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39
#238.
돈을 벌다 (3)
“헐, 벌써요?”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서 피자를 바라보았다. 미리 주문 들어올 걸 예측해서 구워놓는 것도 아닐진대, 어떻게 주문을 하자마자 바로 피자가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피자가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와, 이거 봐. 비주얼 쩐다.”
“토핑이 뭐 이리 많아?”
박유민이 빙긋 웃으며 피자를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네.”
박유민이 천천히 자리를 떴다.
“그냥 사진이나 찍고 가려고 온 건데…… 이거, 생각보가 퀄이 쩌는데? 돈 주고 먹어도 안 아까울 것 같아.”
“보통 연예인 가족이 하는 가게는 엄청 비싸잖아. 그런데 여긴 가격도 착한데 양도 쩌네.”
“……아니, 잠깐만. 가성비로 따지면 그냥 쩌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맛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데…….”
순간, 박유민이 귀를 쫑긋거렸다.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커먼 남자들과 다르게 가장 먼저 오더를 넣은 테이블에는 여자 셋이 앉아 있었다. 원래 피자집이라는 것은 남자의 평가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곳이다.
여자들이 맛이 있다고 해야 성공하는 게 피자집이 아닌가.
남자들이 도란도란 피자집에 둘러 앉아 피자를 뜯는 광경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손님은 여자 손님이기 마련이었다.
피자를 한 조각 든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커팅이 너무 크게 된 것 같지 않아?”
“피자가 큰 거야.”
“그런가?”
피자를 든 이가 조금 미묘한 시선으로 피자를 바라보았다.
치즈가 쭈욱 늘어나는 비주얼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토핑이 화려하기는 하지만, 조금 심심해 보이는 느낌이 난다.
‘먹어보면 알겠지.’
피자를 한입 뜯은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존맛.”
“맛있어?”
“이거 좀 이상해. 생긴 건 미국 스타일인데, 엄청 담백하다. 어떻게 구우면 이런 피자가 나오지?”
“담백하다고? 딱 봐도 느끼하게 생겼는데?”
“먹어봐. 장난 아냐, 이거.”
박유민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
‘됐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었다. 강진호가 만든 피자에 대한 불안감이 씻은 듯이 날아갔다. 그냥 먹을 만한 피자만 만들어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대성공이었다.
‘하기야 맛이 없을 수가 있나.’
그만큼 재료를 때려 부은데다가 그만한 화력으로 구워냈는데 기름기가 쪽 빠지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보통 그만한 화력으로 피자를 구우면 피자가 듬성듬성 익어서 어느 부분은 타고 어느 부분은 덜 익기 마련인데, 강진호는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로 그 화력으로 피자를 고루 구워내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진짜 가만 보면 이상한 데서 능력치가 쩐단 말이야.’
하지만 더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야, 유민아! 피자 나오잖아!”
피자를 나르고 있던 주영기가 큰 소리로 박유민을 불렀다.
“가, 간다!”
박유민이 화들짝 놀라 주방으로 다가갔다.
“헐.”
주방에서 홀로 이어지는 공간이 피자로 가득 차 있었다. 잠깐 서빙을 하고 온 사이에 저만큼의 피자를 또 구워낸 것이다.
“무슨 피자 굽는 기곈가…….”
기계라 해도 이 속도로는 피자를 구워내지 못하겠지. 여하튼 보면 쓸데없이 능력치가 높다.
박유민이 방긋 미소를 지으며 피자를 날랐다. 아무래도 손님 없이 텅텅 비어 있는 가게를 보면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처음으로 손님이 가득 찬 것을 보니 절로 힘이 났다.
주문이 들어온 피자를 모조리 나른 박유민이 이마를 닦으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 이제 피자는 다 구웠는데도 강진호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고 있었다.
‘뭐하고 있지?’
주방 안으로 들어간 박유민이 입을 쩌억 벌렸다.
“지, 진호야, 너 지금 뭐하니?”
“청소.”
“…….”
물론 청소는 좋은 일이다.
특히나 음식을 만드는 가게에서 청결하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음식을 만들어낸 후에 저렇게 테이블에 광이 나도록 닦지는 않는 법인데…….
