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94
#293.
베어내다 (3)
어둠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의식이 없는 때부터 어둠과 함께하지 않는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빛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어둠이 시작을 함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인간은 언제나 어둠과 함께한다.
우치무라 마사시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어둠과 가까운 인간이었다.
인자란 그런 것이니까.
세상의 대부분을 어둠과 함께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지만, 특히나 마사시는 스스로의 역할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지금껏 쌓아온 뼈를 깎는 수련과 고행이 그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흥.’
그렇기에 그는 이번 임무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선이라니.’
드러난 사회에서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일본에 미치지 못했다. 근래에 들어 한국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비교되는 것 자체가 이상할 만큼의 격차가 존재했다.
드러난 세상이라면 말이다.
한데 드러나지 않은 세상의 격차는 드러난 세상의 격차가 우스울 만큼 크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적어도 무인들의 세계에서는 약소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3세계라든가, 인구 자체가 적어서 발전의 기회 자체가 없는 도상국들을 제외하면 최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가다.
무학의 불모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나라에 들어와 단 한 사람을 처리하는 임무라니.
‘마음에 들지 않아.’
이해는 할 수 있다.
불모지에도 불모지 나름의 서열 관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 처리하지 못할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더 강한 이들이 산재한 국가에 손을 내밀고 대가를 바친다는 것은 합리적인 개념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자신들이 수십이나 몰려왔다는 것이다.
‘나 하나로도 충분한 일을.’
소국의 애송이 하나를 처리하는 일에 이 많은 인자들이 몰려왔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소국 놈들이 대국에게 손을 벌리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대국이 넓은 아량으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이번에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해온 자가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단체인 한국 무인 총회의 회주라고 하지 않는가. 여기까지야 충분히 기분이 좋을 만한 일이었지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마사시는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무복도 아닌, 청바지와 검은 셔츠를 갖춰 입고 양손으로 검을 들고 있는 애송이.
그들이 지금 주변을 돌고 있음에도 조금의 눈치도 채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애송이를 보고 있으려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자란 참고 견디는 자.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도 일단은 완수한다. 철저하고 확실하게. 그것이 지금까지 마사시가 배운 것이었다.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야 수도 없이 받았다. 그럴 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항의는 일을 더없이 깔끔하게 처리하여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적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일단은 저 주제도 모르는 애송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먼저다.
‘관용을 베풀어주지.’
어둠 속에서 마사시가 희게 웃었다.
스스로 죽음도 알지 못하고 의식을 앗아가는 완벽한 암살.
그것이 마사시가 저 어린놈에게 내려줄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이었다.
슷.
낮은 신호음과 동시에 조용하고 은밀하게 암살조가 사내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어둠 속에서 들어오는 이를 바로 습격하는 것은 암살의 확률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상대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면 반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상대의 실력이 목숨을 각오하고 상대해야 할 정도라면 당연히 선택했을 방법이다. 그들은 임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서히 주변을 돈다.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나름의 반응이 있을 것이다. 그 반응의 정도에 따라 공격의 패턴을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정말 애송이인가?’
저런 애송이 때문에 이 많은 인원이 넘어온 것에 대한 불만, 그리고 상층부가 멍청이가 아닌 이상 저놈이 정말 애송이라면 이만한 인원을 보낼 리가 없다는 신뢰.
그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상충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애송이인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스물이나 되는 인자들이 주변을 돌고 있음에도 놈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아니야.’
정말 눈치를 채지 못했다면 저곳에서 저리 서 있을 리가 없다.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 검을 내려 바닥에 대고 있는 놈의 모습이 마사시의 가슴에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저 자세는…….
‘도발이라도 하려는 건가?’
으득.
결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마사시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고 말았다.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실수를 자행했음에도 동료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지금 강진호가 취하고 있는 자세를 알아보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가슴속에 차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 것이다. 양손으로 검을 잡고 바닥으로 자연스레 내린 자세.
일본이 세상에 자랑하는 대검호.
미야모토 무사시가 창안한 이도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였다.
‘감히 조센징 주제에.’
저열한 무학이나 익히는 조선인 주제에 감히 대검호의 자세를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없는 도발이 되고 있었다.
알고 한 게 아니라는 것은 이해한다.
