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3
#22.
둘러보다 (3)
박유민은 어색한 표정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기…… 난…….”
강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게 잘못한 것이 있어 고개를 숙이는 것인지, 습관이 되어 자꾸 고개를 숙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점은 그런 박유민의 모습이 강진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이유 때문이든 말이다.
“걸어 다녀?”
“응.”
“집이 어딘데?”
“집? 우리 집은…….”
박유민은 뭔가 우물쭈물하더니,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를 박유민이 가리키고 있었다.
“저긴데.”
“저기?”
“응.”
강진호는 박유민이 가리키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멀쩡한 사람도 걸어 올라가다가는 다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산꼭대기.
박유민이 가리킨 곳을 자세히 보니 거기에 건물이 있긴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저 건물을 다리가 불편한 박유민이 올라간다고?
“진짜냐?”
“응. 내가 왜 거짓말을…… 아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말을 하려던 박유민은 자기가 한 짓을 생각하고는 말을 얼버무렸다.
양심상 그런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높네.”
“조금.”
강진호는 가만히 박유민의 다리를 바라보다가 자전거를 돌렸다.
“타라.”
“응?”
강진호가 자전거 뒷좌석을 가리켰다.
“타.”
“아니, 괜찮아. 난 그냥 걸어갈게.”
강진호가 가만히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구석으로 끌고 가 때리기라도 할까 봐?”
직설적인 강진호의 말에 박유민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이 더 마음에 안 든 강진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난 굳이 그렇게 안 해. 때릴 거면 벌써 했지.”
“미안해…….”
“됐으니까, 타라.”
박유민은 우물쭈물하다가 더 거절하는 것도 미안했는지 슬그머니 자전거 위에 올랐다.
“꽉 잡아라.”
“응?”
“간다.”
강진호가 자전거의 페달에 발을 올리더니 슬쩍 내려 밟았다.
쐐애애액!
하지만 슬쩍의 기준이 잘못되었는지 자전거는 니트로라도 장착한 듯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뭐, 뭐, 뭐야! 이 자전거! 왜 이렇게 빨라!”
“꽉 잡아. 떨어진다.”
쇄애애애액!
강진호의 자전거가 경사진 언덕길로 들어섰다. 걸어서 올라가기도 힘든 급경사를 자전거가 마치 내리막길이라도 타는 것처럼 고속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사람 하나를 싣고서.
“으아아아!”
박유민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속도에 놀라 강진호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진호는 유유히 자전거를 몰아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지, 진호야, 좀 천천히 가면 안 되니?”
강진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천천히 가고 있는데?”
“이게?”
“더 천천히 가야 하나?”
멍해진 박유민을 싣고서 강진호의 자전거는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꼭대기에 도달했다.
“음…….”
강진호는 정상에 올라서는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언덕이 조금 더 있었으면 기분이 좋았을 텐데.”
뭔가 이제 좀 열이 오르는 것 같은데 언덕이 끝나 버리니 기분이 애매했다. 조금만 더 언덕이 이어졌다면 간만에 땀을 흘리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털썩.
자전거에서 떨어져 나온 박유민이 바닥에 주저앉아 강진호를 올려다보았다.
“……언덕을 더?”
“그래.”
“여, 여긴 오토바이도 못 올라오는 곳이야!”
“그래?”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자전거는 가벼우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별것 아닌 일에 집착하네.”
박유민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다시는 네 자전거 안 타.”
“그래도 편하게 왔잖아.”
“수명이 줄어든 것 같아.”
강진호는 피식 웃고는 박유민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 집이 어딘데?”
“저기.”
강진호는 박유민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저기?”
“응.”
그곳에는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강진호는 그 건물을 보며 턱을 긁었다.
과거 중원에서 비슷한 건물들을 몇몇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개방 거지들이 쓰는, 움막 같은 느낌이군.’
현대에도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이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다.
성심 보육원.
건물 앞의 담에는 그래도 번듯한 간판이 들어서 있었다. 그 번듯함이 아무리 봐도 나무를 손으로 깎아 만든 것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여기가 집이라고?”
“응.”
“어머니가 저걸 운영하시냐?”
“아니, 내가 저기에 운영당하고 있는데?”
“…….”
매우 적절한 표현에 강진호조차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그 의미가…….
강진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보육원이라…….
아마도 고아원이라는 뜻일 터였다.
“흠…….”
“온 김에…… 물이라도 마시고 갈래?”
“그래.”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던 강진호로서는 두말없이 박유민은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녹슨 철제문이 보였다.
끼이이익!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안에서 조그만 아이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형이다!”
“유민이 형 왔다!”
“오빠!”
박유민은 우르르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일일이 쓰다듬고 안아준 다음 입가로 손을 가져가 손가락을 세웠다.
“친구가 왔으니까 조용히 하고, 있다가 놀아줄게. 알았지?”
“응!”
“유민이 왔니?”
“예, 원장님.”
안에서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나오더니 눈에 이채를 띠고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쪽은?”
“친……구예요.”
강진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강진호입니다.”
