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08
#307.
조언하다 (2)
“웬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조규민이 강진호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강진호를 찾아간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강진호가 그를 찾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대화를 하던 와중에 다음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일정에 따라 다시 만나는 일이야 흔하지만, 오늘처럼 그가 먼저 연락을 하고 밥이나 먹자고 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냥 상의드릴 일이 조금 있어서요.”
조규민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뭔가 이제 좀 인정받는 기분이 드는군.’
강진호는 감정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리고 칭찬에도 인색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모시다 보면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일까?’라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그가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정말 강진호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인가가 의심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는 강진호는 초인 같은 사람이다.
조규민이 없다 하더라도 강진호의 삶은 그리 힘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조금의 불편함은 겪을지언정 그는 홀로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자괴감을 버릴 수 없던 와중에 이리 강진호가 자신을 찾아주니 기꺼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식도락에는 취미가 없으신 분이 굳이 밥이나 먹자고 저를 불렀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런 취미도 가져 보는 게 나쁘지는 않겠죠.”
“그럼 제가 근사한 곳으로 모셔야겠네요. 이거, 첫 데이트 때보다 더 두근거리는 것 같은데요?”
“……진정해 주세요.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니까.”
“죄송합니다.”
너무 오버했다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조규민은 정색하고 표정을 바꿨다.
“타시죠.”
“네.”
두 사람이 만나게 되면 운전은 조규민이 한다. 이건 둘 사이에 정해져 있는 암묵의 룰이었다. 이유야 뭐 빤한 것 아니겠는가.
‘저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는 죽어도 타고 싶지 않아.’
예전에 강진호의 운전 교습을 해주다가 차에 트라우마가 생길 뻔한 조규민이다. 요즘이야 좀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에게 운전대를 돌릴 힘과 엑셀을 밟을 수 있는 다리 힘이 있는 이상은 결코 운전대를 맡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모험을 즐기지만, 그래도 목숨을 건 모험은 사양하는 편이다. 차 사고가 나서 죽어도 억울할 텐데, 보조석에서 심장마비로 죽는 건 절대로 사양이다.
“이번에 운전은 잘하셨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진짜요?”
“아직 클레임이 들어오지 않은 걸로 보아 백 여사님은 만족하신 듯합니다. 은영이는 조금 답답하다고 하더군요.”
“그, 그렇군요.”
예상외의 답변에 조규민은 머릿속 메모장에 하나의 항목을 추가했다. 강진호의 차 상석에 백현정을 앉히면 강진호는 모범 운전수로 변신한다. 이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였다.
“쇼핑은 잘하셨습니까?”
순간, 강진호의 몸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해가 잘 안 가는 것이 있는데…….”
“예?”
“왜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셔츠, 그리고 검은색 셔츠 중에 더 나은 검은색 셔츠를 골라야 하는 거죠?”
“……그건 이해의 영역이 아닙니다.”
당신은 평생이 지나도 알 수 없는 것이죠.
나도 모르는데.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강진호가 얼마나 깊고 넓은 고난의 강을 건넜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여하튼 잘하고 오셨다니 다행입니다. 어머니의 기분은 좀 풀리신 것 같나요?”
움찔.
다시 강진호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발견한 조규민이 안쓰러운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자주…… 자주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매우 마음에 드셨네요.”
조규민이 살짝 눈을 감아 애도한 뒤 위로를 전했다.
“그 ‘이런 시간’이라는 말이 꼭 백화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겠죠?”
맹세컨대 강진호를 안 지가 5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간절한 얼굴을 한 강진호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의 얼굴에서도 저런 강아지 같은 표정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싫으면…….’
하기야 평범한 남자도 버텨내기 힘든 것이 여자의 쇼핑인데, 강진호 같은 타입은 말 그대로 지옥을 겪는 느낌일 것이다. 옷이라고는 엄마가 사다 놓은 옷 말고는 입을 줄 모르는 남자가 자기 옷도 아니라 여자 물건을 쇼핑하는 곳에 따라갔으니.
“그래도 묵묵히 짐꾼이라도 해야 욕을 안 먹는 법이죠.”
“경험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보통은 다들 그런 경험을 하잖아요.”
여유로운 조규민의 웃음에 강진호가 물었다.
“여자 친구였나요?”
“……엄마요.”
“아…….”
강진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조규민은 비도 오지 않는데 괜히 와이퍼를 켰다가 정지시키고는 눈가를 훔쳤다.
‘비 오는 줄 알았네.’
“……생길 겁니다.”
“그리 믿고 있어요.”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강진호가 보기에는 참 괜찮은 남자인데, 왜 안 생기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기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퇴근도 못하고 매일 밤까지 일하는데다 딱히 취미 활동이랄 것도 없는 조규민이 어디 가서 여자를 만나겠는가.
“여깁니다.”
