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83
#282.
발휘하다 (2)
“준비는?”
“끝냈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그 준비라는 것이 확실한지, 준비가 확실하지 않았을 때,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며 방진훈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가 이 일을 준비해 온 것이 몇 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진호 씨 때문에 조금 당겨진 것입니다. 강진호 씨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제가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진훈의 말이 맞았다.
방진훈은 그동안 꾸준히 총회를 뒤집어엎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강진호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회주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반발하는 자들을 힘으로 눌렀을 것이다.
그러니 준비에 소홀할 리 없었다.
“이건 제 인생이 달린 일이기도 합니다.”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는 방진훈의 목소리에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상황에 대해 들어보고 싶은데요.”
방진훈이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전체 전력은 칠 대 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규민이 물었다.
“우리가 칠인가요?”
“아뇨. 우리가 삼입니다.”
조규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제가 듣기로는 얼마 전 방진훈 씨께서 총회를 거의 손에 넣었다고 들었는데, 이쪽의 전력이 삼 할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예.”
방진훈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머리를 차지하는 전쟁은 전력으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설마 5.16군사정변 당시에 그 양반이 대한민국의 전력 절반 이상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쿠데타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죠?”
“……그러네요.”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겁니다. 이건 윗대가리를 몰아내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사실 칠 대 삼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확실해지는 겁니다.”
“음…….”
“성공하면 혁명이 되는 거고, 실패하면 반란이 되는 거죠. 우습겠지만, 반란이 되어 실패한 이들도 일을 시작할 때는 다들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자신들이 혁명군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조규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살짝 눈을 빛냈다.
‘의외로군.’
겉으로 보이는 방진훈의 모습은 우락부락했다. 옷은 깔끔하게 입고 나름 신경을 썼지만, 외견상으로 결코 똑똑해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방진훈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이성적이었다.
‘하기야…….’
방진훈은 총회에서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사라고 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 멍청할 리가 없었다. 멍청했다면 결코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을 것이고, 권력을 쟁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여기가 핵심이로군.’
방진훈이라는 사람을 냉정히 바라보자.
이 사람은 혼자만의 힘으로 회주가 탄탄히 세력을 쌓아놓은 한국 무도 총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늘려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회주를 압도하고 총회의 회주 자리를 거의 쟁취한 사람이었다.
강진호만 없었다면 지금쯤 총회는 방진훈이라는 새로운 회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을 것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양반도 입지전적인 사람이군.’
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풀리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조규민은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방진훈은 그의 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뒤에는 강진호가 있으니까.
방진훈의 불행은 그가 강진호와 만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한국 재계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황정후 회장도 때때로 강진호와 비교할 때는 평범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니 방진훈도 그런 평가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여하튼 전력은 그렇습니다.”
“수 말고 실질 전력은?”
“그럼 더 벌어집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질문은 조규민의 몫일 수밖에.
“그만한 전력 차가 있는데, 정말 총회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겁니까? 저는 게임을 해도 이왕이면 압도적인 전력을 만들어놓고 싸우는 것을 선호해서요.”
방진훈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객관적인 전력은 확실히 밀립니다. 하지만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이 전력이 모두 전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음?”
조규민이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방진훈이 부연했다.
“회주파니 이사파니 세력을 나누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만약 싸움이 벌어지고 서로 목을 따겠다는 기세로 붙는다면…… 대부분은 중도파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기는 쪽으로 붙는 것이 이득이니까요. 게다가…….”
목이 타는지 방진훈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말했다.
“무인들은 원래 이런 세력 싸움에는 무관심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격에는 무척이나 민감하고 호전적으로 움직이지만, 내부 투쟁에는 방관하는 기질이 있죠. 그러니 실제로는 확고부동한 제 세력과 회장의 세력이 싸우게 될 겁니다.”
“확실히.”
일리가 있다는 듯이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승부는 걸어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흐음.”
가만히 조규민과 방진훈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났다 했나요?”
“예!”
“그렇군요.”
그러면서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계획은 확실하겠죠?”
“물론입니다.”
“다 폐기해요.”
“……예?”
방진훈은 자신이 강진호의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태연스레 다시 말했다.
“다 폐기해요.”
“…….”
