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98
#297.
탈취하다 (2)
“이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니군.”
조규민은 울리지 않는 전화를 보며 또다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차 안이 담배 연기로 가득해서 지나가던 누가 보면 불이라도 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창문을 조금 내려 환기를 시킨 조규민이 휴대폰과 밖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작을 하면 시작을 한다고 말을 해야지.”
물론 조규민이 안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을 함께하는가, 함께하지 않는가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했다.
그 난리를 쳐가면서 이쪽으로 확실하게 합류를 했는데 이리 사람을 쏙 빼놓고 진행을 해도 되냐, 이 말이다.
“말해 뭐해.”
강진호의 무던한 성격을 감안하면 말을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마 다음에는 신경 쓰겠다는 말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자신만 쏙 빼놓고 움직이겠지.
그게 강진호니까.
그러니 밥그릇이라도 찾아 먹으려면 수동적으로 기다릴 게 아니라 강진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항상 생각하고 감시해야 한다.
하급자가 일을 하기 위해 상급자를 감시해야 하는, 괴이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미지근해져 버린 아메리카노를 홀짝인 조규민이 창밖으로 보이는 먼 건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만한 건물에 모두 그런 사람들이 차 있다는 건가?’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저런 이들이 저렇게나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바로 옆에 외계인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외계인이 건물을 지어 올리고 거기 모여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모르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완벽히 비밀을 유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마 사회의 힘 있는 자들이라면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회장님도 은근히 알고 있었다는 눈치를 주기도 했고.’
조규민의 생각이 깊어졌다.
이들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 명, 한 명이 강진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저들이 이 나라를 주물럭거리고 있다 해도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강진호 같은 이가 가득했다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세상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지.”
어차피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다.
조규민은 시트를 살짝 뒤로 눕히며 담배를 한 대 더 물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 나이에 야간 경계 근무라니.”
한숨을 쉰 조규민이 먼 건물을 바라보았다.
“얼른 정리하게 나오십쇼.”
강진호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는 조규민이었다.
* * *
사람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것은 언제 보아도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그 머리가 조금 전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이의 것이라면 더더욱.
머리의 높낮이가 달라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이중걸은 견딜 수 없는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끝났구나.’
이중걸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평생을 총회에 바쳐 왔건만, 이제 그와 강진호 사이를 가로막아 줄 것은 없다.
“또 남은 게 있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진호가 이중걸을 향해 말했다.
“남은 게 있다면 다 꺼내봐. 미련을 없애줄 테니까.”
이중걸이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고 쉬어버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는 없소, 아무것도.”
그 목소리에는 깊은 자조가 어려 있었다.
강진호는 가만히 이중걸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들어와.”
“…….”
문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방진훈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방진훈을 보는 이중걸의 눈빛이 서서히 제 빛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허탈함 속에서도 방진훈에 대한 증오만큼은 꺼지지 않은 것이다.
“이놈…….”
이중걸이 몸을 떨었다.
이상하게도 강진호에게는 분노가 일지 않았다. 이중걸의 입장에서 강진호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었다. 그 누구도 태풍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진훈은 달랐다.
이중걸의 입장에서 방진훈은 그가 세운 협회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배은망덕하게 그의 자리를 탈취하려 든 놈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진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잘도 내 앞에 나타났구나.”
“당연한 말씀을.”
방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는 것 정도야 도리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회주님께 은혜를 입은 몸이니까요.”
“입에 기름칠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혀가 여전히 잘 돌아가는 것을 보니 말이야.”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 주실 모양이지요.”
방진훈이 가볍게 웃었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이중걸이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더 공격을 퍼부어 그의 혈압을 끝까지 올려 버리는 것도 재미난 일이겠지만, 이미 패배한 자를 농락하는 취미는 없었다.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말 제가 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주님?”
방진훈의 어조는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경고했습니다. 몇 번이고 경고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매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하신다면, 제가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야망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아실 테지요. 경고하고 또 경고하기를 몇 번이나 했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
이중걸은 입을 열지 못했다.
맞는 말이다.
마지막 회의에서도 방진훈은 몇 번이나 그에게 경고를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의 말을 무시한 것은 이중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영남회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한 게 몇 년 전부터입니까? 싹을 끊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중국도, 일본도 심상치 않으니, 하루빨리 영남회를 정리하고 한국 무인계를 일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방진훈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고함처럼 들려왔다. 실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이나 말씀을 드렸는데도 무시하시다가 막상 끝에 다다르니 사람을 배신자처럼 보시지 말란 말입니다!”
