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60
#259.
시작하다 (4)
박유민의 물음에 최연하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시간에 안 오면 들어올 수도 없겠던데요?”
“그렇긴 하지만…….”
굳이 여기에 와야 할 이유가 있는가는 둘째 치고, 바쁜 사람이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찾아온 게 이상하기만 한 박유민이었다.
최연하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강진호와 주영기가 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빼고는 앉았다.
“어때요? 내 말 맞죠?”
“……그러네요.”
의기양양한 최연하의 모습을 보며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랬잖아요. 이제 정신없이 바쁠 거라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해 안 가는 사람은 세상에 강진호 씨 하나뿐일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다 알 텐데.”
“왜 이러는 겁니까, 다들.”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왜 그러긴 왜 그래요. 잘생겼으니까 그러지.”
“맞는 말이긴 한데, 왜 듣는 나는 매우 불편한 기분이 들지?”
“나두.”
주영기와 박유민이 부잉을 했지만, 최연하는 가차 없었다.
“그럼 잘생기시든가.”
“와, 이미지 확 깬다. 이런 사람이셨나?”
“……드라마 좋았는데.”
최연하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드라마 캐릭터랑 실제 사람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거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아는 애 하나는 엄청 착한 앤데, 불륜하는 역할로 한 번 나왔다고 아직까지 아줌마들한테 욕먹어요. 카페 가면 뒤에서 막 수군대고.”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최연하가 가만히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손님 왔는데 뭐 주는 거 없어요? 그냥 이렇게 공기 마셔요?”
“마감했습니다. 화덕 불도 껐어요.”
“그럼 콜라라도 내와야죠. 무슨 남자가 매너가 이렇게 없어요?”
“…….”
“지금 짜증 난다고 생각했죠?”
“끙.”
최연하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었다.
“강진호 씨, 아직 많이 배우셔야겠다. 그래도 나 같은 여자 만난 게 다행인 줄 알아요. 보통 여자들이 이런 거 말로 해주는 줄 알아요? 강진호 씨 같은 사람은 어설프게 데이트 한 번 잘못했다가는 다음 날 매너 없다고 소문 다 날 거야. 내가 그거 구제해 주는 거잖아요.”
“괜찮습니다. 데이트 할 일이 없으니까요.”
“응. 조신한 건 합격.”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장사 잘되니까 좋죠?”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좀 도와줬어요. 여기”
최연하가 폰을 내밀었다.
“음?”
가게에서 피자를 먹는 인증 샷이 떡하니 떠 있는 SNS 계정이 보인다. 그 이래에 상대 남자 배우가 하는 가게라는 설명과 함께 가게 상호 이름이 대놓고 올라가 있었다.
“…….”
“원래 장사는 타이밍이에요. 이때 최대한 팔아야죠.”
말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 미소에 어린 장난기를 보니, 좋은 말이 순순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손님이 더 올 거예요. 제가 파급력이 좀 있는 배우잖아요.”
“제발.”
“주여.”
“엄살 피우지 말아요. 길어야 두 달이니까. 요즘은 워낙 화제가 빨리 바뀌는 시대라서 두 달 바짝 벌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예요.”
“두 달이라…….”
“네. 두 달 뒤면 다시 휑해지겠죠. 그럼 나는 맛난 피자 편히 먹고 좋겠네.”
박유민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네, 학생. 말씀하세요.”
“지금 두 달 뒤면 휑해진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랬죠.”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우리 가게는 왜 장사가 안 되는 거예요? 제가 피자를 좀 먹어봤는데, 우리 진호가 피자는 참 잘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왜 없는지 모르겠어요.”
최연하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주영기와 강진호의 얼굴도 확인하고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가게…… 장사하겠다고 만든 거에요?”
“그럼 장사하려고 만들지, 놀려고 만듭니까?”
“나는 그런 줄 알았죠. 아무리 봐도 장사하겠다고 만든 가게가 아니니까. 강진호 씨 돈 많다기에 소일거리로 만든 줄 알았어요.”
“이놈이 돈지랄을 좀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과하지는 않아요.”
“세상에, 이걸 장사라고…….”
최연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듯 보였다.
“아시면 말씀 좀 해주세요. 왜 손님이 안 올까요?”
“당연한 거죠.”
최연하가 손을 뻗더니 테이블에 놓여 있는 메뉴판을 잡고 펼쳤다.
“여기 봐요. 메뉴가 뭐 있어요?”
“피자요.”
“여기 배달해요? 프랜차이즈예요?”
“아니죠.”
“대체 어느 홀 장사 하는 피자집이 피자 단일 메뉴로 장사를 해요?”
박유민과 주영기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게 뭔 소리지?’
‘몰라.’
둘의 반응을 확인한 최연하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도 똑같이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무슨 말인지를 전혀 못 알아먹고 있었다.
“와, 아무리 끼리끼리 논다지만, 어떻게 이리 똑같은 사람들끼리 만났을까?”
셋 모두가 어색하게 웃었다.
“모태 솔로예요, 다들? 데이트도 해본 적 없어요?”
“말이 심하시네요?”
박유민이 굳은 얼굴로 대답하자 최연하가 아차 하며 바라보았다. 방금 발언은 좀 너무 나간 감이 있었다.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고민하려는 찰나, 박유민이 말했다.
