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92
#291.
베어내다 (1)
‘말도 못 붙이겠군.’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 등 뒤에 따라붙어야 한다는 것마저 공포스럽다.
방진훈은 말없이 건물로 향하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봐온 강진호의 모습치고 좋은 모습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모습을 다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강진호는 유별났다.
그저 걷고 있는 그 등만으로도 따라가는 그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느낌이다.
두렵다.
수많은 단어로 휘황찬란하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하나였다. 지금은 아군이라는 영역으로 한데 묶여 있는 그들이지만, 방진훈은 솔직히 강진호가 무서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단순한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등을 보는 그들 이상의 두려움을 그를 마주하는 이들이 느끼게 될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겠지.’
전면에 서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달아나게 하고 아군의 사기를 극도로 끌어 올렸다는 무장들의 등이 저렇지 않았을까?
두렵지만…… 그렇기에 더 믿을 수 있고 힘이 나게 만드는 등.
‘남자는 등으로 말하는 거라더니.’
문득 다른 이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등은 어떨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멀리서 본 자신의 등을 상상해 보던 방진훈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못 이겨.’
그릇의 차이가 너무 크다.
아니, 그릇의 차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강진호는 그 이상으로 오랜 삶을 살았고,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겪었을 테니까. 지금 그저 그릇이 다르다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은 자신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포기이자, 강진호가 살아온 삶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방진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게 방진훈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던 강진호의 발이 멈춰 선다. 그와 동시에 방진훈 등의 발도 일제히 멈춰 섰다.
“왜……?”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해버린 방진훈이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나와.”
낮은 목소리.
딱히 누군가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몸을 움츠리게 되는, 그런 목소리였다. 다행인 것은 지금 그 목소리가 방지훈 쪽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한 말인가.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강진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쪽 건물 뒤, 짙은 음영 속에서 세 인영이 나타나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방진훈은 침음을 삼켰다.
‘눈치도 채지 못했군.’
강진호 없이 자신들만이 침입했다면 이런 이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밝은 대낮에 드러난 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늙은 여우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다가올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에 쳐둔 덫을 피해가며 안으로 잠입할 수 있었을까?
회의적이다.
그제야 방진훈은 그가 별장에서 이중걸을 몰아넣을 수 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정말로 일을 저지르지는 않겠지’ 하는 이중걸의 방심과 최적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그런 행운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운이 아닌 그들의 힘만으로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방 이사님, 이 야밤에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어 들어오기에는 방 이사님의 체면이 좀 과히 손상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방진훈은 자신을 향해 이죽거리는 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안면이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렇겠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가 천태훈을 키웠듯이 이중걸에게도 그가 알지 못하는 세력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천태훈이 이중걸에 대해 속속들이 알듯이 저들도 방진훈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방진훈 자신보다 더 말이다.
“어디서 쓸 만한 놈 하나를 영입한 모양인데, 그렇다고 이리 소수로 쳐들어오는 것은 우리와 회주를 너무 무시한 것 아닙니까? 방 이사님이 이리 나오시면 그동안 방 이사님을 견제한다고 양지로 한 번도 못 나가본 우리가 억울해서 어쩝니까. 네?”
방진훈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강진호가 앞에 있지만, 그들은 그가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실력은 있을지 몰라도…… 애송이들이군.’
모르는 것이다.
강진호는 지금 기운을 내뿜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다른 이들을 위협하고 있지 않았다.
경험이 있고 수라장을 건너온 이들은 그런 데몬스트레이션 없이도 강진호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자인지 몸으로 알아챈다. 하지만 저들은 훈련은 받았을지언정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사자가 앞에 있는데 뒤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격이다.
‘어떻게 하실 건가?’
강진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행동을 나서보라는 재촉으로 받아들인 방진훈이 허리를 쭉 폈다. 아무래도 말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총단에 신호를 보내 방진훈이 여기 있다고 소리쳐 보지, 왜 그러고 있는 거지?”
“큭큭큭.”
사내가 낄낄대며 웃었다.
“방 이사님이 쥐새끼처럼 숨어드는 장면을 모두와 함께 보고 싶은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지 말라더군요.”
‘음?’
방진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러지 말라고 했다고?