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방진훈은 혼란으로 물들어가는 머리를 다잡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저번에도 비상식적인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던 강진호가 아닌가. 이런 일로 일일이 흥분하다 보면 고통을 받는 것은 방진훈일 뿐이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방진훈의 물음에 강진호가 가볍게 대답을 했다.
“그쪽을 따르는 이들은 아마 총회에서 핵심적인 전력이겠죠.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방진훈의 성격상 어중이떠중이를 모아서 세력을 구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심중의 핵심, 실력자 중의 실력자들만을 모아서 소수 정예를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결국 승부는 친위대와 친위대의 싸움에서 결정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방진훈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회장 쪽도 마찬가지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둘이 맞부딪쳐서 서로 피해를 입으면 총회 전체 전력의 반은 날아간다고 봐야 하겠지.”
“…….”
방진훈의 눈이 살짝 떨렸다.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던 일이다.
“그럼 영남회를 막아낼 수 있나?”
“……어렵습니다.”
“내전을 생각할 때는 외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하고도 모든 것을 잃게 되지.”
방진훈이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이 빤한 이치를 왜 그동안에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아냐.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의 시나리오대로였다면 우두머리를 잃은 회주파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응집력이 저하된 이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강진호가 나타나며 상황이 뒤틀렸고, 강진호에게 제압당한 충격으로 방진훈의 판단이 흐려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수가 움직일 건 없어.”
“예.”
“잠시 기다린다. 그리고 변화가 없다면 일전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면 돼.”
“일전의 계획이라 하시면?”
“우두머리를 친다.”
방진훈의 몸이 떨렸다.
상황이 다르다.
방진훈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 회장이 방심하는 틈을 노렸다. 저쪽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숨기고 숨겨 몰래 키운 이들을 투입하고, 그도 모자라서 영남회에 손을 뻗으면서까지 회장을 쓰러뜨릴 기회를 노렸다.
인내와 천운이 합쳐져 일이 잘 풀린 것이지, 평소라면 이중삼중으로 경호를 치고 있는 회장에게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회장이 이번 일을 겪었으니 경호는 더 강화되었을 것이고, 앞으로는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총회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서 기다릴 테니까.
그런데 강진호는 이전의 방식을 그대로 쓰겠다고 하고 있다.
‘멍청한 게 아냐.’
이건 자신감이다.
총회 전체가 나선다 하더라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
그 지독한 오만함에 방진훈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거다.
그래, 이거다.
무학을 익히고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바라온 무인의 모습.
자신의 실력 하나만으로 세력과 관계를 모두 부정해 버릴 수 있는 진정한 무인.
‘그랬지.’
세월에 깎이고 세상에 얻어맞으며 그도 세력을 키우고 현실과 타협했지만, 그가 무학을 익힌 이유는 지금의 강진호처럼 되고 싶어서였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떨려왔다.
지금 저곳에 앉아서 저 말을 하는 이가 강진호가 아니라 방진훈 자신이었다면 어떨까?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다 내 발아래 두겠다는 호기를 부릴 수 있다면?
“쿡쿡쿡.”
방진훈은 웃고 말았다.
설사 실패해 처참하게 죽더라도 무인으로서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 받들겠습니다.”
방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진호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힘이 뒤지기 때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결국에는 포기해야만 했던 곳에 도달한 이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의였다.
“하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상관없다.”
강진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쉽지 않다고 해서 돌아가게 되면, 나중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뭔가 경험에서 나오는 말 같았다.
방진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결행 시기는 언제쯤으로 하시겠습니까?”
“이틀.”
강진호의 대답이 즉시 나왔다.
“이틀 기다린다. 그때까지 연락이 없으면 움직인다.”
“연락이라 하시면?”
“스스로 회주의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연락.”
방진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회주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결코 그 자리를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상관없다.”
강진호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구석에 몰린 생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뿐이지. 얌전히 목을 내놓든가, 아니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강진호가 천천히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조규민이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강진호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되지 않아? 늙은 쥐가 어떤 발악을 할지 말이야.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직한 강진호의 웃음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상하게도 자꾸 몸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방진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먼 곳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회장의 발악을 기다리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천천히 허공으로 흩어져 가는 담배 연기를 보며 방진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틀.
이틀이다.
이틀이 지나면 세상이 요동치게 될 것이다. 이 청년의 손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