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42
#241.
잡아채다 (1)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최연하는 정말 갈 생각이 없는지 직원 휴게실에 죽치고 앉았다. 딱히 상대를 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참 잘 놀고 있다.
혼자서 셀카를 찍고, 폰 게임도 하며…… 마치 혼자 노는 것이 일상이라는 듯이 강진호가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아도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보다 못한 주영기가 휴게실로 들어가 물었다.
“원래 그렇게 혼자 잘 노세요?”
“네.”
최연하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최연하 씨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같이 놀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없어요.”
“……왜요?”
“글쎄요? 이상하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네요. 어릴 때는 촬영 때문에 또래 애들이랑 놀 기회가 없었고, 나이가 들고 보니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요.”
“듣다 보니 슬픈 이야기 같은데…….”
“아, 오해는 마세요. 제가 혼자 잘 노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라 직업병 같은 거니까요. 촬영장에는 다음 신 찍을 때까지 한 여섯 시간씩 방치되는 일이 허다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혼자 놀아 버릇하다 보니까 이리된 거예요.”
주영기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보면 촬영장 주변에 세워진 밴에서 연예인들이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주영기의 상식으로는 주연배우쯤 되는 사람들이 여섯 시간씩이나 방치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본인이 그렇다는 데 뭘 어쩌겠는가.
“그럴 때마다 이러고 노시는 거예요?”
“아뇨. 보통은 자요.”
“…….”
“그런데 또 너무 자면 얼굴이 부어서 화면에 엉망으로 잡히거든요. 그럴 때는 부기를 빼줘야 하는데, 어떻게 빼냐면…….”
주영기는 얼굴에서 부기를 빼는 노하우를 설명하는 최연하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여자, 진짜 허당 아냐?’
연예계에 완전히 관심이 없다고 해도 좋을 주영기조차 최연하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한데 그런 사람이 이리 실없는 사람이었다. 연예계에 대한 환상이 마구 깨지는 느낌이다.
‘하기야 은영이도 TV에서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니까.’
고개를 휘휘 저은 주영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 건데요?”
“강진호 씨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그, 연예인 시킨다고 하셨죠?”
“네.”
최연하가 말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영기가 한숨을 쉬었다.
“저기요, 제가 강진호라는 인간을 좀 아는 친구로서 충고를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네?”
“연예인이라는 건…… 그러니까 뭐랄까, 그 끼라는 게 있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제가 아는 강진호라는 사람은 끼라는 게 없어요. 오히려 너무 극도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서 문제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최연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애를 연예계로 끌어들이겠다는 건 너무 무리수라고 생각 안 하세요?”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제가 이 바닥에 대해서 잘 알까요, 아니면 그쪽이 이 바닥에 대해서 잘 알까요?”
“그야…….”
주영기가 대답을 잘 하지 못하자 최연하가 미묘하게 웃었다.
“물론 끼가 있으면 좋죠. 끼가 있으면 이쪽 바닥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강진호 씨는 굳이 그런 끼가 필요 없는 사람이거든요.”
“잘생겨서?”
“…….”
최연하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맞네!”
“아, 아니, 잠시만요. 꼭 그게 다는 아니에요.”
“맞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요.”
최연하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물론 강진호가 잘생겼기 때문에 최연하가 그를 데뷔시키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강진호가 연기의 신이더라도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면 최연하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좋은 연기라는 것은 좋은 작품과 좋은 감독, 그리고 운이 맞아 떨어져야 빛이 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것을 다 별것 아닌 요소로 만들 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최연하의 머릿속에 강진호가 찍은 장면이 떠올랐다. 대체 이 사람이 펼친 연기가 화면으로 보면 어떻게 되는가 싶어서 굳이 더빙판을 찾아본 느낌은 아주 간단했다.
‘난리가 날 거야.’
소리라는 게 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새로 깨달을 수 있던,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 빌어먹을 국어책 읽기가 제거되는 순간, 강진호는 그녀마저도 화면에서 지워 버렸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는 현재 충무로를 이끌어가는 젊은 배우들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연기에 관한 한 도의 영역에 올랐다고 평해지는 배우들이나 겨우 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를 강진호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내뿜고 있던 것이다.
“설득 좀 해줘 보세요. 진짜 저 사람은 뜰 거라니까요. 그럼 이런 피자집 따위는 안 해도 돼요.”
“……지금도 쟤는 이거 안 해도 돼요.”
“네?”
“아니. 뭐, 됐고.”
주영기가 고개를 휘휘 젓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제대로 설득을 해보시든가. 왜 여기서 죽치고 있는 건데요?”
“설득이 안 먹히잖아요.”
“…….”
