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49
#248.
조사하다 (3)
“이거, 또라이 새끼 아냐?”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조금 과한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항변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한 주영기뿐 아니라 박유민도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진호 역시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너 분노 조절 장애 있냐, 이 미친놈아?”
강진호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앞에 커다란 트레일러가 주차되어 있고, 그 안에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그의 애마가 실려 있었다.
처참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박살 나 있는 람보르기니를 살피던 주영기는 기가 차다 못해 숨이 넘어가겠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쏘아보며 비난을 늘어놓았다.
“돈지랄도…… 돈지랄도 적당히 해야지. 야, 이 미친놈아! 십 년 벌어도 저 차 값 하나 못 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줄 알고 있냐? 그런데 그런 차를 이따위로 만들어 와?”
“……조금 흥분했다.”
“이 또라이 새끼야! 흥분했다고 차를 걷어차면 성질이 더러운 놈이지만, 흥분했다고 차를 박살 내는 건 정신병자야. 그것도 저 비싼 차를 박살 낼 정도면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격리해야 된다고, 이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 같은 새끼야!”
강진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변명의 여지는 있다.
강은영이 얽힌 일이었으니까. 가족이 납치된 상황인데 눈에 보이는 것이 뭐가 있었겠냐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은영이 때문에 흥분해서…….”
“……이게 진짜!”
주영기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야, 이 미친놈아! 납치범들을 발견했으면 얌전히 경찰에 전화할 것이지, 니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거기를 달려드냐, 달려들기를! 그러다 칼이라도 맞으면 시원하고 좋겠다? 그지?”
“…….”
“그리고 이 미친놈아, 사람을 발견했으면 얌전히 차를 세우고 달려들던가. 뭔 영화 찍냐, 영화 찍어? 뭐? 문을 차로 뚫고 들어가? 이 미친놈아, 그 문이 좀만 더 단단했으면 문이 아니라 니 갈비뼈가 깨졌어.”
“자, 잘못했다.”
“솔직히 너, 그거 뚫고 들어가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이렇게 들어가면 폼이 살겠지’ 하는 생각 없었냐? 양심에 손을 얹고? 와, 나는 최연하 씨가 이 새끼 영화배우 만든다기에 저 여자가 미쳤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아주 점쟁이네, 점쟁이야. 이거 뭐라고 하냐?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도 모르던 배우 본능?”
“자, 잘못했다고!”
강진호의 등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살면서 수없는 잔소리를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강력한 팩트 폭행은 생전 처음이었다.
더 이상 얻어맞다가는 입으로 피를 뿜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니 차 니가 부숴 먹었다는데 내가 할 말은 없지만, 너 이 새끼…… 그러는 거 아니다. 벌 받아요.”
강진호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많이 잘못한 것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잘못했을 것이다.
“그래, 진호야.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니가 좀 심했다.”
“아니…….”
하지만 박유민까지 주영기의 편을 들자 강진호도 뭔가 발끈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 급박한 상황에 내려서 문 따고 할 정신이 어딨어?”
“근데 진호야.”
박유민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너 문으로 돌진해서 문 부수고, 차째로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잖아.”
“어.”
“그 문 앞에 은영이 있었으면 은영이가 죽었어.”
“아…….”
“다행히 존속살해가 벌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기는 한데, 너는 화가 나면 머리를 좀 식힐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강진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저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 같은 새끼.”
“그래, 네가 좀 심했어.”
멘탈이 탈탈 털린 강진호가 구석으로 가서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광경을 보며 주영기가 혀를 찼다.
“저건 가끔 한 번씩 보면 진짜 또라이 같다니까.”
“그러지 마. 그래도 친구잖아.”
“친구니까 하는 말이지. 야, 모르는 놈이 저런 짓 했다고 하면 이런 말도 안 해. 상종도 안 하지.”
“그건 그래.”
“해외 토픽감이다. 해외 토픽감.”
강진호는 대체 언제부터 저 둘이 저렇게 죽이 잘 맞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사도 슬슬 애매해지고 있는데, 아주 돈을 한데 모아서 불꽃놀이를 하고 왔네. 이거, 보험은 들어 있지?”
“응.”
“자차 들었다고 해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내가 욱해서 문에다 가져다 박았으니 보상해 주시죠’ 그러면 보험 회사 직원이 거품 물고 고소하겠다 그럴 텐데.”
“고소거리야, 그게?”
“알 게 뭐야.”
주영기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수리비가 차 값보다 더 나오겠다. 너 솔직하게 말해봐라. 차 바꾸겠다고 한 짓이지? 이 새끼, 이제는 별수를 다 쓰네.”
“내,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강진호는 스승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서야 주영기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영기는 좀 더 욕을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내가 인마, 돈이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냐.”
“맞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
박유민의 일침에 주영기가 헛기침을 하고는 차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거 어쩔 건데?”
“폐차 해야지.”
“답도 없다, 진짜.”
주영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박유민이 축 늘어진 강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은영이는?”
