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02
#301.
함께하다 (1)
“당해?”
“예.”
“확실한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정보통을 활용하여 확인해 보니, 이중걸은 멀쩡히 살아 있다고 합니다.”
사내의 눈썹이 꿈틀댔다.
“배신인가?”
“상황이 조금 오묘합니다.”
“좀 더 자세히. 정보가 있어야 판단을 할 수 있는 법이지. 선문답은 되었으니, 풀어보게.”
“이중걸은 살아 있으나 방진훈 이사라는 이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했습니다. 방진훈은 이중걸이 우리에게 말한 목표물 중 하나입니다.”
사내는 그 모든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야하라는 가만히 입을 닫고 시립했다. 그의 주인이 지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방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느새 문밖으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방진훈이라는 자가 이중걸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그 와중에 우리 아이들이 모두 당했다는 것인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가능성은?”
“구 할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구 할이라…….”
미야하라의 말에 사내는 침음을 흘렸다.
‘이해할 수가 없군.’
아무리 약소국인 한국의 요청이라고는 하지만 일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니까.
더구나 이번 일은 잘만 풀린다면 오랫동안 염원해 온 한반도 진출에 대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괜찮은 아이들을 과하다 싶을 만큼 투입한 일이다.
그런데 모조리 실패했다?
“중국의 개입이 있을 확률은?”
“지극히 적습니다.”
“다른 조의 움직임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내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미야하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너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들에게 모조리 당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단 한 녀석도 살아남아 연락을 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예.”
미야하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는?”
“이중걸 때문입니다.”
“이중걸…….”
“다른 곳의 개입이 있었다든가,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면 이중걸은 분명 우리에게 연락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중걸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이쪽으로 전혀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 이중걸이 감히 연락을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하게 제압을 당했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연락을 시도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사내는 침음을 흘리며 찻잔을 어루만졌다.
손실이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조직이 흔들릴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아니라 이 상황을 초래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다수가 우리 아이들을 상대했다면 그 소란이 적지 않았을 터. 만약 누군가가 우리 아이들을 은밀히 제거했다면, 그건 다수가 아니라 소수겠지.”
미야하라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 소수라……. 하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우리 아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수준이 높은 무인이 한국에 있다는 말인가?”
사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해 왔다. 그만한 무인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심산유곡에서 수련을 하던 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흔한 것이 무인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수준이라는 것이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군.”
사내는 또다시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저 나라는 갑자기 수준에 안 맞는 인간들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곳이었다. 수준이 낮은 곳에서 한두 명의 천재가 튀어나오더니 일본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그 업계 자체를 상승시켜 버리는 일이 지금껏 흔하지 않았던가.
“이중걸과 접촉해 볼 수 있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렵다라…….”
사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 반도를 제압한다는 것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이미 한 번은 패퇴당했고, 한 번은 손에 넣었으나 놓쳐 버렸지. 그러니 쉬울 리 없겠지.”
미야하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들의 저력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일본과 중국이었다. 그 넓은 대륙의 옆에 붙어 있으면서도 역사적으로 복속당하지 않고 끈질기게 생존해 왔다는 것이 그를 증명했다.
“하지만…….”
사내의 눈이 투지로 불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사내는 단호한 눈으로 미야하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일의 원인을 파악하고, 우리 아이들을 제거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내라.”
“예.”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적의 존재를 규명하는 순간, 철저한 보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미야하라가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 나가자 사내는 가만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잔 위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격동했는가.’
크다고 할 수 없는 일인데도 그의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 일에서 불길함을 느꼈다는 징조다.
대륙 진출은 그들의 오랜 소망이었다. 시기를 보고 또 보다가 이제야 기회를 잡은 것인데, 시작부터 뭔가 틀어지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분이 아시면 진노하시겠군.’
일에 대한 결과를 보고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아찔해 온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살려두지 않겠다.”
노한 사내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 * *
“아들.”
강진호는 싸늘한 한기를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현정이 그를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 어머니?”
세상에 딱히 두려울 것이 없는 강진호다. 귀신도, 맹수도 그를 두렵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단 한 명, 그의 천적이 존재한다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백현정이었다.
“요즘 너무 무심한 것 아니니?”
“……네?”
“예전에는 곧잘 이 엄마랑 놀아주기도 하더니, 요즘은 영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나가면 새벽이 되도록 돌아오지를 않네.”
“…….”
강진호의 얼굴이 꿈틀꿈틀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은영이도 바쁘다고 집에 잘 안 들어오고, 네 아버지는 카페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집을 비우고……. 이 넓은 집에 엄마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좀 그렇구나.”
강진호가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집이 넓긴 넓네.’
