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44
#243.
잡아채다 (3)
강은영이 잡혀 있는 폐공장은 중앙의 거대한 문 위로 작은 창이 여러 개 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창 사이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복면인들이 당황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헤드라이트 불빛 같은데?”
“이 외진 곳에 차가 왜 와?”
워낙 어두컴컴한 곳이다 보니 창밖에서 들어오는 불빛만으로도 대낮처럼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무슨 소리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부우웅.
낮은 엔진 배기음.
그 소리만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길을 잘못 든 차 하나가 옆으로 지나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어?”
복면인들의 시선이 정문으로 향했다.
그들 역시 무학을 익힌 무인들.
일반인들이라면 알아채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렸겠지만, 오감이 예민한 그들은 지금 들려오는 엔진 음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차의 액셀을 밟아서 나는 소리와는 다르다.
저 멀리서부터 커다란 소음을 내뿜는 차량이 이쪽을 향해 급격하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를 반증하듯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불빛도 점점 더 밝아졌다.
당황한 이들이 정문을 바라봤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앙!
엔진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소리가 정문 쪽에서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씨, 씨발! 피해!”
콰아아아앙!
단단하게 닫혀 있던 공장 정문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양쪽으로 닫혀 있던 문 중 한쪽은 천장으로 튀어 올랐고, 다른 한쪽은 뒤틀려 옆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뒤로 눈부신 하이 빔을 켠 붉은색 스포츠카가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속도로 공장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이런 미친!”
복면인들은 그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을 보고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복면인들이 모여 있던 곳을 깔끔하게 통과한 스포츠카가 옆으로 스핀하면서 흙먼지를 마구 뿜어낸다.
끼이이이이이익!
쭈욱 미끄러지며 강은영과 매니저가 있는 곳 바로 앞에 멈춰 선 스포츠카가 덜덜거리며 진동한다.
“……미친 또라이 같은 새끼.”
바닥으로 내려선 복면인들이 어이없다는 듯 욕을 해 댔다.
차를 몰고 공장 안으로 돌진하는 것도 멀쩡한 정신을 가진 놈이 할 짓은 아니다. 저 공장 문이 조금만 더 두꺼웠더라면 차만 박살이 나고 타고 있는 놈도 황천길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욕이 나오는 이유는…….
“와, 저게 얼마짜리야?”
앞 범퍼가 완전히 박살 난 차를 보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흠집 하나만 나도 심장이 덜컥거릴 정도로 수리비가 나오는 차 같은데, 앞부분이 완전 박살이 났다.
재벌 회장도 저런 짓은 못할 것이다.
“……누구야?”
그때,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오라비!”
강은영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차 문이 끼긱, 하는 소리와 함께 들썩였다.
끼긱.
끼긱.
하지만 차문은 들썩이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
자동으로 열려 위로 올라가야 하는 문이지만, 앞 범퍼 라인이 완전히 찌그러지면서 차체가 뒤틀리다 보니 끼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쾅!
깔끔한 소음과 함께 운전석의 문이 부서져 옆으로 튕겨 나간다. 그와 동시에 운전석 쪽에서 새하얀 연기가 뚫려 버린 옆문으로 흘러나왔다.
꿀꺽.
어디선가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흙먼지로 검붉게 변해 버린 차 안에서 새하얀 연기가 마구 새어 나오고 있는 광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딱히 뭔가 위협이 전해진 것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침내 새하얀 연기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아아아아!”
강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림자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검은 그림자.
강진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강은영을 안아 들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놀랐구나.”
“오빠! 오빠아아아!”
“……화장 지워진다. 울지 말고.”
“으응.”
강은영의 등을 툭툭, 두드려 준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설 수 있겠어요?”
“네? 아…… 네!”
매니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진호가 반파되어 있는 차량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차가 박살 난 건 상관없지만, 강은영과 매니저를 일단 밖으로 내보내려면 이게 굴러가야 할 텐데.
차 안으로 팔을 집어넣은 강진호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하얀 연기가 밖으로 쭈욱 밀려 나왔다. 앞 유리는 온데간데없고, 앞 범퍼도 완전히 일그러져 내부 룸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굴러는 갈 겁니다.”
“……이게요?”
굴러는 가겠죠. 굴러는 가는데, 그 와중에 터지지는 않을까요?
매니저는 하고 싶은 말을 애써 꿀꺽 삼키며 강진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단 이거 타고 가까운 번화가로 가세요. 차량은 아마 곧 수배될 거니까요.”
“……같이 안 가시구요?”
“예.”
매니저 정석수가 의아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하기야 이대로 간다고 하면 저놈들이 자신들을 그냥 보내줄 리가 없었다.
“그럼 나가서 제가 바로 신고하겠습니다.”
“아니요.”
단호한 목소리.
