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97
#296.
탈취하다 (1)
‘이도류?’
이제야 강진호가 차고 있던 검이 두 개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경황이 없어 의식하지 못한 점도 있고, 일본에서 검을 두 개 찬다는 것은 한 자루가 예비용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난세와 전국시대를 겪으며 전투와 전투를 반복해 온 일본의 무인들은 검이 부러지면 그 자리에서 새 검을 뽑거나 다른 이들의 검을 빼앗아 싸우는 것을 당연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도류라니.
강진호가 든 것은 도가 아니라 검이니, 이도류가 아닌 이검류나 쌍검류라 불러야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이도류라는 것은 보통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무학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양손에 무기를 들고 위명을 날린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이 세상에 자랑하는 검호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이도류를 완성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미야모토 무사시가 이도류를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이도류의 진의를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그 검의 원형은 이제는 거의 전수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이다 쌍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신없는 난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오른손과 왼손을 따로 움직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한 손에 검을 드는 만큼 각각의 검에 실리는 힘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데 이도류를 사용한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
다카히라 신고가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맘대로 지껄이는 건 좋은데…….”
검으로 바닥을 톡톡, 내려친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쯤은 감안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일본 놈들은 혼자서 너무 떠드는 경향이 있군.”
뭐,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겠지만 말이다.
“이 조센…….”
파앙!
공기가 찢기다 못해 터져 나가는 파공음이 터지며, 다카히라 신고의 얼굴 옆으로 강진호의 검이 날아들었다.
툭.
그러고는 귓가가 불에라도 데인 듯 화끈한 통증이 몰려든다.
“그 말은 나도 알아듣겠군.”
강진호가 이중걸을 보며 말했다.
“과거에서 데려오기라도 했나?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조선인 타령이지?”
“…….”
“나를 막고 싶었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놈을 데리고 왔어야지.”
강진호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다카히라 신고를 바라보았다.
시대착오적인 기모노에 틀어 올린 머리만 보더라도 이들이 얼마나 과거에 빠져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일본 놈들은 이상한 미학이 있단 말이야.”
그게 과연 미학인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을 모르겠다면 알려줘야지, 그 몸으로 말이다.
다카히라 신고는 강진호의 이죽거림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까딱하다가는 죽는다.’
방금 전, 그의 귀를 자르고 지난 검이 만약 그의 목을 노렸다면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아무리 흥분으로 눈이 흐려지고 조금은 방심했다고는 하나, 그 검은 아무나 내지를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적이 충분히 강하다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진호의 강함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고 있었다.
“이…….”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만 지껄여.”
말은 이제 됐어.
그와 동시에 강진호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그 순간, 다카히라 신고는 이상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이 느려진다.
처음에는 강진호의 검이 예상보다 느리다고 생각했다. 이변을 알아챈 것은 조금 후였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검이라도 그에게 다가올 때쯤에는 빨라져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강진호의 검은 날아들면서 점점 더 느려졌다.
약하기 때문에?
그럴 리가.
조금 전, 강진호는 일검으로 그의 귀를 가져갔다. 그 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그를 놀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위기를 느낀 것은 그의 몸도 느려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다. 여유롭게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몸은 그의 생각처럼 빠르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세상이 느려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느릿한 검에 자신의 목이 잘린다는 것을 알아챈 다카히라 신고가 전신에 힘을 주어 몸을 비틀었다.
스슷.
강진호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피부가 갈라지고 그 안의 근육이 올올이 갈려 나간다.
무형의 검기만으로도 이만한 절삭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상에 대한 이해는 나중이었다.
‘이겼다.’
다카히라 신고는 승리를 직감했다.
무인이라면 한 번씩은 겪는 일이다. 깨달음의 순간에 들거나 집중력이 완전히 고조되었을 때, 인간은 다른 세상에 들게 된다. 시간이 느려지고, 색이 사라진다. 오로지 필요한 것만을 처리하며 뇌가 오버 클럭한다.
과거의 무인들이 무아지경에 들었다고 칭하는 순간이다.
후유증과 부작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소의 몇 배나 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세상이 느려지고, 그의 사고만이 빨라졌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다카히라 신고는 베인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마저도 쾌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보라.
다시 휘둘러지는 강진호의 검이 파리라도 앉을 정도로 느려지지 않은가.
이제 저 검을 피하고 저 건방진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에 그의 도를 박아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럼 그는 수하들의 원혼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검을 피하면…….
그 순간, 반대쪽에서 강진호의 검이 하나 더 날아들기 시작했다.
‘흠…….’
날아드는 검의 위치가 너무 절묘하다. 피하거나 막아낼 수는 있지만, 반격까지는 무리였다.
‘이거, 잘못하면 내가 질 수도 있겠는데?’
