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62
#261.
끼어들다 (1)
부우우웅.
이현주는 긴장한 얼굴로 차를 몰고 있었다.
‘좀 더 빨리.’
차는 이미 시속 이백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만큼 빠르게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그의 할아버지는 무슨 꼴을 당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미 할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현주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닐 거야.’
아무리 그들이 영남회의 사주를 받았다고는 한들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총회를 그대로 영남회의 앞에 가져다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란 건 자신의 이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니까. 그들 역시 총회를 장악하려 들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총회의 회주만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빼낼 필요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여 그녀의 할아버지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제압당했다고 해도, 입이 무거운 할아버지가 벌써 모든 정보를 토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용가치가 있으니 아직 살아 계실 것이다.
이현주는 그렇게 믿으며 엑셀을 꽉 밟았다.
부우우우우웅!
엔진이 거친 음을 토해낸다.
하지만 그녀의 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잘한 걸까?’
그 급한 와중에 이 먼 곳까지 와서 이 남자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현주는 슬쩍 시선을 돌려 보조석에 앉아 있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시속 200으로 달리고 있는 차이지만, 강진호는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믿어야 해.’
이현주는 자신을 다독였다.
시간이 조금만 더 충분했다면 강진호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회장파의 사람들을 규합할 시간만 있었다면 강진호만 달랑 데리고 그들에게 돌진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1초가 아쉬운 상황에 그 많은 이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하고, 집결지를 정하고, 회장을 구해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녀 자신은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현주는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사람보다 간사한 것은 없다더니…….’
불과 삼십분 전만 하더라도 강진호가 그녀를 돕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을 졸였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일이 나름 잘 풀렸다고 생각이 되자마자 강진호라는 이의 효용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사안이 중대하다지만,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간사함에 이현주는 치를 떨었다.
‘그런데 저건 뭐지?’
잠을 자듯 낮게 숨 쉬고 있는 강진호의 가슴팍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쭉한 두 자루의 검.
아무리 다시 봐도 그건 분명 검이었다.
‘저번에는 검 같은 건 없었는데?’
맨손으로 이성휘를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다루던 강진호다. 그래서 당연히 권사라고 생각했는데, 저 두 자루의 검을 보니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의혹은 들려오는 강진호의 목소리 때문에라도 일단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걸리죠?”
“삼십분 내로 도착할 거예요.”
“그렇군요.”
강진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여유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태연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그녀와는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 강진호를 보며 이현주는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초조함이 그녀를 침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저…….”
이현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떴다.
“이런 말을 지금 하는 게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지만요…….”
“예.”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감정이 뭘 의미하는지는 안다.
정작 이현주도 우습게 생각하니까.
도와달라고 해놓고 막상 도와준다고 하니 왜 도와주느냐고 묻고 있다. 어이가 없고 우스울 게 빤하다.
“전 정말 강진호 씨가 나서주실 확률이 일 할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나서주신다 하더라도 더 많은 시간과 대가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선뜻 나서주시니까…….”
“이상하다?”
“……말하자면요.”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어째서죠?”
“대가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으니까요.”
이현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그녀는 강진호가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강진호는 살짝 창백해진 이현주를 일별하고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이유라…….’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어쩌면 강진호가 이현주 이상일지도 몰랐다. 지금 얌전히 보조석에 앉아 가고는 있지만, 강진호는 아직도 명확하게 자신이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무작정 손을 뻗어온다고 해서 그들의 손을 모두 잡아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원장 수녀님도 그런 것을 원치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원장 수녀님이 그에게 바란 것은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지, 세상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성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약자조차 아니었다.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 이현주의 할아버지나 이현주도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강자, 그것도 압도적인 강자들이다. 강자와 강자의 싸움에서 누군가가 상대적으로 약자의 포지션에 처했다 한들 그것을 왜 강진호가 도와야 한다는 말인가.
‘자기만족일지도 모르겠군.’
