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38
#237.
돈을 벌다 (2)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잘 처리하고 있소.”
[한국인들의 어법은 이상하군.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 같은데. 시킨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을 잘하고 있다고 하는 모양이지?]“…….”
[한국인들의 성격이 급하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인 모양이야. 중화인인 내가 속이 탈 지경인데, 그리 느긋하니 말이야.]“이쪽에도 사정이 있어서.”
[그 사정의 이름은 ‘무능’이겠지?]김석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모욕적인 발언이 그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이 사람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잡혀 있는 약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가 너무 극심했다.
홍왕을 등에 업은 차이커창에게 목소리를 높일 바에야 차라리 입에 비수를 물고 앞으로 꼬꾸라지는 편이 나았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요.”
[얼마 전에도 그 말을 들었지.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었어.]“이보시오, 차이커창.”
[긴말은 필요 없다. 홍왕께서 분노하고 계신다.]“…….”
[그 알량한 조직이라도 보전하고 싶다면, 그쪽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쓰는 것이 좋을 거야. 내 말 허투루 듣지 말도록.]뚝.
할 말을 다 했는지 전화가 무심하게 끊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짱깨 새끼들이!”
김석일이 전화기를 벽으로 집어 던졌다.
퍽!
휴대폰이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뿌려졌다. 김석일은 그 광경을 보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벌떡 일어나 앞에 놓인 탁자를 걷어찼다.
쾅!
탁자가 벽으로 날아가 두 동강이 났다.
“어디 짱깨 새끼들이 이래라 저래라야!”
으득으득, 이 갈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흘러나왔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현수가 다급하게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방 안의 광경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이현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진정하시지요, 회장님.”
“빌어먹을…….”
김석일이 자리에 털썩 앉더니,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말이 쉽지, 미친놈들.”
일반인 하나를 슥삭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무인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일반인과 무인은 그 활동 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곳곳이 번화가이고,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일반인이라면 그 사람이 도주하더라도 번화가나 인도에 들어서기 전에 잡아 죽일 수 있겠지만, 무인이 마음먹고 도주를 한다면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더구나 강진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하고 치안이 좋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외도를 잡아 죽일 정도의 무력을 가진 무인을 티 나지 않게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한 일이면 벌써 했지.’
몸을 숨긴다는 것은 이토록이나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당위성의 문제는 접어두고, 그들이 단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무인의 존재를 숨기려는 타국의 세력들에게 오체분시를 당할 것이다.
“이성휘, 그놈은 어떻게 됐지?”
“숨어 지낼 곳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안에서 익혀 나올 겁니다.”
“……제길.”
이성휘는 분명 쓸 만한 카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숙성 기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미 외도를 처리한 강진호가 아닌가.
이성휘 하나만으로 그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골치 아픈 일을 떠맡았어.”
“강진호 말입니까?”
“그놈 말고 뭐가 문제겠나. 이제 드디어 궤도에 올라서서 저 지긋지긋한 총회 놈들을 끝장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곳에서 시간을 끌리고 있군.”
김석일이 짜증을 내며 얼굴을 문질렀다.
강진호의 일만 아니었다면 총회 쪽으로 진행하고 있던 일을 슬슬 마무리 지을 타이밍이건만, 강진호에 대한 처리 때문에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다.
아무래도 홍왕 쪽에서 맡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다른 곳에 역량을 집중했다가는 홍왕의 눈총이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김석일이 가만히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는 김석일의 시선을 받으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외도가 안 된다면, 수로 찍어 눌러 버리면 되는 일이지요.”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그놈의 동선이 그리 짜여 있는 이상 다수를 투입했다가는 일반인들과 총회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걸 모르는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현수는 김석일의 질책에도 느긋함을 잃지 않았다.
“생각을 반대로 하면 그만이지요.”
“반대로?”
“우리가 굳이 그놈을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해결을 할 수 없다면, 밖으로 끌어내면 그만이죠.”
“으음…….”
김석일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능하겠지. 아니, 그럴 수만 있다면 이리 골머리를 썩을 필요도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나? 무슨 수로 그를 끌어내겠다는 거지?”
“끌어낼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죠. 제게 일임해 주십시오. 회주님께서 인원만 할애해 주신다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흐음…….”
김석일이 침음을 흘렸다.
“좋아, 일임하지. 인원은 언제까지 필요한가?”
“빠를수록 좋습니다. 입이 무거운 놈들로 부탁드립니다. 외도를 간단하게 처리한 놈이니, 그에 상응하는 인물들로 부탁드립니다.”
“입이 무겁고 강한 이들을 모조리 빼달라는 거로군.”
“홍왕의 이름은 그만큼이나 무거운 것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지. 좋아,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지.”
“감사드립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푹 숙이자 김석일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이현수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찰칵.
이현수가 나가자 김석일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자 연기가 어지러이 허공을 수놓으며 흩어졌다.
‘뭔가 찝찝하단 말이지.’
수렁으로 자꾸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홍왕도 그렇고, 강진호도 그렇고.