아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놈은 자신보다 강하다.
자신이 무아의 경지에 들지 못했다면 지금 날아드는 두 번째 검을 발견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목이 베였을 것이다. 첫 번째 검을 피하기 위해서 취해야 할 자세의 사각을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드는 검.
수많은 이들을 죽여보지 않고서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살검(殺劍)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났는가는 일단 접어두자.
이만한 강자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검을 피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시간은 그에게도 공평하다.
아무리 의식이 빨라졌다고는 하나 그의 몸도 빨라진 것은 아니니까. 단 한순간을 먼저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은 몇 배의 전력 차를 메울 만큼의 커다란 메리트이기는 하지만, 아차 하다가는 알고도 베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허리를 뒤로 젖혀 두 번째 검을 피해낸다. 그의 코 바로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을 보며 다카히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반격을!
하지만 이번에도 무리였다.
반격을 하려는 순간, 회수된 강진호의 검이 몸을 뒤로 젖히느라 드러난 그의 목젖을 정확히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지금 무아에 들어 있다.
강진호의 검은 파리라도 앉을 것처럼 느릿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것인가.
앞선 사고를 바탕으로 농락을 해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이런…….
“으음?”
자신의 목에서 나온 소리가 늘어난 테이프를 재생시킨 것처럼 기이하게 들려온다.
순간, 다카히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파리라도 앉는다고?
저 검에?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보며 다카히라는 위화감을 느껴야 했다.
빠르다.
아니, 느리다.
아니! 빠르다!
무인이 떨친 것이라고 하기에는 느리기 짝이 없는 검이지만, 조금 전 그가 느낀 것처럼 파리라도 앉을 정도로 느린 검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그래, 어린아이.
어린아이가 막대기를 휘두르듯이 느릿하다.
무아가 깨진 걸까?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속도는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빨라지고 있다는 건가?’
강진호의 검만이?
모든 것이 느려진 이 세상에서 강진호의 검만이 천천히 제 속도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강진호만이 다른 세상을 살지 않는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뿐.
‘더 빨라지고 있는 거야.’
처음 휘두르던 검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끝도 없이 느려진 세상에서 오로지 그 검만이 제 속도를 찾아가듯.
그럼 저 검을 무아에 빠지지 않고서 보았다면 어떨까?
이 눈으로 쫓을 수나 있었을까?
다카히라의 전신에서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어떻게든 저 검을 피해야 한다. 어떻…….
그리고 그 순간, 강진호의 검이 완전히 본연의 속도를 되찾았다.
서걱!
다카히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모든 것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 저 혼자만 제 속도로 움직이는 검을 피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검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 눈으로 보고 피하려고 하지만, 그의 몸은 의식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강진호의 검이 그의 어깨를 꿰뚫고 돌아간다.
다시 일검.
두 번째 검은 그의 다리를 갈랐다.
세 번째 검은 팔을 잘랐고, 네 번째 검은 복부를 꿰뚫었다.
느껴진다.
복부를 뚫고 들어간 검이 내장을 가르고, 내장에서 역류한 피가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천천히, 그리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큭큭큭큭.’
다카히라는 웃고 말았다.
기회라고?
이건 형벌이다.
모든 것이 느려진 만큼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검이 그의 몸을 가르는 감각, 거기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무엇보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빤히 보이는 검을 전혀 피해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아에 들지 않았더라면 눈 깜짝할 새 지나갔을 고통과 감각이 느릿하고 진득하게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흐흐흐흐.’
그리고 생생히 보인다.
그 웃음이.
그의 몸을 베고 팔다리를 가르며 튀어 오르는 핏물 사이로…… 마치 피를 본 마귀처럼 웃고 있는 강진호의 얼굴이 너무도 생생하게 보이고 있었다.
‘억울하지는 않겠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자는 이 세계를 바꿀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구미[組]에서는 한국으로 조원들을 파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아마 한국과 일본의 충돌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 어떤 식으로든 수많은 피와 죽음이 있어야 끝이 나겠지.
그러니 억울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목을 향해 느릿하게 날아오는 검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지금까지 쾌속하게 그의 몸을 베던 것과 다르게 마지막이 될 저 일검은 처음으로 돌아가 아주 느릿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악마.’
세상에는 존재한다.
마귀가.
위악이 아니라, 진실된 악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다카히라 신고의 패착이었다.
천천히 피부를 가르고, 근육을 끊고, 경동맥을 잘라가는 강진호의 검을 목으로 느끼며 다카히라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대일본제…….”
“닥쳐!
마지막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다카히라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잘려진 그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진 순간까지 채 눈을 다 감지 못했다.
“……여하튼.”
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낸 강진호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말이 많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