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52
#251.
돌려받다 (1)
“남자요?”
“네, 남자요.”
강진호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요, 쑥맥처럼?”
“아니…….”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대답이 궁한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강진호였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진호를 보면서 최연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왜 그래요?”
“아니, 그게…….”
“뭔 고백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구네. 그런 거 아니에요.”
“…….”
“그냥 관심이 있다는 거지. 뭐랄까,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정도?”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연하가 이만큼 후퇴해 준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강진호가 혼자 착각을 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거리를 벌려주어서 다행이었다.
“몇 번은 더 만나 봐도 괜찮겠구나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 뭐…….”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사람, 왜 이렇게 쑥맥이지?’
저 얼굴이면 대시를 받다 못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지금 보이는 반응은 한 번도 고백이란 걸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의 행동 같았다.
최연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재밌어.’
저런 얼굴을 보면 더 괴롭혀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좀 자존심 상하기는 하네요.”
“네?”
“저 안 예뻐요?”
“……예쁩니다.”
“그럼 애프터 신청은 내가 아니라 그쪽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진호는 멍한 얼굴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영화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 최연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강진호와 같이 밥을 먹고, 드라이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데이트였구나.’
최연하가 말한 데이트가 그저 명목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강진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래 봬도 대한민국 여자 중에서 인기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사람이에요.”
“그렇겠죠.”
“그런데 내가 먼저 다음에 언제 만날지를 물어봐야 해요?”
“…….”
“설사 내가 엄청 못생기고 인기가 없어도 그러는 건 아니에요. 여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어야죠.”
강진호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그 반응에 최연하가 의아해했다.
“왜 그래요?”
“아뇨. 요즘 들어서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일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머, 잔소리라니!”
“아니, 잔소리가 아니라…….”
최연하가 싱긋 웃었다.
“그럼 요즘 삶의 방식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거겠죠.”
“그럴지도요.”
한숨을 쉰 강진호가 자세를 바로하고 최연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시선을 받은 최연하가 가만히 물었다.
“그럼 우리 언제 또 봐요?”
“그전에…….”
강진호가 단호히 최연하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미적지근한 건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네, 말씀하세요.”
“배우 안 합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나오신다고 해서 제가 마음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최연하가 음료를 빨대로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저도 사람을 좀 볼 줄 아는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나른함이 담겨 있었다.
“강진호 씨 같은 사람은 한 번 안 한다고 하면 절대 안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이번 영화는 이미 남자 배우 캐스팅도 확정됐구요.”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럼 최연하는 왜 자신과 데이트를 한 것이란 말인가.
“자꾸 이상한 눈으로 사람 쳐다보지 마세요. 내가 강진호 씨랑 같이 밥 먹고 드라이브 한 게 이상해요?”
“네, 이상하죠.”
“왜요?”
“여배우이시니까요.”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여배우는 뭐 재벌 2세만 만나야 하나? 저 돈 많아요. 저 잘났다고 설치는 사람들한테 별로 관심 없어요.”
그건 본인의 취향이지만, 그 취향이 왜 이쪽으로 오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강진호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에요.”
“네?”
“강진호 씨가 배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강진호 씨가 배우의 단점만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을 알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 믿고 있어요.”
“음…….”
“배우라는 것이 강진호 씨가 생각하는 그런 직업이기만 하다면, 세아 씨가 그렇게 재밌어 하며 촬영을 하지는 않을 것 같지 않아요? 그분도 엄청 싫증을 잘 내는 타입 같던데?”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연하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했다. 다만, 관심이 가지 않을 뿐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진짜 철벽남이네.”
최연하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었다.
“혹시 여자 친구 사귄 적 있어요?”
“예.”
“그 여자 친구랑 오래 사귀었어요?”
“……딱히.”
“그마나 다행이네요. 여자 친구였던 친구가 얼마나 속을 끓었을지 짐작이 가요.”
강진호는 아무 대답 없이 커피를 마셨다.
여자 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한세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의식적으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전역하고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으면 소식이라도 들을 만한데, 그날 이후로 한세연과 연락이 되는 일은 없었다.
여자 친구로서는 끝이지만, 친구로는 지내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그만. 회상 금지.”
“아…….”
“사람 앞에 두고 다른 여자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진짜 솔직한 사람이네.”
최연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보면 볼수록 이 강진호라는 사람은 이상하다.
대놓고 자신을 귀찮아하는 기색을 폴폴 풍기는 것도 그렇고, 어리바리 자신의 주관이 없어 보이면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히 선을 긋는 것도 그랬다.
“가게는 잘돼요?”
