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73
#272.
드러내다 (2)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강진호가 돌아간 다음에도 방진훈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강진호를 본 카페 주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가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는 방진훈을 보고 기겁할 정도로.
자신 앞에 내밀어진 차가운 얼음물을 잡아가는 방진훈의 손은 수전증이라도 있는 것마냥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뭔가를 알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었다. 백지처럼 하얗게 새어버린 그의 머리가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물어오니 끄덕인다.
그게 전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요.”
“안 들렸다고?”
“예.”
“……내 손이 부러져 나가고, 내 배가 꿰뚫리는 소리를 못 들었나?”
“예?”
자신의 손과 배를 살피는 이를 보며 방진훈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이렇게나 멀쩡한데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 싶겠지.
자신이 한 말이 어떤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주인을 보며 방진훈이 손을 내저었다.
“알겠으니, 잠시만 날 혼자 놔둬주겠나? 머리를 좀 정리하고 싶은데.”
“……예, 알겠습니다.”
탁.
문이 닫히고 방에 혼자 남은 방진훈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냈다.
담배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확 밀려 올라왔다.
“빌어먹을!”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내려쳐 두 동강을 내버린 방진훈이 어깨를 움켜잡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누가 이런 경험을 해보았겠는가.
차라리 두 눈을 떴을 때, 그의 배가 쩍 갈라져 있다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이 부러지고 배가 갈라지는 느낌을 너무도 생생히 받았음에도 그의 몸은 멀쩡하기만 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이, 인간이 아냐.”
방진훈은 그의 내면으로부터 밀려 올라오는 공포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해의 영역을 넘어섰다. 인간이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는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 같은 이는 열 명이 달려든다고 해도 강진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고, 의식이 있는 채로 제압당했다. 세상에 누가 이런 경험을 또 해보았겠는가.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킨 방진훈이 이를 악물었다.
‘환술인가?’
들어본 적은 있다.
상대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기술.
과거에는 그런 요사스런 술법들이 세상에 퍼져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방진훈이 들은 그 어떠한 환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이토록이나 생생한 현실감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게 환술이라면 세상은 환술사들에게 점령당했을 것이다.
우우웅.
움찔.
그 순간, 갑작스레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방진훈이 기겁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빌어먹을.’
자신이 누구인가.
방진훈이다.
한반도의 무인들 중에서도 정점에 속한 그가 기껏 휴대폰 진동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튀어오를 정도로 겁에 질려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새삼 실감한 방진훈이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서 전화를 빼 들었다.
“누구야?”
[……저, 천태훈입니다.]“왜!”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날카로웠다.
[어, 어찌 되었나 싶어서…….]“빌어먹을.”
천태훈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화를 쏟아내지 않고서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끊어. 지금 너와 통화할 기분 아니니까.”
[이사님!]다급한 천태훈의 목소리에 방진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정말?
[그와 적대하기로 하신 건 아니죠? 그렇죠?]거의 절규하는 천태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방진훈은 자신의 기분이 안정되어 가는 걸 느꼈다.
“아니야. 끊어.”
전화를 끊은 방진훈이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들었다.
‘웃기는 상황이군.’
천태훈 덕분에 계산이 섰다. 그가 지금 가장 우려해야 할 상황은 강진호와 적대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강진호의 능력을 봤다. 그가 방진훈의 반대편에 선다면,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이용가치가 끝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이득이다.
강진호가 나서준다면 그는 상처 없이 총회를 수습할 수 있고, 강진호의 도움을 받아 영남회와 싸울 수 있으니까. 어차피 강진호가 없었다 해도 총회를 손에 넣고 영남회와 싸우는 것은 그가 그리던 수순이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방진훈이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 풀려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의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한 꺼림칙함과 불안함은 가실 줄을 몰랐다.
‘그래, 나는 그자가 두렵다.’
무섭다.
원치도 않게 악마와 손을 잡은 느낌이었다. 더욱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미 강진호의 힘을 바로 앞에서 실감해 버린 그는 이제 강진호가 어떤 요구를 해오더라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이었다.
우드드득.
의자의 손잡이가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쇠로 만들어진 의자가 찢어지며 바닥에 나뒹군다. 방진훈은 입에 문 담배의 필터를 거칠게 씹으며 중얼거렸다.
“악마…… 악마 좋지. 네가 악마라면 계약을 해주지. 영혼을 가져가려면 가져가. 나는 그 대신에 총회를 손에 넣을 테니까.”
