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59
#258.
시작하다 (3)
황정후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긴 강진호를 보며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이 사람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황정후는 정말 악마가 자신과 계약을 하러 온 줄 알았다. 그때의 황정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악마와 손을 잡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기에 강진호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을 되돌려준 악마는 떠나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가 인간 세계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처음 만났을 때의 강진호는 평범한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필사적으로 평범한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알게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지는 자.
5년이 지난 지금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비해 웃음도 많아졌고, 말수도 많이 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봐서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황정후는 그 모습이 기껍기도 했다.
인간의 세상에 반쯤 발을 걸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가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릿하기도 했다.
강진호가 인간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네모난 것을 동그란 구멍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 스스로를 깎아내고 잘라내야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겪었을까를 생각하면 결코 좋게만은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영남회라고 들었소.”
“알고 있나?”
“아니, 모르오. 하지만 기본적인 생리야 짐작을 할 수 있지. 그만한 단체와 직접 충돌한다면,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당신의 의지가 어떻든지에 상관없이 말이오.”
“…….”
“지금까지 잘해오지 않았소? 이미 동생에게 손을 댄 이들은 응징을 했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데 꼭 일을 더 크게 벌일 필요가 있겠소?”
강진호는 아무런 말 없이 담배를 빨았다. 사무실의 허공으로 담배 연기가 천천히 흘렀다.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요. 지금까지 당신이 이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서 한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아니까. 괜히 그들과 또 엮였다가는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다 수포로 돌아갈 수 있소이다. 알고 있으시지 않소?”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에서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받은 황정후가 입을 다물었다. 강진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새 담배를 꺼내 물고 다시 불을 붙였다.
“후우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비슷한 말을 하는군.”
“……비슷한 말?”
“당신도, 친구라는 이들도, 가족들도 다들 비슷해.”
오랜만에 자신을 완전히 드러낸 강진호는 그저 말을 하는 것만으로 황정후의 이목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타고난 것인가?’
이런 느낌을 주는 이를 본 건 처음이 아니다.
한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독재자, 맨땅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기업을 만들어낸 신화의 주인공, 수많은 이들을 다스리고 수많은 이들에게 명을 내리는 자들, 그저 존재감만으로 주위를 절로 굴복시키고 자연스러운 복종을 이끌어내는 자들.
하지만 그 누구도 강진호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위에 서본 자만 가질 수 있는 분위기이지.’
황정후가 결코 강진호를 쉽게 대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저 강하고 신기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생명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황정후는 결코 강진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가진 이들이 어떤 이들이었는가를 생각하면 결코 그런 일은 할 수 없었다.
“잘 안다는 듯이 말하거든.”
“…….”
뭘 잘 안다는 거지?
황정후가 의문 어린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그의 눈에 담긴 의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나를 잘 알고 있나?”
황정후는 대답하지 못했다.
강진호를 잘 알고 있냐고?
잘 안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정말 강진호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나?
문득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호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어쩌면 그의 부모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강진호의 그 힘이 어디에서 왔고 강진호가 왜 평범한 인생을 동경하는지와 같은 진짜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황정후의 짐작일 뿐.
“아무것도 모르지.”
강진호의 말에 황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말하지. 너는 원래 그러니까. 내가 아는 너는. 너는. 너는. 너는.”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기대에 부응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지. 그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가 얻는 것도 있어. 인정하지. 하지만 말이야…….”
“…….”
황정후는 가만히 강진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 어쩌면 강진호가 처음으로 그에게 본심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를 건드리는 자들에게까지 내가 착해질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과거의 모습.
강진호가 처음 황정후를 찾아왔던 그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다시 드러나고 있었다.
황정후는 알 수 있었다.
이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사회에 적응하고 세상에 적응했다는 것은 그저 겉모습일 뿐이다. 강진호의 내면에 숨어 있는 본성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었다. 되레 예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거칠게 할딱이고 있었다.
“필요라고 했지.”
강진호가 담배를 거칠게 비벼 껐다.
“이건 필요의 문제가 아냐. 원칙의 문제지. 난 단 한 번도 나를 건드린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둔 적이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소.”
황정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강진호는 괴물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진호의 밖으로 튀어나오려 발악하고 있었다.
‘말릴 수가 없군.’
어쩌면 강진호는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황정후의 상상 이상으로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이에게 먼저 공격을 해온 이들에게도 주변인과 같은 방식의 대응을 하라거나, 없던 일쯤으로 취급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과한 요구였다.