이 집에 하루 종일 있다 보면 홀로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 들 것도 같았다. 강진호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하니까 어머니도 그렇지 않을까?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 세계에 돌아와서 한 결심이 뭐였지?’
평범하게 산다?
행복하게 산다?
그 모든 것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바로 ‘가족들과 함께’라는 전제가 말이다.
“요즘 통 식욕도 없고, 잠도 안 오는구나. 이러다 우울증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강진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니, 잠시만요.”
“응?”
강진호가 방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꺼냈다.
[여보세요?]“나다.”
[그래, 진호야. 무슨 일이니?]“나 오늘 못 나가.”
[응? 왜?]“비상계엄령이다. 가게를 부탁한다.”
깔끔하게 전화를 끊은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오라비! 웬일이야,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한 오 년 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어디냐?”
[응? 나 지금 촬영 끝나고 행사 준비 중이지. 오늘 가야 할 곳이 몇 군데 있거든.]“전부 취소하고 집으로 와.”
[뭐? 취소? 오빠, 미쳤어? 이게 뭔 애들 장난인 줄 알아? 행사 한 번 취소하면 물어야 할 위약금에 이미지 하락이 좀 큰 줄 알아? 아무리 오라비라도 이번에는 안 돼! 내 머리털을 다 뽑는다고 해도 절대로 안 가! 고소할 거야, 이 폭력 오라비야!]“어머니가 우울하시단다.”
[간다! 거기서 딱 기다리시라 그래!]과감하게 끊긴 전화를 보며 강진호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어릴 적부터 가족이 우선이라고 조기 교육을 시킨 성과가 있었다. 이제는 알아서 착착 움직이지 않는가.
준비를 마친 강진호가 팔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
“응?”
비장한 얼굴로 나오는 강진호의 모습에 백현정이 당황했다.
아들의 반응이 너무 진지하지 않은가.
“뭐부터 할까요?”
어느새 강진호는 완전한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꺄악!”
대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 강은영이 현관을 보자마자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못 볼 것을 본 게 아니라, 현관을 열었는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쏟아진 것이다.
“헐, 이게 뭐야?”
강은영이 충격 먹은 눈으로 현관을 바라보았다.
현관의 타일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새것 같다’라는 말은 이런 데 쓰는 게 아니다. 어느 공장에서 만든 새 타일이 이런 광채를 뿜어낸단 말인가.
“아니, 뭔 바닥에 거울 설치한 줄 알았네.”
한동안 치마는 다 입었다는 생각에 강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의 깔끔병!”
이 인간이 내가 도착할 때까지 대체 뭘 하고 있나 했더니, 청소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대체 어머니가 우울한 것과 청소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저분한 흙발로 반짝이는 타일을 거침없이 짓밟은 강은영이 서둘러 신발을 벗고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백 여사아아아아아!”
안으로 들어가니 소파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강은영은 다이렉트로 백현정의 품에 뛰어들어 안겼다.
“어구! 우리 백 여사, 외로워쪄?”
“저리 가!”
“어구어구, 딸내미가 와쪄요.”
백현정은 볼을 부비는 딸이 징그럽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면서도 은근 싫지는 않은지 힘주어 밀어내지 않았다.
“됐다. 엄마가 말을 해야 꼭 알아듣니? 밖에서는 똑 부러진다는 소리 듣고 다니는 것들이 꼭 사람이 눈치를 줘야 알아듣고.”
“내가 너무 바빠서 그랬잖아. 섭섭했어?”
“그래, 바쁘지. 얼마나 바쁜지 자식 놈들 얼굴 볼 틈도 없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너희를 잘나게 안 키웠을 텐데.”
“헤헤, 엄마, 화 풀어.”
강은영이 화장실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나오는 강진호를 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인간아! 엄마가 외롭다는데 기껏 하고 있다는 게 청소냐!”
“냅 둬라. 네 오라비가 원래 융통성이 없잖아. 제 나름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가 보다.”
“저러니 엄마가 외롭다는 소리가 나오지!”
양쪽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강진호가 쭈구리가 되어 벽에 붙었다.
“엄마, 엄마. 이왕 이리된 거, 우리 오늘 신나게 놀자. 엄마, 뭐하고 싶어?”
“엄마는 하고 싶은 거 없다.”
“에이, 엄마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가 엄마랑 놀고 싶어서 그러지. 그치, 오빠?”
“그, 그럼.”
강진호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삶을 살면서 그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청소 실력도, 공부도 아니고 눈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눈치가 지금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닥치고 끄덕여!’
강진호와 강은영의 반응을 살핀 백현정이 감은 눈을 살짝 뜨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쇼핑이나 하러 갈래?”
“강 기사!”
“넵!”
“차 대기시켜!”
“넵!”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강진호를 보며 백현정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