“진호랑 영기는 여자 친구 있었어요! 모태 솔로는 저 하나라구요.”
“……좋겠네요.”
아무래도 이 셋은 답이 없는 것 같았다. 하나씩만 있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묻어갈 수도 있겠지만, 하필이면 이 셋이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불행이었다.
“여하튼 간에 뭔 피자집이 파스타도 없고, 리조또도 없어요?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샐러드도 안 팔잖아요. 그냥 피자 하나만 떡 나오는데, 누가 이걸 먹으러 와요?”
“피클은 있는데요.”
“거참, 대단한 사이드 메뉴 나셨네요.”
“…….”
“하물며 음료도 그래요. 모히또나 에이드도 좀 만들어서 팔든가. 메뉴판에 당당하게 콜라, 사이다 두 개 딱 적어놓고 뭘 팔겠다고.”
박유민이 멍하게 말했다.
“인테리어가 원인이 아니었나?”
“거 봐, 인마!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라니까! 내가 인테리어 잘한 거라고 했잖아. 내 감각 무시하냐?”
“네, 무시당해도 싸요.”
“…….”
“그러니까, 음, 아…… 아오, 씨!”
주영기는 쌍소리를 내뱉는 최연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진호 옆에 붙어 있으니까 정말 별꼴을 다 보네.’
어디 가서 탑 여배우가 쌍욕을 입에 담는 꼴을 보겠는가.
“대체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안 되겠다. 강진호 씨!”
“네?”
“휴무 한 번 잡아요. 다른 피자집들이 어떻게 영업하는지를 보고 좀 배워요. 메뉴도 좀 파악하고. 내가 괜찮은 데로 데려가 줄게요.”
“……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몰라요? 잘나가는 집들이 어떻게 영업하는지를 알아야 뭐라도 할 거 아니에요.”
강진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피자집을 차리고 싶어서 피자집을 차렸는데, 여기서 또 뭘 해야 하는 건가.
“원래 피자집이라는 데가 그런 걸 다 파나요?”
“당연하죠. 안 가봤어요?”
“배달시켜 먹은 적밖에 없어서.”
“저두요.”
“나도.”
최연하가 멍하니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빽!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뭐야? 뭔 외계인이야?”
* * *
차이커창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홍왕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이 더욱 두려웠다.
“너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차이커창의 몸이 움찔한다.
“그런데 시간이 꽤나 지났건만, 아무런 보고가 올라오지 않는군.”
“……죄송합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하면 좋은 일이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지. 나쁜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실패는 원인을 분석해서 성공으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일이 지연되는 것은 아무런 이득도 낳지 못한다. 알고 있는가?”
“예, 홍왕이시여.”
차이커창이 이를 뿌득 갈았다.
‘썩을 빵즈 놈들이…….’
하찮은 것들에게 일을 맡겼건만, 그 일 하나 제대로 못해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들다니. 이곳에서 나가는 즉시 그놈들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창왕이 움직였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창왕이 말입니까?”
“그렇다.”
차이커창이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리를 틀고 앉아 결코 움직이지 않던 창왕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매우 컸다.
어쩌면 그토록 우려하던 전면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창왕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가 재미있어. 마인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는군.”
“마인.”
차이커창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도 쓸데없는 수식을 빼면 마인을 잡는 일이다. 강진호라는 마인을 처리하기 위해서 영남회를 움직인 것 아닌가.
한데 중원의 마인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걸 단순히 우연이라 받아들여야 할까?’
마인은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다.
박멸하고 또 박멸해도 다시 튀어나오는 바퀴벌레.
이곳과 저곳에 모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예감이 좋지 않군.’
홍왕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진짜 마인들의 움직임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듯한 구실로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창왕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지금과 같은 평화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흑왕마저 움직인다면 중원은 다시 살육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겠지.”
“그렇습니다.”
“나는 그들을 꺼리지 않는다. 나는 홍왕이다. 누구도 감히 나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차이커창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렇다.
그의 앞에 있는 이는 홍왕이었다.
중원에 단 셋뿐인 왕의 칭호를 얻은 자이자, 차이커창이 천하제일이라 굳게 믿는 불세출의 무인이다.
“하지만 차이커창.”
“예.”
“장수는 전장에 나갈 때 뒤를 먼저 정비하는 법이다. 등 뒤에 그 마인을 남겨두고는 창왕과 흑왕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 차이커창, 홍왕의 명을 받들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제거하겠습니다.”
“나가봐라.”
“충!”
차이커창이 조심스레 홍왕의 방에서 나와 이마를 훔쳤다.
“빌어먹을 한국 놈들.”
일을 맡긴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전화기를 움켜쥔 차이커창이 이를 갈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마지막이다, 마지막.
이번 한 번만 더 재촉을 해보고도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직접 움직여야겠다는 결심을 한 차이커창이 차가운 눈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인다면 표적은 강진호만이 아닐 것이다. 감히 그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 영남회와 한국의 무인들에게 똑똑히 알려줄 것이다.
중화의 넘치는 무를.
약해 빠진 한국 놈들에게 진정한 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게 될 것이다.
차이커창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번호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