“제가 그 바닥에서 키운 거라고는 눈치 보는 능력밖에 없어요. 이 감독은 또 얼마나 성격이 더러울까, 또 얼마나 능글맞을까, 성희롱을 하지는 않을까,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 고생하셨네요.”
최연하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것들만 생각하고 살다 보니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은 어느 정도 키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제가 봤을 때, 저 사람은 설득이 안 먹히는 사람이에요.”
“……와, 잘 보시네.”
“타이르면 듣는 척만 하고, 윽박지르면 더 세게 튀어나오고, 그렇다고 애교를 부린다고 통할 사람도 아니고, 미인계도 안 통하고…….”
“으음…….”
“유일하게 통할 방법이라고는 불쌍하게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거죠. 적어도 불쌍해 보이는 사람한테는 심하게 대하지 못하는 타입?”
“대나무 꽂아도 될 것 같은데?”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게 나갔다가는 싸대기 맞을 거 같고, 그렇다고 약하게 나가면 관심도 안 줄 테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줄창 물고 늘어지고 징징대는 거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그러고 있는 거예요.”
“…….”
주영기는 순간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는 똑똑한 것인가, 멍청한 것인가?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에서는 소름 돋는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는데, 막상 결론이 좀 이상하다.
“그런다고 진호가 마음을 돌릴까요?”
“그럴 확률은 별로 없겠죠.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주영기는 이 대화의 전제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강진호에게 그럴 가치가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쟤는 연기자로 성공할 타입이 아닌데?”
“원래 사람들은 자기 주변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법이죠.”
“그래서 이번에 같이 찍은 감독은 뭐라던가요?”
“다시는 이 바닥에 얼씬도 말라구요.”
“…….”
쟤는 멍청한 게 맞는 거 같다.
“여배우로서 자존심도 없어요?”
“자존심요?”
최연하가 더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쪽은 지금 피자 나르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어요?”
“그, 그런 건 없죠.”
“그런데 저는 왜 자부심이 있어야 하죠? 어차피 똑같이 그냥 직업인데. 여배우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게 있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다른 방향으로 실천하고 있는 최연하였다.
“저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그런 식으로 표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걸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 저 강진호 씨를 제 상대 배우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진호가 절대 안 한다고 해도요?”
“하게 될 거예요. 할 때까지 죽어라고 물고 늘어질 테니까.”
주영기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
앞을 지나가던 강진호가 고개를 푹 떨궜다.
“저만큼 이쁜 언니가 너 하나 보고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참 뭐랄까, 너도 복 받은 놈인지, 재수가 지지리 없는 놈인지 구분이 안 가네. 여하튼 잘 알아서 해봐라.”
“……그래.”
주영기가 강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홀로 향했다.
“아니…….”
강진호가 막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진호가 휴대폰을 꺼내서 액정을 보고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화면에는 강은영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강진호가 전화를 받자마자 날카롭고 큰 음성이 들려왔다.
[오빠아아아아아아!]강진호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강은영의 음성이 장난을 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겁에 질려 있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은영이 찢어지게 질러 대는 비명이 전화기를 뚫고 강진호의 귀에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오빠! 여기! 여기! 꺄아아아아아악!]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지는 클랙슨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쿵! 하고 뭔가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옆에서 쏟아지는 거친 욕설이 어지러이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강진호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듣다가 강은영에게 말했다.
“은영아, 거기 어디…….”
뚝.
하지만 채 그 말이 다 전해지기도 전에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강진호는 끊겨 버린 전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촬영장은?”
“……네?”
“오늘 은영이가 갔던 촬영 장소가 어디냐고.”
“아, 그, 소, 속초예요.”
최연하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봐온 강진호라는 사람은 가슴 안에는 차가운 비수를 품고 있을지언정 겉으로는 부드러운 남자였다. 강은영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 그녀를 대하는 것도 그랬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상으로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순둥이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린 채 그녀를 노려보는 강진호의 모습은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장을 덜컥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절로 몸이 덜덜 떨려오고 발가락이 오므라들 만큼 말이다.
강진호가 앞치마를 벗어 테이블로 내던지고는 몸을 돌렸다. 주영기와 박유민이 어느새 달려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가줄까?”
“아냐. 일단은 혼자 간다. 여기나 잘 정리해.”
“그건 걱정 말고.”
주영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유민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은영이 괜찮은 거겠지?”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진호야, 혹시 모르니까 조 실장님한테 연락해 둘게. 전화 받아.”
“알았다.”
딸랑.
문이 열리고 강진호가 가게 밖으로 나가자 주영기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느 미친놈들이…….”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최연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은영 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거예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긴 뭘 어떻게 돌아갑니까.”
주영기가 낮게 말을 이었다.
“그냥 그 새끼들 이제 엿 된 거예요.”
세상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