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54
#253.
돌려받다 (3)
“오늘 첫 방영 맞아요?”
“예.”
코드 엔터테인먼트의 홍보부장인 민소영은 눈 밑으로 내려온 다크 서클을 문지르며 긴장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잘 뽑혀야 하는데…….”
그동안 들인 공을 회수하는 날이다.
“언론 보도 엄청 뿌려놨는데, 연기 어설프면 우리 다 박살 나는 거예요. 악플이 하늘을 뚫을 텐데.”
“자기 연기자를 그렇게 못 믿어요?”
정석수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세아는 믿죠. 제가 세아는 믿는데…….”
콧잔등을 몇 번 긁은 정석수가 한탄하듯 말했다.
“아시다시피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해서 악플이 안 달리는 건 아니잖아요. 가수가 연기자로 전향하면 일단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이 워낙에 많아요. 은영이도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안티가 적은 편도 아니구요.”
“그래도 저번 사건 이후로는 안티 많이 줄었잖아요.”
“그렇긴 하죠.”
정석수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열애설이 터지고 나락까지 떨어질 뻔한 이미지다. 보통 연예인이 열애설이 터진다고 해서 이미지가 박살 나지는 않지만, 강세아는 미성년자 신분이었다는 게 컸다.
거기서 대처를 자칫 잘못했으면 이미지가 공중분해되었을 텐데, 강진호가 생방송에 난입하면서 되레 이미지가 올라갔다.
가족이 저만큼이나 관리를 하는데 열애할 여력이 있었겠냐는 반응이 올라온 것이다. 게다가 생방송 사고라는 끔찍한 상황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여 준 점도 컸다.
생방송에서 친 사고를 무마하느라 고생은 좀 했지만, 여론 전환용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촬영 관계자들 말 들어보니 연기 잘한다고 하던데, 배역 자체가 톡톡 튀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라 잘만 하면 괜찮을 거예요.”
“네, 그래야죠.”
정석수는 여전히 긴장을 어쩔 수 없는 건지, 두 손을 꾹꾹 쥐었다 폈다.
“그런데 대체 왜 연기자로 전향을 하겠다는 거예요?”
“전향 아닙니다. 앨범 준비도 착실하게 하고 있어요. 겸업인 거죠. 요즘은 다 하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강세아 씨는 그전까지는 연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가수로 인기가 없던 것도 아니고. 해외 진출 쪽을 모색해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갑자기 연기자 쪽을 해보겠다고 하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래요.”
홍보하는 입장에서도 욕 나오고 말이야.
새삼 그간의 고생이 떠오르는지 민소영은 이를 뿌득, 갈았다.
연예 기획사 홍보팀이라는 곳은 상상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다.
세상의 모든 연예인이 이미지 좋고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이 응원을 해준다면 걱정 하나 없을 직업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악플이 아니라 무플이 문제인 것이다.
온갖 홍보 자료와 각종 수단을 다해서 언론에 언급되어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겨우 관심을 받았다 싶으면 ‘언플 더럽게 해 대네’라는 말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따라온다.
그렇게 겨우겨우 듣보 단계와 언플쟁이 단계를 넘으면 안티가 붙기 시작한다.
그나마 안티라도 있는 쪽은 다행이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데뷔 이후 안티가 붙는 단계까지도 가보지 못하고 은퇴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세아가 참 좋았는데…….’
강세아는 데뷔와 동시에 전 방위적인 푸시를 받고 한 번에 확 뜬 케이스다. 한 상품을 성공시키는 데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구간인 듣보와 언플 구간을 건너뛴 가수이니만큼 홍보팀 입장에서는 효녀 중의 효녀였다.
그런데 그 효녀가 갑자기 머리에 꽃이라도 달았는지 어느 순간 연기를 하겠다고 닦달을 하더니, 덜컥 어디서 시나리오를 물어와 배역까지 따냈다.
전자동으로 알아서 하는 애라고 기획실에서는 흐뭇해하지만, 홍보팀인 그녀는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아이돌이 연기를 한다고 하면 일단 반은 악플이 달리기 마련이다. 배우 팬층과 가수 팬층은 기본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팬클럽에서 지원을 해줘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강은영이 연기를 조금만 못하면 씹어 먹겠다는 기세로 TV 앞에 앉아 있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제발 좀 부탁 좀 한다, 세아야.”
희대의 명연기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발연기도 정도껏만 하자.
“정말 연기 잘한 거 맞아요?”
“그렇다니까요.”
“석수 씨 눈 말고, 관계자들이 연기 잘한다고 한 건 맞냐구요.”
“네, 맞아요. 맞는데…….”
“맞는데?”
은근슬쩍 말끝을 흐리는 정석수의 반응에 민소영이 도끼눈을 치켜떴다.
“맞는데 뭐요?”
“맞긴 한데, 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상한 소리요?”
정석수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연기는 참 잘했는데, 이번에 빛 보기는 좀 어려울 거라 그러던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민소영이 짜증 난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훔쳤다. 연기는 잘했는데 빛 보기가 어렵다는 건, 캐릭터가 부실하다는 이야기다. 연기를 잘해도 티가 안 난다는 뜻이니까.
‘그런 캐릭이 아니었는데…….’