그가 만들어놓은 계획에는 등장하지 않았어야 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면서 그의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 잘 풀린다면 전화위복이 되겠지만…….
“세상일이 그리 만만할 리 있나.”
어떠한 일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급부가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김석일은 조금 전 자신에게 의견을 내놓던 이현수를 떠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건방진 놈.’
인원을 할애해 주면 알아서 하겠다니. 예전 같았으면 시시콜콜한 계획까지 모두 털어놓고 재가를 기다리겠다고 할 놈이 머리가 많이도 굵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나중에는 그를 잡아먹겠다고 덤빌 놈이었다.
“인원이야 내주지. 그건 어렵지 않으니까.”
김석일의 머릿속에서 홍왕과 강진호, 그리고 이현수가 어지러이 휘돌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조합 사이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적의 결과를 향해 김석일의 머리가 고심을 시작했다.
* * *
퉁!
튕겨 올라간 반죽이 팽그르르 회전하더니, 좌우로 쫘악 펼쳐진다.
“헐…….”
박유민이 그 광경을 보고는 입을 쩌억 벌렸다.
‘저게 뭐야?’
반죽을 빙글빙글 돌려서 피자를 만드는 모습이야 익숙하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가 하는 짓은 일반적으로 피자 반죽을 펴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손으로 한 번 반죽을 허공으로 띄워 올리자 반죽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절로 피자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퉁!
그런 후, 반죽을 하나 더 튕겨 올리자 새로운 반죽이 바로 만들어졌다.
‘헐.’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박유민이 눈을 비비며 다시 주방을 바라보았다. 기계로 뽑아내는 반죽도 저렇게 빨리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동그란 반죽 덩어리를 살짝 던졌다 받으면 깔끔하고 평평하게 펴진 피자 반죽이 만들어지는 수준이었다.
반죽을 받아 든 강진호가 주방 중앙에 마련된 커다란 테이블에 모두 올리더니 소스를 뿌리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좀 하자, 진호야.’
그 소스를 뿌리는 모습도 범상치가 않았다. 강진호는 소스 통을 잡고 제자리에서 흔들어 댈 뿐인데, 소스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더니 알아서 반죽 구석구석을 채워 나갔다.
네 개의 피자 반죽을 띄엄띄엄 두고 소스를 뿌리는데,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소스는 한 방울도 없었다.
‘나……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릴 적에 보던 만화에 비슷한 광경이 있던 것 같다. 주인공이 칼질을 하면 재료들이 알아서 날아올라 구석에 차곡차곡 쌓이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박유민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취재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프로그램이 맛집 탐방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인 프로그램일 것 같다는 거지.
‘아니, 뭔 토핑이 오와 열을 맞추지?’
위생 장갑을 끼고 토핑 상자에서 재료들을 잡아 던지는 것뿐인데, 알아서 토핑들이 칼 각을 맞추어 정렬하고 있었다. 주영기의 말로는 강진호는 군대가 체질이었다는 것 같던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실감이 갔다.
토핑과 치즈까지 단숨에 뿌려낸 강진호가 거대한 화덕용 팬에다 피자를 올리더니, 화덕 안으로 밀어 넣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주문이 들어왔다는 말을 한 게 3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네 개의 피자가 화덕으로 들어갔다. 피자를 굽는 시간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지금까지의 속도는 말 그대로 가공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박유민은 몰랐다.
아직 끝이 아님을.
화덕 안으로 피자를 다 넣은 강진호가 화덕 좌우에 참나무 장작을 부지깽이로 툭툭, 밀어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화덕 안이 환히 밝아질 정도로 장작들이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좀 하자고!’
고작 피자 굽는 일 아닌가!
세상에는 놀랄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굳이 피자 굽는 과정 하나하나에서 사람을 이리 놀라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건 정말 낭비 중의 낭비였다.
강진호가 화덕 안의 피자들을 요리조리 돌리더니, 갑자기 빼내기 시작했다.
“헐…….”
화덕을 빠져나와 김을 내뿜는 피자의 자태를 보며 박유민은 입을 헤, 벌렸다.
‘뭐가 벌써 끝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피자는 완벽하게 익어 있었다. 되레 끝부분이 살짝 탄 듯 검게 그을려 있는 것을 보니, 과하게 익었나 싶기도 하다.
‘아, 이래서 피자를 패스트푸드라고 하는구나.’
패스트푸드가 별건가.
빠르면 패스트푸드지.
라면을 끓여도 저것보단 힘들게 끓이겠다는 생각을 하는 박유민 앞으로 강진호가 피자 판에 피자를 담아 내밀었다.
“끝.”
“……어? 음, 그래.”
먼저 나온 두 판의 피자를 양손에 들고 홀로 향하면서 박유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매장 좀 늘려도 될 걸 그랬나?’
확실한 건 하나는 있었다.
앞으로 이 피자집에 대기 시간은 없다.
“어이가 없네, 진짜.”
박유민은 피식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하튼 피자 하나를 만들어도 범상치 않은 강진호였다.
“피자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