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5
#24.
둘러보다 (5)
강진호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해결사라면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은 것이고, 돈도 꽤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해결사.
이름은 그럴싸하다.
그리고 뭔가 좋아 보인다.
하지만 강진호는 인간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떳떳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고, 공권력을 이용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결사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해결사란 건 이름만 번지르르할 뿐, 불법과 편법을 무기로 더러운 일을 서슴지 않고 해 댈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물론…….
강진호가 그런 일을 꺼리는 것은 아니었다.
불법이든 편법이든 필요하다면 살인도 개의치 않을 강진호였다. 그런 강진호에게 인간이 만들어둔 법을 어기는 것 정도는 양심을 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껄끄러운 것은 해결사를 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원한이었다.
원한이 그에게로 향한다면 상관없겠지만, 그가 없는 사이 가족에게 보복이 돌아온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가족과 함께 잘살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가족의 목을 조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강진호는 과거 비슷한 경우를 몇 번 본 적 있었다.
강호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니까.
돈을 버는 일이 가족에게 위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강진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도 안 되나.’
강진호는 답답한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 번 담배가 입에 붙게 되자 간간이 다시 피우게 되었다.
들키면 골치 아프겠지만 자면서도 반경 30미터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강진호가 다른 이들에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들킬 이유가 없었다.
“휴…….”
강진호는 깊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너무 골치 아픈 일이 많았다.
중원에서는 그저 그리워하기만 했던 현대로 돌아오고 나니, 중원이랑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야만성과 폭력의 강도는 비교할 수 없지만, 겹겹이 쌓여 있는 체계의 틈 사이에서는 더 진한 악의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걱정 따윈 하지 않았는데…….’
처음 현대로 돌아왔을 때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지금도 중원과 비교한다면 이곳이 훨씬 편하고 좋은 곳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처음 현대에 돌아왔을 때에 비하면 기대와 선망은 많은 꺾여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이 강진호가 현대를 가장 좋게 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병원에…….’
강진호의 눈이 살짝 떨렸다.
처음.
그리고 병원.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그거라면?’
강진호는 입에 문 담배를 비벼 끄고 바람을 일으켜 옷에 배인 담배 냄새를 날려 버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방 안으로 돌아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 컴퓨터로 검색해 본 강진호의 눈이 살짝 빛났다.
방법을 찾았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찾아낸 것이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강진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S병원.
최상층 VVIP실.
하루 병실 사용료만 300만 원에 달하는, 50평이 넘는 병실.
그 병실 구석에 위치한 침대에 한 노인이 누워 있다.
“회장님, 오늘은 잘 지내셨어요?”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이 살갑게 말을 건네지만, 노인의 눈동자는 퀭하게 풀려 있을 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회장님, 자꾸 그렇게 계시면 몸이 더 나빠져요.”
그제야 노인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입을 조금 뻐끔거리고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는 것이 노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마저도 제대로 할 수가 없기에 노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그만 주무세요.”
간병인이 병실의 불을 끄고 다른 쪽에 마련된 보조 침대에 몸을 뉘었다.
노인은 어두워진 병실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병이 깊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누구에게나 동정을 받을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그를 동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곳에 누워 있는 사람이 황정후라는 것을 안다면 그 누구도 감히 그를 불쌍하다고 할 수 없었다. 절대로!
황정후.
전쟁고아로 맨바닥에서 시작하여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관통한 거인.
그가 세운 재경 그룹은 자본금 하나 없이 출발하여 지금은 대한민국 5대그룹에 당당히 속해 있다.
재경 그룹 이상의 평가를 받는 그룹은 많지만 황정후 이상의 평가를 받는 경영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으로 전후(戰後)의 무주공산을 차지했다면, 황정후는 말 그대로 맨바닥에서 몸을 굴려 번 돈으로 작게 시작한 가게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그룹으로 만들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재개의 거인이라 불리는 그도 나이를 먹지 않을 수는 없었고, 병을 피할 수는 없었다.
“…….”
입을 열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눈을 뜨고 있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어둠.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둠이었다.
처음 병에 걸렸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과를 지켜본 의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우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병실이 터져 나가라 자리를 지키던 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상속권을 가진 아들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그것도 두 달이 한계였다.
