 내며 보조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맸다.
“뭐 찾으러 갔겠냐, 새끼야!”
“……그럼 이 아침부터 뭐 하러 거길 가셨습니까?”
“넌 몰라도 돼.”
구영돈이 피식 웃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거, 괜한 애 좀 잡지 마십시오. 이 정도로 깨끗한 애 의심하시는 것도 병입니다, 병.”
“깨끗은 씨발. 구린내가 존나 풍기는데.”
“생긴 것만 봐도 조낸 깨끗하던데요. 안 씻고 다닐 애 같지는 않던데.”
따악!
“아, 운전하는 사람 뒤통수 갈겼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럼 차 세워, 새끼야. 제대로 처맞고 다시 가든가.”
“……시정하겠습니다.”
차인철이 한숨을 푹 쉬었다.
좋게 말하면 파트너고, 실질적으로는 부사수건만, 이렇게 감이 없는 놈을 어떻게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감식 나왔어?”
“안 그래도 빨리 좀 진행해 달라고 해서 그 부분만 먼저 했다는데요.”
“어.”
“잘려 나간 사체의 손톱에서 여러 명의 DNA가 발견되었답니다. 아직 DNA 감식 결과는 좀 기다려야 하는데, 이런 경우 보통은 그게 맞답니다.”
“그렇겠지.”
구영돈이 슬쩍 차인철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시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 인적 없는 공터에 시체 하나 덩그러니 발견된 것뿐인데, 그놈이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알아채면 그건 수사의 영역이 아니라 무당의 영역 아닙니까? 대나무 하나 꽂아드려요?”
“보고 안 게 아냐.”
“예?”
“기다린 거지. 처참한 꼴이 되어서 나타날 시체를 말이야.”
“……그게 뭔 소립니까?”
“숫사자가 왜 죽는 줄 아냐?”
“기후 이상으로 인한 서식지 변화와 먹이 감소요.”
“…….”
“왜요?”
차인철은 담배를 물었다.
새삼 이 새끼와 대화를 하고 있어야 하는 자신이 처량했다.
“영역 싸움 하다 죽는 거야. 어설프게 다른 숫사자의 영역을 침범하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법이지. 그런데 늑대가 어설프게 사자의 영역에 들어가서 사냥을 해 댔으니, 찢겨 죽는 게 당연하지.”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요?”
“넌 평생 몰라도 된다. 아니, 모르는 게 나아.”
차인철은 대시 보드를 열어 서류철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 안에 든 사진을 꺼내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또 강진호를 찾아가실 겁니까?”
“아니.”
“지금까지는 눈에 불을 밝히고 뒤를 쫓더니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이제는 걔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드셨습니까?”
“희생자는 줄여야 할 거 아냐.”
“네?”
“아무리 좆같은 새끼라도 민간인에게 죽게 냅둘 수는 없으니까. 죽여도 내가 죽여야지.”
구영돈은 인상을 썼다.
저 선배는 다 좋은데, 대체 말을 알아먹을 수 없게 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차인철은 구영돈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가만히 피해자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달라.’
첫 번째 피해자는 전신이 난자당해 죽었다.
하지만 두 번째 피해자는 같은 여성이라는 것만 동일할 뿐, 육체가 손상된 기미는 없었다.
사인은 질식사.
‘미친 새끼들.’
길을 가던 여자가 아무런 흔적 없이 구석으로 끌려가서 죽었다. 그것도 일주일 사이에. 범인은 두 사건에 공통되게 CCTV가 엄청나게 깔린 지역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피해자를 끌고 갔다.
그것만으로 연쇄살인이라는 말이 붙었다.
하지만 차인철의 생각은 달랐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살인까지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살인의 방법이다. 두 피해자는 같은 방식으로 끌려갔지만, 전혀 다르게 죽었다.
‘동일범이 아니야.’
아마 강진호가 죽인 이도 살인범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살인범이 이 두 사람을 모두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만약 살인범이 하나 더 있다면?
차인철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말 안 하길 잘한 거겠지.”
“예?”
“시끄럽고. 빨리 몰아, 새끼야. 지각하겠다.”
“지각은 벌써 했거든요?”
차인철이 구영돈의 말을 무시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