방진훈이 발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밟았다. 쿵!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려왔다.
“총회는 회주의 것이 아닙니다. 총회에 속한 모두의 것입니다. 회주의 안일한 판단이 총회에 속한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제가 그만큼이나 말씀을 드렸는데두요!”
“나는…….”
이중걸이 뭔가 변명을 짜내려고 할 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만.”
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고민을 했다.”
이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방진훈도, 이중걸도 모두 숨을 죽인 채 강진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대로 회주를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게 무슨…….”
방진훈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는 외부인. 총회가 일통만 되어 나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머리는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고민했지. 이러한 방식을 취하는 것까진 괜찮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총회에 개입하여 머리를 바꾸는 것까지 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강진호가 이중걸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이중걸.”
“……말하시오.”
“네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너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을지도 모른다.”
“…….”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나를 막아낸다면, 그다음에는 뭐가 남지? 총회를 그들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고, 그 자리를 연명하면 뭐가 남지?”
이중걸의 눈이 흔들렸다.
“나,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이중걸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내가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낸 것을 남의 손에 고스란히 쥐어주란 말이오! 당신 같으면 그럴 수 있겠소?”
강진호는 대답 없이 이중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과거 중원에서 수라기를 내주려다 합공을 맞아 죽었다는 것을 알면 그는 어떤 기분일까?
‘놓지 못하는군.’
인간은 손에 쥔 것을 쉽게 놓으려 하지 않는다. 손에 무언가가 닿으면 일단은 움켜쥐고 보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게 가치가 있다 생각되면 결코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다.
놓아야 잡을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자는 그가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이 아니다. 그의 눈은 이미 사람을 보지 않고 있었다.
“총회는 방진훈에게 맡긴다.”
“……이보시오!”
“쉿.”
강진호가 입가로 손가락을 세우고 이중걸의 말을 막았다.
“나는 말하라 한 적 없어.”
“…….”
“총회는 방진훈에게 준다. 당신은 이미 너무 늙었어.”
“늙은 게 잘못됐소?”
“그렇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늙는 것은 죄가 아니다. 죄는 마음이 늙는 것이다. 마음만 늙었다는 것도 죄가 아니겠지. 하지만…….”
강진호의 눈이 조금은 싸늘해졌다.
“마음이 늙어 자기가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고 있던 것은 죄다.”
순간, 이중걸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나, 나는…… 나는…….”
하지만 강진호는 그의 변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목숨은 살려주지. 딱히 죽일 이유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일까지 모든 게 정리되지 않는다면, 내가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 막을 자신이 있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이중걸이 허탈하게 웃었다.
막을 자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잘 생각하도록.”
강진호는 그 말을 남기고는 적루와 청루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일을 마치고 나가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보는 방진훈의 눈이 끓어올랐다.
‘폼 나는군.’
어쩌면 그가 바라고도 바라던 모습이 저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더러 하라면 오글거려서 하지 못할 행동이기도 했다.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왜 저 인간이 하면 폼이 나고, 그가 하면 허세 같을까?
순간적으로 억울함이 밀려왔다.
“허허허.”
허탈한 이중걸의 웃음이 그의 의식을 현실로 끌어내렸다.
“허허허허.”
이중걸은 그 짧은 순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어버렸다. 방진훈이 봐도 이중걸이 모든 의욕을 잃었다는 것이 확실히 보일 만큼 말이다.
“회주님.”
문득 이중걸은 눈앞의 사내에게 마지막 예의를 다하기로 했다.
“회주 자리를 넘겨주시지요.”
“…….”
“이양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탈취라고 하면 너무 삭막한 단어가 되어버리니까요.”
“이양이라…….”
이중걸이 아주 느릿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가져가게. 다 가져가.”
이중걸의 목소리에는 한 점의 힘도 담기지 않았다.
“가져가야 한다면 가져가야지. 원한다면 이 목숨까지 가져가게.”
한국을 호령하던 무인이 그 빛을 잃어가는 순간이었다.
방진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동안 지겹도록 싸워온 회주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대의를 떠나서 이중걸은 그에게 합당한 적이었고, 그런 이에게는 걸맞은 최후가 필요한 법이었다.
“뭐가 그렇게 아쉬우십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방진훈이 허탈한 어조로 말했다.
“설마 뭐가 끝나기라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중걸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