경영을 해야 해서.
회사가 좋지 않아서.
변명은 여러 가지지만, 결과는 같았다.
하나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더니 나중에는 모두가 발길을 끊었다.
1년이 지났을 때 황정후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호화로운 병실에 방치되었다.
그를 찾아오는 이는 단 하나.
거의 좌천되다시피 했던 황정후의 심복, 백영기 이사뿐이었다.
그가 현직에 있을 때는 정이 많고 부지런할 뿐, 능력이 떨어진다고 요직을 주지 않던 백영기 이사였다.
하지만 쓰러지고 나자 그가 높이 평가했던 이들은 모두 황정후를 버렸고, 백영기 이사만이 곁을 지켰다.
백영기 이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황정후를 찾아와 그간 회사에 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황정후가 듣고 있든 듣고 있지 않든 그는 열과 성을 다해 황정후에게 회사의 일을 보고했다.
그리고 어제 황정후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공석으로 비어 있던 회장 자리를 두고 아들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
아직 황정후가 죽은 것도 아닌데 법적으로 유산을 상속할 길을 알아보고 있고, 공공연히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아서 산 사람들이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큰아들이라는 놈은 병원에 찾아와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 하시니 이제 그만 보내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주치의에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걱정하는 효심 깊은 아들은 병실에도 들르지 않고 가버렸다.
백영기 이사는 그 말을 하며 황정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황정후는 울 수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천장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뿐이었다.
과거에 그는 힘이 넘쳤고, 모든 일에 의욕적이었다.
그의 아랫사람들은 모두 그를 믿고 따랐고, 자식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의 눈빛 하나에 절로 고개를 숙였고, 그의 말 한마디면 세상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덧없었다.
그는 앞만을 보느라 발밑을 보지 못했고, 사람들을 내리누르느라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보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황정후는 어둠을 보며 홀로 생각에 빠졌다.
‘잘산 걸까?’
화려하기 그지없는 삶이었다.
그의 삶은 이름만 바꿔 드라마가 되기도 했고, 전기로 세상에 퍼져 나갔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록이 되어 세상에 귀감이 되었고, 그가 세운 회사는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황정후는 자신의 삶이 괜찮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곁을 지켜줄 이도 없는 초라한 현실뿐이니까.
‘무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등바등 살았던가.
무엇을 위해 그리 자신도 돌보지 않고 살아왔던가.
죽으면 다 끝인 것을.
황정후는 눈을 감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이리 멍청하게 살지 않겠다.
결코 이렇게 바보처럼 살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황정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
황정후가 놀라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황정후의 흥분은 이내 가라앉았다. 그의 눈은 차라리 체념에 가까웠다.
이제는 이런 것을 본다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후회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할 때였다.
그의 길지 않은 삶이 끝났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눈앞의 형체에게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사신이라도 본 것 같은가?”
“…….”
황정후는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형체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저승사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이 어떻게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
S병원 VVIP실은 경호가 철통같기로 유명했다. 삼중으로 된 문을 통과해야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그것도 모자라 자식 놈들은 병실 앞에 경호원까지 배치해 두었다.
그런데 이 안에 어떻게 처음 보는 이가 들어와 있단 말인가.
“…….”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황정후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사내는 말을 이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나?”
황정후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누릴 것이 남은 게 아니다.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황정후는 결코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계약을 하지.”
황정후는 눈앞의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신은 아니다.
하지만 악마 비슷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어가는 그에게 계약을 하자고 손을 내밀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조건은 당신이 정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지.”
하지만 이 악마는 계약을 하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다.
악마 놈이 계약을 하는 방법이 이토록 엉망이라니.
몸이 멀쩡한 항정후였다면 가서 계약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오라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황정후는 그저 눈앞의 악마 놈이 하는 짓거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 반나절이다. 단 반나절 동안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경험하게 될 거야. 내일 다시 오지. 그때까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거야.”
황정후는 눈으로 물었다.
무엇을 할 작정이냐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을 텐데도 사내는 그 눈빛을 이해했는지 낮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황정후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꿈을 꾸게 해주지.”
황정후는 갑자기 뱃속이 들끓어 오르는 느낌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남자는 정신을 잃은 황정후를 보고 천천히 병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남자는 물론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