주변에 소개팅해 줄 사람이라도 알아봐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와중에 차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좀 멀리 온 것 같은데요?”
“예전에 회장님을 모시고 온 곳입니다. 회장님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는 것 같던데, 강진호 씨의 입맛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회장님의 입맛에는 맞던데’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은 밥을 안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 고기 몇 점 드시고는 일어나서 백반 드시러 가셨습니다.”
“피자집에 한 번 모시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드시긴 할 겁니다. 먹고 백반 드시러 가시겠죠.”
한국인이네, 한국인이야.
강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40년이고, 중국인으로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강진호이다 보니 먹을 것에 대한 편견은 딱히 없었다.
음식이란 것은 먹을 수만 있으면 된다.
“올라가시죠.”
“네.”
조규민을 따라 입구로 들어서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이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아뇨. 예약은 안 했습니다.”
“두 분이신가요?”
“예.”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종업원을 따라 자리한 테이블에서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 굽기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강진호는 단호했다.
“웰던이요.”
“손님, 웰던은 고기가 조금 질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네.”
고기가 질겨봤자 고기지.
타이어도 씹어 먹을 치악력을 가진 강진호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가자 조규민이 웃음기 띤 얼굴로 물었다.
“바짝 익혀 드시네요.”
“고기에서까지 핏기를 보고 싶지는 않아서요.”
“…….”
평범하다면 나름 평범한 대답이지만, 그 말을 하는 이가 강진호다 보니…… 뭐랄까, 조금은 오싹해지는 대답이었다.
‘음식은 취향이니까.’
“어떠십니까? 분위기는 괜찮으신가요?”
“괜찮긴 한데…….”
조금은 고풍스러워 보이는 실내를 두리번거리던 강진호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곳은 제가 아니라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셔야 할 텐데.”
“……계속하십시오. 그럴 줄 알고 제가 소화제를 준비해 왔거든요. 체해도 괜찮습니다.”
조규민의 혼이 살짝 육체를 이탈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체가 나오자 강진호와 조규민이 가볍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저를 또 어디 써먹으려고 부르셨습니까?”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보통은 전화로 물으시는데 이리 저를 불렀다는 뜻은…… 물어볼 이야기가 좀 민감하다는 뜻이군요.”
“네.”
강진호는 말을 일일이 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조규민이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에 대한 이야깁니다.”
“회장님요?”
조규민이 의외라는 듯이 눈을 껌뻑였다.
‘이상하지 않은데, 이상하군.’
강진호가 황정후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은 딱히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지금까지 강진호는 단 한 번도 황정후에 대해 먼저 뭔가를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조규민이 전해 주는 정보를 듣기는 했지만, 그가 먼저 황정후에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혹시 재경에 대해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아니요.”
‘그럼 그렇지.’
딱 잘라 말하는 강진호의 대답에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정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에 혹시라도 재경을 물려받아 보겠다는 야욕이라도 생겼나 했더니,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황정후에게 왜 관심을 가진다는 말인가, 새삼스럽게.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신지가 궁금해서 그럽니다.”
“어떤 생활이라…….”
조금은 모호한 질문이었다.
“제가 회장님의 비서를 맡고 있기는 하지만, 저는 공적인 임무를 맡는 사람입니다. 회장님의 사생활에 관한 부분은 제가 관여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음…….”
강진호가 예상외의 대답을 들었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럼 알아볼 방법도 없는 겁니까?”
“방법이야 있습니다만, 회장님의 개인 비서들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조규민이 포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물로 목을 축였다.
“차라리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어떤 생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냥 그런 거 있잖습니까. 잠은 어디서 자고, 누구와 생활하고 이런 것들요.”
“……아, 그 정도군요.”
뭔가 대단한 걸 묻는 줄 알았더니, 사생활적인 측면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정도야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죠.”
“더 좋은 방법이요?”
“직접 가시면 되잖습니까.”
“어딜요?”
“어디긴요. 황 회장님의 집이죠.”
“……음?”
조규민이 씨익 웃었다.
“강진호 씨가 놀러 간다고 하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실걸요? 저도 제대로 들어가 보지 못한 회장님의 자택이지만, 제 생각에 강진호 씨에게는 24시간 상시 개방될 것 같은데요.”
“으음.”
강진호가 고민이 된다는 듯 침음을 흘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씀을 좀 전해 주세요. 한 번 찾아뵙겠다구요.”
“정말이십니까?”
“네.”
조규민은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강진호는 주변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 무관심함이 도를 넘어 때로는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가 갑자기 그동안 관심도 가지지 않던 황회장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게 말씀해 주시기 어려운 일입니까?”
“무슨 뜻이신지?”
“갑자기 왜 회장님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는지 이유를 물어보아도 될까요?”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은 아니니까. 이 정도야 말을 해주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사실은…….”
강진호가 가만히 백화점에서 있은 일을 설명했다. 강진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조규민의 표정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었다.