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74
#273.
드러내다 (3)
여파는 컸다.
자신을 드러낸 여파가 얼마나 큰지 강진호는 절절히 실감하고 있었다. 조금 더 참았어야 하는데 참지 못한 여파는 강진호의 일상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사인 좀 해주세요.”
“…….”
출근을 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탄 것이 실수였다. 평소였다면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금동이를 타거나 걸어서 움직였을 텐데, 비가 와서 지하철에 오른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연습장을 내미는 아이를 보며 강진호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나오신 분 맞죠? 팬이에요!”
“아…….”
드라마에 출현한 것이 실수였다.
그 드라마가 그의 인생에 이리 깊은 여파를 미칠 줄 알았다면 절대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것이 아니던가.
“……제가 사인이 없어서요.”
“그래요?”
실망한 듯 연습장을 내린 여자아이가 이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사진은 한 장 같이 찍어도 되죠? 가게 가면 해주신다고 하던데.”
요즘 세상은 알 수가 없다.
그가 중원에 있을 때도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이야기처럼 소문은 언제나 사람의 발보다 빨랐지만, 지금처럼 온 세상으로 동시에 퍼져 나가지는 않았다.
SNS가 인간의 삶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현재 가장 실감하는 이가 바로 강진호일 것이다.
“……네, 해드려야죠.”
그리고 강진호도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대신에 나중에 피자 드시러 오세요.”
“네. 꼭 그럴게요.”
이 상황에서 영업을 할 정신이 있는 것을 보면, 강진호도 현대 사회에 훌륭하게 적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다.
“저두 해주세요!”
“저도요!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가게 갈게요! 두 번 갈게요!”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강진호는 혼이 나간 얼굴로 눈을 감았다.
아직 이 세상은 그가 살기에는 너무 힘든 곳이었다.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왜 줄어들지 않는 걸까?
자신의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 것의 의문을 가지는 것은 주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는 빵점짜리 사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뭔 상관이야. 돈이 벌리는데.”
강진호의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주영기를 보며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젠 독심술이라도 익힌 건가?’
강진호의 생각을 알고 말한 건지, 그냥 내뱉은 말이 강진호의 생각을 정확하게 저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진호야, 여기 불고기 두 판!”
“응. 알았어.”
오더를 받은 강진호가 마음을 일신하고 화덕으로 향했다. 기분이 어떻든 간에 음식은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 어설프게 할 바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강진호의 스타일이었다.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내고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 테이블로 향한 강진호가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피자 안 줘요?”
“아뇨. 드려야죠.”
멍하게 피자를 내려놓은 강진호가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자 남자들이 강진호를 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팁 드려요?”
“아뇨. 아닙니다.”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돌아 나오자 등 뒤에서 낮은 대화가 들려왔다.
“그런데 여기는 왜 맥주 안 파냐?”
“생긴 건 딱 맥주집인데. 그리고 여자가 왜 이렇게 많아?”
“원래 대낮에 이런 데는 여자가 더 많은 거야.”
“그렇다고 남자가 전멸하나? 보통은 커플도 좀 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강진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평범한 손님이 왔건만, 그 손님들이 가게 분위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드라마를 좋아해 주는 손님들이 빠지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빤했다.
“파스타 쪽 사람은 구했어?”
“응. 내일부터 출근한다고 하더라고.”
“아,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이쪽에 지금 파스타 하던 사람은 없고, 새 메뉴로 추가할 거라고 하니까, 프라이팬은 있냐고 묻던데?”
“그래서?”
“없다고 했어.”
박유민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자 강진호도 마주 웃었다.
“망했네.”
“걱정 마. 내일 와서 필요한 재료부터 도구까지 다 준비할 거라니까.”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간에 일단 와서 일을 해준다면 가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진호야.”
“응?”
“이제 일한 지 한 달 된 거 같아서 결산 때려봤는데.”
“응.”
“우리 무지 벌었다…….”
“…….”
“실제로 손님이 들어온 게 장사 시작하고 보름 정도 지나서니까, 다음 달에는 돈이 더 벌릴 거야. 두 배는 더 벌 수 있을걸?”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가 그거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자.”
“응. 알았어.”
돈 이야기가 나오자 강진호가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특히 친구들 사이인 만큼 이건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는 문제였다.
“1/N으로 나누자고?”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영기와 박유민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계산이 되냐?”
“이번 달에 나온 비용이랑 이런 것 처리하고, 나중에 내야 할 세금 미리 빼놓고, 남은 돈을 나누면 되잖아.”
“아이고, 강진호 씨.”
주영기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세금이라는 게 강진호 씨 생각하는 것처럼 이만큼 벌었다고 이만큼이다 딱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버시는 거에 따라서 세율이라는 게 달라집니다. 아시겠어요, 경영학과 다니는 강진호 씨?”