너무도 단호해서 절로 움찔하게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석수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신고하지 마세요. 그냥 차가 오는 대로 차량 타고 서울로 가시면 됩니다.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던 거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게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는 게 정석수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지금 강진호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도 눈치가 100단이어야 살아남는다는 연예인 매니저를 몇 년씩이나 한 사람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 강진호의 말에 딴지를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빠! 오빠 같이 안 가?”
“먼저 가 있어.”
“오빠아!”
강은영이 강진호의 팔에 매달렸다. 그래서인지 붉게 부어오른 볼이 강진호의 눈에 너무도 확연하게 들어왔다.
강은영의 입가에 흐르는 핏줄기와 부어오른 뺨을 본 강진호의 눈이 조금 더 가라앉았다.
“같이 가자. 응?”
강진호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면서 강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라비가 금방 정리하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알았지?”
“……응.”
강은영이 불안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강진호에 대한 신뢰도는 반쯤은 신앙의 영역에 들어가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쿨하게 오라비를 두고 갈 만큼 담대하지는 못했다.
“빨리 와야 해.”
“그래, 금방 갈 거야.”
“응.”
정석수가 조심스레 운전석에 오르더니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엔진 음이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시동은 걸렸다. 이 정도면 가다가 폭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멈춰 서는 정도는 상관없다. 일단 이 공장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니까.
“세아 씨!”
정석수가 부르자 강은영이 불안한 눈으로 강진호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떼고 보조석에 올랐다.
운전석과는 다르게 보조석의 문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 그럼.”
정석수가 조심스레 바라보자 강진호가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꺼내 던졌다.
“조규민 실장님에게 전화하세요. 이쪽으로 픽업하러 오고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출발하세요.”
“네.”
정석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불안한 눈빛의 강은영이 강진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지만, 차는 무심하게 공장을 빠져나갔다.
“저거, 저리 보내줘도 되는 거야?”
“쟤가 오빠라잖아. 그럼 쟤가 강진호 아냐? 우리가 강은영한테 목적이 있던 게 아닌데 지 발로 나가주면 우리는 편하지.”
“저렇게 나가서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신고하면 뭐? 경찰 올 때까지 시간 끌려고? 애새끼 하나 처리하는 데 무슨 시간이 그리 걸려? 대충 보내주고 얼른 처리하고 가면 그만이지.”
“현수 씨한테 연락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애새끼도 아니고, 뭐 하나 할 때마다 위에다가 전화해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볼 거냐?”
복면인들은 멀어져 가는 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제히 강진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뒷일은 윗대가리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시킨 대로 저 새끼만 처리하면 돼.”
그때, 강진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강진호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자 복면인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저 새끼, 간이 좀 크다?”
“람보르기니로 공장 문 부수고 들어오는 놈인데 제정신일 리가 없지. 그건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야. 머리에 나사가 제대로 조여져 있는 놈이면 그런 짓은 못하거든.”
“……그건 맞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지, 강진호는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근데 저 새끼…… 뭐하는 거야, 지금?”
걸어가는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이들이 의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지금 강진호가 걷고 있는 방향은 입구 쪽도 아니고, 그들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강진호가 도착한 곳은 천장으로 튕겨 올라간 문이 떨어진 곳이었다. 강진호가 발밑에 있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문득 손을 뻗어 찌그러진 문짝을 집어 들었다.
“오?”
복면인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대형 공장의 정문이다.
일반적인 건물의 문과는 그 크기와 무게가 완전히 달랐다. 그런 거대한 철제문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강진호의 근력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한가락 하기는 하는 모양이네.”
“그러니 이 난리를 쳤겠지.”
“그런데 저거 뭐하려는 거야? 저걸 왜 들어?”
그리고 그 순간.
부우우웅!
강진호가 족히 몇 백 킬로그램은 넘을 듯한 문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크게 휘둘렀다.
“헉?”
문이 과격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가더니, 입구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앙!
공장 전체가 무너질 듯 진동하며 사방으로 먼지가 비산했다.
“뭐하는 거야?”
문이 틀어박힌 곳을 바라보던 이들이 순간 움찔했다.
강진호의 모습이 어느새 입구에 나타나 있었다. 강진호는 그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옆으로 밀려난 문을 부여잡더니, 천천히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끼기기기기긱.
철제문이 마찰하면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저거…….”
그제야 복면인들은 강진호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떨어져 나간 문짝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쾅! 쾅! 쾅!
발로 문을 몇 번 걷어차 입구를 틀어막은 강진호가 문에서 손을 떼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입가에는 지금까지 전혀 보이지 않던 짙은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이제…….”
탁한 음성.
조금 전, 강은영에게 들려주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탁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마치 지옥의 악마가 악다구니 치며 속삭이는 듯.
무척이나 거칠고 괴이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담담한.
결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목소리 말이다.
“이제 아무도 도망칠 수 없어.”
강진호가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