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28
#227.
개업하다 (2)
다음 날 아침.
강진호는 이른 아침부터 차를 몰고 나왔다. 오늘은 카페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는 매우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가게 오픈과 마감까지 자리를 지켜준 강진호의 노고를 치하하며 무려 삼 일의 휴가를 내려주었다.
그 와중에 ‘이제 약발도 거의 다 됐는데 뭐’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강진호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차고에 선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동안 금동이를 너무 홀대했는데.’
카본 프레임이 울고 있었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야생마 같은 녀석을 마구간…… 아니, 차고에 그만큼이나 박아두었으니 금동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강진호를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강진호는 짐을 옮겨야 한다. 날고 기는 강진호지만, 자전거를 타고 그 뒤에 짐을 실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빨간 스포츠카로 고개를 돌린 강진호의 얼굴도 여전히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짐칸이…….’
이놈도 달리기 위해 태어난 야생마 같은 놈인 건 동일해서 짐을 실을 곳이 없었다. 그나마 보조석이라도 있으니 조금쯤은 실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트럭을 한 대 살까?’
앞으로 짐을 실어 나를 일이 많을 것 같으니 트럭 한 대쯤 구비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픽업트럭은 너무 적고, 1톤 정도면 어느 정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아버지와 상의해 보기로 결심을 한 강진호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12기통의 배기음이 기분 좋게 귓가를 짓누른다.
다음에는 꼭 금동이를 산책시켜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강진호가 엑셀을 밟았다.
부르르르르릉.
낮은 저음의 엔진음이 들려온다.
이 엔진음이 마치 음악처럼 느껴져서 강진호는 차를 타더라도 굳이 노래를 틀지 않았다. 노랫소리보다 엔진이 약동하는 소리가 더 즐겁게 느껴지니까.
강진호가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커다란 장난감 매장이었다.
‘선물을 사 가야지.’
그동안 들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할 겸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으로 올라간 강진호가 완구 코너로 갔다.
“으음…….”
별세계가 이런 걸 표현하는 말일까?
좌우 매대로 장난감들이 쫘악 늘어서 있지만…… 다 그게 그거 같고, 그놈이 그놈 같아서 뭘 사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각종 브랜드와 완구의 이름이 쓰여져 있지만, 강진호의 눈에는 그 단어들이 수학 공식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강진호는 지성인이고, 어려울 때는 도움을 청하면 된다는, 아주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장난감을 채워 넣던 직원이 환히 웃으면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죄송한데, 장난감을 좀 사려고 하는데요.”
“아, 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이가 남자인가요, 아니면 여자아인가요?”
“……일단은 남자요.”
“음, 그럼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한살부터 열 살이요.”
직원이 ‘이 양반, 뭔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곧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호구 왔네.’
장난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장난감을 사 줄 대상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면서 일단 어떻게든 장난감을 사겠다고 온 상황이다.
이런 사람을 보통 호구라고 한다.
여기가 개인 매장이라고 하면 바로 호구를 잡아 엿을 먹였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매장의 주인은 그가 아닌데다 호구를 잡아보았자 그에게 좋을 일은 없었다. 판매량을 늘리면 인센티브를 좀 받기야 하겠지만, 그거 뭐 얼마 된다고 멀쩡하게 생긴 사람을 엿 먹이겠는가.
점원은 양심적으로 팔기로 마음을 먹었다.
“요즘 잘나가는 건 이쪽입니다. 이게 랩터 킹이라고 해서 한창 잘 팔리는 제품이죠. 티라노 포스 계열이 요즘 인기가 많거든요.”
“……티라노?”
공룡 파워가 뭘 어쨌다는 말인가.
무슨 외계어를 듣는 듯한 얼굴이 된 강진호를 본 점원이 미소를 지었다.
“TV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이런 걸 찾는 애들이 많거든요.”
“아!”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요즘 잘나간다는 제품을 소개받았지만, 강진호의 눈에는 그게 그거였다. 뭐가 다른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쇼핑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강진호의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다.
“저건 뭔가요?”
“아……. 손님, 저건 일본에서 방영 중인 로봇물의 등신대입니다.”
사람 크기만 한 조립 로봇을 발견한 강진호가 뭔가 압도되는 느낌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거, 파는 건가요?”
“하하…… 손님, 저거 팔면 가지고 가시게요?”
“네.”
“……비매품입니다. 저만한 건 팔 수가 없죠. 대신 좀 작은 건 있습니다.”
“보여주세요.”
“음, 가격이 좀 나가는데…….”
점원이 옆쪽으로 가더니, 박스를 꺼내 들었다. 박스 안에는 조금 전 본 사람 크기 로봇의 축소형이 들어 있었다. 축소형이라고는 해도 다른 로봇들보다는 좀 더 큰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실 이 제품은 어린아이용이라기보다는 어른용이라서 디테일도 높고, 가격대도 높습니다.”
“움직이나요?”
“관절 부위는 다 움직입니다. 보여 드릴까요?”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움직인다면 됐다. 그가 본다고 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개 사면 배달도 되나요?”
“음…… 고객님, 저희 매장은 배달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으음…….”
강진호가 인상을 썼다. 배달이 안 된다면 지금 산다고 해도 가져갈 수가 없다.
“그럼 안 되겠네요.”
강진호가 몸을 돌리려고 하자 직원이 얼른 붙잡았다.
“잠시만요.”
“예?”
“여러 개라고 하셨죠? 이게 가격대가 많이 높아서 여러 개 사시면 따로 배달을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몇 개 정도 구입하실 건가요? 원체 가격이 높아서…….”