아무리 테이블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저렇게까지 광이 나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눈이 부시다.
‘업종을 잘못 선택했네.’
차량 광택으로 카센터를 개업했으면 대기 차량이 도로 점거를 할 수준으로 갈 수 있었을 것 같다.
테이블을 다 닦고 조리 도구마저 반질반질하게 만든 강진호가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아, 아니, 진호야.”
바닥 청소는 좀 심한 것 아닌가?
주영기가 박유민의 뒤에서 고개를 쭉 빼 안을 보더니, 혀를 차기 시작했다.
“저 미친놈, 또 시작했네.”
“워, 원래 저래?”
“아니, 저놈은 결벽증도 이상한 결벽증이 있다니까. 보통 결벽증이라는 건 주변이 더러운 걸 못 참는 거잖아. 그런데 저건 훈련 나가거나 일하거나 할 때는 풀밭에 눕고 진흙탕 기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데, 청소를 해야 하는 곳이다 싶으면 거기가 더러운 걸 못 참더라고. 예전에 저것 때문에 애들 많이 잡았지.”
“헐.”
주영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강진호는 바닥을 아주 뜯어내 버릴 듯한 기세로 밀대질을 해 나갔다.
“……위생 점검은 문제없겠네.”
사람은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계속 나갔다.
테이블 수가 많은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에서부터 음식이 나가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다 보니, 회전율이 예상 이상으로 빨랐다.
“무슨 피자가 이리 담백하지?”
“아니, 진짜 바삭한데 부드러워. 희한하네?”
뒤로 갈수록 반응이 더 좋아지는 것 역시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생겼다.
“……재료가 동났다.”
“구, 구해봐!”
“안 돼. 숙성 시간이 있어야 돼. 그냥 지금 반죽한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지?”
“일단 브레이크 타임 걸자. 지금 숙성해 놓은 거 저녁에는 쓸 수 있을 거야.”
“응, 알았어. 그럼 은영이한테도 그리 말해둘게.”
박유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밖으로 뛰어 나가려고 하자 주영기가 붙잡으며 그의 얼굴에 수건을 들이댔다.
“니가 그런 꼴로 돌아다니면 손님들이 식욕이 떨어질까, 안 떨어질까?”
“잘못했습니다.”
“강진호가 땀을 흘리면서 밖으로 돌아다니면 일에 열정적인 남자가 되는 거지만, 너나 내가 그렇게 돌아다니면 더러운 거야.”
“와…… 현실인 건 알겠는데, 기분 진짜 더럽네.”
“원래 현실은 냉혹한 거야, 인마.”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브레이크 타임을 걸었다. 강은영의 공연 역시 저녁에 한 번 더 하기로 하고 중지시켰다.
홀을 폭풍처럼 휘몰아친 손님들이 사진을 다 찍고 나가자 순식간에 테이블이 비워졌다.
“크으…….”
주영기가 그 광경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꼬만 틀면 이렇게 잘 팔리는데, 왜 그동안은 사람이 없었지?”
“물꼬를 안 트니까 그런 거 아냐!”
공연을 잠시 쉬고 종업원 대기실에 앉아 있던 강은영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어? 안 떨어지면 나무에 올라가서라도 따야지!”
“한 수 배웠습니다, 마나님.”
주영기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고, 힘들어.”
강은영이 연신 머리를 매만졌다.
아무래도 야외 공연을 하다 보니 메이크업과 헤어가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피자 줘봐. 나도 먹어보게.”
“남은 게 없는데?”
“테이블에 남은 거 다 버렸어?”
“아니. 테이블에 남은 게 없어. 나도 맛도 못 봤어.”
“헐.”
강은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오라비가 그렇게 요리를 잘한다고? 옛날에는 라면도 제대로 못 끓였는데?”
“그 옛날이 언젠데?”
“한 십 년 전?”
“강산이 변하다 못해 고층 건물이 들어설 시간입니다.”
“……이상하다? 그리 꼼꼼한 성격이 못 될 텐데…….”