“나중에 세율 오르면 더 제하면 되잖아.”
“그걸 누가 계산하냐?”
“나.”
강진호가 자신을 가리켰다.
“아, 너 명문대생이지?”
“…….”
“미안하다. 가끔 너랑 있으면 니가 똑똑하다는 걸 잊어버린다. 이건 내 잘못은 아니다, 솔직히.”
“누가 뭐랬냐.”
주영기가 단호히 손을 저었다.
“니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나는 싫다.”
“왜?”
“네가 돈을 투자했는데, 왜 내가 수익을 똑같이 받아야 돼? 내가 무슨 거지냐, 새끼야?”
“너희 아니었으면 망했어.”
박유민도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아니야, 진호야.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돈을 받으면 우리가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야.”
“음…….”
강진호가 예상치도 못한 고난을 만났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돈 준다는데도 싫다는 놈들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인마, 그거 퍼센트로 돈 주는 거… 그게 좋은 거 아냐. 드라마 버프가 언제까지 갈 줄 알고. 나중에 가게 장사 안 되면 손가락이나 빨라는 거냐?”
“……아!”
그건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이 강진호가 어벙한 표정을 짓자 주영기가 얼굴을 마구 주물렀다.
“저런 놈도 명문대에 가는데……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걸.”
“그게 안 돼서 못 간 거 아냐?”
“박유민, 넌 요즘 조동아리가 문제여.”
주영기가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여하튼 나는 그런 식으로 돈 안 받아. 내가 한 만큼 받는다. 나는 더 먹을 생각이 없다.”
“그래? 그럼 얼마를 줘야 하지?”
“다른 점원들 받는 만큼 달라고, 인마. 그리고 언제까지 우리 부려 먹을 거야? 여기서 평생 일할 수는 없잖아. 적당히 안정되면 나도 내 일 하러 가야 하고, 유민이도 게이머 준비해야지.”
“음…….”
강진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조금 있으면 나도 복학을 해야 하니까.”
“너 복학할 때까지는 같이하자고?”
“안 될까?”
“생각 좀 해보자. 그거 좀 걸릴 테니까.”
“음, 그래.”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럼 우린 먼저 간다.”
“응.”
“태워줄까?”
“사양할게.”
강진호는 ‘과연 저게 굴러는 가는가’ 의심이 드는 주영기의 차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걸 좋다고 타는 박유민도 참 강심장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대가 약했는데, 자신과 같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참 무던해졌다.
“그럼 간다.”
“음…….”
차가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출발하자 강진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차나 한 대 뽑아줘야 하는데.’
주영기의 자존심에 차를 준다고 해도 받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강진호보다 주영기의 말이 백번 옳았기에 강진호도 강요할 수 없는 문제였다.
빵빵.
생각에 잠시 잠기려는 찰나, 클랙슨이 울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세단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타시죠.”
창이 열리며 조규민이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보조석으로 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웬일이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겸사겸사 얼굴도 좀 보구요. 그런데 가게가 왜 이리 늦게 마치는 겁니까?”
“손님이 많아서요.”
“…….”
조규민이 아연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 드라마 약발이 이렇게나 오래가는 건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자영업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조규민이었다. 이런 이유로 손님을 끌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래서야 운영 능력이란 게 어떤지 평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회장님이 말씀하신 게 이런 건가?’
운영 능력이란 건 허상이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만이 필요하다고 한 황정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실감하는 조규민이었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보고서에 ‘능력은 알 수 없지만, 가게는 대성공’이라고 적어야 할 판이었으니까.
“할 말이라는 게?”
“아!”
상념에 빠져들려던 조규민이 강진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가만히 액셀을 밟았다.
“차가 없으니 불편하시죠?”
“……조금요.”
어젯밤까지만이라면 좀 불편하기는 한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었다고 말을 했을 텐데, 오늘 지하철에서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개인의 공간이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나 강진호는 이제 차가 없으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가 이 정도인데 톱스타라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왜 그들이 파파라치를 씹어 먹으려고 하고 사람들의 관심에 진저리를 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강진호였다.
“후보를 골라놨습니다. 한 번 보러 가시죠.”
“네.”
강진호는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보면 되는데 왜 굳이 수고를 하시냐’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조규민이 하는 일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강진호였다.
부우우웅.
차가 천천히 재경을 하게 나아갔다.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두말없이 강진호가 담배를 입에 물자 조규민도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인 조규민이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최근에 혹시 그 한국 무도 총회라는 곳과 얽히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게 본론이구나.
차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 강진호가 가만히 웃었다. 말속에 진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물어보자니 껄끄러워서 차라는 명분을 빌린 것이리라.
“그러는 중이죠.”
“강진호 씨.”
조규민이 가라앉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구석 쪽으로 차를 세웠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지만, 강진호는 조규민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강진호에게 이런 행동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된 지 오래니까.
“한 가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