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
#2.
마존, 돌아오다 (1)
그것은 기이한 감각이었다.
적천마존은 자신의 육체가 허공에 붕 떠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 위에 떠 흘러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닌 듯 기이한 감각.
그 감각 속에서 적천마존은 부유하고 있었다.
기묘한 위화감 속에서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이대로 영원히…….
편히 쉬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던가.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이 그의 의식을 천천히 앗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그의 안식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자분.”
안식이 깨어진다.
편안함은 사라지고, 순간 참을 수 없는 불쾌함과 지독한 이물감이 그를 괴롭혀 왔다.
“……자분!”
뭔가.
누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건가.
“……드세요?”
나를!
나를 내버려 둬라!
나를!
“정신이 드세요?”
그때, 적천마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앞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을 움켜잡으려 손을 뻗었다.
“큭!”
“꺄악!”
하지만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언제나 섬전보다 빠르게 허공을 가르던 그의 손은 날카롭게 적을 제압하기는커녕 파리가 앉을 듯한 속도로 빌빌대며 덜덜 떨리고, 동시에 옆구리에서 극통이 느껴졌다.
적천마존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의 눈앞에 있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여긴?”
탁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적천마존은 자기가 말을 해놓고도 놀라 자신의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어색한 목소리.
그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앞의 여자.
분홍색 의상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여자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
“환자분은 교통사고로 실려 와 수술을 받았어요. 움직이시면…….”
뭔가 설명하려던 여자는 적천마존의 옆구리를 동여맨 붕대가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벌어졌네. 어떻게 해!”
“…….”
적천마존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이해하려 애써야 했다.
겨우겨우 주변의 광경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새하얀 벽.
그리고 침대.
유리로 된 창과 그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TV?”
여자는 적천마존을 보며 말했다.
“더는 움직이시면 안 돼요! 일단 선생님 불러올 테니까! 제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적천마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나가며 자신도 모르게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무슨 사람 눈이…….’
환자가 눈을 떴을 때, 그 안에서 비추어지던 눈빛.
수술을 마친 환자가 그저 눈을 뜬 것뿐인데 그녀가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 버린 눈빛.
그녀는 그 눈빛을 떠올리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잘못 봤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적천마존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눈앞에 있는 여인은 아마도 간호사일 것이다.
병원에 근무를 하며 환자를 돌보는 자.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상한 것은 그가 간호사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리창과 TV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돌아온 건가?”
적천마존은 자신의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굳은살도, 상처도 없는 뽀얀 손이 있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극마의 경지에 올라 탈각에 이르렀음에도 미처 다 재생되지 못하여 거미줄을 두른 듯 쩌적쩌적 갈라져 있던 그의 손이 지금 아이의 그것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육신도 변했다는 뜻이겠지.
적천마존이 혼란스러운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는 동안 새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적천마존의 옆구리에서 배어 나온 피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움직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지 않았어요?”
간호사는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몸을 뒤틀어서요.”
의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환부를 좀 봐야겠습니다.”
그러고는 적천마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간호사에게서 가위를 받아 들더니 붕대를 잘라냈다.
그러자 긴 지네가 박힌 듯한 환부가 드러났다. 꿰매진 실 사이로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벌어져 피가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다행히 봉합 부위가 완전히 벌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라면 자연히 아물 것이다.
“터지진 않았군.”
의사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닦아냈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봉합한 곳이 터지면 재봉합을 해야 해요. 재봉합만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내부가 터지면 재수술을 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적천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이 그의 말을 앗아갔다.
의사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간호사에게 붕대를 감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차트를 들었다.
“성함은요?”
자신에게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못한 적천마존이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대자 간호사가 다시 한 번 적천마존을 불렀다.
“저기요, 환자분?”
“……예.”
“성함이 어떻게 되죠?”
“이름…….”
“예, 성함요.”
적천마존은 기억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너무도 오래 입에 담지 않은 이름이라 어색하기만 한 그의 이름을.
“강진호.”
“사는 곳이 어디죠?”
“예?”
“주소 말이에요, 주소.”
적천마존, 아니, 강진호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음,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이곳에 있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요.”
맞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의 굳은 얼굴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신경외과 호출 좀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의사가 새로 들어온 의사를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조심성이 조금 부족했는지 병실 안으로 그들의 말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왜? 문제가 있어?”
“뇌 쪽은 이상이 없다고 되어 있는데요.”
“가벼운 뇌진탕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혈종이나 출혈은 발견되지 않았어.”
“착란 상태 비슷해 보입니다.”
“무슨 소리야?”
“자기 이름은 기억하는데, 사는 곳도 모르고 자기가 서른다섯이래요.”
“서른다섯?”
“예.”
“골치 아프게 됐네. 왜 그러지?”
문이 열리고 의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호는 얼떨떨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양반들은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강진호 씨?”
“예.”
“현재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서른다섯입니다.”
“사는 곳은요?”
“기억이 안 납니다.”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하는 일은 딱히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의사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몇 가지 테스트를 했다. 자신의 손을 보라느니, 소리가 어느 쪽에서 들리냐느니, 꼬집은 곳이 아프냐는 등의 유치한 테스트지만, 강진호는 별말 없이 그의 요구를 따랐다.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강진호 씨, 지금 혼란스러우실 텐데, 일시적인 기억장애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CT 한 번 더 찍어보겠습니다.”
“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만약을 대비해서니까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여자가 안으로 뛰다시피 들어왔다.
“진호야!”
강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여인을 보았다.
그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어……?”
“진호야! 진호야! 뭘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선생님! 우리 진호 괜찮은 거죠? 예? 선생님!”
의사가 침착하게 여인을 진정시켰다.
“수술은 잘되었습니다. 비장 파열에 갈비뼈가 몇 개 부러지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후유증이 남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문제는 지금…… 진호 학생이 기억에 조금 장애가 있는 것 같은데…….”
“예? 기억이라니요? 뇌를 다쳤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사고 시 뇌진탕이 조금 있어서 일시적으로 혼란이 온 것 같습니다. CT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곧 괜찮아질 겁니다. 혹시 모르니 오후에 CT 한 번 더 찍어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인은 의사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진호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니? 많이 아프지?”
“…….”
“진호야?”
강진호는 눈앞의 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는가.
이 사람은…….
결코 여기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잊어본 적은 없다.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결코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그래, 이놈아! 내가 조심히 좀 다니라고 그만큼 말했잖아! 왜 조심을 안 해! 왜!”
한참을 강진호를 나무라던 어머니가 눈가를 훔치더니, 강진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다!”
“어째서……?”
“응?”
강진호는 멍한 눈으로 여인을 보다가 급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이건?’
다리가 움직인다.
그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강진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왜 그래? 진호야 많이 아프니?”
“……아닙니다.”
강진호는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며 떨리는 자신을 진정시켰다.
어머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전 생에서도 십여 년 전에 죽은 사람이 어떻게 그의 앞에 있는 것인가.
“어머니……?”
“어머니라니, 얘가 진짜 많이 놀랐나 보네. 평생 안 하던 말을 다 하고.”
“…….”
“일단은 좀 쉬어라. 많이 놀랐을 테니까. 불편한 것 있으면 엄마한테 말하고. 알았지?”
“……예.”
어머니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강진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진호는 자신의 머리로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에 흠칫 놀랐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손이 강진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강진호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눈을 감았다.
‘돌아왔어.’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돌아왔다.
중원에서 태어난 지 몇 십 년 만에 과거의 그가 살았던 현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그가 죽은 시기로부터 훨씬 이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