“오늘은 쉬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장사가 잘되냐구요.”
“그냥 그렇죠.”
최연하가 가볍게 웃었다.
“아마 내일이 되면 상황이 전혀 달라질 테니까, 단단히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저번부터 그 말을 하던데,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네요.”
“이해 안 하셔도 돼요. 겪어보면 아실 테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최연하가 가볍게 웃었다.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네요.”
“네.”
“모셔다 드려요?”
“그런 폐까지 끼칠 수는 없죠.”
“흐음, 하기야 첫 데이트인데 제가 모셔다 드리기까지 하면 모양이 너무 빠지는 것 같아서 안 되겠어요. 저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죠.”
최연하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답이 궁색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아마도 최연하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자꾸 직구만 날리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 느낌이다.
“강진호 씨.”
“네.”
“나 별로 마음에 안 들죠?”
“아닙니다.”
“표정이 말하고 있네요. 나 엄청 귀찮죠?”
“…….”
강진호가 대답을 하지 않자 최연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진짠가 보네. 와, 이 남자…….”
좋아 죽겠다는 반응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무려 최연하인데 호감 정도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호감도 아니고 자신을 귀찮아한다니.
‘이거, 이러다가 진짜 나 그 꼴 나는 거 아냐?’
‘나를 이렇게 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는 무척이나 진부한 레퍼토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아니, 아니지.’
최연하는 정신을 다잡았다.
순서가 거꾸로다.
강진호가 최연하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호감이 간 게 아니라 호감이 갔는데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거, 나중에 드라마에서 써먹어야지.’
어쩌면 고전의 재해석이 될지도 모른다.
“뭐, 좋아요. 내가 나니까 알아서 잘 대해줘야지 하는 마인드는 버릴게요.”
“…….”
“대신에!”
최연하가 탁자를 통, 쳤다.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처럼 과제한다는 마인드 말고 여자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나와주세요. 그래도 제 자존심을 조금은 세워주셔야죠.”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같은 마인드가 실례라는 것은 그 역시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최연하가 뭔가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잘 들어요, 강진호 씨. 이건 선전포고예요.”
“네?”
최연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담고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내가 강진호 씨 꼬실 거예요.”
* * *
“늦네?”
강은영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동생이 지금 상태가 안 좋은데, 오라비라는 인간이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오다니!”
“너 촬영 없니?”
“엄마!”
강은영이 소리를 빽! 지르자 백현정이 한숨을 쉬며 과일을 깎았다.
“네가 집 밖으로만 돌면서 촬영이니 공연이니 다닐 때,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니?”
“……엄마.”
“그런데 네가 이렇게 집에 있으니까…….”
강은영이 손을 꼭 쥐고 백현정을 바라보았다. 꿈을 좇아 어느 정도 성공을 하기도 했지만, 부모님께는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연예인이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그거라도 안 시켰으면 이리 뒹굴대면서 살았겠지.”
“…….”
“엄마 친구들이 딸내미가 집에서 쌀만 축낸다고 한숨 쉴 때, ‘딸 얼굴도 매일 보고 얼마나 좋은 건데’라고 생각했는데, 사과해야겠네. 좋은 것도 매일 보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몰랐어.”
강은영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헐…… 엄마, 지금 나 디스하는 거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엄마, 어떻게 딸을 그리 말할 수가 있어? 대박.”
백현정이 꺅꺅거리는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누가 데리고 가려나.’
밖에서 강은영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본성이 저런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지 걱정이었다. 알아도 걱정이고, 몰라도 걱정이다.
“엄마, 지금 오라비가 데이트를 나가서 집에 안 들어오고 있는데, 걱정도 안 돼?”
“은영아.”
“응?”
“엄마는 너는 걱정해도 진호는 걱정 안 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네 오빠 걱정이야.”
“엄마는 너무 태평해! 그러다가 오라비가 덜컥 손자라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할 거야! 이 야심한 밤에 남녀가 같이 있는 건데!”
백현정이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그게 소원이다.”
“…….”
“네 오빠가 저리 살다가 결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니? 저리 생겨서는 여자 친구 하나 없는 게 네 오빠야. 저러다가 나이 마흔 돼서도 유민이랑 피시방 다니고 있을까 봐 내가 속이 끓는다.”
“가능성 충분합니다.”
강은영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강진호는 굳이 여자를 만나려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계기라는 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만날 친구들이랑 놀고 여자를 만나지를 않는데, 어디 가서 여자 친구를 사귀겠니.”
“맞아.”
강은영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라비가 여자 친구를 만든다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홀아비로 늙는 것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혼란하다, 혼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강은영이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진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