민소영이 본 대본대로라면 강세아가 맡은 역할은 꽤나 임팩트가 있는 역할이었다. 연기만 좀 잘해주고, 시운이 맞아떨어진다면 주연 캐릭터보다 오히려 돋보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주연 여자 배우가 최연하인 만큼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시, 시작합니다.”
민소영은 일단 의문을 묻어두었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드라마가 얼마나 잘 뽑혔는가가 중요하다. 믿을 수 있는 피디에 작가가 만났고, 더 믿을 수 있는 주연배우들이 있으니 최소치는 해주겠지만, 드라마만 잘되고 우리 배우가 욕을 먹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오프닝은 깔끔하게 뽑았네.”
“영상미는 있는 감독이니까요.”
정석수는 불안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홍보팀들도 하나같이 수능 성적표를 기다리는 고3 같은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소속 배우가 출현한 드라마가 시작할 때면 매번 같은 얼굴을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심각한 기류가 흘렀다.
‘부탁이다. 제발 한 번만 뜨자.’
최근 코드 분위기는 좋지가 않다. 야심차게 준비한 4인조 신인 걸그룹은 폭망이라는 말도 무색할 정도로 박살이 나버렸다. 겉으로는 온갖 언플과 로비로 상도 받고 나름 잘나가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내실이 없었다. 아니, 내실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적자 폭이 목이 꺾일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메인 배우급 둘이 이적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다들 사장실 들어가는 것을 지옥문 들어가듯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한 건만 터져 주면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었다.
‘세이가 그걸 해줘야 하는데…….’
회사 입장도 회사 입장이지만, 강은영의 입장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처음 하는 연기인데다가 얼마 전에는 납치까지 당했다.
그 고생을 하고 찍은 드라마이니만큼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한다.
‘아직 촬영이 반이나 남았단 말이다!’
반쯤 사전 제작을 한 드라마라 아직 8회 차를 더 찍어야 한다. 초반 시청률이 안 나오면 드라마 촬영장 분위기가 초상집이 될 것이다.
온갖 불안한 상상을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던 정석수가 호성을 터뜨렸다.
“어?”
“왜 그래요?”
“아니, 아니요.”
정석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강진호 씨 아니었나?’
1화만 출현한, 그것도 카메오 배우나 다름없는 사람 얼굴을 오프닝에 풀 샷으로 배치하다니,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신기한 일이지만,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괜히 그런 이야기로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다. 정석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작한다.”
사무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작품을 품평할 때면 마치 영화관 같은 분위기가 연출이 되곤 한다. 편히 앉아서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자세에서 화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침 삼키는 소리조차도 내기 힘들었다.
정석수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 보겠어.’
소속 배우의 작품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정석수는 이 순간을 참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배우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빤히 알기에 냉정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석수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 자판기로 다가간 정석수가 돈을 넣고 탄산음료를 뽑아 들었다.
취익!
뚜껑을 따고는 단숨에 탄산음료를 들이켰다.
“휴우…….”
긴장을 너무했는지 침이 바짝 말라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정석수는 어두운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잘되겠지.”
그만큼이나 고생을 하며 찍었지 않은가.
앨범 활동까지 접고 올인하다시피 한 드라마다.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성과는 안겨주고 싶었다.
정석수는 그렇게 방영 시간이 끝날 때까지 로비와 빌딩 바깥을 초조하게 맴돌았다.
‘끝났을까?’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 드라마가 흥행할지 실패할지가 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냉랭한 분위기가 흐른다면 드라마는 망하는 것이고, 활기에 차 움직이고 있다면 충분히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입소문을 타 갈수록 시청률이 오르는 드라마도 있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1화 시청률로 흥행이 반쯤 결정되고, 1화가 얼마나 잘 뽑혔느냐에 따라 시청률의 등락이 결정되니까.
그리고 그 1화에 대한 평가가 지금 나왔을 것이다.
홍보팀 사무실의 문고리를 잡은 정석수가 깊게, 아주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었다.
‘아…….’
사무실 안의 분위기를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드라마는 이미 끝나서 광고가 나오고 있는데, 사무실을 채운 사람들은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멍하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안 되는데…….’
망했다.
이건 전형적인 망하는 드라마를 보았을 때의 반응이다. 만들어지기 전의 드라마는 몰라도 이미 나온 드라마를 보고도 흥행의 당락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홍보를 하겠답시고 설칠 수는 없는 것이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첫 시도다. 그러니 강은영도 좋은 경험을 한 것이다. 흥행이야 다음에 잘하면 된다.
그렇게 자신을 위안하고 있을 때, 민소영이 가만히 고개를 돌려 정석수를 바라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정석수 씨.”
“네?”
“이 사람, 누구예요?”
“……이 사람?”
뭘 묻는 거지?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석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소영이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그, 최연하 씨 전 남친으로 나온 배우 말이에요. 누군데요?”
“전 남친? 아!”
정석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사람, 세아 오빤데요?”
“오빠? 친오빠요?”
“네.”
“저번에 그 생방송에 난입했던 그 오빠 말이에요?”
“네.”
민소영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얘들아, 들었지?”
“네, 실장님.”
“보도자료 준비해. 이쪽에서 보도자료 뿌리는 순간, 우리 쪽이라는 걸 알아차린 기자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 테니까 준비하고.”
“예!”
비장한 얼굴로 움직이는 홍보팀 직원들을 보며 정석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드라마는 어떻게 된 건가요?”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