이런 도발을 하려면 그들이 일본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니까. 하지만 강진호에게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그러니 결코 생각하고 펼친 도발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더 큰 불을 질렀다.
반도인 주제에 감히 이도류를 흉내 낸다는 것만으로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강진호는 이도류를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떠한 무공의 기수식도 아니었다.
그저 그의 주변을 돌고 있는 놈들의 작태가 우스워 검을 내리고 구경하고 있느라 자연스레 그런 자세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마사시가 피맺힌 통곡을 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사시는 강진호의 마음속을 알 수 없었다.
우연찮게 오해가 발생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반드시 강진호를 죽여야 했다. 이제 그 이유 하나가 추가된 것뿐이다. 다만, 처음 먹은 마음과는 다르게 좀 더 고통스럽게 저 애송이를 죽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신호가 떨어졌다.
1인 돌진.
미리 약속되어 있는 패턴에 따라 마사시가 새하얀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다시 한 번 신호가 떨어지면 그가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게 될 것이다.
‘조금 혼날지도 모르겠군.’
예정대로라면 등 뒤에서 접근한 그가 강진호가 반응할 틈도 없이 단숨에 폐와 심장에 비수를 찔러 넣어 즉사시켜야겠지만, 마사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건방진 놈을 그렇게 쉽게 죽여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5㎝.
칼날을 약간 비껴 넣는 것만으로 심장을 반쯤 베어낼 수 있다. 그러면 상대는 즉사하지 않고 내출혈로 몸속에 피가 차오르는 끔찍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게 될 것이다.
야단이야 좀 맞겠지만, 뭐 어떤가.
그런 결심을 하며 웃는 마사시에게 두 번째 신호가 떨어졌다.
스슷.
머리로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마사시의 몸이 땅을 박차고 강진호의 등을 향해 은밀하게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다.
이제 저 멍청한 등에 소매 안에 감춰둔 비수를 박아 넣기만 하면 된다. 인자의 칼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빛을 보지 않는다.
혹시라도 빛에 반사되어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호의 등에 충분히 접근했다고 생각한 마사시가 소매를 움직여 비수를 뽑아 들었다.
‘죽어라! 애송이!’
그러고는 더없이 은밀하게 강진호의 갈비뼈 사이로 비수를 쑤셔 박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덥썩.
갑자기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마사시의 얼굴에 극통이 몰려오더니, 몸이 힘을 잃고 허공으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전형적이군.”
그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달라붙는 무복에 손발은 붕대를 감아 소리를 줄인다는 건가? 만화에서라도 튀어나온 것 같은데?”
그제야 마사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수를 찔러 넣으려던 순간, 저 애송이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움켜잡아 버린 것이다.
“끄으읍.”
금방이라도 두개골을 부숴 버릴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거걱대는 뼈의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그제야 마사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이 애송이 하나를 잡는데 그들이 이만큼이나 몰려왔는지 말이다. 상층부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상층부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 마사시의 패착이었다.
“표창이라도 던질 줄 알았는데 바로 달려들다니, 조금 실망인걸? 스테레오 타입으로 옷은 갖춰 입었지만, 분신술은 못하는 모양이군. 지금쯤 통나무로 변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강진호는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닌자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닌자를 보니 새삼 닭살이 돋는 느낌이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좋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좀…….”
현대에 태어난 놈들이 전통 운운하는 건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우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통이 생생히 살아 있던 세상에서 온 존재였으니까.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지.”
이쪽은 세대교체를 하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런 강진호를 막아선 자들이 이런 구시대적인 인간들이라니, 재미있고도 우스운 일이었다.
“닌자는 죽을 때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던데, 확인해 볼까?”
“자, 잠깐!”
뭔가 말을 하려던 마사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진호는 일본어를 몰랐다.
우드드득.
“한국어로 말해야지.”
그러고는 끝이었다.
머리가 통째로 으스러져 버린 마사시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강진호는 바닥에 쓰러진 마사시의 시체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는 실망하게 하지 마.”
이쪽은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을 기대했단 말이지.
겨우 이 정도라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강진호가 어둠 속에 숨어 그를 바라보는 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어주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다음.”
싸늘한 살기가 홀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욕지기와 함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닌자들이 일제히 강진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큭큭큭.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닌자들을 보며 강진호가 가만히 검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