“정 그렇다면 명심하시오.”
강진호가 가만히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비일상이 당신의 일상을 집어삼키게 될 거요. 당신이 머물려 하는 세계가 이쪽이 맞다면 다른 무엇보다 이 세계의 경계를 지키는 것을 우선해야 할 거요.”
“충고인가?”
“부탁이라고 해두지.”
“그렇군.”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끝난 겁니까?”
어느새 강진호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황정후는 조금의 허무를 느끼며 대답했다.
“그래, 끝났다.”
“감사합니다. 명심하도록 하죠.”
지금 모습만을 보면 조금 전 강진호가 보여준 모습은 그저 환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환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자주 좀 들르게. 자꾸 이러면 내가 찾아가 버리는 수가 있어. 노인이 되면 대화할 사람이 별로 없네. 특히나 나 같은 노인은 마음을 터놓고 말할 사람이 거의 없는 법이지.”
“음…….”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그럼 낚시라도 한 번 같이 가도록 하죠.”
“약속한 거네.”
“그럼.”
강진호가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황정후는 답배를 꺼내 물었다.
‘쉽지 않은 일이군.’
지켜보는 이도 이리 힘이 드는데, 강진호는 얼마나 많은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 압박이 나쁜 쪽으로 터지지 말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조규민더러 보고를 좀 더 자세히 하라는 말을 해둬야 할 것 같았다.
“하기야…….”
황정후가 피식 웃었다.
“생각이 있는 자들이라면 먼저 건드리지는 않겠지.”
* * *
“아니, 일단 이것 좀 놓으시고…….”
“꺄악! 팔뚝에 근육 봐! 쇳덩어리 같아!”
“아니…….”
강진호는 자신의 팔을 잡고 늘어지는 손님들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장사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니…….’
적당히 피자만 팔면 되는 줄 생각했던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더구나 이번에는 뭐가 터져도 제대로 터졌는지, 저번 은영이가 공연을 했을 때와는 다르게 손님이 전혀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진호야, 옆집에서 줄 때문에 자기 매장 다 가린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는데…….”
“반대로 서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아까 반대쪽 매장에서 항의 들어와서 줄 바꾼 거잖아.”
“별게 다 문제네.”
강진호는 미어터지는 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장사가 안 되도 문제지만, 장사가 너무 잘되도 문제였다. 그나마 박유민이 보육원에서 놀고 있는 애들을 데리고 와 알바를 시킨 덕분에 테이블 회전이 빨라졌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거, 언제까지 이러는 거야?”
“…….”
강진호도 모르는 것을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손님이 많은 건 좋은데, 너무 정신이 없어. 하루 종일 이래도 되는 걸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옆을 지나가던 주영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나 진호나 어린 나이에 너무 쉽게 돈을 벌어서 개념이 없는 거야. 장사가 잘되면 깨춤을 춰도 모자란데, 손님이 많다고 투정이라니. 이것들이 진짜!”
“미안.”
“미안하다.”
“유민이, 너는 애들 하나 내보내서 저 건너편에 줄 세우라 그러고, 진호, 너는 손님들 사진 찍어줄 때 좀 웃어!”
“그게 쉽지가 않다.”
“거울 보고 연습해. 너 보러 오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우리 피자 팔아주는 손님이야.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 아냐.”
“그래.”
주영기의 말이 백번, 천번 맞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몰려드는 손님에게 좀 질리기는 했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이런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진호는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마감 시간이 되어도 손님은 줄어들 기미는 전혀 없어 보였다. 영업시간을 한 시간이나 오버해서야 홀에 들어온 손님들을 모두 쳐낼 수 있었다.
문밖에 줄을 선 이들을 겨우 돌려보내고 난장판이 되다시피 한 홀을 정리하고 나니, 벌써 열두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끄응, 오늘은 끝났네.”
“그러게…….”
셋은 쓰러지듯 의자에 앉으며 노곤해진 몸을 달랬다.
“와, 진짜 장난 아니다. 어떻게 손님이 와도 이렇게 몰려오냐?”
“거, 드라만지 뭔지가 대박 났다고 하더만.”
“그래도 그렇지.”
그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영업 끝났다고 해. 이 시간에 뭔 놈의 피자야, 피자는!”
주영기의 말에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영업 끝났는데요?”
“알아요.”
하지만 문을 두드린 사람은 박유민의 말을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오시면 안 되는…….”
박유민은 들어온 이를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얼굴을 보고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헐,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