“얼마죠?”
“한 개당 95만 원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른 개요.”
“아, 세…… 네?”
“서른 개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로봇 장난감과 강진호를 번갈아 보던 점원이 다시 물었다.
“고, 고객님, 몇 개라고 하셨죠?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지금 서른 개라고 하셨습니까?”
“네.”
“잠시만요! 점장님! 점장니이이임!”
창고 상태를 점검하던 점장은 갑자기 창고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오는 점원을 보며 인상을 썼다.
“왜, 인마! 왜 호들갑이야!”
“저, 저 손님이 배달되냐고 묻습니다! 차량! 차량 있습니까?”
“뭘 얼마나 산다는데 배달까지 해야 돼?”
“데스티니 풀 세트 30개요.”
“뭐? 몇 개?”
“서른 개요.”
“구, 구십오만 원짜리 서른 개?”
“예!”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점장이 점원의 뒷목을 움켜잡고는 소리쳤다.
“안내해! 당장! 그 고객님 앞으로!”
“이거 서른 개요.”
“인형 놀이 세트입니다만, 고객님?”
“여자애들 줄 거예요.”
“지금 당장 포장하겠습니다.”
고개를 뒤로 직각으로 돌린 점장이 소리치는 입 모양으로 ‘재고’라고 말하자, 뒤를 따르던 점원이 재고를 파악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다.
매장 전체가 긴장 상태로 들어갔다.
명품 숍도 아니건만, 몇 십만 원짜리 장난감을 삼십 개 단위로 주문하는 손님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야말로 재신의 강림이었다.
게다가 이 재신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공평했다. 남자아이 장난감을 서른 개 주문하고, 여자아이 장난감을 서른 개 주문했다. 얼마나 공평한지 가격대도 비슷하게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점장의 마음을 찔리게 했다.
‘……안 될 텐데.’
저 데스티니 로봇 풀 세트은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것이 아니다. 성인들이 가지고 놀거나 관상용으로 비치하라고 만들어 놓은 제품이라 내구력이 던지고 노는 아이들용만큼 튼튼하지 않았다.
파는 것은 좋지만, 과연 이것을 이런 식으로 팔아도 되는가 하는 가책이 느껴졌다.
‘팔면 그만이지.’
그가 골라준 것도 아니고, 자기가 골랐다고 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그냥 팔아 제끼면 된다.
‘어휴, 씨.’
한숨을 푹 내쉰 점장이 강진호를 불렀다.
“저기, 고객님.”
“네?”
“지금 아마 어린아이들 여럿이 있는 곳에 장난감을 가지고 가시는 거죠? 유치원 같은 곳요.”
“예.”
그럼 그렇지.
점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객님, 사실 아까 전에 주문하신 데스티니 풀 세트 같은 경우는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던지기도 하고 깔아뭉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제품은 워낙 디테일한 제품이라 그런 식으로 다루면 금방 깨지고 부서집니다.”
점장이 옆에 있는 장난감 하나를 꺼냈다.
“그냥 그렇게 사 가시기에는 이게 낫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이고, 가격도 훨씬 저렴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하죠. 아이가 많은 곳에는 이 제품이 나을 겁니다.”
“얼만데요?”
“이십만 원입니다.”
점장은 말을 하면서도 후회했다.
구십오만 원짜리를 이십만 원짜리로 바꿔가라고 권하다니. 본사에서 평가라도 나온다면 감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이천만 원을 덜 팔겠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바보가 되더라도 양심에 찔리는 짓을 할 수 없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점원도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어쩐지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돈 많은 집의 철없는 애라고 하더라도 장사는 제대로 해야지.’
그리고 착한 어른에게는 상이 떨어졌다.
“그럼 이것도 주세요.”
“……이것도요?”
“네, 이것도요.”
“아까 그건 취소 안 하시구요?”
“네.”
강진호는 태연하게 말했다.
“잘 부서진다니, 안 부서지는 것도 사 가야죠.”
아주 명쾌한 해답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내리지 않는 해답이기도 했다.
“남자 애들 것만 두 개 사 가면 좀 그런데…….”
강진호가 다시 여자아이 장난감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종수야.”
“예, 점장님.”
“따라붙어라.”
“예!”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총탄 밭으로 투입되는 병사와 같은 결연한 표정을 지은 둘이 강진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아이 장난감 세 종류와 여자아이 장난감 세 종류를 모두 고른 강진호는 개운한 표정으로 계산대에 섰다. 어째서인가 두 개가 세 개로 불어났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장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마음이 쓰려오고 있었다.
“저, 고객님…….”
“예.”
“처음에 고르신 데스티니 풀 세트 말입니다.”
“예.”
“죄송합니다만, 상품이 워낙에 고가이다 보니 재고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재고가 열다섯이고, 남은 열다섯은 일주일은 기다리셔야 물건이 들어올 겁니다. 그냥 열다섯 개만 가져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른 제품들도 몇 개씩은 부족합니다만.”
긴장된 마음으로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그의 예상과는 조금 빗나가 있었다.
“열다섯 개는 지금 준비해 주시고, 남은 것들은 들어오는 대로 보내주세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뭐, 어차피…….”
강진호의 다음 말이 점장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열다섯 개는 대비용이니까요. 부서지면 바꿔야죠.”
점장의 등골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강진호의 말이 듣기만 하고 실감은 하지 못하던 한 가지 단어를 뇌리 속으로 끌어 올렸다.
‘아, 이게 돈지랄이구나.’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