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41
#240.
돈을 벌다 (5)
상황을 지켜보던 주영기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저 여자, 은근 허당 아닌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나름 톱 배우가 아닌가. 연예계에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한 주영기도 최연하라는 이름은 들어보았다. 그가 알고 있을 정도의 배우라면, 정말 대한민국에서는 알아주는 배우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사람들이 저리 많은 데서 저런 말을 한다니. 이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가만 보면 강진호 주변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어.’
대기업에서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엘리트 노선을 밟고 있는 양반이 강진호 주변만 오면 허당이 되어서 가게를 말아먹지를 않나, 가수라는 동생은 브라콤에 회사를 뒤집어서 자기 오빠 가게에 행사를 오지를 않나, 아버지는 커피 덕후에, 친구라고 있는 놈은…….
‘잠깐. 그럼 나도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자신 같은 정상인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각설하고, 매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지기 시작했다.
최연하도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좌우로 고개를 획획 돌리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
“데이트가 그 데이트가 아니구요, 그러니까…… 남녀 간의 사적인 느낌의 그런 데이트가 아니라…… 그러니까 둘이 따로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해보자, 뭐, 이런 의미인데…….”
바닥을 닦던 박유민이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보통 사회에서는 그런 걸 데이트라고 하죠.”
“…….”
최연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어버버댔다.
그리고 강진호는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데이트 신청은 고맙지만, 제가 시간이 없어서 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 데이트하재요!”
최연하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네?”
“제, 제 말이 그 뜻이 아니라구요.”
“어느 장단에 맞춰 드려야 할지.”
“아, 이게 아닌데…….”
최연하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손을 대자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확 달아올라 있는 피부가 느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리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말 데이트 신청을 한 것 같지 않은가.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겨우 이런 상황에 표정 관리가 안 되다니!
그리고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마저 깔끔하게 촬영한 이들이 신나 죽겠다는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 최연하 데이트 신청했다 까임. 현장 목격 중.
= 개소리 즐.
= 진짜임. 현재 강세아 오빠가 하는 피자집인데, 최연하가 놀러 와서 강세아 오빠한테 데이트 신청함. 그런데 강세아 오빠가 쿨하게 깜.
깔끔한 워딩과 함께 최연하가 양 볼을 감싼 채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 합성이네.
= 조작이네.
= 어디서 촬영 현장 사진 하나 얻은 모양이네.
= 최연하가 데이트 신청했는데 까였다는 데서 이미 주작 확정. 남자면 깔 수가 없다. 소설도 그럴듯하게 써야 먹히는 법이다. 개연성 보강해서 다시 써 와.
“다 속고만 살았나.”
다시 사진을 찍어 올리려 휴대폰을 들자 솥뚜껑 같은 손이 카메라를 가로막았다.
“아, 뭐야?”
휴대폰에서 고개를 떼니, 주영기가 그를 보며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사진 촬영 금지입니다, 손님.”
“……네.”
주영기의 무시무시한 인상 앞에 이견은 있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 이들을 눈빛만으로 다 자제시킨 주영기가 강진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최연하와 강진호에게로 다가간 주영기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 피자를 들어 올렸다.
“덜 먹었는데요?”
“안으로 가서 드시죠. 여기는 눈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겠네요.”
“안이 있어요?”
“직원 휴게실이 있습니다. 식사하기는 괜찮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빨리 옮겨주세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최연하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기가 눈짓을 보내자 박유민이 슬금슬금 다가와 식기와 수저 등을 챙겼다.
휴게실로 자리를 옮긴 최연하가 손부채질을 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말입니까?”
“이상한 스캔들 터지게 생겼잖아요.”
“제가 딱히 뭔가를 한 건 없어 보입니다마는.”
“으…….”
최연하는 순순히 강진호의 말에 수긍했다. 떼를 쓴다고 해서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여하튼 덕분에 제가 피해를 봤으니까, 날 한 번 빼주세요. 이제 곧 그럴 시간도 없을 테니까요.”
“시간이 없다니요?”
“아마 곧 이 가게는 사람으로 터져 나가게 될 거예요.”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최연하 씨가 왔다 가서요?”
“아뇨.”
최연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저 공주병 걸린 여자 아니에요. 아무리 제가 인기가 있다고 해도 제가 왔다 갔다고 가게 장사가 확 뜨고 그러지야 않겠죠.”
“그런데 왜 터져 나갑니까?”
“……진짜 모르시는구나. 그럼 됐어요. 그건 알고 당하는 거보다 모르고 당하는 게 낫거든요.”
“무슨 말인지 도통…….”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최연하는 굳이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당해보면 안다, 당해보면.
강진호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 최연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앞으로는 안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올 건데요.”
“바쁘신 분 아닙니까? 시간이 그렇게 남으세요?”
“시간이야 항상 모자라죠. 그런데 제 인생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까워할 수는 없잖아요.”
“여기에 오는 게 최연하 씨의 인생에 투자하는 게 된다구요?”
“네. 강진호 씨가 한 번만 마음을 돌려주시면 돼요.”
“그럴 일 없습니다.”
최연하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런다고 해서 제가 포기하지는 않아요. 강요도 안 하고, 귀찮게도 안 할게요. 대신에 제가 여기 오는 건 막지 마세요.”
“끙…….”