강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영남회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속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애써 억눌러 온 감정들이 적루와 청루를 손에 넣자마자 제어가 풀린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의 귓가에서 누군가가 자꾸만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고, 더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황정후가 말한 것들은 강진호가 이미 고민하고 있던 것이다.
정말 그들과의 전투에 몸을 던지고 나서도 현재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살지 않고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 사는, 그런 삶을 지금처럼 만끽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세상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얻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
영남회와의 싸움으로 통쾌함과 복수심,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반동으로 현재의 삶에서 잃어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우습게도…….
강대한 적에게도, 무자비한 운명에도 굴하지 않던 강진호를 머뭇거리게 만든 것은 그 작은 일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지금의 삶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강진호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쌓아 올린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껄끄러움. 그 껄끄러움이 강진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절묘하군.’
그리고 그때, 이현주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영남회라는 이름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왜 그녀를 돕느냐고?
강진호는 나직하게 웃었다.
누가 누굴 돕는다는 말인가.
이건 강진호가 이현주를 돕는 게 아니다. 이현주가 강진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운가?
“닥쳐.”
“네?”
“아니, 아무것도.”
갑작스러운 혼잣말에 놀란 이현주가 그를 돌아보았지만, 강진호는 냉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설칠 것 없어.’
이미 이쪽도 한계다. 조금 있으면 얼마든지 날뛰게 해줄 테니까, 벌써부터 그렇게 발정 난 개처럼 설쳐 대지 말란 말이다.
강진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일종의 입마(入魔)일지도 모르겠군.’
종종 있어온 일이다, 그의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과거에는 그것이 현재의 세상을 살아가며 충동을 억눌러야 하는 데서 오는 반동이라 생각했다. 세상과 부딪치지 않도록 꾹꾹 억눌러 놓은 본성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생기는 환청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
그의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갈수록 생생해져 갔다. 그리고 때때로 그의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마치 그와 적천마존이라는 두 개의 인격이 한 육체 안에 공존하는 것 같았다.
이게 정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인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일일 것이다. 만약 이게 중원에 적응한 강진호가 본성을 억누르며 이 세계에 적응하는 부작용이라면…….
이현주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보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강진호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간다.
그 미소.
눈가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입만 살짝 움직이는 그 미소가 너무도 섬뜩하다. 별다를 것 없는 미소임에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장을 덜컥거리게 만드는, 기이한 미소였다.
‘잘하는 걸까?’
어쩌면 그녀는 지금 승냥이 떼를 쫓아내기 위해서 범을 집 안으로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현주는 얼굴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어쩌면 그녀는 오늘 그녀가 내린 결정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강진호를 데리고 오며 허비한 시간은 그녀에게서 다른 선택지를 앗아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미 거의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현주가 가만히 라이트를 끄고 속도를 줄였다.
차의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는지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떴다.
“저 앞이에요.”
“총회?”
“아니요. 저긴 할아버지의 집이에요.”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 이현주가 문을 열자 강진호도 두말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이현주는 살짝 혼이 빠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지, 집 안에는 할아버지와 고용원들, 그리고 경호원을 포함해서 열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은 아마 모두 제압당해 있거나…….”
죽었겠지.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빠져나왔지?”
“저는 처음부터 저기 없었어요. 최근 불온함 움직임이 보인다는 말을 할아버지에게 해두었고, 누군가 쳐들어온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을 뿐이죠. 그리고 외부에서 CCTV를 확인했어요.”
“그러고 나선?”
“할아버지가 계신 쪽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할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못 믿으신다면 지금 CCTV를 확인시켜 드릴…….”
“아니.”
강진호가 이현주의 말을 끊었다.
“그걸로 됐어.”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산 위쪽으로 보이는 건물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러니까, 서 있는 것들은 다 적이라는 거군.”
미묘한 웃음기.
너무나 즐거워 참을 수가 없다는 느낌이 배어 나오는 그 목소리를 듣자 이현주의 다리에서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스르르릉.
청루를 허리에 찬 강진호가 적루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가며 나직하게 말했다.
“여기에 있어. 보기에 그리 유쾌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