저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릴 사람은 하나뿐이다. 이중걸이 아니고서야 누가 저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총회 사옥에 틀어박힌 이중걸이 다른 이들에게 그들이 침입해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뭔가 있군.’
방진훈은 이중걸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늙은 너구리가 자신들에게 순순히 목을 내밀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총회에 알려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방법을 꾸미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너희끼리 나를 막아보겠다는 건가? 이 방진훈을?”
말을 하면서도 방진훈은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야 당연히 들킨 이상 총회 쪽으로 신호가 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들 셋이서 자신들을 막겠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사람을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방진훈은 머리에 오르는 열을 식히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지금 흥분하는 것은 악수다. 그리고…….
‘내가 흥분할 상황이 아니야.’
그는 어떻게 해서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자신까지 흥분하면 강진호가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방 이사님을 저희끼리 막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흐음?”
“저희도 그리 멍청하진 않거든요. 저희는 안내를 위해서 온 겁니다.”
“안내?”
“예. 안내죠.”
사내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용기가 있다면 따라오시죠. 어차피 저희 눈에 들킨 이상 더 나빠질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른 자들 눈에 띈다고 해도 좋을 게 없으니, 안으로 가서 조용히 자리를 만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방진훈은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이게 뭐하자는 짓이지?’
자신들이 올 것이야 당연히 예상을 했겠지만, 총회 쪽으로도 알리지 않고 안쪽에서 따로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치 협상이라도 하자는 태도 아닌가.
협상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을 맞이하는 접견자의 태도가 영 좋지 못하지만, 젊은 혈기 가득한 무인들은 가끔 그들의 태도를 제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방진훈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이중걸이 그들과의 협상을 원한다면 한 테이블에 앉는 것도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중걸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끝났나?”
“…….”
방진훈이 대답을 못하고 어물쩍거리자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내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야, 어디서 좀 놀다 온 모양인데, 여기는 네가 설칠 만한 곳이 아니다.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괜히 끼어들었다가 맴매 맞고 울지 말고, 저기 가서 놀아라.”
강진호가 가만히 웃었다.
“어? 이 새끼 보소? 너, 그런 살벌한 칼은 어디서 났냐? 애들이 그런 거 들고 다니면 다친다는 말도 못 들어봤…….”
순간, 사내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방진훈은 조금 당황했다.
말을 하던 이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문다면 주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사람의 심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하지만 그의 당황은 당사자의 놀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뭐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을 멈춘 것이 아니다. 말을 멈추게 된 것이다.
머리는 입에 명령을 내려 말을 하라고 하고 있는데, 그의 육체가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상한 것은 그뿐민이 아니었다.
시야가 이상하다.
뭔가 살짝 흐려진다 싶더니, 정면이 아닌 위로, 천천히 시야가 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강진호의 얼굴이 아래로 쑥 내려간다 싶더니, 별도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는…….
‘저거?’
마지막으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웬 남자의 등이었다.
그 등이 결코 자신은 평생 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직감한 사내의 의식이 전원을 끈 TV처럼 끊어져 버렸다.
“…….”
방진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대체 언제?’
말을 하던 사내의 입가에 붉은 선이 생겨난다 싶더니, 마치 괴기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사내의 머리가 쩍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촤아아아악!
잘려 나간 동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허공으로 솟구친다.
스르륵.
슬로우 모션처럼 사내의 몸이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아무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사내의 동료들은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채 경악하고 있을 뿐이고, 방진훈의 부하들도 입을 틀어막고는 몸을 벌벌 떨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다. 바로 눈앞에서 사람 하나가 천참만륙이 되어 죽는다고 해도 결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놀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누구도, 이곳의 그 누구도 강진호가 대체 언제 손을 썼는지를 보지 못했다.
상처와 상황을 감안한다면 저 검으로 사내의 머리를 베어버린 것이 분명한데도 그들 중 누구도 대체 언제 강진호가 그 검으로 사내를 베었는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사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움직이는 순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그 검이 자신의 목을 베어버릴 것 같은 압박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제길.’
손이 떨려온다.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부하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도 자꾸만 떨리는 손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바지 주머니로 손을 찔러 넣어 떨림을 감춘 방진훈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가만히 쓰러져 피를 뿜어내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은 화를 부르지.”
그는 그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남아 있는 두 사내를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음.”
사내들의 얼굴이 공포로 질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