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29
#228.
개업하다 (3)
“배달은 바로 되죠?”
“배달됩니다! 배달은 되는데…… 워낙 물건이 많아서 차량을 불러와야 하거든요. 그럼 한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요. 결제해 주세요.”
“그, 그럼 전부 다 해서…….”
계산기를 두드려 본 점장의 눈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뭔가 단위 하나가 잘못 붙은 것 같은 가격을 본 점장이 심호흡을 했다.
‘꿈인가.’
아니, 꿈일 리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는 백화점 직원이 아니라 장난감 가게 점장이란 말이다. 장난감을 단체로 구매해 가는 것도 이상한데, 그게 이 가격이 나온다는 것도 충격과 공포였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원래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워낙에 가격이 어마무시하다 보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로 결제해 주세요.”
강진호가 지갑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
보통 이런 가격을, 아니, 이 가격의 반의반이라도 카드로 결제를 하는 사람은 보통 카드를 내미는 손에 거드름이 잔뜩 실려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강진호가 카드를 내미는 손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얼떨떨한 눈으로 카드를 받아 든 점장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체크카든데요.”
“……예.”
체크카드로 이 가격이 결제가 되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서 도무지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점장은 처음 입사에서 처음 카운터에 섰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도 이렇게 어리벙벙하지는 않은 것 같다.
조심스레 카드를 긁고 서명을 하자 뭔가 삑삑대더니 영수증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제가 되기는 하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 여기 영수증.”
“버려주세요.”
“고객님, 이걸 버리시면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예. 버려주세요.”
영수증을 든 손이 떨린다. 차마 카운터 아래에 비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으로 영수증을 버리지 못한 점장이 카운터 옆에 서류보관함으로 영수증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음, 그럼…….”
강진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점장이 앞으로 튀어나가 강진호 앞에서 공손히 손을 내밀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 점장실로 가시죠. 소파가 편해서 기다리시기 괜찮을 겁니다.”
“그래주시겠어요?”
“아이고, 고객님! 제가 영광이지요. 어서 이쪽으로!”
점장실 안으로 강진호를 밀어 넣은 점장이 문을 닫고는 눈을 부릅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차, 차 불렀어?”
“예! 불렀습니다.”
“대형 컨테이너로?”
“예! 점장님! 우리 물건 실어 오는 차 하나 빨리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30분 내로 온답니다.”
“그래?”
점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그럼 너 빨리 가서 커피 사 와.”
“커피 타라구요?”
“야, 이 미친놈아! 저 손님한테 믹스를 내놓을 거야? 빨리 위에 카페 가서 커피 사 와! 어서!”
“……종류는요?”
“종류별로 다 사 와, 새끼야!”
“옙!”
점원이 부리나케 위로 달려가자 점장이 가슴에 손을 댔다. 놀란 심장이 아직도 덜컹대고 있었다.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어야 하나?’
아침부터 남의 심장에 무리를 주는 악행을 하나 적립한 강진호였다.
“준비되었습니다!”
“예.”
가공할 속도로 물건을 실어 넣은 점장이 상품이 상하지 않게 꼼꼼히 밴딩을 마치고는 강진호에게 소식을 전했다.
“남은 물건은 일주일 뒤에 동일 주소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주세요.”
“서, 선탑하시겠습니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군대 용어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점장이었다.
“제 차 타고 갈게요. 트럭 어디 있나요?”
“정문에 있습니다.”
“예. 정문 쪽으로 갈 테니까 출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점장실을 나와 유유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자 점장이 조용히 소리쳤다.
“야! 나 같이 배달하고 올 테니까, 매장 잘 보고 있어라!”
“예, 점장님.”
“간다!”
부리나케 정문으로 달려간 점장이 트럭에 오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트럭 앞쪽으로 빨간 스포츠카가 와서 섰다.
‘저거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 본능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비싸 보이지 않는가. 저런 차를 타는 놈쯤은 되어야 이만큼 되는 장난감을 지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배달지가 어디지?”
주소만 쓰여져 있어서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주소로 내비를 찍고 가면 그만이지만, 이런 고급 장난감을 세트로 받는 곳이 어디인지가 궁금하다.
부르르르르릉.
앞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저거, 따라가 주세요.”
별일을 다 겪는다는 얼굴로 앉아 있는 기사에게 스포츠카를 가리키자 기사가 벙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미친. 트럭으로 람보르기니를 어떻게 따라가요? 내가 뭔 슈마하여?”
“저 사람이 주문한 사람이라구요! 빨리 안 갈 거예요.”
“살다 살다 별 경험을 다 하네.”
아마 트럭으로 람보르기니를 추격해 본 사람은 전 세계에 그가 유일할 것이다.
“놓치지 말아주세요.”
“주소 없어요?”
“……있는데요?”
“근데 왜 따라가요?”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트럭 기사를 보며 점장은 창 쪽으로 벌게진 얼굴을 돌렸다.