호기롭게 말하는 방진훈이지만,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기만 했다.
‘차를 사긴 해야겠군.’
천천히 걸어 집으로 향하며 강진호는 차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재차 실감하고 있었다.
그의 애마가 있던 시절이라면 간단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지금은 멀게만 느껴진다. 경공을 펼친다면 차 이상의 속도를 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반이 CCTV로 채워진 서울에서 경공을 펼치는 호기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건물의 위를 통해 간다면 CCTV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일도 자제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이유로, 간편하다는 이유로 자꾸 일상에서 무공을 쓰게 된다면 결국에는 일상의 영역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무학을 쓴 강진호는 슈퍼맨과 같다. 그런 이가 평범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담배 연기를 뱉어낸 강진호가 밤하늘로 천천히 퍼지는 담배 연기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이것도 나쁘지 않아.’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꽤나 운치가 있다. 최근에는 워낙 여유 없이 바삐 살다 보니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도 오랜만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고 살지 않게 되었구나.’
처음 이 세계에 돌아왔을 때는 이 밤하늘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수도 없이 그리던, 별 하나 없는 밤하늘.
어둡고 컴컴해서 음침하게만 느껴지는 밤하늘이 그토록이나 그리웠는데 말이다.
세상에 적응을 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 하늘을 지켜보는 일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뭐 볼 것 있다고 매일 하늘이나 보고 있느냐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었는데.
강진호가 변한 것일까?
적응이라는 말을 변화로 받아들인다면 강진호가 변했을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은 변화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상실을 동반한다는 것 역시 강진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방진훈처럼 말이다.
방진훈을 떠올린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었다.
‘약해 빠졌어.’
현대의 무인들은 그가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 방진훈은 그가 만난 무인들 중에서는 그나마 대가 좀 센 편이지만, 단지 그뿐. 강진호의 승부욕을 충족시켜 줄 정도는 아니었다.
마환살(魔幻殺)에 그리 쉽게 걸려드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방진훈이 정말 정공을 제대로 익힌 무인이었다면 환술이 먹히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진훈의 수준으로는 마교 일천 년의 역사가 담긴 마환살을 거부할 수 없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강진호는 하늘을 보았다.
과거의 그였다면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슬리면 모조리 치워 버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으니까.
예전의 그 ‘적천마존’이 이런 상황을 겪었다면, 영남회로 쳐들어가 관계된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을 것이다. 도망치는 이들은 살려줬을지 모르겠지만, 감히 그에게 대항하는 이들은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파괴할 줄은 알지만, 운영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가 그의 방식을 고수했을 때는 영남회의 붕괴라는 결과로만 이어질 뿐이다. 영남회가 붕괴하고 나면 그 빈자리를 누군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이득을 차지하기 위해 총회가 분열하고, 끊임없는 다툼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강진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말이다.
그게 방진훈이 되었든, 이중걸이 되었든.
‘잘도 여기까지 생각하는군.’
‘거슬리면 죽인다’라는 간결한 생각으로 살아가던, 마치 짐승과도 같던 그가 다시 가족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서 겨우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강진호는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충동을 내리눌렀다.
‘날뛰지 마.’
억누르려는 것이 아니니까.
네가 날뛸 곳이야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쩌면 그보다 그 안에 있는 이놈이 전면에 나서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강진호가 해야 할 것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일.
현실과 이면의 균형을 맞춰서 살얼음판을 깨지 않는 일이 지금부터 강진호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침범해 오는 이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강진호는 영남회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시간이 오고 있다.
그를 짓누르고 억제하던 모든 것을 풀어놓고 짐승처럼 날뛸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에 차오르는 묘한 흥분이 과연 적천마존의 기쁨인지, 아니면 강진호 자신의 기쁨인지는 이제 강진호도 알 수가 없다.
‘진정해야 하는데…….’
강진호는 끓어오르는 피를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고 말았다.
환술에 걸려 비명을 지르는 방진훈의 머리를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가.
최근 피를 많이 봐서인지, 자꾸만 기이한 충동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점점 강해져만 가는 충동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집으로 가야겠어.”
어머니가 보고 싶다.
아버지의 커피를 먹고,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강은영과 투닥대야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 충동을 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참아야 하지?
“……닥쳐.”
귓가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강진호는 고개를 숙인 채 집을 향해 걸었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강진호는 단 한 번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그의 등 뒤로 밤의 안개가 가만히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