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07
#306.
조언하다 (1)
“예?”
뜻밖의 말에 점장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점장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강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드.”
“그거 엄마한테 있어.”
“…….”
강진호가 몸을 돌려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
“오냐.”
백현정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아들이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아들이 허튼짓을 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었다.
강진호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카드를 점장에게 내밀었다.
“몇 명까지 들어갈 수 있죠?”
“고객님, 등급에 관련 없이 동행 가능한 VIP는 세 명입니다.”
강진호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점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예외는 없나요?”
“예. 예외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요?”
강진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자, 잠시만요.”
강진호가 전화를 드는 모습을 보자마자 점장이 일단 만류했다. 왠지 모르지만, 저 전화가 어딘가로 연결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 것이다.
“어, 어디에 전화를 하시려고요?”
“비서실요.”
“비서실에는 왜……?”
강진호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드 한 장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다른 카드를 한 장 더 받아야죠.”
점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고 보면 이 양반은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한 사람이었다. 발렛 파킹장에서 전화 한통 한 것으로 최고 등급 VIP 카드를 즉석에서 만들어주라는 연락을 받게 만드는 사람인데, 일반 VIP 카드 정도야 과자에서 따조 꺼내듯이 발급 받겠지.
하지만 그 의견이 들어가는 순간, 비서실을 통해 이곳에서 벌어진 일이 모조리 회장실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건 확신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하지?’
대응을 잘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제대로 대응을 해도 감정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일이다.
막말로 아무리 연을 끊은 자식이라지만, 자기 자식이 자기 백화점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말을 들으면 황정후가 기분이 좋을까?
이전까지야 기분이야 나쁘더라도 원칙에 충실한 황정후가 이 일을 문제 삼지야 않겠지만…….
‘이전까지란 말이지.’
황정후도 나이를 먹었다. 나이가 먹은 사람은 가족에 집착하기 마련이고, 자식에 대한 애착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 황정후가 이 일을 문제 삼는다면, 그는 황정후의 아들에게 함부로 대했다가 문제가 생긴 첫 번째 사례가 될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골치가 아프다.
가장 좋은 일은 이 일이 황정후의 귀에 최대한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고, 고객님, 잠시만요.”
머리를 굴린 점장이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잠시. 저와 이야기를 좀 하실 수 있겠습니까?”
강진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장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갔다.
“사실 동행하게 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규정을 지켜야 하긴 하지만, 상황이 애매할 경우 다음에는 이러시면 안 된다고 언급해 두고 라운지를 이용하게 해드리고 있으니까요.”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분은 워낙 민감하신 분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저분을 괜히 입장시켰다가 말이 위로 올라가면 제게 회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겠네요.”
“꼭 동행하셔야겠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바지를 한 손으로 꾹 잡고 있는 아이를 보자 결심이 굳었다.
“동행하게 해주세요.”
“……고객님.”
“그쪽에는 피해가 안 가도록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상대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 할지라도 자식 앞에서 초라한 아버지의 등을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점장의 눈이 흔들렸다.
지그시 입술을 깨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행하셔도 됩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이건 제 선택입니다.”
강진호가 씨익 웃고는 몸을 돌렸다.
점장이 앞으로 나서서 손수 강진호를 안내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객님, 들어가십니다. 문 여세요.”
“예!”
문이 열리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황민수를 바라보았다.
“들어가시죠, 전 사장님.”
“예? 아…….”
황민수가 강진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황민수와 그의 가족을 안으로 들여보낸 강진호가 몸을 돌려 그의 가족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먼저 들어가 계세요.”
“너는?”
“……잠시 밖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왜?”
강진호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자 강은영이 백현정의 등을 밀며 말했다.
“폐암 걸려 죽으라고 하고, 우리는 들어가요, 엄마.”
“좀 끊어! 이 화상아!”
악담을 하며 안으로 향하는 둘을 보며 강진호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힘들면 안 되는데, 힘드네.’
한때는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건만, 사람이란 게 다 그렇듯 막상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오래되자 함께 쇼핑을 하는 별것 아닌 일조차 힘들게 느껴졌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가. 아니, 강진호가 간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성해야지.’