강진호가 갑갑하다는 듯이 얼굴을 문질렀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나그네 옷을 벗기는 거지.’
강진호 같은 타입에게 강하게 나갔다가는 강하게 쫓겨날 확률이 컸다. 자기 주관이 확고하고 외압으로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공략하는 방법은 빤했다.
당사자가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지금이야 그녀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심해서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마주치고 접점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지만, 조금만 경계를 풀어주면 파고들 틈이 보일 것이다.
한숨을 내쉬는 강진호의 모습을 보며 최연하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진짜 비주얼은 쩔어주네.’
당대의 쟁쟁한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오던 최연하다. 그런 만큼 그녀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덥수룩하게 자라나서 정리 안 된 머리와 대충 입은 옷으로도 이만한 비주얼을 뿜어내는 사람이 아닌가.
‘저번에 메이크업했을 때는 사람도 아니었지.’
놓칠 수가 없다.
절대로.
게다가 확고하게 주관이 있으면서도 거칠게 들이받아 오지 않는 저 성격도 마음에 든다.
웬만하면 주변에 맞춰주면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타입.
크게 될 사람이다.
거기에 집안도 괜찮고…….
“……미쳤나 봐.”
“예?”
“아니, 아니에요.”
최연하가 자신의 얼굴을 쭉 잡아 당겼다.
‘선보러 나왔어? 정신 차려.’
여기서 집안이 왜 나오는가.
살짝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강진호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은영이는 뭐하고 있습니까?”
“세아 씨요? 세아 씨는 오늘 촬영 있어요.”
“주연이 촬영이 없는데, 은영이가 촬영이 있다구요?”
“촬영 메커니즘을 잘 모르셔서 그래요. 세아 씨는 오늘 지방에서 촬영이 있어요. 저는 지방 쪽에는 신이 없어서 같이 안 간 거구요.”
“음…….”
강진호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 저녁쯤에는 올라올 거예요.”
“그렇군요.”
“그러니까 저녁까지는 있어도 괜찮죠?”
“…….”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 * *
“아이고, 죽겠다아아아아.”
강은영이 죽을상을 하며 밴에 올랐다.
“수고했어, 수고.”
“죽겠어요! 밥 좀 주세요. 김밥 사놓은 거 없어요?”
“……실장님이 너 요즘에 살쪘다고 식단 조절하라던데?”
“살이라니! 이 여리여리한 몸에 살이 어딨다고 그런 악소문을 퍼뜨리는 거래요!”
“세아야, 말은 바로 하자. 솔직히…….”
“거기까지!”
강은영이 매니저의 말을 과감하게 자르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오, 하루 종일 부려 먹고 밥도 안 주네. 이게 착취지, 착취! 밥은 주고 부려 먹어야죠!”
“그동안 먹어온 걸로 버텨.”
“그게 말이 돼요?”
“네가 먹어온 것들이 너의 지방으로 차곡차곡 쌓여 네가 써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악마.”
안전벨트를 맨 강은영이 의자를 반쯤 뒤로 눕히고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촬영 한 번 하고 나면 탈진한다니까.’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한 번의 무대에 열정을 확 쏟아내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 든다. 무대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급격한 흥분이 몸을 지배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말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허탈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연기는 달랐다.
연기는 지속적으로 그녀의 체력을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배역에 몰입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 30초짜리 신을 찍기 위해서 한도 끝도 없이 캐릭터를 잡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재밌으니까.’
강은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 서울까지 가는 데 세 시간은 걸릴 테니, 그사이 눈 좀 붙이려는 생각에서였다.
부르르릉.
그런 강은영의 마음을 아는지 밴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피곤하겠지.’
정석수는 잠이 든 강은영을 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워낙 비글 같은 아이라 여기저기 사고를 많이 쳐서 그렇지, 천성은 착한 아이다. 제 가족을 끔찍하게 여기고, 매니저들에게도 결코 함부로 하지 않는다.
착하던 아이들이 뜨면서 바뀌는 걸 워낙에 많이 봐와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강은영은 연습생이었을 때와 지금이 전혀 차이가 없었다.
목에 힘주면 뒤에서 목 꺾어버리려고 벼르고 있는 악마 같은 놈이 있다는 이상한 농담을 하면서 겸손함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어찌 이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일에 대한 열정까지 있으니, 매니저 입장에서는 더없이 기꺼운 아이였다.
‘조심해서 운전해야지.’
다른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천천히 부드럽게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으음?”
바로 뒤에서 하이 빔을 켜며 다가오는 차를 본 정석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뭐야?”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하이 빔을 켜고 운전을 한단 말인가.
여하튼 대한민국에는 운전 매너가 엿 같은 놈들이 너무 많았다.
“……진짜 너무 많네?”
그의 차 바로 뒤로 하이 빔을 켠 차들이 몇 대 더 따라붙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정석수가 액셀을 질끈 밟았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부우우우우우웅!
바로 옆으로 치고 올라온 검은 세단이 갑자기 그의 차를 구석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미친 새끼!”
콰앙!
밴의 옆구리를 세단이 들이받으며 차가 크게 요동쳤다.
“뭐, 뭐예요?”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강은영이 고개를 돌리자, 창 너머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세단의 모습이 보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겁에 질린 강은영의 목소리가 도로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