“어서 와요. 유민이가 친구를 데려오는 건 처음인 것 같네. 볼 건 없지만 편히 쉬다 가요.”
“예.”
강진호는 박유민이 가져온 물을 얻어 마신 다음 밖으로 나갔다. 안에서는 도저히 무슨 대화를 할 상황이 만들어지지가 않았다.
워낙 좁은 곳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보니 빽빽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중원에서도 조용한 것을 좋아하던 강진호에게 이러한 환경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잘도 이런 곳에서 사는군.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
“살다 보면 익숙해지니까.”
강진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했군.’
박유민도 이런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사는 건 아닐 텐데, 너무 쉽게 말을 해버렸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어쨌든 데려다 줘서 고마워.”
“그래.”
“내가 너한테 몹쓸 짓을 했는데.”
“…….”
“미안해.”
강진호는 슬쩍 박유민을 본 다음 입을 열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물을 일도 없을 테니까.
“왜 그랬냐?”
박유민은 움찔하더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별로 따져 묻고 싶은 생각도 없고, 탓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냥 궁금하다. 왜 그랬냐?”
박유민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 한동안 우물쭈물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집 보여?”
“그래.”
“다 쓰러져 가지?”
“그래.”
“지원금이 끊긴 지가 좀 됐어.”
“…….”
“국가보조금이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된 다음부터 지원금 심사가 까다로워졌어. 우리 보육원은 자격이 미비해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어.”
“제외?”
“보육원을 해체하라는 거지.”
“애들은?”
“다른 보육원에 나눠서 흩어지는 거지. 그런데 여기 애들은 정상인 애들이 잘 없어. 지능이 조금 떨어지거나 몸이 안 좋아. 다른 보육원으로 가면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
“그걸 아니까 원장님이 보육원을 그만두실 수가 없는 거야. 밤낮으로 일한 돈과 억지로 끌어모은 지원금과 기부금으로 겨우겨우 생활을 했어. 그것도 안 돼서 계속 조금이라도 더 싼 곳으로 옮기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지.”
“그렇군. 그래서?”
“그날…… 교장 선생님이랑 같이 온 사람이 나한테 그러더라. 여기서 쫓겨나면 더 갈 곳이 있냐고.”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갈…… 곳이 없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이제는 더 갈 곳이 없단 말이야. 나도 2년 뒤면 보육원을 나가야 돼. 그동안은 내가 신문이라도 돌려서 돈을 보태고 있었지만, 그 뒤론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런데 여기서까지 쫓겨나면 보육원은 정말 문을 닫아야 돼. 그럼 저 애들은? 저 애들은 어떻게 하고?”
“신문 배달? 그 다리로?”
“…….”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도 절름발이로 살아보았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이 걷는 것에 얼마나 큰 힘을 소모하게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리로 신문 배달을 한다니.
“널 배달원으로 써줘?”
“그야 뭐, 여긴 워낙 경사가 높아서 바이크가 다니기 힘드니까. 배달하려는 사람이 잘 없거든.”
“이 동네를 배달한다고?”
“생각보다 안 힘들어. 신문은 여기까지 올려주고, 나는 슬슬 내려가면서 돌리면 되니까.”
“그래.”
강진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안 봐도 빤했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알았는데…….”
“됐다.”
압력을 받고, 협박을 받았다고 해서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은 죄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여러 번 겪어보았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네. 살 수 있게 돼서.”
박유민은 처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무슨 소리야?”
“내가 멍청했어. 그보다 더 멍청할 수가 없었지.”
“…….”
“내가 그런다고 해서 우릴 위해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멍청해서 잊어버렸어.”
강진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집 비워 달래.”
“왜?”
“재개발이 들어간다는데…… 나라에서 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보상금도 안 나와.”
“버티면 되잖아.”
“무슨 힘으로?”
박유민은 고개를 저었다.
“버틸 수가 없어. 무슨 수로? 무슨 명분으로? 집주인이 계약이 끝나면 나가 달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버틸 거야? 다음 달이면 계약이 끝나. 그럼…… 이제 더는 갈 곳이 없어.”
박유민은 얼굴을 감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박유민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됐어.”
“아니, 사과하게 해줘.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으니까……. 진짜 미안하다.”
강진호는 가만히 박유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과, 받지.”
“고맙다.”
“대신.”
“응?”
“다음에 콜라 사라.”
“……두 개 사 줄게.”
“두 개나?”
박유민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박유민의 편은 사라졌다.
과거 최영수에게 괴롭힘당할 때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봐주던 이들도 모두 경멸로 박유민을 대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더 힘든 것은 그 모든 것이 박유민이 자초한 일이라는 점이었다. 박유민은 그런 꼴을 당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물어도 될까?”
“그러든지.”
“나…… 왜 태워준 거야?”
강진호는 살짝 고민을 했다.
동정?
아니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 어느 것도 명확한 답은 아니었다. 강진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을 택했다.
“그냥 변덕이야.”
“변덕?”
“그래. 그냥 자전거를 타는 길에 네가 보였고, 보인 김에 말이나 걸었고, 말을 거니 멀어 보여서 태운 것뿐이지.”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는데?”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사소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