의심스러운 눈치로 바라본 강은영이 주방 안으로 소리를 빽! 질렀다.
“오라비! 동생 굶어 죽는다! 아이고!”
“……알았어.”
주방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자 강은영이 만족한 듯 의자에 몸을 기대고 고양이처럼 갸릉거렸다.
“그런데 진짜 어이없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수준이었는데, 너 하나 공연했다고 이렇게 들어차나?”
“나 하나? 이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나 강세아야, 강세아!”
“그래. 그러니까 강세아가 공연한다고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냐고.”
“아이고, 내 팔자야.”
강은영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왜 하필 그녀의 오라비 주변은 이렇게도 연예인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톱 아이돌이 피자집에서 나레이터 행사를 뛰는 일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이 사람들이 이해나 할 수 있겠는가.
“내일 되면 내 위력을 실감할 거야.”
“왜?”
“내가 없는데 장사가 오늘처럼 잘될 리가 있나! 보나마나 사람이 쭈욱 빠지겠지.”
“으음…….”
“오라비가 홀로 나오면 몰라도, 그냥 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나마나 나중에 나더러 한 번 더 와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때쯤 돼서야 내 위력을 실감하겠지!”
“그럴 일 없어.”
“두고 봐!”
강진호가 빙그레 웃으면서 주방에서 나오더니, 강은영의 앞에다 피자를 내려놓았다.
“고생했다.”
“응응.”
강진호가 칭찬을 해준 것이 좋은지, 강은영이 기쁘다는 듯 웃었다.
“야, 재료 안 남았다며?”
“우리 먹을 거야 남겨둬야지.”
“……이거, 이상한데? 원래 저렇게 치밀한 놈이 아니었는데.”
주영기가 혀를 차더니 피자를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내 거야!”
“너 혼자 이걸 다 어떻게 먹냐? 다 같이 먹는 거지.”
“쳇.”
강은영이 혀를 차더니 피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맛을 보았다.
“음?”
“오?”
피자를 먹은 이들이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와, 이거 어떻게 한 거지?”
“식감이 희한하다. 바삭한데 촉촉해.”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도 통하기는 하는군.’
비밀은 화덕이나 화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재료를 구할 수 있게 된 이후로 그의 스승은 한 번씩 열양공으로 피자를 구워내 강진호에게 던져 주고는 했다.
재료는 다르지만 당시의 열양공으로 만든 피자를 응용해 보았는데,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강진호도 피자 한 조각을 덥썩 물었다.
‘느낌은 나네.’
추억의 맛이라기에는 너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맛이지만, 이 피자 안에는 그때 그가 먹은 그 맛이 담겨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피자로 승부했어도 장사 잘됐겠다.”
“그러게.”
주영기와 박유민의 망언에 강은영이 소리를 꽥! 질렀다.
“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
“……고생하셨습니다, 아이돌님.”
“강세아 님이 아니었다면 저흰 망했지요. 암요.”
“오냐, 그래야지.”
강세아가 낄낄 웃다 말고 강진호에게 말했다.
“그런데 오빠, 진짜 내일부터는 손님이 확 빠질 거야.”
“괜찮아. 지금은 우리 셋이 감당하기에는 손님이 너무 많다. 적당히 빠져 줘야 해.”
“장사하는 사람의 마인드가 아닌데, 그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은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스케줄을 계속 뺄 수도 없는 일이니, 적당히 손님이 빠지고 안정적으로만 운영되어도 나름 성공한 것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녀가 ‘우리 오빠 가게가 망한다고!’를 외치며 회사를 뒤집어놓지 않았다면 시간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손님이야 적당한 게 좋지.”
하지만 강진호도, 강은영도 몰랐다.
오늘의 인파 따위는 장난으로 느끼게 될 2차 웨이브가 닥쳐오고 있음을.
그 서막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다들 어디 갔어!”
인파들을 통제하느라 정신이 없던 조규민이 썰물처럼 빠져 버린 사람들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배, 배고프다고!”
조규민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가게 문을 두드렸다.
“이거 좀 열어줘요! 진호 씨! 강진호 씨!”
그의 배를 채워줄 피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