“집에 있어.”
“불안해하지는 않고?”
“아침부터 병원 가서 상담받고 했는데,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야. 애가 겁이 없더라고.”
“……네 동생답네. 그래도 좀 쉬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서 스케줄은 일단 다 취소했어.”
“잘했다. 이거 옮겨 달라고 하고 일단 들어가자.”
“안 그래도 조 실장님이랑 이야기가 된 모양이더라고. 그냥 눈으로 한 번 보라고 싣고 왔대.”
“으응.”
박유민이 반파되어 있는 차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여하튼, 사고를 쳐도 참 화끈하게도 친다.”
강진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고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주영기의 표정은 근엄하기 그지없었다. 강진호는 주영기의 포스에 눌려 얌전히 양손을 무릎 위로 모았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일을 흐지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지 않나, 제군?”
“옳은 말씀이십니다, 교관님.”
“그래. 확연한 문제가 발생했다. 봐라.”
주영기가 손을 뻗어 홀을 가리켰다.
“손님이 없다.”
“…….”
“더구나 이제는 비장의 카드인 은영이도 다시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애가 정신도 없을 텐데, 가게 매상 때문에 공연을 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렇습니다. 교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사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은 점장의 잘못이 크다. 심심하면 가게 비우고 나가는데, 뭐가 되겠나.”
“크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강진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내가 그렇게 가게를 자주 비웠나?’
그게 아니면 그가 주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홀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이 둘의 케미가 이렇게 터질 리가 없었다.
둘은 마치 이십 년지기 친구인 것처럼 완벽한 호흡을 선보이며 강진호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박유민, 너마저…….’
끔찍한 배신감이 밀려왔지만, 박유민은 이미 그와의 동맹 관계를 청산했는지 주영기의 말에 열렬하게 호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거야?”
“……그 이전에 왜 가게에 손님이 없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야 네가 당당하게 자리를 비웠잖아.”
“그런데?”
“그렇다고 영업시간 적어놓고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내가 피자를 구웠지.”
“잠깐만. 내가 지금 원인을 찾은 것 같은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미안하다.”
강진호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강진호가 절대로 말로는 주영기를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대책이 필요한데…….’
이대로 가게가 망하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시작이야 대수롭지 않게 한 것이지만, 이 가게를 만들면서 그들이 들인 노력이 적지 않다.
인테리어 하나, 주방 하나까지 직접 꾸민 가게가 아닌가. 평생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한 이 공간이 망해 나자빠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딱히 대책이랄 게…….”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강진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음?”
강진호가 휴대폰을 들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데?”
“잠시만.”
강진호는 심호흡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가해요?]“……그런 것 같습니다.”
[좋겠네요. 이쪽은 그쪽 부탁 때문에 죽을 맛인데 말이죠.]“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안하게는 생각 안 해도 돼요. 이건 거래니까요. 여하튼 그쪽이 원하는 대로 감독님한테 강짜 부려서 삼 일 동안은 세아 씨가 찍을 분량이 안 나오게 만들어줬어요. 덕분에 저는 삼 일이라는 시간 동안 토 나오는 강행군을 해야 하지만요.]“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게는 생각 안 해도 되니까, 약속은 확실히 지켜요. 월요일이에요. 월요일 하루는 나에게 완전히 빼주는 거예요. 잊지 않고 있죠?]“물론입니다.”
[그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 비싼 거 먹을 테니까. 그날 하루는 내가 가자는 데는 다 가야 하는 거예요. 알고 있죠?]“……예.”
[좋아요. 잊지 말라고 전화했어요. 세아 씨한테는 푹 쉬라고 전해주시고요. 몸이 안 좋으면 쉬어야죠. 많이 안 좋으면 문병이라도 한 번 갈까요?]“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네. 뭐, 알겠어요. 여하튼 잊지 말라구요. 그럼.]전화가 끊기고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강은영의 휴식을 위해 최연하에게 스케줄을 좀 조정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당연히 반쯤은 거절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찔러본 것이었는데, 최연하는 옳다구나 하고 강진호의 제안을 덥석 물어버렸다.
“……이게 뭔 소리지?”
주영기가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 가게를 살려보겠다고 비상 대책 회의까지 하고 있는데, 너는 뭐? 지금 누구랑 놀러 간다고? 누구랑?”
박유민 역시 이를 부득부득거리며 강진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와, 유민아. 니 친구가 이렇다.”
“친구였지.”
“그래, 니 친구였던 놈이 이렇다. 자기 가게 도와보겠다고 친구들이 이리 와서 고생하는데, 지는 연예인이랑 데이트 간단다. 와, 세상에.”
“아니, 그게 아니라 얘들아…….”
“인간쓰레기.”
“인성 노답.”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영남회인가 뭔가 하는 놈들을 다 데려와라.’
때로는 싸우고 치고받는 것이 백배는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강진호였다.
“근데 진호야.”
“응?”
“……최연하 씨, 친구는 없다냐? 이쁜 배우로.”
그리고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