어머니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강진호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실감이 든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가게도 중요하고, 총회의 일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런 일들에 신경을 쓰다가 가족의 행복을 놓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강진호는 씁쓸한 얼굴로 담배를 빨았다.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잘해야겠어.’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놓치는 것들이 생각난다. 무공이 있고 능력을 키웠으니 사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세상을 사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행복에는 노력이 뒤따른다는 것을 요즘 들어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불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황민수.
황정후의 둘째 아들인 그가 담배를 꺼내 든 채 강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강진호는 두말없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황민수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라이터를 받아 든 황민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다시 강진호에게 돌려주었다. 가만히 담배를 빤 황민수가 연기를 뿜어내더니 재떨이에 재를 두어 번 털고는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뇨.”
강진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 감사받을 일은 아닙니다.”
“덕분에 체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황민수가 넋두리를 하듯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되었는데, 아들놈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쉽게 물러날 수가 없더라구요. 체면을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강진호는 이 대화가 불편했다.
어쩌면 황민수가 지금 고난을 겪고 있는 원인은 강진호일 것이다. 강진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재경은 삼분되어 황민재와 황민수, 황민국, 세 형제의 것이 되었을 테니까.
틀린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이에게 되레 감사를 받는 것은 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또하나의 이유는…….
‘VIP실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체면이 상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체면이라는 게 아주 없겠군.’
물론 사회적인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살아온 배경이 있으니 그런 부분에 화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반인들은 발을 들이지도 못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꼭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만약 그곳에 황민수의 아들이 없었다면 강진호는 단언컨대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죠.”
“예?”
“그럴 자격이 안 된다면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더군요.”
“음…….”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이때가 되어서야 카드가 정지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그렇네요.”
평소에도 들락거렸다면 모를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냥 애가 옷이 낡은 것 같아서 옷이나 한 벌 사 입히는 김에 좀 쉬어 가려고 했는데, 하던 가락이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거기로 향했네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할 때 깔끔하게 뒤로 물러났어야 하는데, 사람이란 게 참…….”
씁쓸하게 웃는 황민수를 보며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은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가.
강진호는 넋두리를 늘어놓기에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 딱히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기에 좋은 타입도 아닌데,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늘어놓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말을 늘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장소가 좋지 않았다.
“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네?”
의외라는 듯이 강진호가 황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민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제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는데,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 있으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럼 아버지께 폐가 되는 일이죠.”
“음…….”
“점장을 설득하시는 걸 보면 재경에서 나름 높은 일을 맡고 계기는 모양인데, 아버지는 잘 지내십니까?”
‘인연을 끊었다고는 들었지만…….’
제 아비의 소식도 모르고 살 정도일 줄이야.
이건 인연을 끊은 수준이 아니었다. 황정후의 진노를 두려워한 주변인들이 모조리 그와 연락을 끊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잘 계시죠.”
“그럼 다행입니다. 혹여…….”
뭔가 말을 하려던 황민수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이런 말을 전하는 건 의미가 없겠네요.”
“말씀하세요.”
강진호의 재촉에도 황민수는 씁쓸히 웃을 뿐이었다.
“아뇨. 제가 말을 전했다고 하면 아버지는 그쪽도 좋게 보지 않을 겁니다.”
“자제분이 전해 달라고 했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죠. 알아서 돌려 말할 눈치 정도는 있으니, 말해보세요.”
황민수의 눈이 살짝 떨렸다.
고민하는 듯하던 황민수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도, 숙부님도 다들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력이 있으니 건강을 잘 챙기시라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다입니까?”
“예, 뭐…….”
황민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불효자가 그 외에 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전했다는 말을 들으면 역정을 내실 겁니다. 노구에 화를 내시면 건강에도 좋지 않을 테니, 저를 봤다는 말은 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강진호는 가만히 뒤돌아서는 황민수를 바라보았다.
‘가족이라…….’
가장 가깝지만, 어떨 때는 남보다 더 어려운 사이가 가족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