뒤쪽의 트럭이 따라올 수 있게 천천히 운전을 하며 강진호는 어제 박유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처음에 왔을 때 애들이 왜 너를 경계한 줄 알아?”
“낯서니까.”
“맞아. 그럼 걔들이 왜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지 알아?”
“……낯서니까?”
박유민이 가볍게 웃었다.
“무서워서 그런 거야.”
“낯선 사람이?”
“아니. 친해지는 게 무서워서 그래.”
“…….”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친해질 수 없어서 두렵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누구와 친해진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강진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잘 모르겠어.”
박유민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낯선 사람이 와서 애들을 돌본다고 시간을 보내주면 정에 굶주린 아이들은 그 사람에게 달라붙게 돼. 그냥 자기와 시간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거든.”
“음…….”
“그런데…… 그 사람이 일이 바쁘고 시간이 없어서 어느 순간 오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이 오던 시간에는 다른 건 안 하고 현관만 바라봐. 언제 올까, 언제 올까 하고.”
강진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물론 그 사람을 원망하면 안 되는 거지. 자기도 바쁘고 살기 힘든데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와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하지만…… 애들은 상처를 받아. 또 버림받았구나 싶은 거지. 아직은 그런 걸 이해할 수 없는 나이잖아.”
“그래.”
“네가 바쁜 건 알아. 충분히 이해해. 그리고 니가 굳이 보육원에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 역시 말이야. 그러니까 진호야, 친구로서 부탁 좀 하자. 한 번씩만 보육원에 좀 들러줘. 네가 언제 올까 싶어서 현관을 바라보는 애들이 너무 많아. 이런 부탁해서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라…….”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하물며 집안에 동물을 들이는 것에도 책임감이 필요하다. 한 번 돌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심. 하물며 사람에게 정을 주는 것인데, 그 책임감이 오죽해야 하겠는가.
‘멍청한 놈.’
아이들이 현관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아직 강진호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이런 물질적인 선물로 그 무관심하던 시간을 사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될 것이다.
진짜 사과는 이게 아니라 자신이 앞으로 보육원에 얼마나 더 마음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왜 나는 남이 깨우쳐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하지 못하는 걸까?’
조규민이나 박유민은 때때로 그를 보면서 못하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강진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다른 이의 충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멍청이였다.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알아서 하지 못하는데, 혼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마교에서도 이런 멍청한 자신이 중대사를 혼자 결정하고 밀어붙여 댔으니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칼 맞아 죽어도 싸지.’
강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멀리 보육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를 몰아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내리자 트럭이 보육원 앞마당에 와 멈춰 섰다.
“어디로 내릴까요?”
“음…….”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열다섯 개씩은 안으로 넣어주시구요, 남은 것들은 저 뒤쪽에 창고가 있어요. 문 열어드릴 테니, 그 안쪽으로 잘 쌓아주세요.”
“예! 고객님!”
난데없는 트럭 소리를 듣고 박유민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뭐, 뭐예요, 이거?”
트럭 뒤쪽에서 강진호를 발견한 박유민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진호야?”
“어.”
“이거 뭐냐?”
“장난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컨테이너 뒤쪽이 개방되면서 안에 가득 쌓인 장난감 박스들이 박유민의 눈에 들어왔다.
“……야, 진호야.”
“응?”
“넌 장난감을 사도 스케일이 왜 이리 요란하냐?”
“…….”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반쯤 미쳐 날뛰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 하나를 제외하고는.
강진호는 미묘한 얼굴로 장난감을 풀며 소리치고 날뛰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박유민.”
“……응?”
“어제 너,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
“현관?”
“……미안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생전처음 보는 장난감의 폭풍 러시에 감동하고 감탄한 아이들은 현관에 서 있는 강진호의 존재를 놓쳤다.
덕분에 10분째 현관에 서 있음에도 아무도 강진호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이게 뭐냐?”
“…….”
“이게 뭐냐고!”
“밥 먹을래?”
“꺼져!”
허탈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본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자신을 봐달라고 온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즐거웠으면 하고 온 것이다.
그러니 왜 기분이 나쁘겠는가.
“어? 진호 오빠다.”
“으아으어어.”
누군가 강진호를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아이들이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강진호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뭔가 군체 의식이라도 있는지, 한 놈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남은 놈들도 같은 행동을 한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모두 뜯던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강진호에게로 달려들었다.
어쩌면 무척이나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등 뒤에서 점장의 사색이 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으면 말이다!
“바, 밟지 마! 그거 백만 원짜리야! 으아아! 밟지 말라고!”
돈지랄의 결정체로 구입한 장난감을 가장 먼저 들여놓은 대가는 처절했다.
로봇의 날개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점장이 울음 섞인 비명을 질러 댔다.
“그거 밟으면 안 돼에에에에에!”
비산하는 장난감과 달려드는 아이들, 그리고 울부짖는 점장의 목소리.
그 아비규환의 광경 한가운데서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모르겠다.”
즐거우면 그만이지.
강진호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이들을 양팔로 안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